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제임스 르 파누 지음, 강병철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 :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원래 제목 ( The Rise and Fall of Modern Medicine)은  유명한 로마제국 쇠망사” (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를 연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번역서의 제목도 매력적이지만, 저자의 의도는 단순히 의학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 을 넘어서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의학이 마냥 발전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있다.

저자, James Le Panu은 이 책에서 현대 의학도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흥망성쇠를 겪고있으며, 1980년대를 기점으로 쇠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대의학의 대부분의 놀라운 성공, 이를 테면, 항생제 발견, 심장 수술, 인공 관절 등은 대부분 1980년 이전에 우연을 발판으로 한 의학자들의 노력으로  얻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성공은 계속되지 못하였고, 1980년 이후에는 사실상 별 특별히 놀라운 의학적인 발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성공과 발전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보니, 사회이론이나 역학 등을 이용하여 조그만 변화를 마치 엄청난 변화인것처럼 미화시키거나,  실제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유전학적 치료 등을 사탕발림으로 포장하여, 혹은 대중매체를 활용한  선전으로, 마치 새로운 신약이 엄청난 효과를 같는 것처럼 믿도록 대중을 세뇌하여, 필요치도 않은 약을 많은 사람에게 투여하거나 ( 예를 들어, 스타틴 등) , 병의 위험성을 과장하고 (고혈압, 심장병 암 등 )  의학 효과를 부풀리고, 건강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과잉치료, 과잉진단) , 여러가지 문제점을 일으키고있다 (the Fall)는  주장이다.

이러한 현대의학의 쇠퇴로 인하여, 4개의 모순된 현상 (Four Paradoxes) 이 나타났는데, 첫째는, 현대의학을 시술하는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의 자긍심이 오히려 낮아졌고, 둘째는, 현대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니 오히려 건강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과거보다 더욱 높다는 것이다. 셋째는, 현대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비주류 의학 말하자면 동종 치료 등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과 의존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네째로는 결국에는 환자들이 혹은 국가가 지출해야 할 의료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만 가고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현대의학이 정말로 발전하였다면, 의료인은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고, 현대인은 건강에 대한 염려를 버리고, 행복하게 살수 있게 되며, 당연히 비과학적인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야 하며, 병을 쉽게 치료하여 의료 비용도 줄어들어야 하는 데, 현실은 완전히 반대로 가고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의료가 발전하면 당연히 건강 걱정없이 편안하게 잘살아야 하는데, 돈은 돈대로 쓰고,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가는 세상이 온 이유는 무엇인가?

책에서 인용한 의학 역사 이론가인 로이 포터의 주장을 보자.

 “아이러니컬 한 것은 서구사회가 건강할수록 점점 더 의학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의료인 각종 매체, 제약회사의 강요에 가까운 광고에 의하여...... 치료 가능한 질병의 진단이 확대된다. 공포감이 조성되면 혼란에 빠져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각종 검사에 매달린다……  의료기관들이 정상적인 상태를 의료 화하고…… 잠재적 위험을 질병으로 전환시키고.. 사소한 문제를 복잡하게 치료하려는 욕구를 느끼게……의학의 미래가 전혀 즐겁지 않은 삶을 약간 연장시키는데 불과하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운명인가!” (493 p)

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사들의 문제는 의료가 세분해가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고, 건강염려증은 건강에 대한 욕구가 커진 것이고, 대체의학의 관심은 아직 주류 의료에 비하면 약소할 뿐이다.  더불어 앞으로도 사회 이론, 혹은 역학연구 (epidemiology), 유전학에 의하여 획기적인 의학의 발전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을 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가, 즉 고통에 처한 환자를 돕는다는 이젠 과거의 숭고한 사명을 넘어서, 이제는, 돈을 벌어야 하는, 혹은 벌지 않으면 쓰러져서 붕괴할 수밖에 없는, 비지니스로, 의료 산업으로 변해버린 상황은 명확한 사실이다.  

