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감상기'라는 메뉴의 하부메뉴로 'Sci-Fi'라는 란을 만들었는데, 앞으로 그 란에 SF 작품들을 소개하고, 그 중 한국에 출판되지 않은 몇몇 단편들은 영어공부 겸사겸사해서 시간날 때 번역해서 올려볼까 하는 중입니다.('시간 날 때'라는 표현이 너무 적절하게 잘 뽑아낸 핑계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음. ㅎㅎ)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번역의 질에 대해서는 전혀 보장 못 합니다. ^^;;
최근 진보넷에 몇몇 분들이 자전거 타는 일이나, 여성의 생리에 대한 글을 올리셨길래 그와 관련된 SF 한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지금도 SF라고 하면 의례 '남자 어린애들'이나 좋아하는 장르로 생각되는 경향이 강합니다만, 예전에 SF를 완전히 남성 작가들이 독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뛰어난 여성작가들조차 남성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SF 분야에서 오히려 여성작가들이 훨씬 뛰어난 작품들을 선보이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각종 SF문학상의 수상 기록만 봐도 쉽게 확인할수 있는데, 현재까지 SF 작가 중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사람은 <어둠의 왼손>, <빼앗긴 자들> 등으로 국내에 유명한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입니다. 어슐러 K 르 귄은 1968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185번이나 각종 문학상에 후보로 올랐으며, 그 중 50번을 수상해서 2006년 현재까지 SF 작가 중 최고의 수상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가니까 그에 대해 따로 더 소개해봐야 군더더기만 될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은 위의 두 소설을 한번 읽어보시길.. 특히 <빼앗긴 자들> 강추!) 그녀도 이제는 칠순을 넘었는데, 아직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가와 동시대에 같이 살아가면서 다음 작품을 기다릴 수 있다는 건 참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블로그의 이름도 실은 <빼앗긴 자들>의 원제목에서 따온 것입니다)
어슐러 K 르 귄에 이어 현재까지 두번째로 많은 상을 받은 SF 작가가 오늘의 주인공인데 그 역시 여성입니다. 국내에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둠스데이 북> 등을 출간한 '코니 윌리스(Connie Willis)'가 바로 그 작가입니다. 코니 윌리스는 1979년 이래로 각 문학상에 143차례 후보로 올랐으며, 그 중 42번을 수상했습니다. 이 정도면 이 두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각종 상들을 싹슬이 했다고 봐도 크게 과장이 아닐 것 같습니다.
어슐러 K 르 귄이 SF와 판타지를 묘하게 섞은 듯한 작품 스타일로, 시종일관 삶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거리를 던져준다면, 코니 윌리스는 이보다 정통 SF에 가깝고, 코믹하고 통통 튀는 스타일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보통 SF계의 최고의 수다쟁이라고 하면 커트 보네거트와 함께 코니 윌리스가 꼽히는데, 소설이란 게 그것도 SF 소설이 도대체 어떻게 '수다'스러울 수 있는지 궁금하시겠지만, 읽어보시면 압니다. 후후..
이번에 번역해서 소개하는 작품은 코니 윌리스의 <여왕마저도 (Even the Queen)> 라는 유명한 단편입니다. 저는 10여년전쯤 누군가 번역한 것으로 처음 읽어봤는데, 당시는 코니 윌리스가 어떤 작가인지 몰랐을 때였습니다. 그 뒤에 자료를 찾아보니 엄청 유명한 작가이고, 작품이더군요. 저로서는 처음 읽었던 여성 작가의 SF였습니다.
<여왕마저도>는 여성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해방된 아주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여성성에 대한 여성주의적 딜레마를 다룬 코믹한 SF 입니다. 여성 작가가 썼고, 여성주의를 다룬 소설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엇갈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논쟁적인 SF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그룹에서는 이 소설을 여성주의적인 SF 라고 평가하며 추천하고 있고, 어떤 그룹에서는 정반대로 이 소설을 반여성주의적인 SF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레디컬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이 작품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코니 윌리스는 그 뒤 '여성해방(Women's Liberation)'이라는 SF 단편 모음집에 편집자로 참가하기도 했고, 여성 문제를 주제로 다룬 SF들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반대 진영에서는 이 <여왕마저도> 이후로 그녀를 여성주의적인 작가로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평론가들도 엇갈렸는데, 어떤 평론가는 이 소설을 '여성주의적 유머'라고 평가했고, 어떤 평론가는 전혀 우습지 않은 '반 여성주의적 소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현재 이 작품은 미국의 몇몇 대학에서 여성학 부교재로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그 이유는 예전에 한번 블로그에 올렸던 '몬티 파이톤' 의 영화처럼, 여성들의 문제를 끄집어내고, 운동진영 내부의 논쟁을 재미있게 다루는 게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코니 윌리스의 경우 SF내의 좌우의 흐름과 논쟁에서 좀 동떨어진 작가로서 좌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파로 분류되지도 않습니다. 반여성주의자가 여성주의 자체를 비꼬려고 만든 작품이라고 하면 불쾌했을테지만, 코니 윌리스를 반여성주의자라고 부르는 건 좀 오바라고 생각하는 지라..
