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 정진숙 "우직하게 원칙을 지켜 온 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해 "
이번에 출간된 『출판인 정진숙』을 주의 깊게 읽어 보았습니다. 여러모로 감동이 깊었습니다. 1945년 ‘을유문화사’를 세우고 평생을 양서 출간에 매진하셨는데, 출판을 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해방되고 반일 혐의로 치른 옥살이 후유증으로 요양하던 내게 아동문학가 윤석중과 수필가 조풍연이 찾아왔어. 출판업을 같이 하자는 거였지. 난 전에 은행에서 일했던 터라 책을 잘 모르고 돈벌이가 될 것 같지도 않아 거절했어. 그런데 며칠 후 같은 동래 정씨 가문의 어른이셨던 위당 정인보 선생이 나를 불러. 그래서 갔더니 “우리말, 우리글, 우리 민족의 혼을 되살리는 유일한 문화적인 사업이 출판”이라고, 그들과 같이 출판을 하라고 호통을 치시는 거야.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고 두 사람과 민병도, 나 넷이서 동인 체제로 출판을 시작한 거야. 회사명은 해방된 해의 간지가 을유(乙酉)여서 이를 따서 을유문화사라 지었지.
을유문화사에서 첫 책으로 펴낸 책이 무엇인가요?
『가정글씨체첩』이라고 26쪽짜리 한글 연습책이었지. 우리나라가 36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나니 우리말과 글을 되살리는 것이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펴냈어. 훈민정음 언해에서 이충무공 비문, 황진이의 시조, 조선의 속담, 『사씨남정기』, 『한중록』 등에서 명문만을 추려서 엮은 책이지. 이 책은 나오자마자 반응이 꽤 좋아서 해적판이 나돌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
우리말 사전이 없던 때에 『조선말 큰 사전』 출간이라는 지대한 업적을 남긴 점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사전 발간의 진행과 경위, 뒷얘기 등을 들려주시지요.
1947년 봄이었는데 당시 조선어학회 간부인 이극로, 김병제 씨가 원고 뭉치를 들고 찾아왔어. 2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원고인데, 조선어학회 사건 때 일제에게 압수당했다가 해방 후인 1945년 9월 서울역의 한국통운 창고에서 기적적으로 발견하여 출판을 수소문하다 나를 찾아온 거였지.
그런데 책 권수가 6권에 달하고 쪽수가 3천 5백 쪽이 넘는 것을 무슨 재주로 내야 되는지 난감한 노릇이었지. 그래서 취지를 아니까 검토해 보겠다고 말하고 그들을 돌려보냈지. 그랬더니 한참이 지나 이극로 씨가 다시 찾아와서 “누구 하나 사전에 관심조차 없으니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 의의가 어디 있느냐. 그래, 일본놈들한테 가서 내달라고 해야 되겠느냐?”며 격앙되어 호통을 치는 거야.
그래서 시작된 일이 10년이 걸려 1957년 10월에야 완간되었어. 지금에야 용지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당시는 용지 자체가 귀했던 시절이라 어려움이 많았어. 제1권을 펴내고 우여곡절 끝에 미군정 편수관의 도움으로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용지를 지원받아 완간할 수 있었지.
『조선말 큰 사전』 발간과 함께 우리 역사를 다룬 본격 통사 『한국사』를 발간하시고, 나중에 그것을 영문판 『The History of Korea』로 출간해서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리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사』와 영문판 『The History of Korea』 출간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1968년 유럽으로 출판 문화 시찰을 갔을 때였는데 방문한 나라의 도서관에 들어가 보니 우리나라를 소개한 역사책이 한 권도 없는 거야. 그래서 그들로부터 『한국사』의 영문판이 절실하다는 말을 듣고 궁리하던 중 7권이나 되는 책을 번역 출간하는 것은 너무 부담이 되어 서울대 한우근 교수에게 『한국통사』 집필을 의뢰하고 동시에 영역본의 출간을 병행하도록 했지. 이 책은 기존의 한국사 개설서와 달리 역사 서술에 있어서 주체성과 왕조사 중심에서 벗어난 유연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어. 영문판 『The History of Korea』는 서울대의 이경식 교수가 번역하고 당시 『코리아 타임즈』의 카피 에디터로 일하던 미국인 민츠가 감수하여 출간했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영문판 도서의 출판은 우리가 최초로 시도한 작업이었고, 이 책은 각국의 공관을 통한 보급으로 해외에 우리 역사를 널리 알리는 기폭제 역할을 해주었지. 하와이대학 동서문화센터 같은 곳에서는 수천 부를 구입해 미주 지역 각 도서관에 보급을 맡아 줄 정도로 나라 안팎으로 반응이 좋았어.
