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동시대 모드 - SF사의 순간
츠지 타카유키
1960년대에 이르는 SF사의 상식은, 로버트 스콜즈와 에릭 라브킨이 쓴 (TBS &itannica, 1980)이 전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우리들은 아직도 SF사의 꿈을 꾼다. 그것을 벗기는 변형을 하면 할수록 SF는 더욱 장르의 얼굴을 잃지 않고 태연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만일 문학사적 재회수(再回收)라는 마의 손길이 교묘하게 뻗친다고 해도 그에 영합하거나 회피하는 것 역시 TPO에 달려 있는 것 아닌가? SF의 시조를 규정하려는 것이 다소 유아적이긴 하지만 SF를 말하는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언어 게임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창시자들이 바로 유행처럼 우리들 앞에 나타나 각각의 SF사를 이야기로서 말하다가 사라지고, 되살아나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지금까지 'SF시조'는 메리 셸리였던가? 그렇다면 현재부터는 포가 어울릴까? 그런데 거리에는 베른의 패션이 넘친다. 화장실 깊숙한 곳에서 방충제와 함께 쌓여 있던 웰스는 언제 거론될 것인가 하고 생각하면 저 쪽에서는 날마다 단벌옷인 토머스 모어를 입고 도시를 활보하는 군중들이 있다. 이리하여 SF장르의 '발생사'논의라는 쇼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끝없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그것이 유행이라면 SF의 문학적 정통성을 강조하기는 쉽다. 오늘날 가장 널리 승인되는 SF의 기원은 <프랑켄슈타인>(1818)인데, 작가 메리 셸리는 영국 낭만파 문학의 대표적 시인 퍼시 비슈 셸리의 부인이었다. 퍼시라는 문학가 없이는 메리라는 SF의 시조가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SF를 문학사 위에 위치시키고 문학 속에서야말로 SF의 필연성을 재구축하는 쪽은 대체로 이 입장을 취할 것이다. 한편 SF의 문학적 불순성을 강조하는 것 또한 너무 쉬운 일이다. 짜깁기한 괴물 프랑켄슈타인처럼 바보 같은 이야기인 <프랑켄슈타인>에 낭만파 시인이나 과학자가 스위스 산장에서 하룻밤 빠져 있을 때 나온, 여러 단편에서 짜깁기한 음란 파티의 산물에 가까운 너무도 불순한 '문학적 사생아'이다. 그때문에 SF장르 자체가 무엇인가 될 것 같으면서도 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논의는 아마 이러한 견해를 근거로 한 것일 게다.
그런데 SF의 '기원'이 아닌 SF의 '역사'를 논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1926년 세계 최초의 SF전문지 -어메이징 스토리스 Amazing Stories)의 발행자 휴고 건즈백이 신조어 'scientifiction'을 사용해 무엇보다도 문학의 하위 장르로서 SF가 스타트를 끊었다는 것이다. 그 이래 건즈백적인 유선형 미학을 바탕으로 한 SF적 미래상은 다름 아닌 신조어(시니피앙)로서의 기호 'SF'와 그것이 지시하는 집합체(시니피에)로서의 장르 'SF'와의 사이에서야말로 유선형으로 금 하나 없는 연속형이라는 환상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근원적인 의문은 1962년 미국이 아닌 영국 작가 J.G.발라드의 뉴 웨이브 SF선언 <내우주로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부터 시작되었다. 외우주가 아닌 내우주를, 'SF'가 아닌 'SF: Speculation Fiction(사변 소설)'을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제창하였고, 미국 SF계에서도 뉴 웨이브파(새뮤얼 딜레니, 토머스 디쉬, 할란 엘리슨 등)를 구축할 정도의 역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것은 이 나라에서는 이미 1950년대 알프레드 베스터가 <타이거, 타이거>에서 시도한 실험성의 재인식과 같을 것이다.) 이것이 1970년대에는 어슐라 르귄이나 케이트 빌헬름 등의 페미니스트 SF, 보다 정확히 말하면 '성(性) gender'을 사변 재고하는 SF의 기초를 준비하고(여성 작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집 <늙은 영장류에 대한 찬가>에서도 그 주제는 보인다), 궁극적으로는 존 발리가 <전갈좌 핫 라인>과 그 밖에서 제시한 성 관념의 교란이라는 지점까지 도달한다.
이 'SF'라는 호칭에 대해 반농담처럼 이의가 제기되어 왔는데, 이에 따라 하나의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SF라고 하는 지나치게 기호적인 기호는 반드시 하나의 선재적인 하위 장르와의 사이에서 지시적인 연속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혹은 SF는 장르 이름이기 전에 하나의 언표 효과speech act로서 스스로의 일을 해 온 것이다. SF를 읽는 자는 무엇보다도 우선 'SF'라는 기호 작용을 읽지 않을 수 없다. 즉, 누구보다도 당신 자신에게 어떤 작용을 미치는지, 그것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1958년의 시오도어 스터전에 의한 법칙을 상기해도 좋다. 'SF의 90%는 쓰레기이다.' 정말로?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SF라는 기호 그 자체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장르로 존재한 것이 아닐까?