그간 주변의 몇몇 여성 활동가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일부는 재미있어 하면서 '여성주의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일부는 묵묵부답. 아마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1992년 발표된 이 작품은 1993년 SF의 양대 문학상이라는 네뷸러와 휴고상을 모두 수상했으며, 그 외 로커스상 수상, 아시모프 매거진 독자상, SF 연대기 수상, 95년 일본 SF 협회상 수상, 97년 스페인 SF 협회상 수상 등으로 총 7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SF 단편으로는 현재까지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서론이 무지하게 길었습니다. 자, 그럼 여성작가가 쓰는 SF가 어떤 것인지 한번 맛 보시기 바랍니다. 단편이지만 통신으로 보기에는 무척 깁니다. 처음에는 잘라서 조금씩 번역해서 연재하려 했는데, 읽다보니 재미가 있어서 그냥 한꺼번에 올려봅니다.
<여왕마저도(Even the Queen)>
* <여왕마저도>는 책으로 읽을 때는 무척 짧았는데, 인터넷에 번역해서 올리니까 생각보다 많이 기네요. A4로 약 12장 정도 되는 분량입니다.
* 글 맛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생초보의 엉터리 번역에 대해서는 대충 용서하고, 감싸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충분한 관용을 보여주시길 권해드립니다. ㅎㅎ 물론 잘못되거나 어색한 부분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게 배우겠습니다.
참.. 그리고 아래의 번역은 제가 했지만, 원작의 저작권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것 같아서 저작권에서 허용하는 선의의 개념을 이용해서 소개합니다. 영리적이든 비영리적이든 복사, 배포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여왕마저도(Even the Queen)
작가 : 코니 윌리스(Connie Willis)
번역 : neoscrum
피고인측의 요청을 기각하려고 살펴보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려댔다.
"일반 전화에요" 내 법원 서기인 바이쉬가 전화로 손을 뻗으며 이야기 했다. "아마도 피고인일꺼에요. 감옥에서는 서명을 사용 못 하게 하거든요"
'아냐" 내가 말했다 "엄마야"
"아" 바이쉬가 수화기로 손을 뻗었다. "왜 어머니께서 서명을 사용 안 하세요?"
"왜냐하면 엄마는 내가 통화하기 싫어하는 걸 알고 있거든. 퍼디타가 한 짓을 알아채신 게 틀림없어"
"판사님 딸 퍼디타요?" 그가 수화기를 가슴에 대고 물었다. "어린 따님이 있는 그 분이요(The one with a little girl)?"
"아니, 그 애는 바이올라야. 퍼디타는 작은 딸이지. 아무 생각이 없는 애지(The one with no sense)"
"퍼디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요?"
"싸이클리스트 단체(The Cyclists)에 가입했어"
바이쉬가 궁금하다는 듯이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에게 설명해 줄 기분이 아니었다. 엄마와 통화할 기분도 아니었고.
"엄마가 무슨 말씀을 하실지 뻔해. 엄마한테 왜 이야기를 안 해줬는지, 어떻게 할 건지 따지실텐데,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혀 없어.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했다고."
바이쉬는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법원에 계시다고 이야기 할까요?"
"아냐" 수화기로 손을 뻗었다. "어차피 조만간에 엄마하고 이야기해야 돼" 수화기를 받았다. "안녕, 엄마" 내가 말했다.
"트래시" 엄마가 과장스럽게 이야기했다 "퍼디타가 싸이클리스트가 되었단다"
"알아요"
"왜 이야기 안 해줬니?"
"퍼디타가 자기 스스로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퍼디타!" 엄마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걔는 나한테 이야기 안 해줄꺼야. 내가 뭐라고 말할 지 뻔하게 아니까. 캐런한테는 이야기 했겠지?”