『청록집』 등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집과 소설집을 많이 발간하셨는데, 문인들과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으신지요.
사실 을유문화사가 문예물을 출판한 것은 해방 어간(於間)에 활발했고, 197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점차 시들해진 감이 있어. 해방 공간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던 작가들이 전쟁을 전후로 대거 월북하는 바람에 그 공백이 컸던 게 아닌가싶어. 그 중에서도 좀 각별했던 문인이 있었다면 월탄 박종화 선생이야.
당시 을유문화사가 『한국사』 진행을 전후로 진단학회 회원들과의 교류가 빈번했는데 월탄이 이병도, 이숭녕 선생과 함께 어울리다보니 자연스레 우리와도 교분이 쌓인 거지. 게다가 선생은 나의 휘문고보 선배이기도 했으니. 월탄 선생이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다룬 『임진왜란』 탄생에 얽힌 이야기야. 월탄 선생이 『조선일보』에 『임진왜란』을 연재하다 전쟁으로 일시 중단된 것을 다시 재개하면서 서울신문사 사장직을 포기하고 전력을 기울여 집필한 회심작이라 당시 인기가 대단했어.
지금이야 이순신 장군의 위상이 독보적인 존재로 각인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쳤던 한 사람의 무장에 지나지 않았던 그를 역사 속에서 새롭게 발굴하여 현실에 생생히 되살려낸 것은 월탄 선생의 『임진왜란』이라는 장편소설이 계기가 되었지.
을유문화사가 지금껏 펴낸 책이 7천여 종에 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책 말고 가장 기억에 남는 책들은 무엇인가요.
『학풍』, 『임꺽정』, 『한국문화총서』가 특히 기억에 남아. 『학풍』은 1948년 10월에 창간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로 여겨진 학술 잡지였는데 당대의 내로라는 필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그 위용이 대단했어. 학계의 이상백, 이인영, 전석담, 안호상, 김규식, 김기림, 윤일선, 유홍렬, 정인조 등이, 문단에서는 백석, 염상섭, 김용준, 이양하, 서정주 등 당대의 지성들이 두루 포함되어 있었지. 아쉽게도 한국전쟁의 상흔을 극복하지 못하고 폐간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아쉬워.
『임꺽정』은 을유가 펴낸 많은 소설 가운데 손꼽히는 작품으로 기억돼. 이 소설은 원래 벽초 홍명희가 신간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건데 출감한 벽초가 직접 찾아와서 내게 된 소설이지. 신문에 이미 연재되었던 소설이었기에 인기가 많아 용지가 구해지면 바로 편집해 제작하곤 했지. 당시 우리가 펴냈던 다른 책들이 대부분 손익분기점을 밑돌 때 경영 수지에 적잖이 기여한 몇 안 되는 책 중의 하나였지. 전쟁의 와중에 벽초가 월북하는 바람에 수십 년간 금서가 되는 아쉬움을 남긴 책이야.
또 『한국문화총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 제약으로 출판하지 못했던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들을 발굴하여 펴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시리즈였는데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학술적 성격이 강한 책들이 대부분이었지. 그러나 이때 펴낸 책들이 훗날 우리 학계와 문화계의 초석이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더 깊은 연구들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뿌듯하고 보람 있는 일이었지.
출판철학이 무엇인지요.
나는 출판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판단되면 그게 잘 팔리든 안 팔리든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 을유문화사가 지금까지 낸 책들 중에는 그런 책들이 많아. 『한국문화총서』라든가 학술신서 같은 책들은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전혀 상업적인 매력이 없었지. 그러나 낼 당시는 어려웠지만 그 책들이 우리나라 학술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들으면서는 그때 판단이 그르지 않았다는 자위를 하곤 했지. 장기적으로는 어중간한 대중서를 내는 것보다 명분도 있었으니 크게 보면 우직하게 원칙을 지켜 온 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해.
선생님의 일생은 한국 출판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출판을 해오면서 아쉬웠던 점이나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을유문화사가 『세계문학전집』을 낼 때였는데, 그때 우리는 좀 이례적으로 앞으로 낼 책을 광고를 통해서 예고하고 차근차근 펴내곤 했어. 예나 지금이나 문학서를 제대로 내려면 이래저래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 광고를 본 타 출판사에서 우리보다도 더 재빨리 번역해서 책을 내는 거야. 우리로서는 독자에 대한 정보 제공 차원에서 요즘 말로는 ‘알 권리’를 존중해서 사전 예고제를 시행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남 좋은 일만 한 셈이었지.