의사들의 자긍심이 낮다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현상과 더 관계가 깊을 듯하다. 의사는 허가 받은 도둑놈으로 이미 찍힌 지 오래 일 뿐 아니라, 빈 말로라도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라 든 지, 혹은 병자를 보살 핀다고 말하는 것 조차도 입에 담기조차 쑥스럽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환자를 위해서 일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더 이상 환자의 생명과 관계되는 의료인, 내과 외과 등의 소위 메이저 과목은 의과대학 학생의 선망 과목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서 바람직한 의사는 땀 흘리고 고뇌하는 의사가 아니라, “유능한 의사”, 말하자면 환자 치료로 고민하지 않고, 편안하고, 유명하고 돈도 잘 버는 의사일 것이다.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라기보다는, 이미 법률적인 관계, 언제라도 소송으로 번질 수 있는 관계, 혹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 혹은, 환자 측에서는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른 유능한 의사나 대체의학을 찾아가야 하는 관계로 변하였다.

이미 알려진 혹은 특허가 만료된 기존의 약품을 조금 변형시켜서, 대규모의 임상시험과 과학적인 통계 기법을 적절히 적용하여, 마치 기적의 약으로 믿게 하여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투여하는 것이 소위 신약 개발의 전형적인 형태가 되었다.

연구 최고 책임자인 의사가 제약회사의 명을 받들어 1년에 2개월씩 자리를 비우고 미국 아시아로 여행을 마당에 이러한 신약들이 선전하는 것만큼의 효과가 있겠는가? “ (501p)

기업과의 밀월 관계가 이런 수준이면 연구와 견해의 독립성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봐야 한다 “ (501 p)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현상은 당연히 의사들의 잘못은 전혀 아니다. 원래 의료는 단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 듯, 아픈 사람을 돌보아 주는 행위였을 뿐이다. 그런 의료가 이젠 사회의 변화에 따라, 특히 과학이라는 포장재로 멋지게 포장하여, 세계 경제를 떠받치는 거대한 의료 산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의사 간호사는 이 과정에서, 생명을 구하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숭고한 위치에서, 거대 산업의 말단 사원이 되었으니, 무슨 자존심이 남아있을 것인가.

현대 의료는 끊 없는 발전과 진보에 대한 환상과 열망, “기적의 치료법를 만들어 내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아 무서운 괴물로 변하고 말았다.  비유한다면, 안정장치가 부실한 초고속 열차일 수도 있다. 속도는 빨라지고 편안해 졌으나, 따라서 사고의 위험도 커지고, 사고가 났을 때 더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상자는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사회전체에 광범위한 피해를 유발할 수 밖에 없다.

1990년대 열광적인 갈채를 받으며 등장한 유방암의 고단위 항암치료는 수 만명의 슬픈 사연과 사상자를 남기고 사라졌으며, 혁신적인 비만 치료제로 각광 받던 신약은 암 유발한다는 것이 뒤늦게 발견되어 십년 만에 판매가 중단되었다이외에도 수많은 소염진통제나, 위장약 등이 기적의 치료제로 미디어의 각광을 받다가 뒤늦게 발견된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상자와 소송 만을 남긴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미국 TV 화면에 전화번호와 함께, 이런저런 약을 먹은 사람들은 연락하면 큰돈을 벌 기회가 생긴다는 의료 소송 변호사의 광고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 의료로 돌아가자는 저자의 주장은,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을 떠나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윌리엄 오슬러 경이 그토록 설득력 있게 환기시켰던 전통 속으로 의학을 돌려보낼 때가 되었다. 그래야 비로소 의사와 환자 사이의 친밀한 인간적 관계와 판단력과 건전한 상식이라는 영원한 가치가 작금의 천박한 동요 상태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둘 것이다. “(502p)

 대단히 감동적인 수사이지만, 그다지 가능한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너무 깊숙이 비즈니스의 세계로 진입해버렸다.  이제 이 현대 의학이라는 고속 열차에 올라탄 승객은 신체적, 경제적, 정신적, 안전을 스스로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모든 문제는 이 책에서 지적 한대로 과학이 의학을 소위 과학적이라는 테두리로 가두어 버린 것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인간 개인의 고통을 집단 화하고, 이를 숫자와 변환시켜 통계로 포장하여, 거대한 의료 산업의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현재 의학의 창시자인 윌리엄 오슬러는 일찍이 이런 말을 남겼다.