"시어머니는 여기 안 계세요. 이라크에 가셨어요" 이 사태에서 유일하게 좋은 일이라고는 이라크가 세계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책임감을 보여주려는 열의와, 예전에 있었던 자기 파괴 성향 덕택에 일어났는데, 시어머니는 내가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통화가 안 되더라고 우겨볼 수 있을 정도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전화 서비스가 안 좋은 곳에 계셨다. 그리고 내 말을 믿으실 것이다.
'해방'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굴욕과 고난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로부터 자유롭게 하지는 못 했다. 그래서 퍼디타가 아주 적절한 때 일을 저질러 준 것에 대해 대체로 만족한다. 이때가 아니었다면 그 애를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이라크에는 무슨 일로 갔는데?" 엄마가 물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조국에 대한 문제를 협상중이에요"
"자기 손녀는 그 와중에 지 인생 말아먹고 있는데 말이냐" 엄마가 뜬금없이 말했다 "바이올라한테는 이야기했니?"
"제가 이야기 드렸잖아요, 엄마. 퍼디타가 자기 스스로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구요"
"이런, 걔는 이야기 안 했을꺼야. 오늘 아침에 내 환자 캐롤 첸이 전화해서는 내가 자기한테 감추고 있는 게 뭔지 이야기 해달라더라. 난 그 여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몰랐다"
"캐롤 첸은 어떻게 알았대요?"
"자기딸한테서 들었다더라. 그 애가 작년에 싸이클리스트에 가입할 뻔 했었거든. 그 애 가족들이 탈퇴하라고 설득했었지." 엄마는 꾸짓듯이 이야기했다 "캐롤은 의사협회가 암메네롤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감추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어. 나는 니가 나한테 이야기 안 해줬다는 걸 믿을 수가 없구나. 트래시"
그러자 나는 바이쉬보고 엄마한테 내가 법원에 갔다고 이야기하라고 시키지 않았던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잖아요. 엄마. 제 생각에는 엄마한테 이야기 할 사람은 퍼디타라구요. 어쨌든 그 애의 결정이잖이니까요"
"오, 트래시!" 엄마는 말했다 "넌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돼"
'해방' 이후 자유가 왕성하게 한참 무르익을 때, 나는 모든 것이 바뀌리라는 희망을 즐겼었다. 즉 불평등을 어떻게 해서든 없애나가고, 모계 지배 사회 그리고 '맨홀(manhole)'이라는 단어와 언어에서 3인칭 단수를 없애려고 했던 유머감각 없는 여성들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아직도 남자들이 더 돈을 많이 벌고 있고, "herstory"는 아직도 언어의 지평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고 있고, 엄마는 아직도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말투로 "오, 트래시"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아이의 결정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너는 멍청하게 서서 니 딸이 인생을 망치는 꼴을 보고 있을 작정이라는 거냐?"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걔는 이제 22살이고, 정신이 멀쩡한 애라구요"
"걔가 정신이 멀쩡하면 이런 짓은 안 했을 꺼야. 그 애 보고 탈퇴하라고 이야기는 해봤니?"
"당연히 했었죠, 엄마"
"그래서?"
"성공 못 했죠. 걔는 이미 싸이클리스트가 되려고 결심을 굳혔더라구요"
"이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가가 있을 거야. 법원 강제 명령을 내리거나, 탈세뇌 전문가를 고용하거나, 싸이클리스트 단체를 세뇌 혐의로 고발하는거야. 너는 판사잖니. 니가 법으로 어떻게 할만한 게 반드시 있을 거야"
"법에서는 그걸 개인의 자주권이라고 해요. 엄마. 그리고 그 자주권이 초기에 '해방'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법으로 퍼디타를 막을 수는 없어요. 그 애의 결정은 개인의 자주권에 관한 모든 경우에 부합한다구요. 개인적인 결정이었고, 주권을 가진 성인이 결정한 것이고,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않고.."
"내 진료는 어떡하냐? 캐롤 첸은 전환장치를 암의 원인이라고 믿고 있어"
"엄마의 진료에 대한 영향은 간접적인 영향이라고 간주 되요. 간접 흡연처럼요. 적용될 수가 없다구요. 엄마. 우리가 좋아하든 말든 퍼디타는 이 결정에 대한 완벽한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 애를 간섭할 권리가 전혀 없어요. 자유로운 사회는 다른 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구요. 우리는 퍼디타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되요"
이 모든 것들은 진실이다. 퍼디타가 전화했을 때 이 중에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던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었다. 내가 퍼디타에게 한 말이라고는 엄마가 나를 부르는 바로 그 말투로 "오, 퍼디타!" 뿐이었다.