또 한 가지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게 있는데 너무나 중복 출판이 많아. 한 출판사에서 좀 괜찮게 나가는 책이다 싶으면 너도나도 똑같은 제목의 책을 마구 펴내는 거지. 짧게 보면 그 출판사들이 이득을 보는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이미지 손실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될 텐데.
출판을 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우리 세대라면 모두 다 겪은 전쟁의 상흔이 아닐까싶어.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나고 사흘 만에 사무실이 있던 영보빌딩을 ‘민청중앙위원회’가 접수하는 바람에 책과 집기들은 고사하고 당시 수천만 원에 달하는 현금과 어음 등 유가 증권까지 금고 째로 고스란히 불에 타버려 엄청난 손실을 입어야만 했어. 그렇다고 해서 출판을 안 했던 건 아니야.
종군 기자들의 글을 모아 『동란의 진상』을 펴내는가 하면, 명사들의 전쟁 초기 수난 기록을 모은 『나는 이렇게 살았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으니.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웠던 일은 피난지인 부산의 한 서점에 ‘을유문화사 임시연락사무소’를 열고 고군분투하는데도 부채만 늘어갈 뿐 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를 제외한 창립 동인들이 각기 다른 일을 찾아 떠나간 일이야. 결국 나 혼자 남아 같이 부산으로 피난한 직원 4명과 함께 힘겹게 빚뿐인 출판사 살림을 이끌어갔지. 그 당시 무수한 회의와 좌절감에 사로잡혀 지냈어. 문득문득 출판업을 접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했으니까. 아마 내 우직한 고집이 아니었으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거야.
좌우명이 무엇인지요.
좀 진부할지도 모르는데 ‘원칙을 지키자’야. 요즘에도 어느 정도 통하는지 모르지만 모든 일은 성패가 초심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 저자와의 첫만남을 끝까지 원만하게 유지하거나 아무리 금전적인 유혹이 뻗쳐 오더라도 이를 뿌리치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 살면서 새삼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
1950년대 후반, 자유당 때였는데 정계의 실력자 한 사람이 자신의 자서전을 출판해 달라고 부탁해 온 적이 있었어. 그는 막대한 출판비를 부담하는 조건과 이권을 제시하며 나를 회유하려고 했었지. 그러나 나는 일언지하에 그 제의를 거절했어. 눈앞의 이익이나 비열한 타협과 손을 잡는다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볼 때 결코 이롭지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야.
많은 책을 읽고 접하셨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즐겨 읽고 재독 삼독하는 책은 무엇인가요?
명나라 때 문헌으로 도륭이 쓴 『고반여사(考槃余事)』란 책이야. 이 책은 글씨, 그림, 종이, 붓, 먹, 차, 의복, 각종 기물, 문방구, 향, 그릇 등 잡다한 사물에 대한 품평과 감상 및 관리법 등을 안내하는 일종의 ‘인문 실용서’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이 좋아서 권덕주 선생에게 번역을 의뢰하여 문고본으로 출간했는데 지금도 가끔 틈날 때마다 펼쳐보곤 하지.
청소년들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 세 권만 추천해주시지요.
홍명희의 『임꺽정』, 박경리의 『토지』, 그리고 『고문진보』, 이 세 권을 권하고 싶어. 『임꺽정』은 우리와의 특별한 인연도 있어서 더 각별하긴 하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를 흠뻑 담고 있어서 애착이 가. 특히 벽초가 아니면 구사하지 못할 구수한 입말들은 지금 읽어도 실감이 나.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우리 민족의 삶을 총체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지.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만주와 도쿄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스케일과 일제하의 억압받는 우리 민족의 억눌렸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그리고 『고문진보』는 오랜 고전인데 동양적 사고와 정신 문화의 지평을 넓혀 준 한문 문장 교과서라고 할까. 우리나라에는 『사서삼경』 다음으로 널리 읽힌 책이라는데, 시대가 변해도 늘 새롭게 해석되어지고 그 의미가 달리 느껴지는 게, 그래서 사람들이 이 책을 고전이라 하는가봐.
마지막으로 한국 출판의 미래를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경기도 좋지 않고 취직도 잘 안되고 나라 안팎으로 밝지 않은 전망들이 많이 나오는데, 나는 한국 출판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봐. 물론 영상 매체나 인터넷 등으로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익숙해지는 세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데 자세히 보면 요즘 유행하는 콘텐츠들 중 상당수는 책에서 나와. 게임이나 연극, 오페라, 영화도 사실 좋은 저작에서 추출해내거든. 좋은 출판물은 다양한 부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좋은 책을 펴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싶어.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원칙을 지키자는 말씀을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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