의사의 주된 임무는 대중이 약을 먹지 않도록 교육 시키는 것이다. (One of the first duties of the physician is to educate the masses not to take medicine.) “

 

아쉽게도 그런 의사는, 산업화된 현대의학에서는 이미 멸종되어 버린 듯하다새로운 기적적인 치료법에 대한 찬사만이 각광받는 산업 의료의 거대한 정글 속에서, 이 책이 많이 널리 읽혀 지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훌륭한 책을 내어준 출판사와 번역자에 감사를 보낸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여기에 접힐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펼친 부분 접기 ▲

접힌 부분 펼치기 ▼

 

여기에 접힐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펼친 부분 접기 ▲

접힌 부분 펼치기 ▼

 

여기에 접힐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펼친 부분 접기 ▲

접힌 부분 펼치기 ▼

 

여기에 접힐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펼친 부분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ven you are a minority one, the truth is the truth.  Mahatma Gandhi


사실상 따지고 보면, 과학적 이론을 포함해서, 정치적인 당파를 포함해서, 모든 주류 의견은, 기본적으로는 소수의 의견 즉, 개인, 마이너리티 의견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은 당연시 여기는 모든 정론들도, 한때는 말도 안된다고 여겨지거나,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황당한 마이너리티 의견 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해와 별들이 지구의 중심을 공전한다는 지구 중심 천동설은 오랫동안 종교적 진리일 뿐 아니라, 위대한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어스가 주장한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 과학적인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늘에 떠있는 해와 달과 별을 바라보면 알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하고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할 것만 같았던, 천동설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다름아닌, 그 자신이 성직자이자 과학자인 코페르니쿠스였다. 코페르니쿠스는 다른 별과 달리 행성은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에 착안하여,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는 곧 근대 과학의 시발점이 되었다그러나 종교계나 일반인은 물론 과학계에서도 지동설이 받아드려 지기까지는 300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물론 지금도, 지구는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마이너리티 의견도 있다.


흔히 과학적인 견해는 당연히 사실이라고 생각하거나, 흔히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사실이라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다. 과학은 진실이나 사실을 밝히는데있는게 아니라, 사실이라고 알고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반론을 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믿어야 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며, 어떤 의미로든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최소한 무언가를 믿는 행위는, 과학적인 사실이라도, 이미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며, 아마도 종교적인 행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무언가를 믿는 것은 과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위 마이너리티 의견은 어떤 상황에서도 있는 것이 당연하며, 그 존재 자체가 과학의 근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마이너리티 의견이라고 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반대로 사실이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 다만 마이너리티 의견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의견 자체를 억압한다면, 중세 암흑기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현재 코로나 사태에 대비하는 주류의 의견은 당연히, 학교를 닫고, 여행을 자제하고, 사람이 모임을 중단하고, 가급적 이동을 제한하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모든 감염자는 즉시 진단하고 접촉자를 찾아서 격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학에 기반한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주류의 의견에 반대하면, 그는 과학적인 사실을 외면하는 무식한 고집쟁이, 더 나아가서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인물로 비난 받는 상황이다.


그러나 모든 주류 의견에는 반듯이 마이너리티 의견이 있게 마련이다. 당연히 코로나 사태에도 이러한 의견이 있다. 지난 10, 발표한 그레이트 바링턴 선언이 그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소위 선택적인 보호 (focused protection) 방침으로 , 요약하면, 일부 고령층과 병이 있는 취약 계층만 코로나로부터 보호하고, 다른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하여 사회와 경제활동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코로나 백신이 나오더라도 고령자와 취약 계층만 접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마스크를 강요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전 세계적으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이너리티 의견이지만,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이자 노벨상을 수여하는 스웨덴에선, 오히려 이들의 주장이 주류 의견으로 받아드려 지고있다.


이들 두 가지 전혀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인신 공격적 발언과 심지어는 살해 위협까지도 포함하여, 서로를 모두 말도 안되는 비과학적인 주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거의 모든 의학적인 의견에 대하여, 수많은 마이너리티 의학이 존재해왔고, 의학의 역사는 마이너리티 의학이 주류가 되는 과정의 반복과 재 반복 이었다.