"이건 전부 다 니 잘못이야" 엄마가 말했다. "내가 그 애가 전환장치 위에 문신을 새기게 놔둬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했었잖니. 나한테 자유로운 사회 어쩌고 그러지 마라. 내 손녀가 자기 인생을 말아먹게 놔둬야 한다면 도대체 자유로운 사회가 뭐가 좋다는 거냐?" 엄마가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바이쉬에게 줬다.
"저는 따님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된다는 판사님의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 그가 말했다. 바위시가 내 판사복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두요"
"나를 위해서 탈세뇌에 관련된 판례들을 찾아봐 주게" 소매에 팔을 집어넣으면서 이야기 했다. "그리고 싸이클리스트 단체가 자유결정권을 침해한 혐의로 고발된 적이 있는지도 조사해줘. 세뇌, 감금, 협박 등등"
전화가 울렸는데, 또 일반 전화였다. "여보세요, 전화거신 분이 어떻게 되시나요?" 바이쉬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친근한 투로 바뀌었다. "잠깐만요" 그는 수화기를 손으로 막았다. "판사님 딸 바이올라에요"
수화기를 받았다. "안녕, 바이올라"
"방금 할머니랑 통화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퍼디타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못 믿으실 꺼에요. 사이클리스트 단체에 가입했대요"
"안다" 나는 말했다.
"알았어요? 근데 왜 나한테는 이야기 안 해줬어요? 말도 안 돼. 엄마는 항상 나한테 아무것도 이야기 안 해줘."
"난 퍼디타가 자기 스스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지쳐서 이야기했다.
"농담하세요? 걔는 절대로 이야기 안 해줘요. 눈썹 이식 수술을 했을 때도 나한테 3주 뒤에나 이야기 해줬고, 레이져 문신을 했을 때도 전혀 이야기 안 해줬어요. 트위지가 나한테 이야기 해줬지. 엄마는 나한테 이야기 해줬어야 되요. 캐런 할머니한테는 이야기 드렸어요?"
"캐런 할머니는 바그다드에 계신다" 나는 말했다.
"알아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제가 전화해봤어요"
"오, 바이올라! 그러면 안 돼!"
"난 엄마하곤 달라요. 엄마. 난 중요한 문제들은 가족구성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할머니가 뭐라시든?" 충격이 서서히 가시기 시작하면서 약간 멍한 상태에서 물어봤다.
"할머니하고 통화는 못 했어요. 전화서비스가 엉망이더라구요. 영어를 못하는 누구가랑 잠깐 통화를 했다가 끊었는데, 다시 전화했더니 시내 전체가 불통이라고 하더라구요"
감사합니다.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캐런 할머니는 알 권리가 있어요. 엄마. 트위지한테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세요. 트위지는 퍼디타가 최고인 줄 알아요. 퍼디타가 눈썹 이식을 했을 때, 트위지가 LED 전구를 눈썹에 붙여서 제가 얼마나 힘들게 떼어냈는지 몰라요. 트위지도 사이클리스트 단체에 가입하겠다고 그러면 어쩌죠?"
"트위지는 이제 9살 밖에 안 됐어. 그 애가 전환장치를 할 때쯤이면 퍼디타는 진작에 싸이클리스트 때려치웠을 꺼다" 제발 그러길 바란다고 조용히 덧붙였다. 퍼디타는 1년하고도 반년이나 전에 문신을 했는데, 아직도 지겨워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트위지는 퍼디타보다 훨씬 똑똑해"
"그건 맞아요. 아, 엄마. 근데 퍼디타가 어떻게 이럴 수 있죠? 그게 얼마나 끔직한 건지 이야기 안 해줬어요?"
"했어" 내가 말했다. "그리고 불편함, 불쾌함, 불안정, 고통까지 다 이야기 해줬다. 퍼디타는 꿈쩍도 안 하더라. 걔는 그게 재미있을 것 같댄다"
바이쉬는 시계를 가리키면서 "법정에 갈 시간이에요"라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재미라구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내가 격었던 걸 그 애가 본 게 언제였죠? 솔직히 말해서, 저는 가끔 그 애가 완전히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걔를 금치산자로 판정하거나, 어디에 가두어놓거나 뭐 그럴 수 없나요?"