1981년에 윌리엄 깁슨이 컬트적 단편 <건즈백 연속체>를 쓴 것은 극히 SF사적인 필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속에서 하위 장르로 상정되는 SF 그 자체의 근원에 빠지는 기호성을 묻는다. 우리들의 1980년으로 이르는 시간축은 단절되고, 1930년대 당시 건즈백적 미래 세계가 실현 된다. 그리고 왜 그 미래상이 생겼느냐 하는 것은 건축의 경우와 같이 '대중이 바란 것이 미래'이기 때문이므로, UFO도 에일리언도 전부 집단적 몽상의 산물, 즉 '기호적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 SF라는 기호이기는커녕 미래(관)라는 폐허. 물론 여기서는 이후에 휴고, 네불라 상을 비롯하여 모든 상을 모조리 휩쓴 장편 <뉴로맨서>에서 기대되는 '사이버펑크'적 요소는 그다지 현재화되어 있지 않다. 이 작품은 '건즈백적인 1930년대 미국'을 뚜렷하게 '깁슨적인 1980년대 미국'이라는 '지금 여기'에 대조시킴으로써 역사, 지역에의 의식이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강렬하다. 그것은 또 깁슨 자신의 SF사관이며 1980년대 미국 SF선언이기도 하다. 결코 설명적은 아니나 한없이 유발적인 그런 의미에서 브루스 스털링이 편집한 사이버펑크 걸작선 <미러셰이드>(1986)의 권두를 이 작품이 장식한 것에는 충분한 정당성이 인정될 것이다.
즉, 애초에 SF라는 기호 자체가 어떤 이론을 설명하기보다는 뭔가 행위를 유발하는 언표 효과로서 출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건즈백이 <어메이징 스토리스>창간호에서 'scienti- fiction'을 '베른이나 웰스, 포와 같은 이야기'로 읽어 낸 순간, 'SF'의 기호성은 바로 그 언표 효과로 인해 베른, 웰즈, 포를 산출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이 각각 '과거' 그 자체였을 것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건즈백이 정의하는 SF는 그 자체의 주장을 배반하고 원래 미래가 아닌 과거를 지향하고 있었다고까지 볼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서랍 속에 조용히 갇혔던 문자들의 축적을 말이다.
마찬가지의 이야기가 초현실주의라는 전위 예술을 창고에서 꺼낸 발라드들의 뉴 웨이브 내지 SF(Speculative Fiction)에도 해당된다. 그것은 또 건즈백의 SF관임과 동시에 문자대로 조셉 코넬로 대표되는 정크 아트(<겨울 마켓>, <카운트 제로>등) 등 전시대 전위의 과거를 골동품으로서 레이아웃한다고 확실하게 의식하고 있는 깁슨파의 사이버펑크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SF는 미래를 그리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현재를 왜곡'(딜레니)하는 것인가? 그러나 자칫하면 SF의 언표 효과는 회고 취미보다 더 과거 지향적인 것을 산출하려는 행위를 유발해 왔을 뿐일지도 모른다. 원래 활자 매체 이외의 것이 얼마든지 발전하고 있는 금세기 말에 이르러 소설이라는 형식을 최우선시하는 SF를 골동품 취미와 구별하는 것은 몹시 곤란한 일이다. 생각하면 필립 딕이라는 작가가 사랑한 가제트 gadget 군 - 무드 오르간(<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과 슈트케이스 내의 스마일 박사(<파마 엘드리치의 3개의 성흔>)등 - 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도 살려진 것처럼, 산재된 정크 내지 앤티크의 이미지와 연결된 가구의 풍경학이었다. 그 미학이 깁슨 SF를 유발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한편 <뉴로맨서>와 비견되는 걸작 사이버펑크 <스키즈매트릭스>(1985)에서는 거의 반보그트적 우주 대활극의 기상(게이샤 은행, 우주의 가부키 극단)으로 시작되어, 최종적으로는 아우트로 테크놀로지스트의 주인공 린제이가 '초월적 실재'로 소환되는 장면에서 아서 클라크를 방불시키는 '숭고한 체험'이 - 프레드릭 제임슨이라면 '테크놀로지컬 서브라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 - 부상해 오고 있다. 그리고 스틸링은 사이버펑크 '운동'의 지도자로서 이렇게 말한다. "사이버펑크라는 것은, 결국 하드 SF와 뉴 웨이브 SF의 통합이다"(인터뷰, , 1986년 7월호). 여기서 또 그들의 '새로운 SF'는 기성의 SF형식을 그 안에 배치하고 '통합'하려 하는 것이다.
