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에서 발행되는 추리 소설을 읽노라면 일본 추리 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음을 알수 있는데 국내 추리 소설의 경우 발표하는 작품이 별로 없는 탓도 있지만 추리 소설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미 추리소설을 제치고 일본 추리 소설이 국내 시장을 휩쓰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아마 영어를 번역하는 것보다 일본어를 번역하는 것이 더 쉬어서 그럴것이 아닐까 짐작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추리 소설의 깊이가 탄탄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 추리 소설의 경우 우리와는 달리 추리 소설의 태동기라고 할수 있는 19세기말부터 이미 영미의 추리 소설을 번역하고 읽었던 탓에 일본의 추리는 영미 못지않는 수준의 독자와 작가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정서적으로 비슷하기에 영미 추리 소설보다 우리한테 보다 부담감이 적어서 많은 출판사에서 앞다투어 일본 추리 소설을 번역 출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간 국내 소설계에서 추리 소설이 차지하는 위치는 상당히 낮은 편이었단 생각이 든다.몇몇 출판사에서 예를 들면 70년대 동서추리,삼중당 추리,하서 추리문고 80년대에 자유추리,일신추리,문공추리.90년대에 시그마북스,해문 Q등 일련의 추리 소설들이 총서 형태로 나왔지만 아쉽게도 곧 절판되어 많은 추리 소설 애독자들이 헌책방을 전전할 정도 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홈즈와 뤼팽이 잇달아 다시 번역되면서 추리 소설을 차츰 인기를 얻게 되고 현재는 매년 수백권의 추리 소설이 간행될 정도로 추리 소설은 르네상스를 맞이 했단 생각이 든다.
지금 시점에서 일본 추리 소설하면 우린 흔히 시마다 소지나 아야츠지 유키토로 대표되는 일본의 신 본격 추리소설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90년대 말에 간행되었던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6권은 간행후 판매부진으로 곧 절파된 책인데 이후 추리 소설 애독자들 사이에서 전설의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한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구하고자 헌책방을 전전하게 만든 작품이고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 사건 역시 추리 소설하면 홈즈로 대표되는 영미 추리 소설이지 하는 국내 추리 소설 애독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일본 추리소설의 저력을 알린 작품으로 이후 일본의 신본격 추리소설들이 상당히 많이 간행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 같다.
요즘 대세인 일본의 신본격 추리 소설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반동으로 생겨났다는 말들을 듣게 된다.그런데 신본격은 무어이고 사회파란 무슨 말일까?
본격 추리 소설이란 흔히 영미의 추리 소설의 황금시대라고 할수 있는 30~40년에 유행했던 밀실 살인과 같은 트릭위주의 작품을 가리키는데 우리가 익히 하는 앨러리 퀸이나 반다인 혹은 딕슨 카의 작품들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너무 비 인간적이고 기계적인 추리만 하는 명탐정들에 반발로 미국에서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이 나오게 되는데 이는 추리 소설이 오래된 일본도 마찬가지 과정을 걷게 된다.
일본의 경우도 30~40년대 추리 소설의 황금기를 걷게 되는데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등이 트릭만을 중시하며 지적 유희에 빠지는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본격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 2차 대전후에 이런 본격 소설에 반발하여 범죄의 근원을 개인의 욕심이 아닌 사회적 모순으로 파악하고 범죄의 사회적 동기에 시선을 돌려 트릭보다는 사회적인 범죄에 얽힌 인간군상을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고 기계적인 명탐정보다는 인간 냄새가 풀풀하는 형사들이 등장하는 일련의 추리 소설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바로 사회파 추리소설이다.하지만 30년도 넘게 사회파 추리소설이 일본 추리 소설계를 독식하자 그 반발로 나온 것이 바로 요코미조 세이시로 대표되는 30~40년대 본격 추리 소설을 계승한 바로 80년대부터 다시 등장한 신 본격 추리 소설인 것이다.물론 사회파 추리소설이 이전보다 약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미야베 마유키등의 작가들이 꾸준히 사회파 추리소설의 맥을 잇고 있다.