코로나에 대처하는 두가지 완전히 다른 상반된 주장은, 다른쪽에서 보면 서로가 어처구니없이 황당한 주장이고, 일고의 가치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있으나, 의학은  어처구니 없는  오류와 이를 수정하면서 현재에 이르고있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 오류의 반복과 수정의 역사가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과연 수십년 혹은 수백 년 후에 2020년 코로나 사태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아무리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살고 싶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2. 오늘까지 코로나 감염은 대한민국에서 47, 515명이 확진 되었고, 이중 사망자는 645명이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 자의 숫자를 실시간으로 중계방송 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그야말로 올해는 하루 하루가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성이다가 저물어가는 상황이다.


2020년 현재,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일까?

그래도 가장 무서운 질환은 암 인가?  아니면 심장병인가?


코로나는 다른 질환과 비교하여 얼마나 무서운 병 인가?


한가한 금요일 오후에 우연히 2019년 통계청 사망보고서를 보게 되었다.


922일 발표한 통계청 사망원인 결과를 보면, 2019년에 죽은 사람, 말하자면 사망자 수는 295,110명으로, 이는 전년 대비 3,710(-1.2%) 감소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대한민국 현재 인구 5100만 명중 2019년에 29만여명이 사망하여 살아있는 사람 중 대략 0.57%가 죽음을 맞이한 샘이 된다. 하루 평균 약 800명이 매일 사망한 샘이고, 대략 200명중 1명이 일년에 사망한다고 보면, 죽음이라는 것이 그다지 멀게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학술적으로는 조사망 률 (인구 10 명당 사망자 수)574.8명으로, 전년 대비 7.6(-1.3%) 감소하였다. 2018년보다 사망자 수가 조금 감소한 샘인데, 감소했다고 해서, 실제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니고, 2014년부터 5 연속 증가하다가 2018년에 사망자수가 급격히 증가하다 보니, 그 반사 효과로 오히려 사망자수가 2019년에 조금 줄었다고 해석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2019년 연말 초 겨울에 유난히 부고를 알리는 메시지가 많이 온 듯하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 독감이 잠깐 돌았거나, 아니면 그냥 우연일 수 도 있을듯하다.  


전체적으로는 총 인구가 조금씩이나마 증가하면서, 매년 사망자 수는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이고, 조사망 율, 말하자면 10만명당 사망자수는 2009497.3 명으로 바닥을 찍은 후 점차로 증가하여 2019574.8 명으로 사망자수 증가 수치 보다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80 이상의 사망자가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47.0%), 이는 10년전보다 14.8% 증가하였다. 아마도 인구가 늘어나는 한, 특히 고령자 인구가 증가하는 한, 사망자 수와 조 사망률은 매년 증가할 것이다.


10 사망 원인은 악성 신생물(), 심장 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 고의적 자해(자살),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질환, 만성 하기도 질환, 고혈압 성 질환 순이다.


사망률 1위는 당연히 악성 신생물, 즉 암이다.  40세이상 모든 연령대에서 사망원인 1위이고, 전체 사망자의 27.5% 가 암으로 사망하여 10 만명당 조사망율은 158.2명이다. 그 다음으로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질환등이 뒤따른다. 자살에 이어 당뇨병 치매 간질환, 만성 하기도 질환, 고혈압질환등이 사망원인 10위에 포진되어 있다.  


전체적인 상황은 비슷하지만, 전년 대비 알츠하이머병 (7) 두 단계 상승한 것이 눈에 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장기간 별 변화 없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놀랍지만, “고의적 자해라고 고상하게 표현한, 소위 자살로 인한 사망이 사망원인 5위 라는 것이다. 2019년 한해 13,799명이, 매일 평균 38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샘이다. 자살은 10-39세 연령대에서 압도적으로 사망원인 1위 이다.  자살로 인한 조 사망률 26.9명은, OECD 평균 11.2의 두배를 넘는 놀라운 수치이다.