SF라는 언표 효과가 하나의 행위를 유발한 것처림 사이버펑크라는 또 하나의 언표 효과 또한 그 기원인 사이버네틱스와 펑크 록 punk rock을 설명하기는커녕 새로운 행위를 유발해 나간다. 최초의 사이버펑크 패널(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1985년 9월에 열린 북미 SF대회)에서는 깁슨을 제외한 '운동'의 중심 작가들 - 스털링, 존 셜리, 루이스 샤이나, 루디 러커(<시공의 지배자>), 그렉 베어(<블러드 뮤직Blood music>), 패트 카디건 - 이 위세를 떨쳤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에 비판적인 대회측 사회자와의 격돌로 스틸링과 셜리가 패널을 중도 보이콧하는 '폭력'을 휘둘렀다.
셜리는 그 자신이 펑크 로커로서도 활동중인 작가지만, 그에게 이러한 '폭력'은, 아니 새로운 SF '운동'을 끝까지 사수하려는 자세는, 반드시 그 때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작가로서는 이들 중에서 가장 대중 소설 작법이 숙달된 직업인이었으며, 그 때까지의 폭넓은 작풍(초현실 SF, 하드코어 SF, 정치적 SF)이 뒷받침된 신작 상편 <이클립스>(1985)를 막 발표했을 때이기도 하다. 그 작가가 데뷔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거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형용될 수 있을 정도로 스승 할란 엘리슨과의 밀월과 불화가 발견된다. 1972년 당시 19세였던 셜리는 미국 유일의 SF창작 강좌 '클라리온 워크숍'(시애틀)에 출석을 허가받았는데, 그 때 강사가 그가 오랫동안 경외했던 엘리슨이라고 하여 기뻐했다. 엘리슨은 분명히 셜리의 단편을 읽었고, 절찬했으며, 이 젊은이가 내미는 책에 '드디어 나 이상의 작가를 발견한 기쁨으로'라고 사인까지 해 주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좋지 않다. 완전히 기성 작가로 부상한 셜리에게 엘리슨은 자신이 편집하는 거대 뉴 웨이브 앤솔러지 '최후의 위험한 비전'(未刊)에의 퇴고를 의뢰했는데, 최종적으로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 19번에 걸친 퇴고 명령 후 - 취소해 버린 것이다. 격노한 셜리는 이후 엘리슨과 비교될 때마다 (분명히 'street fiction'이라 불리는 엘리슨의 작품 경향은 지금 말하는 펑크였으며, 1970년대 미국 SF계에서는 그와 셜리 이외에 그 스타일을 선택하는 작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비교'의 원인일 것이다) 집요할 정도로 엘리슨 비판을 반복하게 된다. "엘리슨은 결코 신 따위가 아니다. 우상 숭배 따위를 할 틈이 없다" (<신티레이션>지, 1977년 3월호). 이리하여 '엘리슨 전설'은 붕괴되고, 셜리 자신이 '펑크 SF의 대부'라 불리게 된다. 여기에서야말로 1960년대 뉴 웨이브(엘리슨 외)가 사실상 1980년대 사이버펑크로 대체되는 드라마의 복선이 깔린다. 그러므로 엘리슨과 셜리의 불가해적인 격돌은 누구 때문도 아니다. 단지 미국 SF사상 필연적 요청, 그것이야말로 SF의 언표 효과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경력을 가진 셜리가 사이버펑크 '운동'의 적극적인 멤버로서 (재)등장했을 때, 다시 뭔가 마찰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예상된 것이었다. 실제로는 선행된 뉴 웨이브 사이드로부터의 비판은 지금 거의 없다. 현존하는 최대의 뉴 웨이브계 겸업 비평가 딜레니는 앞서 말한 <미러셰이드> 수록 작품 검토에 가담했으며 1986년 가을에는 코넬 대학 인문 과학 연구소에서 문자대로 발리와 깁슨의 텍스트를 해독한 'S/F' 클래스를 담당했을 정도이며(사이버펑크 작가의 대부분은 반드시 딜레니와 그의 장편 <노바>, <달그렌>을 접하면 칭찬한다), 노먼 스핀랜드에 이르러서는 에세이 "뉴로맨틱스"(<아이작 아시모프의 SF매거진>, 1986년 5월호)에서 이 젊은 작가들에게 지나친 공감을 나타내고, 스스로 사이버펑크류의 장편 비디오 키드용 <작은 영웅들>(1987)을 간행할 정도여서,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서슴지 않고 그를 '뉴 웨이브 작가'와 '사이버펑크 작가'의 양쪽 그룹에 넣은 경우도 있었을 정도이다(티모시 리어리, "사이버펑크스" <스핀>, 1987년 4월호). 그것보다도 문제는 사이버펑크는 분명 1980년대 SF의 한 형태이기는 해도 역으로 1980년대 SF가 사이버펑크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1960년대 뉴 웨이브가 유산으로 남긴 '문학성'을 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BOFO'(Boring Old Ffarts Organization의 약자. 