이처럼 현재는 일본도,일본 추리소설을 번역하는 한국도 신 본격 추리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시간을 뒤로 돌려 70~90년를 살펴 보면 국내 추리 소설 시장에서 일본 추리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적었고 번역된 일본 추리 소설 역시 대부분 사회파 추리 소설의 두 거장 마쓰모도 세이초나 모리무리 세이치의 작품들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추리 소설 애독자들중에는 이 두 거장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과거에 상당히 많은 작품이 국내에서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리 소설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시절 탓인지 두 작가의 작품들이 추리소설이 아니라 사회/기업소설로 타이틀로 바꾼데다 번역조차 날림 번역이 많았던 탓이 아닌가 싶다.
신 본격 추리소설들이 주류를 차지하는 가운데 요즘들어 들어 다시 과거 사회파 추리소설계의 두 거장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아마도 그건 지나치게 트릭에만 의존하는 고만 고만한 신 본격 추리소설에 대한 반동이 아닐까 싶고 그래선지 국내에선 50~70년대 일본을 대표했던 마쓰모도 세이초와 모리무리 세이치의 작품들이 다시 번역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국내에선 점과 선으로 잘 알려진 모리무라 세이치는 60~70년대 일본 추리계를 이끌었고 개인소득 1~2위를 다투던 대단한 추리 작가고 국내에서도 상당히 많은 그의 작품이 소개되었지만 앞서 말한대로 그의 작품들은 몇 개의 작품들이 추리 소설이란 타이틀을 단 외에는 대부분 사회/기업소설로 간행되었기에 실제 어떤 책이 출간되었는지 확인하기 힘든 편이다.
수 많은 작품을 쓴 모리무라 세이치지만 아마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바로 증명 3부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인간의 증명,야성의 증명,청춘의 증명 3부로 이루어진 증명 3부작은 70년대 하서와 삼중당에서 출간되었던 절판된 후 검은 숲에서 이번에 다시 재간하게 되는데 각각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한 출판사에서 3권을 간행했기에 소장의 가치가 충분하단 생각이 든다.
모리무라 세이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증명은 일본의 고층 호텔에서 한 흑인 청년이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일반적인 추리 소설이 단선적인 구조라고 한다면 인간의 구조는 복선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의 축은 크게 보면 3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방문한 일본에서 살해된 가난한 흑인 청년 조니 헤이워의 사건을 수사하는 일본측 형사는 무네스에는 어머니의 가출과 한 여인을 구해주다 미군에게 맞아죽은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가지면서 그런 인간들을 단죄하기 위해 형사가 된 인물이며 미국측 형사인 켄 슈프탄은 뉴욕 할렘가에서 근문하는 형사로 이 둘은 각자 조니 헤이워드의 사건을 조사한다.
또 한 축은 일본 상류층 가정의 모델 같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가 고오리 요헤이,아내인 교육평론가 야스키 교코와 아들 교헤이와 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은 사라진 아내를 찾는 남편 야마다 다케오와 아내의 정부 니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로 전혀 연관되어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세 스토리는 책을 읽어감에 따라 교묘하게 얽히고 섥히는데 독자는 아무런 단서도 없는 흑인 청년의 사건을 추적하는 무네스에를 뒤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에 또다른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의외의 인물과 돌발적인 사건들로 인해 책을 읽는 흥미를 느낄수 있게 해주는데 인간의 증명속에 있는 별개의 세 사건인 흑인 청년의 살해,교헤이의 뺑소니 사건,사라진 아내의 행방이 책 말미에 하나로 융합되는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증명은 1970년에 나온 작품이어서 현재의 시각에서 본다면 너무 상투적이고 신파적인 느낌을 많이 주는 것 같다.이 책에서 흑인 청년의 살인이나,뺑소니 사고등을 제외한다면 이 책이 과연 추리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는 막장 통속 멜로 드라마란 생각이 들 정도인데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저명인사 이면서도 위선적인 삶을 사는 쇼윈도 부부라든지 그들의 자식들의 나태하면서도 방탕한 생활이라든가 흑인 혼혈아,빈곤으로 인해 술집에 나가면서 불륜에 빠져드는 주부,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는 형사라는 설정은 우리가 TV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것이 아닌가 싶다.실제 이런 드라마적 요소 때문에 일본에서도 TV로 수차례 방영되었고 국내에서도 작년에 로얄 패밀리란 TV 드라마로 만들어 지지 않나 여겨지는데 그 만큼 책속의 내용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신파적 요소가 가장 강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야스키 교코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탐욕을 지키기 위해 흑인 청년과 자신의 젊은 시절 비밀을 아는 할머니를 냉혹하게 살해하면서도 책 마지막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식에 대한 사랑,모성을 자극한 무네스에의 심문에 무너져 눈물을 흘리면 죄를 참회하는 점인 것 같다.이 대목에서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공감하고 힐링의 눈물을 흘렸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로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신파조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의 상실을 다룬 이 책은 지금 읽어도 그 가치가 전혀 사라지지 않는 명작이란 생각이 든다.
