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선생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요, 사실은 어제 선생님한테 가기 전에 J가 울었거든요. 가기 싫다고요. 모르는 사람이랑 단둘이 얘기하는 거 싫다고요. (아이고 그럼 보내지 말지 그러셨어요!) 그래서 제가 한 번만 선생님 만나 보고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어요. 엄마가 선생님 만나 보니까 너무 좋았어서 그렇다고, 엄마 믿고 한 번만 가보라고요. 그래서 정말 한 번만 가는 거라면서 갔어요. 들여보내 놓고 괜찮을까, 마칠 때까지 좀 걱정을 하긴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데, 표정이 아주 환해가지고요. 신발 벗으면서부터 엄마, 있지 선생님은 일본 여행을 좋아하신대, 그리고 고양이 그림책도 봤어, 선생님은 일본 여행 갈 때마다 고양이 인형 사온대,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좋아하신대, 책도 되게 많아, 아로마 오일로 좋은 냄새 나게 하는 거 봤어, 마실 것도 많아, 엄마 엄마... 하면서 어찌나 쫑알댔는지 몰라요. 얘기 듣다가 제가 모르는 척하고요, 그래 선생님한테는 뭐라고 말씀 드릴까? 너 갈 거야, 안 갈 거야? 그러니까 얼른 갈 거야! 하잖아요. 그래서 둘이 같이 웃었어요. 조금 있다가 보니까 글쎄 혼자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J가 진짜 기분 좋을 때만 그러는데, 그걸 보니까 얼마나 예쁜지.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요, 어제 선생님이 저한테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 거예요. 언니하고 하던 얘기 말고 J만 아는 얘기를 해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J를 깨우면서 아유, 어제 엄마는 선생님네 커피 맛있어서 너무 많이 마셨는지 밤에 잠이 안 와서 혼났어, 그랬어요. 근데 J가 그런 얘기를 정말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거 보고 언니가 샐쭉해서 나도 가보고 싶다 그러니까 또 으쓱해가지고요. 이런 작은 걸 그동안 내가 못했구나 싶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또 너무 좋고요.



*



열두 살,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인 J를 어제 처음 만났다. 공부뿐 아니라 다방면에 재능이 많고 애교도 떼도 많은 언니와 달리 조용하고 순한 J. 사춘기를 시작하면서 부쩍 소극적인 아이가 되었다는 것이 어머니의 걱정이었다. 취미라고는 뒹굴뒹굴 하면서 책을 읽는 것뿐이라고. 그런데 만나본 J는 처음에만 낯을 가릴 뿐, 속이 단단하고 자기 생각이 분명한 소녀였다. 서로 편안해지자 J는 좀 얄미운 친구와 속 터지는 친구(J까지 삼총사)에 대한 애정과 불만을 털어놓았다. 짜증나게 할 때도 많지만 역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인 쌍둥이 언니 얘기도 했다. 친구 중에는 벌써 직업을 고민하는 애도 있다면서 진로는 언제까지 정해야 되는 거냐고 내게 묻기도 했다. 그럴 수 있다면 뮤지컬이랑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노래를 잘 부르진 못하지만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다. 스마트폰이 없어서 속상하다 하면서도 딱히 불편한 건 없고 그냥 조금 부러운 정도라고 또 의젓하게 말했다. <<샬롯의 거미줄>> (내가 편집했다)을 좋아한다고 해서, 100쇄 기념 컬러판을 보여주었다. <<엄지 소년>>을 좋아한다고 해서 에리히 캐스트너의 자전 소설인 <<내가 어렸을 때에>>(내가 처음 편집한 책이다)를 보여 주었다. 같은 작가의 <<로테와 루이제>>는 안 읽었다고 했는데, 내용을 대충 알려주고 영화화 된 얘기를 했더니, 영화는 보았다면서 반가워했다. '스크루지 영감'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캐럴>>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안경 너머로 J의 눈이 반짝였다. 그걸 보니 나의 어느 한 부분도 비슷하게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오늘 아침 J어머니께서 전화로 들려주신 이야기 중에서 '흥얼흥얼' 했다는 대목에 그만 감동을 받고 말았다. 내 몫은 작고, 책의 몫이 크다는 걸 안다. 하지만 오늘의 기쁨을 오래 기억하려고, 잘난 척인 줄 알면서도 여기에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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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6-05-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네꼬님 너무나도 멋져요.