치매는 꾸준히 상승하는 사망원인이다. 2009 13위에서 꾸준히 순위가 상승하여 2019년에는 7위로 상승하였다. 치매에 의한 사망자 수는 10,357명으로,  전년 대비 6.3% 증가하였고, 치매 사망률은 여자(28.2) 남자(12.2)보다 2.3 높다. 그렇다고 해서 치매가 여자가 잘 걸리는 질환 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것이다. 단지 여자의 수명이 남자보다 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외 특기할 만한 사망 원인으로는,

알코올관련 사망자 수는 총4,694명으로 1 평균 12.9명이 술 때문에 사망한다. 당연히  남자(15.8) 여자(2.5)보다 6.4 높으며, 술 관련 사망률은 30 이후부터 급증하여 50대를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한다.

호흡기 계통 사망도 매우 중요한 사망원인이다. 전체적으로 36,655명이 사망하였고, 이중 폐렴 23168, 만성 하기도 질환 6175명 등이다. 이와 별도로 폐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는 8692명 이다.  


그 외 운수사고 즉 교통사고 (4,221), 추락 및 낙상사고 (2,665) , 익사 ( 470),  가해 즉 타살 ( 408) 등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 암과 심장병을 조심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두 병의 사망을 합치면 전체 사망자의 거의 절반에 달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암과 심장병이 가장 무서운 병인가? 그렇다고도 볼 수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망 원인이 되는 질환은 나이가 들면 더불어 높아지지만, 그 중에서도 암 과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은 거의 압도적으로 노년기에 집중된다. 기본적으로 노화가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암과 심장병이다. 이들 질환은 당뇨병 등 대사질환, 치매, 혈관질환, 뇌 질환과 마찬가지로 크게 보아서, 노화에 수반하는 질환이라고 생각하거나, 뇌화가 원인인 질환이다.  실제로 노화를 억제하거나 역전시키는 약이나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이들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는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물론 뇌화를 억제하고 역전시키려는 연구가 엄청나게 이루어 지고 있지만, 현재까지 유일한 방법은.. 아마도 소식, 즉 적게 먹는 것.. 이라는 것 이외에 아직까지는 노화를 억제하는 방법이나 약은 없다. 


그렇게 본다면,, 암과 심장병은 어쩌면 무서운 병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특히 노년기에서 생기는 경우엔 노화에 의한 당연병 ? 이라고 생각해야 할 듯도 하다.


또 하나 고려할 것은 암이나 심장병이 사망원인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어떤 특정한 병이 사망원인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질병으로 인한 사망에서 단일 질환을 사망원인으로 단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들 들어, 비행기가 엔진이상으로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면, 이는 매우 간단명료하게 모든 사망원인은 교통사로인한 신체 손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을 않던 고령자가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다쳐서 침대에 눕게 되고, 활동이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우울증이 동반되어 식욕이 저하되고, 결과적으로 신체가 쇄 약해져서, 결국에는 독감에 걸려서 사망했다면, 어떤 것을 사망 원인으로 해야할 지 애매할 뿐 아니라, 설사 법적으로 사망원인이 폐렴으로 판단한다해도, 실질적으로는 고혈압 등 모든 질환뿐 아니라, 다리 부상까지도 사망에 일부 기여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망률이 질병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사망원인이 말하자면 상호 배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은 폐암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지고있다. 20 배 증가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골초중에서도 폐암으로 죽는 사람은 5%가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폐암에 걸리기 전에 다른 질환으로, 대표적으로는 심장 혈관질환, 혹은 다른 암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기때문이다. 골초가 심장병으로 사망해버리면, 당연히는 그는 폐암에 걸릴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폐렴에 걸리지 않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폐암에 걸리기 전에 죽었을 뿐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오늘까지 세계에서 7500만명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고, 확진자 중 2.2%, 166만명이 사망하였다. 전 세계인구의 약 1% 가 확진을 받았고, 전세계 인구의 0.022% 가 사망하였다. 대부분의 코로나로 인한 사망은 노령층, 당뇨병 , 고혈압 비만 등 기저 질환이 있었고, 기본적으로 코로나 확진 이후 약 1개월 이내에 사망하면, 사망 원인에 관계없이 코로나 사망으로 통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점을 보면, 코로나로 인한 사망은 상당히 과대 평가되었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코로나에 걸려서 죽은 상황에서도 코로나 검사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어서 과소 평가되었을 수도 있다.