"안 돼" 한손으로 판사복의 지퍼를 채우면서 이야기 했다. "바이올라, 나 지금 가야겠다. 법정에 늦었어. 나도 그 애를 그만두게 할 수 없어서 유감이야. 그 애는 이성적인 성인이라구"
"이성적이라구요!" 바이올라가 이야기했다 "걔 눈썹은 번쩍거리고, 팔에는 '커스터 장군의 마지막 공격(Custers's Last Stand)*'이라고 레이저 문신을 새기고 다닌다구요. 엄마"
* 커스터는 인디언 학살로 악명높았던 미국의 제7기병대장의 이름, 1876년 6월 수우족과의 전투에서 전멸당했다. 그 전투를 '커스터 장군의 마지막 공격(Custer's Last Stand)라고 부르기도 하고, 전투한 장소의 이름을 따서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 Hor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화를 바이쉬에게 넘겨줬다. "바이올라에게 내가 내일 이야기 하겠다고 전해줘" 판사복의 지퍼를 채웠다. "그리고 바그다드에 전화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전화가 불통될 것 같은지도 알아봐" 법정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앞으로 일반전화가 오면 받기 전에 먼저 시내전화인지 부터 반드시 확인해봐"
바이쉬는 바그다드와 통화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좋은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전화하지 않으셨다. 엄마가 오후에 전화했었는데, 대뇌절제수술이 합법적인지 물었다.
엄마는 다음날 다시 전화를 했다. 내가 '개인의 자주권' 수업시간에, 자유로운 사회에서 시민으로서 타고난 권리가 사람들을 완전히 멍청한 또라이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한창 설명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학생들은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 생각에는 판사님 어머니 같아요" 바이쉬가 나에게 전화기를 넘겨주면서 속삭였다. "계속 일반 전화를 쓰시네요. 하지만 시내전화에요. 제가 확인했어요"
"안녕, 엄마" 내가 말했다.
"내가 다 정리했다" 엄마가 말했다. "맥그리고 식당에서 퍼디타하고 우리가 같이 점심을 먹을꺼야. 식당은 12번가와 래리머 사거리에 있다."
"지금 수업중이에요" 내가 말했다.
"안다. 오래 안 잡을께. 너한테 이제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뿐이야. 내가 다 처리했다"
나는 그런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뭘 어떻게 하셨는데요?"
"퍼디타를 우리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아까 내가 이야기한 맥그리고 식당으로"
"'우리'가 누구에요, 엄마?"
"그냥 가족이지"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너하고 바이올라”
휴우, 적어도 아직은 엄마가 탈세뇌전문가를 부르지 않았다. “뭘 하실 건데요, 엄마?”
“퍼디타도 똑같이 묻더구나. 할머니가 자기 손녀를 점심에 초대하면 안 되는 거니? 12시 반까지 오거라”
“바이쉬랑 저는 3시에 공판일정 회의가 있어요”
“아, 그래. 그 전에 끝날 거야. 바이쉬도 데리고 오거라. 그 사람은 남자의 관점에서 이야기 해 줄 수 있겠지”
엄마가 전화를 끊었다.
“오늘 점심은 나랑 같이 먹으러 가야 될 거 같애. 바이쉬” 나는 말했다 “미안해”
“왜요? 점심 때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모르겠어”
맥그리고로 가는 길에 바이쉬가 싸이클리스트에 대해 조사한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사람들은 종교단체는 아니에요. 종교와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해방 이전의 여성운동으로부터 성장한 거 같아요” 바이쉬가 노트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해방 이전으로 복귀하자는 운동, 위스콘신 대학*, 그리고 현대 미술관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 위스콘신 대학은 진보적인 학생운동, 여성운동, 동성애 운동 등으로 유명하다
“뭐라고?”
“그 사람들은 지도자를 ‘안내자(docents, 미술관의 안내인이라는 뜻도 있음)’라고 부르더라구요. 그 사람들의 철학은 해방 이전의 레디컬 페미니즘과 80년대의 환경적 원시복귀 운동이 섞인 것 같아요. 싸이클리스트들은 화식주의자(Floratarians, 花食主義者, 꽃을 먹는 사람들)에다가 신발을 안 신고 다니거든요.”
“전환장치도 안하고 다니지” 내가 말했다. 우리는 맥그리고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세뇌 혐의로 처벌 받은 적은 없고?” 나는 희망적으로 물었다.
