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여인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이승원 옮김 / 창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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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국내 추리 애독자들은 월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엘러리 퀸의 《Y의 비극》과 함께 '세계 3대 추리소설'로 꼽힌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런 순위는 서구의 어느 자료를 찾아봐도 추리 소설의 순위를 매겨놓은 자료는 없다.
위 자료는 아마 70년대 일본의 모 신문사에서 자국의 추리 독자들의 추천을 받은 추리 소설들의 랭킹 순위를 매긴거란 글을 어디선가 본듯 싶은데 어찌되었든 나름대로 추리 선진국이라보 불리우는 70년 일본 추리 독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이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는 있겠다.

21세기 들어 도일의 홈즈를 필두로 르블랑의 뤼팽 시리즈가 완역되고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단편이 전부 번역되며 많은 추리 애독자들이 헌책방을 전전하게 만들었던 동서 추리문고가 재간되고 매년 수십편 이상의 일본 추리소설들이 간행되고 아주 가끔씩 이지만 황금시대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이 나오는 현 시점에서 보면 참 의외로 서스펜스의 대가란 호칭을 받고 있는 월리엄 아이리쉬-본명 코넬 울리치-의 작품은 생각외로 적게 국내에서 번역되었다고 생각되는데 그의 작품중에 국내에 번역된 것은 환상의 여인,죽은자와의 결혼,상복의 랑데부,새벽의 데드라인(절판),검은 옷을 입은 신부,밤은 천개의 눈을 가졌다,단편집 밤 그리고 두려움1~2등 서구에서의 그에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채 열권이 번역이 안된 것 같다.

환상의 여인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남편 스콧 핸더슨은 어느날 아내와 다투고 집을 나와서 처음 보는 여인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는 살해당했고, 스콧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다. 스콧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누명을 풀어주고자 스콧이 만났다는 여자를 찾으려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사형 집행 날짜는 계속 다가오지만, 그 여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스콧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의 친구와 애인은 그 정체불명의 여자를 찾기 위해 40년대 뉴욕의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그 와중에그의 알리바이를 보조해줄 증인들은 하나씩 죽어나간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동안 국내에 번역된 서구나 일본의 추리 소설과는 약간 그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서구의 황금시대 본격 추리나 법의학 추리 소설이나 일본의 신본격 혹은 사회파 추리 소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살인 혐의를 받고 사형을 앞둔 주인공의 피 말리는 심정을 밀도 있게 그려 나가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목차 역시 사형 집행일 150일부터 사형 집행 다음날까지 되어 있어 교수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스콧의 공포를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환상의 여인은 이처럼 서스펜스가 주가 되는 작품이다 보니 국내 추리 독자들이 사랑한는 본격 추리의 절묘한 트릭은 없다고 할 수 있다.물론 뒤에 주인공을 살리는 반전이 있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범인을 예상할 수 있는 어떤 정보도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복잡한 작가와 독자의 두뇌 싸움 보다는 작가가 능숙하게 써놓은 서스펜스를 독자들은 주인공과 함께 아슬 아슬한 느낌을 맛보며 끝까지 달려가면 되는 작품인 것이다.

대체로 아이리쉬(울리치)의 작품은 탐정 소설이라기 보다는 서스펜스가 강한 범죄 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작품의 특징중의 하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탐정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당시 많은 추리 소설들에서 각종 탐정들이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리쉬의 소설에는 탐정이 아닌 어려움에 빠진 일반인들이 등장하여 고생을 할 뿐이다.설령 경찰이나 탐정이 나오더다라도 이들의 역할은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노력을 방해하거나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들이 할 일을 주인공이 대신한 것에 대해서 축하해주는 일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그 역할이 미미할 따름이다.

환상의 여인에서 느낄수 있듯히 아이리쉬 작품은 셜록 홈즈등의 명탐정이 마치 톱니바퀴와 같이 정교하게 맞무려 우리를 감탄시키는 추리가 아니라 마치 홍콩 느와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눅눅하고 빛바랜 회색의 도시 뒷 골목어둠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독자에게 주는 작가의 절묘한 문체가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항상 시간에 쫒기는 듯한 평범한 남녀의 뒤를 쫒는 공포가 독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등장인물들을 어쩔수 없은 어둠 속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에 대한 묘사,도시적인 우수와 슬픔을 던져주는 분위기 등 환상의 여인에서는 여러 가지 작가의 특징을 볼 수 가 있는데 그런 모든 것을 감싸고 흐르는 듯한 마치 재즈 선율을 듣는 듯한 그의 유려하며 독특한 문체의 아름다움은 작가만이 갖고 있는 개성이기에 많은 후배 작가들이 그의 문체와 작품에 매료되어 그의 뒤를 이으려고 노력했지만 환상의 여인과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을 아무도 소화해된 추리 작가는 없다.마치 이도류의 미야모토 무사시가 당대 최강의 검사였지만 그만이 소화해낼수 밖에 없었던 이도류의 후계자가 없어 이도류가 사라진 것 같다고 할 것이다.

신본격과 사회파 추리 및 코지 소설들이 난무하는 국내 추리 소설계에서 마치 진한 커피향을 맡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이리쉬의 작품은 작가와의 복잡한 두뇌 싸움에 지친 추리 소설 애독자들에게 한 가닥 마음을 편안케 해주는 청량한 허브향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Good:서스펜스 추리 소설의 거장 다운 작품
Bad:정교한 트릭은 없는 편
Me:필름 느와르를 연상시키는 뉴욕 뒷골목의 향기를 느끼고 싶다면 제격인 작품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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