단순히 지금까지의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 혹은 숫자만으로 코로나가 얼마나 무서운 혹은 가벼운 질환인가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코로나로 인한 사망은, 대한민국에서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보아도, 최소한 암이나 심장병 뿐 아니라, 자살이나 교통사고 등, 혹은 결핵으로 인한 사망에 비교해 보아도, 미미한 정도이다.  물론 전지구적인 방역과 여행제한으로 경제가 파탄 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일생 동안의 노력으로 가꾼 사업이 물거품이되는 아픔의 대가로, 그나마 이렇게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으로 유한한 인간의 삶을 고려할 때, 이런 정도의 제한을 가해가면서 경제활동을 제한하고,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  할 수 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하루가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정도로 비현실적인 코로나 19 태풍의 소용돌이를  지나고있다.   누구나 자신이 혹은 자신의가족 친구가 곧 코로나19에 걸려서 죽을 듯한 공포에 숨도 크게 못쉬는 나날이다.  이 와중에도 세계 의학계에서는 새로운 목소리가 나오고있고,  이에 대한 반론이 나오는등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두고, 가히 세기적


토론이라고 물릴 만한 논의가 이루어지고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내과의사이자 의학 통계학자인  John Ioannidis 교수이다. 그는 2005년 전설적인 논문인  "왜 대부분의의학 연구는 오류인가?" (Why most publised researh are false ? ) 라는 도발적인 에세이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뒤로 ( 이런 제목의 에세이를 쓰는 것도 놀라운데, 이에 대하여 아무도 반박하지못했으니.. ), 가히 범접못할 아우라를 뽐내는 거물(Titan)이다. 그는 최근 또다시, 역시나 그답게.. 도발적인 제목  " 이 환란은 누가 만든것인가 ?  코로나바이러스 판데믹에 대한 대응은 과학적인 자료에 의한 결정이아니다.. (A fiasco in the making? As the coronavirus pandemic takes hold, we are making decisions without reliable data. ) 라는 에세이에서, 현 상황을 "집고양이( house cat)의공격을 받은 코끼리가 혼비백산하여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에 비유하고있다. 즉 코로나19에 대하여 과도한 반응으로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초래햇다는 것이다.  대규모 여행 금지 정책이나, 학교 휴교령, 모임 금지등이 코로나19 차단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   무모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발생할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혼란과, 그로인한 실업,자살, 정신병등 사회가 부담해야할 엄청난 고통을 외면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에세이가 나간 다음날, 하버드대학의 감염 역학 전문  Mark Lipsitch, 교수 즉각반론을 게제하였다. 제목은 "우리는 알만큼 알고있고,"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 19에대하여 가장 먼저해야할 일이다,(We know enough now to act decisively against Covid-19. Social distancing is a good place to start) , 여기서 그는 지금 당장 극단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실시하지 않으면 코로나19로 인한 환자의 폭발적인 증가와 의료 시스템의 붕괴로 수백만이 사망하는 파국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에세이를 쓰기전에 Ioannidis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한 결과 두사람의 의견에 공통점이 많음을 확인했다고한다). 

미국서부의  스탠포드,  동부의 하버드 대학의 두거물이 하루사이를 두고 정반대의 코로나 19  대응 방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이에 동조 혹은 반대하는 각종 의견들이 각 주요 일간지와 인터넷 사이트에 개제되기시작하였다. 대체적으로 보수측 언론과인사들은 Ioannidis의 의견을 인용하여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과잉 대응할 필요없다는 의견이고, 이에 반하여 리버럴 쪽 매체나 인사들은 현재의 광범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결코 과잉대응이 아니며, 특히 이탈리아와 유럽을 보면, 미국의 대응이 오히려 한발 늦거나,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어제 오늘의 뉴욕 타이즈 오피니언 칼럼에는 더욱더 한발 더나간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예일대학의 예방의학자인 David L. Katz는 현재의 대규모 사회적 거리두기 방식, 즉 휴업, 휴교, 집회금지, 휴교등은 경제침체와 사회적 혼란만 야기 할 뿐 지속가능한 정책이 아니다면서,  오히려 99%의 코로나 감염증이 경증인 한국의 통계를 예를 들면서, 노약자는 감염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되,  젊은 건강인의 활동은  제한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젊은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전체 감염자 수가늘어나야, 집단면역(Herd Immunity)이  생겨서 노약자를 포함한 전체 사회가 안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있다.  (Is Our Fight Against Coronavirus Worse Than the Disease?  NYTIMES , March 20, 2020)