“없어요. 회원 개인들에게 걸린 소송은 많았는데, 모두 다 그 사람들이 이겼어요”
“개인의 자주권 때문이었겠지”
“맞아요. 형사고발도 하나 있었는데, 가족들이 회원을 탈세뇌시키려고 했던 경우에요. 탈세뇌 전문가는 20년형을 받았고, 가족들은 12년형을 받았어요”
“엄마한테 꼭 그 이야기를 해줘” 맥그리고 식당의 문을 열면서 이야기 했다.
맥그리고 식당은 지배인의 책상이 나팔꽃 덩쿨로 휘감겨있고, 테이블 사이에 정원 화분들이 놓여있는 그런 식당이었다.
“퍼디타가 여기로 하자더라” 엄마가 바이쉬와 나를 양파들을 지나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이야기했다. “퍼디타가 싸이클리스트 회원 중에는 화식주의자가 많다더라구.”
“퍼디타가 여기 왔어요?” 오이 온상을 지나면서 내가 물었다.
“아직 안 왔어” 엄마가 장미덩쿨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가 우리 테이블이야”
우리 테이블은 뽕나무 아래에 있었는데, 버느나무로 만든 탁자였다. 바이올라와 트위지는 완두콩 격차판 너머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니, 트위지?” 내가 물었다. “왜 학교에 안 갔어?”
“지금 수업중이에요” LCD판을 보여주면서 트위지가 말했다. “오늘은 원격 수업이에요”
“제 생각에는 트위지가 이 논의에 참여하는 게 좋을 거 같았어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어쨌든 얘도 곧 전환장치를 하게 될 테니까요”
“내 친구 켄지는 나중에 퍼디타 이모처럼 전환장치 안 할꺼래” 트위지가 말했다.
“켄지는 그 전에 마음을 바꿀 거야.” 엄마가 말했다. “퍼디타도 곧 생각을 바꿀 거다. 바이쉬, 바이올라 옆에 앉는 게 어때요?”
바이쉬는 그 말에 복종이라도 하듯이 완두콩 격자판을 지나서 테이블 반대쪽의 버드나무 의자로 가서 앉았다. 트위지는 바이올라를 지나서 바이쉬에게 메뉴판을 넘겨주었다. “여긴 정말 끝내주는 레스토랑이에요” 트위지가 말했다. “여기서는 신발을 신고 있을 필요없어요”
트위지는 벗은 발을 들어서 보여줬다. “기다리는 동안 배고프면, 아무거나 그냥 뜯어먹으면 되요” 트위지는 의자 옆으로 몸을 틀더니, 콩깍지 두 개를 뜯어서 하나를 바이쉬에게 주고, 다른 하나를 깨물었다. “켄지는 절대로 생각을 안 바꿀꺼에요. 켄지가 전환장치는 치아교정기보다 더 아프댔어요”
“안 하는 거보다는 훨씬 덜 아퍼” 바이올라가 ‘퍼디타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셨죠?’하는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트래시, 바이올라랑 마주보면서 앉을래?” 엄마가 나한테 말했다. “나중에 퍼디타가 오면 네 옆에 앉힐 꺼야”
“오기나 할지 모르겠네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내가 1시에 오라고 했어” 엄마가 내가 있는 쪽 가장자리에 앉으면서 이야기했다. “그 애가 오기 전에 우리 작전을 짜자고. 내가 캐롤 첸하고 이야기 해봤는데..”
“그 사람 딸이 작년에 싸이클리스트에 가입할 뻔 했었대” 내가 바이쉬와 바이올라에게 설명해줬다.
“캐롤 첸이 이렇게 가족들을 다 모았다더라. 그리고 딸에게 간단하게 이야기 했더니, 결국에는 싸이클리스트에 가입 안 하겠다고 하더래.” 엄마는 테이블을 쭉 둘러봤다. “그래서 우리도 퍼디타한테 똑같이 할까 하는데, 내 생각에는 ‘해방’의 의미와 ‘해방’ 이전의 어두운 압제의 세월들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거야”
“제 생각에는요” 바이올라가 끼어들었다. “그냥 전환장치를 제거하는 대신에 몇 달간 암메네롤을 끊고 살아보라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걔가 오기나 한다면요. 아마 안 올 거에요.”
“왜 안 와?”
