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스테리 하우스의 추리 관련 글로 저자는 '박광규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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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어떻게 읽을 것인가
흔히 더운 여름밤 추리소설을 읽는다고들 한다. 더위를 잊을 만큼 재미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국내 추리소설들은 대체로 여름 시장을 겨냥해 발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침체기에 빠져 있던 국내의 추리소설 시장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명탐정 셜록 홈즈가 다시 등장한 것으로부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해, 반짝 열기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딛고 월드컵 열기를 넘어서서 몇 년 만에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국내 추리소설 시장은 과거 지금보다 훨씬 호황을 누리다가 그 기세가 꺾인 상태이기 때문에, 몇 년 지나지 않은 현재의 상황을 과연 ‘추리소설 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꺼져 가던 추리소설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추리소설은 근본적으로 오락을 위한 소설이며 독자를 위한 소설이다. 흔히 걸작은 작품성이 높다는 소리를 듣는 반면 따분할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추리소설의 경우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들은 재미없고 지루한(물론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작품은 드물다. 독자들은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자신들이 실제로 겪기 어려운 범죄에 대해 대리 경험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우 이래 16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추리소설 작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고 독자들의 취향도 다양해졌다. 그에 따라 추리소설의 종류 역시 세분화되었다. 추리소설을 종류별로 나누는 것은 평론가가 편의상 붙인 것이며 또한 독자들에게 선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분류는 작품 소재일 수도 있고 성향일 수도 있으며 주인공에 따라 나뉘기도 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작가들이 작품 수준을 높이기 위한 요소라면 망설이지 않고 이용했던 탓에 사실상 분류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우선 간단하게 살펴보자.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등장해 증거를 모아 범인을 잡는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만족시키는 형식을 전통적 추리소설(혹은 정통파, 고전)이라고 한다. 이 형식의 작품들은 리얼리티(실현 가능성)를 추구하는데는 애썼지만 리얼리즘(현실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았던 탓에 1920년대 미국 작가들은 실제로 벌어질 수 있을 듯한 사건을 소설 속에서 간결하고 냉정하게 묘사했다. 이것이 미국의 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하드보일드(Hard Boiled) 형식이다. 추리소설은 이 두 가지 형식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주인공이 탐정에서 경찰의 합동 수사로 넘어오면서 ‘경찰 소설’(Police Procedural)이 등장했고, 60년대 냉전 시대에 들어오면서 ‘스파이물’(Espionage)이 발전했다. 최근 들어서는 불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이른바 ‘사이코 스릴러(Psycho Thriller)’가 시대 조류를 타고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과거를 시대배경으로 삼은(20세기 초반 정도가 아니라 중세를!) ‘역사 추리소설’이 있으며, 미래를 배경으로 삼은 ‘SF 미스터리’도 있다. 물론 추리소설의 종류는 이보다 훨씬 많지만 지면 관계상 간단하게 소개를 해 보았다.
이렇게 종류가 다양하고 발간된 책의 종류가 늘어서 좋아지기도 했지만 추리소설을 읽어보지 않았던 분들은 선택하는데 고민이 생기게 된다. 남에게 책을 권하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며, 선물 받은 책인데 도무지 손이 가지 않아 읽지 못하고 책꽂이에 꽂아 놓은 경험은 드문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작품성이 좋다고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는 줄거리나 작품 성향을 해설해 놓은 독서 가이드도 많아서 책을 선택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그런 책이 없다. 이런 가이드에는 가끔 유머러스한 설명이 붙어 있기도 한데, 아트 버고(Art Bourgeau)의 <추리소설 애호가용 안내서 The Mystery Lover's Companion>(미번역)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목욕할 때 읽지 않는 것이 좋은 책 - 로버트 블록의 <사이코>(해문출판사), 토머스 해리스의 <레드 드래건>(창해). 왜 이런 해설이 붙어 있는지는 작품을 직접 읽어보시면 금방 확인할 수 있으리라.
