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홍인기'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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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사랑에 빠졌다면
<멋진신세계> undifeli
늘푸른마음 홍 인 기
우리나라 SF 애독자들의 연령별 구성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이 10대와 20대로 이루어져 있음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적인 대 중문화>의 생산자가 누구인가 또는 소비주체가 누구인가라는 다분히 미학적, 경제학적, 또는 사회학적인 시각이외의 접근방식을 요구한다. 즉 거세게 밀어 닥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주는 엄청난 문화충격을 이겨내고 나름대로 향유할 수 있는 연령계층이 매우 협소하다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나라의 SF 독자층이 연령별로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일견 당연한 현상임과 동시에 SF 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극복해야할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연령층의 편중은 SF작품의 생산자(작가)들에게 있어서는 10대 취향의 <우주 무협지(space opera)>류의 집필을 본의 아니게 강요하게 되며, SF작품의 매개 자(출판 관계자)들에게는 인식부족과 함께 시장의 협소에 따른 외면, 그리고 수용자(독자)들에게는 선택범위의 제한이라는 치명적인 한계를 부과함으로써 그릇된 감식안을 안겨주게 된다(게다가 엉터리 번역가들마저 용돈이나 벌어쓰 겠다는 식으로 번역에 달라붙음으로써 SF를 오염시키고 있다).
어떠한 예술분야에서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예술의 진 정한 향유에는 개인적인 선호와 선천적인 감식안의 유무라는 요인 이외에도 지적인 훈련과 경제적인 여유 등의 사회적인 요인들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 게 된다. 열악한 SF분야 자체의 상황을 극복해내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하고 수준높은 SF를 꾸준히 접할 수 있는 기회의 제공이야말로 필수적임에도 불구 하고 우리가 처한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전국을 통털어 SF서적(원서)을 판매하는 곳이 한 두 군데에 불과하며 개인적 인 노력을 통하여 새로운 정보와 작품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도 예산제약 (budget constraints)으로 인해서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또한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보이는 외국어 해독능력의 부족도 다양한 작품의 감상에는 절대적인 한계로 작용한다(필자 역시 시간이 남아돌았던 학 생시절에는 읽을거리와 외국어실력과 돈이 부족하였고, 경제적인 능력이 어느 정도나마 생긴 현재는 시간이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있 어서 보다 치명적인 문제점은 위에서 지적한 생산자, 매개자 및 수용자측의 일방적인 책임한계를 벗어난 곳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SF작가들이 일반독자로서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고 있는 SF계의 동 호회적인 성격을 생각할 때에, 몇 안되는 SF작가欲?평론가들 대부분이 다양 한 작품세계를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안목을 기르는데 힘쓰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은 모든 <글쓰기>와 <비평>이라는 행위에 선행하는 <읽기>를 제대로 해내 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독서>는 동료작가들의 SF작품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적어도 작가 또는 평론가라는 부류의 사람들이 해내야 할 임무는 자기가 몸담 고 있는 분야의 과거와 현실에 대해서 일정수준 이상의 지식을 쌓는 것이다. 스탠리 슈미트(Stanley Schmidt)나 가드너 도조이스(Gardner Dozois)와 같은 유명 SF잡지의 편집자들은 SF를 제대로 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로 을 주문하였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편씩 쏟아져 들어오는 원고뭉 치들을 읽어야 하는 그들이 강력하게 권고(!)하는 사항이 바로 제발 SF를 읽 어보라는 것이라면 대부분의 원고들이 기본적으로 SF가 아닌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SF작가 또는 평론가 집단의 <열악한 독서현실>은 논의의 대상이 일반 독자로 확대될 경우 SF를 읽지 않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독서로부터 거리를 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얼마전 우리나 라의 전체 가구(households)에서 500권 이상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는 전 체가구 중에서 겨우 1퍼센트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나온적이 있다. 책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곧바로 많은 독서량으로 통하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수치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너무도 명백한 것 이다. 도서관도 엉터리인 현실에서 책을 사지도 않는 사람들이 어디서 책을 읽는다는 말인가?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글>을 쓴다는 말인가?
SF를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나 한다(적어도 <멋진 신세계> 회원들이라면 그런 말은 한 두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 를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표현할 때에는 거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기여 하는 바가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홍콩의 여배우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그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한 편도 관람하지 않고서(아니면 단 한 편만 보고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SF를 좋아하는가? 정말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SF를 읽어라. SF계가 발전하기 를 바라는가? 진실로 그리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SF를 사라. 돈이 없다 고? 용돈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 비싼 SF책을 사냐고? 그렇다면 그 는 그만큼 SF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 달에 한 권씩 감질나게 출간되 는 번역본을 살 여유마저 없다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번역본마저 사 지도 않고 국내의 SF가 질이 낮다고 매도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사지 도 읽지도 않고서 사랑합네, 좋아합네 떠드는 것은 정말로 한심한 행동이다.
국내SF계는 열악하다. 국내 SF작가들의 작품들은 그만큼이나 열악하다. 출판 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열악함을 물리칠 수 있는 기본적 인 힘은 <독자>에게서 나온다. 독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SF를 위해서 커피 값을 아끼고, 담배를 줄이며, <대화실>에서 죽치는 시간을 줄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오자투성이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나으므로 구입하고, 표 지가 엉망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야 나으므로 구입해서, 2류 작가의 <작 품>이나마 재미나게 읽는 것! 읽고나서 구시렁 거리는 것!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그따위 책을 5,800원씩이나 받고 파냐고 욕을 해주고, <번역자>에게 편 지를 해서 당신이 그 따위로 번역을 하니까 SF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항의도 하고, <평론가>에게 전자우편을 띄워서 그것도 <평론>이냐고 따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SF애독자가 해야 할 바이다. <읽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다 음에야 <쓰기>와 <평가하기>는 일러 무슨 소용이 있으랴!
1993년 5월 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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