“오겠어요? 제 말은, 이건 꼭 무슨 ‘심문’하는 거 같아요. 우리가 ‘설명’해주는 내내 걔가 앉아 있는 거. 퍼디타는 아마 미쳐버릴거에요. 하지만 걔도 바보는 아니라구요”
“이건 심문하는 게 아냐”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내 뒤의 문쪽을 조마조마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나는 확실히 퍼디타가…” 엄마가 말을 멈추고 일어섰다. 그리고 갑자기 아스파라거스를 헤치고 돌진했다.
나는 퍼디타가 번쩍거리는 입술이나 전신 문신 같은 것을 하고 왔을 거라고 대충 짐작하면서 돌아봤지만, 나뭇잎들에 가려서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가지들을 밀쳐냈다.
“퍼디타에요?” 바이올라가 앞으로 기대며 물었다.
나는 뽕나무 가지 사이로 힐끗 보았다. “오, 마이 갓” 내가 말했다.
검은 아바야(아랍 여성이 전신을 덮는 의상)와 실크로 만든 야르물케(유대인 남성이 머리에 쓰는 모자)를 한 시어머니가 계셨다. 시어머니는 가운을 펄럭이고 발끈한 눈으로, 호박 텃밭을 쓸어버리시면서 우리쪽으로 왔다. 엄마는 나를 노려보고 무우 밭을 밟으면서 서둘러 갔다.
나는 바이올라를 돌아보면서 “니네 친할머니다.” 나는 꾸짓으며 말했다. “너 나한테는 할머니랑 통화 못 했다고 했잖아”
“통화 못 했어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트위지, 똑바로 앉아. 그리고 그 LCD 판 내려놔”
장미 넝쿨이 불길하게 바스락거리고, 나뭇잎들이 공포에 젖어서 쪼그라들더니, 시어머니가 도착했다.
“어머니!” 나는 반가운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저는 바그다드에 계시는 줄 알았어요”
“바이올라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돌아왔다” 시어머니가 한사람씩 차례차례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 사람은 누구지?” 시어머니가 바이쉬를 가리키며 따졌다. “바이올라의 새 동거인인가?”
“아뇨” 바이쉬가 공포에 젖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는 제 법률 사무원이에요. 어머니” 내가 말했다. “바이쉬 아담스-하디”
“트위지, 너는 왜 학교에 안 갔니?”
“지금 수업중이에요” 트위지가 말했다. “원격 수업 중이라구요” 트위지가 LCD판을 들어서 보여줬다. “보이세요? 수학이에요”
“알았다.” 시어머니는 돌아서 찡그린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내 증손녀가 학교에서 빠지고, 법률 전문가를 고용할 정도로 중요한 일인데, 나한테 알려줄 생각은 안 한 것 같구나. 하긴, 넌 항상 나한테 아무 것도 이야기 안 해주지. 트래시”
시어머니는 휘휘 돌면서 나뭇잎들과 스위트피 꽃송이들을 날려버리고, 보로컬리를 꺽어버리면서 구석의 의자에 앉았다. “바이올라가 도와달라고 울부짓는 메시지를 어제서야 들었다. 바이올라, 절대로 하심한테 메시지 남기지 마라. 그 사람은 영어 전혀 못 해. 나는 하심한테 네 전화를 흥얼대보라고 해보는 수밖에 없었어. 니 서명을 알아봤지. 그런데 전화가 안 되길래 내가 집으로 날아왔다. 내가 꼭 참가해야 하는 협상 와중에 말이다.”
“협상은 어떻게 되가요, 할머니? 바이올라가 물었다.
“아주 잘 되가고 있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한테 예루살렘의 절반을 주기로 했고, 골란 고원은 시간대별로 나눠서 사용하기로 했어” 시어머니는 그 때 잠시 나를 째려봤다. “그 사람들은 대화의 중요성을 잘 알지” 시어머니는 다시 바이올라를 돌아봤다. “자,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너를 못 살게 구는거니, 바이올라? 네 새 동거인이 마음에 안 든대니?”
“저는 바이올라의 동거인이 아닙니다” 바이쉬가 항의했다.
난 가끔 도대체 어떻게 시어머니가 중계 협상자가 되었는지, 세르비아와 천주교, 남한과 북한, 기독교와 크로아티아 사이에서 도대체 어떻게 협상을 했는지 궁금했다. 시어머니는 편파적이고, 결론으로 비약하고, 이야기들을 거의 다 오해해서 이해하고, 듣는 것을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는 남아공과 협상해서 만넬라 정부를 출범시켰고(이 소설은 92년에 쓰여졌고, 만델라 정부는 94년 출범했음), 어쩌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욤키프르(유태인들의 ‘속죄의 날’)를 지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을러서 복종시켰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해서 시어머니에게 맞서야 했을 것이다..