타이타닉 호가 대서양에서 침몰할때, 일부 일등 선실의 승객들은 하인들과 노인에게 구명정 좌석을  양보하고, 자신은 구명복도 필요없다고  거부하고 의연하게 배의 침몰을  맞이했다고 한다. 2차 대전 당시 매일 독일의 야간 폭격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런던에서는 밤마다  대규모 음악회가 개최되었고, 극장이 음악회 중에  폭격을 맞으면, 극장앞 빈 마당으로  오케스트라를 옮겨서  음악회를 계속했다고한다. 

두려움에 떨고만 있어서는 어떤  전쟁에서도 이길 수 없다, 조그만 희생도 없이 이길 수있는 전쟁도 없다.  

코로나 19 로  인한 피해보다도, 코로나19에 대한  과잉대응으로인한  피해가 더 클 가능성에 대한  당당한고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할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세계가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공포에 떨고있다.  이제 중국 한국 일본을 넘어 본격적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양상이다. ( 3월 7일 현재)  미국, 유럽등 모든 방송은 당연히 모든 뉴스의 첫소식이 코로나로 시작하고, 각족 특집 방송을 통하여 코로나 19 바이러스감염증의 모든 것을 다루고있다. 당연히 예방 수칙도 항상 거론되는데,  손씻기와 사람많은데 가지 않기, 거리두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있다. 한가지 더 강조하는것은 일반인은  마스크를 하지말라는 것이다. 이는 유일하게 우리나라 현상과 다른 점이다. 한결같이 마스크는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은 필수이지만, 일반인은 쓰지말라고한다.  

왜 마스크는 의료인은 사용해야 하고 일반은은 쓰지말라하는 것인가 ? 
왜 의료인은 효과가 있고, 일반인에겐 효과가 없는가 ? 
의료인이 써서 효과있다면,  일반인이 써도 효과있어야 하지 않은가 ? 

일반인과 의료진의 마스크의 효과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 

가장 중요한 요인은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경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의료진과 가족은 환자의 호흡기에서 직접 분사되는 비말에 직접 얼굴이 노출되고, 이는 대단히 높은 확율의 감염가능성을 초래한다. 따라서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얼굴을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부위를 감싸는 보호장구가 필요하다. 물론 마스크를 포함한 모든 보호 장구는, 눈을 보호하기 위해 고글을 포함,  매우 새심하게 관리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특히 오염된 마스크와 보호복은 대단히 위험하다. 당연히 수시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직접 환자를 대면하는 모든 의료진은 당연히 마스크를 포함한 적절한 보호장비를 갖추어야하며, 모든 장비는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

이에 반하여, 일반인이 감염되는 경로는 다르다.  오염된 자신의 손에의한 감염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따라서 마스크의 보호작용은 극히 미미할 수밖에없고, 오히려 잘못된 관리로, 특히 손에 의해 오염된, 마스크는 오히려 더 감염을 유발하여 위험하다.   설사 비말에 의한 감염이라해도, 얼굴에 단단히 고정되지않은 허술한 마스크는 현실적으로 감염  차단효과는 없으며,  마스크를 썻으니 안심하는 마음에 위험을 인지하지못하여, 감염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혹시 모르는 직접 환자와의 접촉을 차단하기위해서는 .. 소위 거리두기,  즉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안가는 것이 유일한, 그리고 현실적인 예방책이다. 

현재 , 거의 매시간 전세계의 모든 방송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한 수칙이 되풀이 방송되고있지만, 전세계 어느 국가도, WHO를 포함한 어떤 보건 기구도,  일반인에게  마스크를 쓰란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면 좀 낫겟지 하는 마음에 마스크를 쓰고있고, 이는 특히 아시아 국가에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다. 

 그러나 의학적 사실은  잘못된 마스크의 사용이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