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어머니가 우셨다. 툭하면 동생 탓을 하고 엄마 탓을 하는 D에게 걱정이 많았는데 아이에게 얘기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일이 커졌단다. 엄마는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너를 고를 거야. 그러니까 말해 봐. 동생을 어떻게 할까, 어디 보내 버릴까? 그러다가 펑펑 울었단 얘길 하시다가 다시 눈물이 쏟아지신 것이다. 나도 같이 울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하고 나서도 얼마나 마음이 무거우셨을까. 그랬던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데는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까. 어머니는 정말 대단하다.


D가 무척 좋아하는 아버지는 너무 바쁘셔서 아이와 자주 놀지 못한다. D는 '열 가지 기쁨 찾기' 숙제에 아빠와 밥 먹는 것을 썼다. D의 어머니는 두 아이 양육을 전담하다시피 한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오빠는 멀리 살고, 남편을 따라 정착한 이 시골 동네에는 별다른 연고도 없다. D 어머니는 씩씩하고 깍듯하고 솔직한 분이다. 그래도 개구쟁이 두 딸을 키우는 일이 종종 외롭지 않을까, 나는 이따금 생각하곤 했다.


오늘은 D 얘기보다 어머니 얘기를 많이 했다. 나는 무엇보다 어머니가 지치지 않고 자신을 돌보셨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억지로라도 여유를 내서 운동도 하시고 무엇이든 배워보시라고 했더니 생각해보겠다고 하셨다. 두 딸이 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생각나 혹시 어머님이 좋아하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래서 <<길드로잉>>을 소개해드렸다. 책장을 넘겨 보시더니 얼굴이 환해져서 너무 좋아하며 표지 사진을 찍으셨다. 또 일전에 D가 빌려온 책이 무엇이었는지 제목은 잊었는데, 하시면서 부분 부분 설명하시기에 <<어슬렁어슬렁 동네 관찰기>>를 보여 드렸더니 이거예요, 찾아서 너무 좋아요, 잘됐다, 하고 좋아하신다. 이따금 이 책의 장면들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내가 얼토당토않게 그린 그림을 보여 드렸더니 웃으셨다. 그림 한번 다시 그려보세요, 딸들이랑 같이 그려도 좋겠고요. 부럽다, 이럴 때 아이 키우시는 거 너무 부러워요. 이렇게 말하고 내가 가진 12색 색연필 세트를 선물로 드렸다. 스케치북 사시라고 드리는 거니까, 그림 안 그리실 거면 반납하셔야 돼요! 내가 엄포를 놓자 예의 씩씩한 얼굴로 알았어요, 알았어, 하셨다.


성공이 드러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를 특별히 미워한 건 아니지만, 큰 성공을 거두어서 왠지 누군가들을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그래서, 이따금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D 어머니가 타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나는 알았다. 이 일을 하기를 잘했다는 걸. 그리고 혼자 조금 더 울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6-06-2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 저도 네꼬님이 그 일을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네꼬 2016-06-23 14: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다락님 ㅜㅜ

레와 2016-06-23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도 므찐 사람!! ♡


제 주변에 자꾸 므찐 사람들이 늘어나요!! ㅎㅎㅎㅎ
나도 므찐 사람이 되겠어요..ㅎㅎㅎ

네꼬 2016-06-27 11:18   좋아요 0 | URL
저는 못난 사람이지만 레와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겠어요.
일단 큰소리를 쳐놔야..

moonnight 2016-06-2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ㅠㅠ;;; 꼬옥 안아드리고 싶어요.
네꼬님이 회사를 그만두신 덕분에 많은 아이들과 엄마아빠들이 행복하네요. 감사합니다. ㅠㅠ

네꼬 2016-06-27 11:18   좋아요 0 | URL
ㅠㅠ ㅠㅠ ㅠㅠ
많은 어린이 어머니 아버지 들 만나는 게 되어서 저에게 큰 공부가 되어요.
날마다 배우는 게 이렇게나 많습니다. ㅠㅠ

paviana 2016-06-2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3짜리 울 아들도 네꼬님께 보내고 싶네요.ㅎㅎ
일 너무 잘하고 계세요. 부러워요.

네꼬 2016-06-27 11:19   좋아요 0 | URL
아니 아들 말고 파비님을 원합니다. 감사해요. 그러니까 파비님이 오세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