'Ffart'의 더블 f는 일종의 멋부림으로 '대히트'가 전체의 원뜻이나, 여기서는 '문학 형식과 인문학적 성과를 중시하는 SF'의 뜻), '휴머니스트'를 자칭하는 작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단, 이 그룹 중에서도 최근에는 사이버펑크로 전향하거나 그것과 양다리를 걸치려는 자가 많아, 예를 들면 'BOFO'라는 말의 창시자였던 마이클 스완윅부터가 사이버펑크 장편 <진공꽃>을 냈고, 제임스 패트릭 켈리는 사이버펑크 단편 <래트>(, 1987년 2월호)로 네불라 상 후보에 오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에 와서 'BOFO', '휴머니스트'로 남는 것은 미래 SF <삭막한 해변>으로 일약 높은 평가를 받은 킴 스탠리 로빈슨, 패트릭 켈리와의 공동 작품인 메타 SF <자유의 해변>(1985)을 낸 존 케셀, 1986년에 휴고, 네불라 상을 획득한 <엔더의 게임>에 이어 종족 진화/생태계를 테마로 한 <죽은 자의 대변인>(1986년, 1987년 네불라 상 수상)이 "이 작가의 지금까지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판을 얻은 오슨 스코드 카드 등이다. 이 세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은 각각 탁월한 논객이기도 하다는 점으로 예를 들면 로빈슨은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 샌디에이고 영문학과에서 (1984)이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셀도 역시 영문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현재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 대학에서 창작 강좌를 담당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사이버펑크계 평론지 (창간호, 1987년 3월호)에 "휴머니스트 선언"이라는 에세이를 써서 <뉴로맨서>의 소설적 완성도를 철저하게 되묻고 있다. 카드는 1986년 말에 SF의 관록 있는 평론지 가 종간(61호)하기까지 서평을 연재, 최종회 에서는 스완윅의 문제 제기적 에세이 "포스트모던 이용 안내"(, 1987년 2월호)에서 시도한 1980년대 SF의 이분법(사이버펑크/휴머니스트)을 비판하고 이들 양 진영을 통합한 명칭 '문학적 픽션Literary Ficrion'(LI-FI=라이파이. SF의 SCI-FI=사이파이에서 따온 신조어)을 만들어 내 그 논의는 그의 개인지 <쇼트 폼>에서 계속되고 있다. 덧붙이자면 1980년대 SF작가들 사이에서 개인 평론지의 발행이 하나의 유행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미국 SF계에서 논의가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털링의 <치프 트루즈>, 찰스 프랫의 을 시작으로, 켈리와 사이버펑크 제2세대인 폴 디 필리포 등의 잡지가 그에 해당된다.
위에서 일부 소개한 것만으로도 1980년대 SF가 작품들의 활황 속에서도 '운동과 논쟁의 시대'를 맞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셜리와 카드가 미국 SF작가 협회(SFWA)속에서 네불라 상을 놓고 대격론을 벌임으로써 절정을 맞았다. 셜리는 카드의 <죽은 자의 대변인>이 네불라상을 받을 가치가 없는데, 수상작 및 후보작으로 올라 있는 것과 카드 자신이 네불라 경과 보고 심사에 관련되어 있는 것을 들어 그가 자신의 작품을 후보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 중재로 나선 사람이 <수해 전설>, <시간의 적>(1982)등 인류학 SF로 일가를 이룬 마이클 비숍으로 그는 에세이 "네불라 상"(<스러스트> 26호, 1987년 봄호)에서 셜리의 <이클립스>와 카드의 <죽은 자의 대변인>의 질을 공평하게 비교 검토하면서 최종적으로는 SF작가 협회의 규약 개정을 제안하고 있다. 논쟁의 시대는 머지않아 무엇을 구축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그것은 SF라고 하는 장르 아래의 사이버펑크, BOFO, 휴머니스트, 라이파이와 같은 여러 하위 장르들과 부딪치는 것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신조어 각각의 내부에야말로 새로운 SF를 읽는 방법이 담겨져 있어, 그 '읽기'를 하나의 행위로서 유발시킨 것이 타인이 아닌 'SF'라는 언표 효과가 이루어 내는 일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미국 SF사 그 자체가 혼란 속에서도 확실하게 하나의 퍼포먼스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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