그럼 어떤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첫 번째 방법으로 우선 자신의 취향을 파악한다. 추리소설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작품을 좋아하는지는 잘 알고 있을 터이기 때문에 가장 간단하면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 다음에는 작품을 고르는 일도 쉬워진다. 가령 ‘범인은 누구인가?’ 식의 전통적 수수께끼 풀이를 원한다면 셜록 홈즈 시리즈(코난 도일 - 황금가지, 시간과공간사)나 브라운 신부(G.K.체스터튼-북하우스) 등의 전설적 명탐정이 등장하는 고전적인 작품을 고르는 게 좋다. 천재 탐정이 나와서 독자들을 깔보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다면 가끔 얻어맞기도 하고 위기에 몰리기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안녕, 내 사랑>(레이먼드 챈들러- 시공사), <블랙 다알리아>(제임스 엘로이-시공사)등의 하드보일드 류의 작품을 읽는 것도 좋다. 서양 작품이 시대에도 뒤떨어지고 우리나라 실정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나 90년대 이후에 발표한 일본의 작품들을 권하고 싶다. 작품 소개는 서점에 가서 직접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인터넷 서점의 독자 서평을 보는 것도 편한 방법이다.
두 번째, 시대 순으로 읽는다. 추리소설에 관심이 생겨서 마음먹고 한번쯤 섭렵할 생각이 든다면, 고전 작품부터 현대에 이르는 순서로 읽어 나가는 것이 좋다. 우선 <우울과 몽상>(하늘연못)은 현대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우의 작품집이다. 과거 네 권으로 출간되었다가 한 권으로 합본되는 바람에 좀 부담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모르그 가의 살인>, <도둑맞은 편지>, <마리 로제 미스터리>, <황금 곤충>, <범인은 너다>등 다섯 개의 단편은 현대 추리소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들이기에 강력하게 권하는 작품이다. 다음으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있으며,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 활약한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까치, 황금가지, 태동출판사)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명탐정들의 활약에 익숙해졌으면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해문출판사, 황금가지)과 미국 추리소설계의 거장 반 다인의 <벤슨 살인사건>(해문), 엘러리 퀸의 작품들(시공사)을 읽어보시길. 트릭이나 플롯이 훨씬 정교해졌으며 문자 그대로의 천재 탐정들의 솜씨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너무나 똑똑한 탐정들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하드보일드 탐정들의 우울한 매력을 살펴보자. 선택의 여지가 많지는 않지만 대쉴 해미트의 <몰타의 매>(시공사), 챈들러 <안녕, 내 사랑>(시공사), 로스 맥도널드의 <움직이는 표적>(로스 맥도널드)등 3대 거두(巨頭)의 작품들을 맛볼 수는 있다. 명탐정들의 위세에 눌려 있던 경찰들의 진면목은 에드 맥베인의 <경찰 혐오자>(해문)에서 실감할 수 있다. 한편 1980년대부터는 존 그리셤(변호사), 로빈 쿡(의사), 패트리셔 콘웰(검시실 근무) 등 전문직 출신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는데, 그들의 생생한 경험을 보여주는 작품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또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도사 시리즈>(북하우스)는 역사 미스터리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일본 작품들을 몇 편 권하고 싶다. 미야베 미유키의 <인생을 훔친 여자>(시아)는 현대 사회의 ‘신용’이라는 덫에 걸린 어느 여성의 처절한 비극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히가시노 케이고의 <백야행>(태동출판사)은 밝은 곳에서 살기 위해 어두운 행위를 해 나가는 두 남녀의 모습이 무서우면서도 슬프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외국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지 않았고 그나마 번역된 작품들마저 절판된 경우가 많아 좋은 작품들을 소개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세 번째로 장편을 읽을 만한 시간이 없거나 엄두가 나지 않는 분들이라면 단편집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장편보다 단편으로 유명한데, 어느 책을 골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작품들이다. 또한 한국 추리작가협회에서는 <예전엔 미쳐서 몰랐어요><여고 동창>(태동출판사)등 단편 작품집을 계속 발간해오고 있다. 한국 추리작가협회 단편집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정통파, 하드보일드, 경찰 소설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10여 편씩 실려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추리소설을 골라 읽는 방법을 설명했지만, 이것은 물론 정답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추리소설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 결국 추리소설의 올가미에 걸리게 되어 한여름 밤의 더위를 잊을 뿐만 아니라 잠잘 시간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 다음에 읽을 작품을 고르고 있다면, 이미 독자 여러분은 자신도 모르게 추리소설 ‘중독자’가 되어버렸음에 틀림없다.
(박광규/미스터리 해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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