일 년 중 유일하게 만두를 먹지 못하는 시즌이다. 내가 (찐)만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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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세계는 넓고 깊어서 건져도 건져도 보물이 계속 나온다. 마침 여름에 읽으면 좋을 그림책을 몇 권 찾아서, 거실에 두고 오며 가며 들추어보고 있다.
수박 수영장 / 안녕달 그림책
잘 익어 반으로 갈라진 수박이 수영장이 된다. 이렇게 말하면 수박이 어마어마하게 크거나 사람이 아주 작거나 해야 될 텐데,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런 것 따위가 뭐 중요한가 싶다. 처음에는 석석 살아있던 과육이 아이들이 밟고 놀면서 수박 물이 되어 진짜 수영장처럼 된다. 튜브를 끼고 뽁뽁 소리를 내며 걷는 아이들, 발목에 묻어나는 수박, 껍질로 만든 미끄럼틀, 모든 것이 시원하고 달달하고 즐겁다. 그런데 수박 수영장이라니, 이 발상은 어디서 왔을까? 맨 뒷장에 조그만 힌트가 있다. 요즘 만난 가장 사랑스러운 그림책.
수박하면 참, 이런 그림책도 있다.
한입에 덥석 / 키소 히데오 그림책
동물들 모인 자리에 굴러 들어온 커다란 수박. 악어 꼬리로 잘라서 나누긴 했는데 동물들마다 먹는 모양이 다르다. 단순한 내용인데 의성어 의태어가 많이 나와서 재미있다. 수박 먹고 싶네.
들리니? / 하이지마 노부히코 그림책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꽃이 열리는 소리, 별이 빛나는 소리륻 들어보길 권하는 그림책이다. 나는 '서정적인 그림책'은 어른 취향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에는 단박에 매료되었다. 특히 이 장면이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을 샀다.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다.
지구촌 문화 여행 / 알렉산드라 미지엘린스키, 다니엘 미지엘린스키 그림책
볼 것이 끝없이 나오는 신기한 지도책. 판형이 시원시원하니 크고, 한 나라당 한 펼침면을 다 써서 곳곳의 문화를 소개한다. 알라딘 미리보기로도 그 귀여움이 다 전해지지 않는다. (꼭 확대해서 자세히 보시길!) 색감도 아름답고 대체 어떻게 취재했는지 자세히도 묘사했다. 표지에 적힌 대로 "거실에서 지구 한 바퀴"를 돌아보기 딱 좋다. 그런데 한 가지, 왜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로 번역했을까? 러시아, 크로아티아, 에스파냐, 대한민국, 일본... 이렇게 세계 속에서 이해하는 게 더 좋을 텐데 굳이 왜? 비행기 타고 세계를 여행하다가 갑자기 여기가 우리 집 거실이란 걸 콱 깨닫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포장마차와 송광사까지 그려 넣은 걸 보면 새삼 이들의 취재(연구)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캘빈의 마술쇼 / 크리스 반 알스버그 그림책
책 속의 계절도 이렇게 더운 여름날이다. 동생을 놀리고 또 귀찮아 하던 캘빈은 마술쇼에서 최면술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친구와 작당해 동생을 상대로 최면술을 실험해 본다.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여기까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도 기묘하고 반전이 있어서 약간 으스스하다. 그래서인지 10세 고객님들의 절반은 웃겨하고 절반은 어리둥절해한다. 9세 남의 반응이 흥미로웠는데 꽤 놀랐는지 표정이 굳어서 "이거.. 아닌 거 같아요." 한다. "뭐가?" "몰라요. 그런데 이거... 아 몰라요." 여름엔 역시 미스터리인가! 이 책은 전에 <<프로버디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었는데, 사려고 했을 때 절판 상태라 아쉬웠다. 이번에 새로 나와서 바로 사긴 했지만 제목은 원제대로 프로버디티!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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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
"14명의 경이로운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나는 좀 이상하다. "14명의 작가들이 들려주는 경이로운 이야기"라고 해야 맞지 않나?? 작가가 훌륭하긴 해도 경이로울 것까지야?
아무튼 사 두었던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알려져 있듯이 해리스 버딕이 남긴 신비로운 그림을 모티프로 유명한 작가들이 이야기를 지어낸 것을 모은 책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 그림만 모아서 낸 그림책이 더 훌륭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이 책이 더 좋다. 물론 그림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작품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고 궁금해 죽겠어서 참다 못해 자기가 이야기를 써보는 그 마음들이 너무 좋다. 혹시 작가들끼리 "아 내가 그 그림 갖고 하려고 했는데!" 하고 질투하거나 그러진 않았을까? 어딘가에서 해리스 버딕이(실존하긴 할까?) 이 출판된 책을 보고 있다면 좋을까, 싫을까?
이 책은 "어린이책을 좋아하는 어른"이 보기에 딱 좋다. '애들이 이런 걸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접고 그냥 나 좋자고 읽는 게 좋다는 얘기. 린다 수 박의 <하프>가 가장 좋았고, 로이스 로리의 <일곱 개의 의자>, 스티븐 킹의 <메이플 거리의 집>도 좋았다. 여름엔 역시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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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면 이제 군만두가 될까?
걱정은 접어두고 일단 복숭아를 하나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