네꼬 2016-05-13 17:54   좋아요 0 | URL
아이쿠, 너무 나갔나 하고 조금 손보는 사이 댓글이!
>.,< 감사합니다. ㅜㅜ (J가 멋졌어요!)

다락방 2016-05-1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잘난척은 진짜 엄청 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아니, 더 좋아요!
우리 네꼬님, 원래 잘하는 거 알았지만, 정말 잘하고 있네요. 잘하고 있는 내친구, 뿌듯해요. 힛.
아 이 글은 네꼬님의 오늘의 기쁨이지만, 저의 기쁨이기도 해요. 만세!

네꼬 2016-05-13 17:55   좋아요 0 | URL
아니 내가 원래 좀 겸손한 사람이잖아요 원래해해해해해해해해;;;;;
아무튼 저도 이참에 만셉니다. (부끄러움을 모름...)

heima 2016-05-1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정말정말 멋있어요!

네꼬 2016-05-14 11:17   좋아요 0 | URL
이거 너무 대놓고 칭찬 요구였는데 이렇게 성공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연하게) (나는 안 부끄럽다) (안 부끄럽다)

꿈꾸는섬 2016-05-13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넘 멋져요!
저도 가고 싶어요 그곳에ㅎ

네꼬 2016-05-14 11:19   좋아요 1 | URL
어른을 위한 독서교실 있으면 제가 가고 싶어요! 거긴 필시 꿈꾸는섬님도 오실 듯? 모두 모여서 책 얘기.. (전 주로 제 자랑을 하겠죠.. 상상만 했는데도 못났다....) 감사합니다. 칭찬 받으려고 썼기 때문에 저는 안 부끄럽습니다. 안 부끄러워요. 안 부끄럽.....

꿈꾸는섬 2016-05-15 11:48   좋아요 0 | URL
네꼬님 말씀대로 어른을 위한 독서교실도 가고 싶네요.^^
그리고 마구 자랑하셔도 돼요. 함께 기뻐해드릴게요.^^

네꼬 2016-05-16 13:42   좋아요 0 | URL
네 그럼 앞으로도 부끄러움 없이... (아니 이번에도 안 부끄러웠고요.. 아니 근데 왜 땀이..)

그리운남쪽 2016-05-15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모르는 사람이랑 단둘이 얘기하는 게 두려워 울었구나, J는. 난 에리히 캐스트너가 나와서, <내가 어렸을 때에>가 네꼬 선생님이 처음 편집한 책이라 해서, 너무나 뭉클해져 엎드려 울었어. 어린시절을 홀라당 까먹어 버리곤 하는 어른들은, 때로 아이들도 슬프고 불행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에리히 캐스트너가 한탄했지. 불행하지 않았으나 나는 어린시절을 잘 까먹지 않는 어른, 그래서 울었어.
그 책 <하늘을 나는 교실>에 나오는 이야기 대부분을 아직도 기억해.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를 금연선생이라 불렀던 건 아니었다. 피우지 않기는커녕 헤비스모커였지만, 그가 기차의 2등 금연 객차를 개조하여 만든 곳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입시를 앞둔 어느 날 영어 모의고사에도 불쑥 나와주던 그 책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네꼬 선생님이 J와 보낸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자랑 보따리(?)를 펼치지 않았더라면, 내 마음에만 있던 에리히 캐스트너를 내가 또 어떻게 끄집어 낼 수 있었겠니. 고맙구나, J.

네꼬 2016-05-16 13:42   좋아요 0 | URL
어어어 그리운남쪽님. 댓글 읽는데 저 왜 눈물 나와요? 너무 뭉클한 얘기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저 좀 울어버렸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moonnight 2016-05-1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은 나의 아이돌♡♡♡♡
몇번이나 얘기했지만ㅠㅠ 제 조카아이들 네꼬님께 보내고 싶어요. 아이들이 너무나 너무나 행복해지는 책읽기교실^^ 저도 네꼬선생님네 커피 마시고 싶고. 수줍^//^

네꼬 2016-05-16 13:43   좋아요 0 | URL
하트하트 감사합니다 하트하트 하하하하
나도 아이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