소설속 배경인 70년대는 2차 대전의 패전을 딛고 일본이 경제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절정을 누리던 시기지만 이른바 황금 만능주의의 세태로 인해 오히려 인간성은 메말라가고 도덕적으로 타락해 가던 때라고 할 수 있다.이 당시 많은 일본인들은 전후 경제 부흥을 위해 가족과의 관계등 전통적인 가치관보다는 오로지 돈을 벌기위한 것이 최고의 가치관이 되었기에 반대로 사람들은 경제성장과 배금주의 가치관에 메몰된 인간성에 대한 향수와 전후의 상황속에서 희생된 가족에 대한 죄채감이 마음속 한 구석에 깊이 잠겨 있지 않나 여겨진다.
이에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는 인간의 갖고 있는 욕구,어둡고 추악한 본성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가하면서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과연 인간의 본성을 무엇인가하고 일본인 스스로에게 되묻게 만들고 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조니 헤이워드-야스키 교코-무네스에 형사-켄 슈프탄은 국적도 사는 곳도 지위도 다르기에 서로 일면식도 없는 인물들 같지만 책을 읽다보면 서로 교묘하게 연괸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이들은 책이 나온 1970년 당시의 상황을 잘 반영해 주게 있는데 이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의 시대적 아픔과 더불어 인간이 갖고 있는 추악한 단면을 새삼 꺠닫게 된다.
저자는 교육 평론가인 야스키 교코의 모습에서 패전국 여인의 아픔과 부와 명예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추악한 모습을,무네스에 형사에서 패전국민의 아품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불신을 켄 슈트탄을 통해 승전국 병사의 폭력과 인간성 상실을 교코와 아들 교헤이의 모습에서 당시 젊은이들이 방황을 야마다 도께오와 니미를 통해 만연한 불륜등 70년 당시 일본이 갖고 있던 온갖 추악한 모습을 그리면서 과연 독자들은 자신이 인간임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이지 묻고 있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저자가 1970년에 쓰고자 했던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는 2013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단 생각이 든다.시대가 다르기에 인간의 불안은 다를지 몰라도 인간이 가지는 자신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집착이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추악한 본성 같은 인간이 가지는 유약성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닥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증명은 사회파 추리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답게 확실히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메시지를 묵직하게 전달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비록 신 본격 추리 소설에 나오는 기기묘묘한 트릭은 없다 할지라고 책을 읽은뒤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뭐 어는 것이 좋다 나쁘다 할 순 없겠지만 신 본격 추리 소설이 읽는 즐거움을 준다면 사회파 추리 소설을 읽은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할수 있겠다.
인간의 증명은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다시 읽어도 뭔가 새로운 느낌을 주는 묵지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인간의 증명을 읽고나니 더욱 더 야성의 증명과 청춘의 증명을 다시 읽고픈 생각이 들면서 기계적 트릭 때문에 추리 소설을 읽지 않는 분들에게 추리 소설의 참맛을 느낄수 있기에 적극 권하고픈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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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인간의 증명은 70년대에 나오다 보니 패전국 일본의 모습을 일본인 시각에서 그리고 있단 생각이 든다.책속에서 어린 야스키 교코는 흑인과 연애하다 아이를 낳고 무네스에 형사는 눈앞에서 아버지가 미군들한테 맞아 죽는 광경을 목격한다.그리고 책속에서 일본 유학생은 강도를 당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미국인들의 비 인간성을 고발하기도 한다.
요즘들어 일본 문인들이나 정치가들의 우경화 발언이 거센편인데 이 책을 읽어보면 일본의 잘못보다는 승전국 미국의 잘못된 행동으로 모든 잘못이 생겨났다는 저자가 말하는 것이 아닐까 오해할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모리무라 세이치를 혹 우익 문인이 아닐까 하고 잘못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저자는 일본이 감추고 싶었던 추악한 죄상인 731부대의 실상-중국인 조선인을 마루타로 해서 세균무기를 개발을 시도함-을 낱낱이 폭로한 악마의 포식을 발표한 이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