바이쉬는 아직도 항의 중이었다. “저는 바이올라를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저는 통화만 몇번 해봤을 뿐이에요”
“니가 무슨 짓을 한게 틀림없어” 캐런은 바이올라에게 말했다. “틀림없이 이 사람들이 널 혼내주려고 모였을 거야”
“제가 아니에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퍼디타가 문제라구요. 걔가 싸이클리스트에 가입했어요”
“싸이클리스트? 그럼 퍼디타가 자전거 클럽에 들어가는 걸 반대하려고 내가 요르단 서안 협상을 팽개치고 왔단 말이냐? 내가 이라크 대통령한테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니? 그녀도 이해 못 할거야. 나도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자전거 클럽이라니!” “싸이클리스트는 자전거를 타는 클럽이 아니에요” 엄마가 말했다.
“그 사람들은 생리를 한대요” 트위지가 말했다.
잠시동안 죽음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시어머니와 내가 가족 회의에서 한 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야단법석이 퍼디타가 전환장치를 떼어낸 것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마침내 시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 애도 이제 성인이야. 그지? 그리고 이건 확실히 개인의 자주권에 대한 문제야. 넌 그걸 이해해야 돼. 트래시. 어쨌든 너는 판사잖니”
나는 너무 좋아서 믿기지 않는 이 상황을 이해해야 했다.
“사돈은 퍼디타가 20년전 해방 이전으로 퇴보하는 걸 찬성한단 말이에요?” 엄마가 말했다.
“저는 이게 전혀 중요한 문제같지 않은데요” 시어머니가 말했다. “중동지역에도 반전환장치 단체들이 있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걸 중요하게 생각 안 해요. 아직도 베일을 뒤집어 쓰고 사는 이라크 사람들 조차도요”
“퍼디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시어머니는 그녀의 검은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퍼디타 문제를 끝내려고 했다. “그건 다 일시적인 유행이나 변덕일 뿐이에요. 초미니스커트나 그 끔찍한 전자 눈썹처럼요. 아주 극소수의 멍청한 여자들이 그런 바보 같은 패션을 잠깐동안 입는 거라구요. 하지만, 여성 전체가 팬티를 벗어던지거나, 다시 모자를 쓰는 시대로 돌아가지는 않아요.”
“하지만 퍼디타는…” 바이올라가 말했다.
“퍼디타가 생리를 하고 싶다면, 나는 하게 할꺼야. 여성들은 전환장치 없이도 수천년을 잘 살아왔어”
엄마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물론 여성들은 축첩제도나, 콜레라, 코르셋 같은 것들 하고도 아주 잘 살았었죠.” 엄마는 한마디를 할 때마다 주먹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자발적으로 할 필요는 전혀없어요. 나는 퍼디타가 그걸 하게 놔둘 생각이 전혀…”
“퍼디타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그 불쌍한 애기는 어디있어요?” 시어머니가 말했다.
“그 애는 곧 올꺼요” 엄마가 말했다. “내가 그 애를 점심에 초대했으니까 우리는 그 애와 이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을꺼에요”
“하!” 시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사돈은 그 애를 협박해서 마음을 돌려놓으려는 거군요. 나는 사돈한테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난 관심과 열려진 마음으로 그 애의 이야기를 들어줄꺼요. ‘존중’ 그게 바로 핵심이에요, 여러분들이 잊어버린 게 바로 그거에요. 존중과 예의”
꽃무늬 옷에 빨간 스카프를 왼손에 묶고, 신발은 벗은 젊은 여성이 분홍색 폴더를 한다발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시간이 됐구만” 시어머니가 그녀에게서 폴더 하나를 낚아채며 말했다. “여기 서비스는 정말 엉망이야. 내가 여기 온지 10분도 넘었다구” 시어머니는 폴더를 열었다. “이 식당에서 스카치를 팔 거 같지는 않네요”
“제 이름은 이밴절린에요” 젊은 여성이 말했다. “저는 퍼디타의 안내자입니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폴더를 뺐었다. “퍼디타는 오늘 점심에 올 수가 없지만, 저에게 대신 참석해서 싸이클리스트의 철학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녀는 내 옆 버드나무 의자에 앉았다.
“싸이클리스트는 자유를 추구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인공적인 것으로부터의 자유, 신체를 통제하는 약이나 호르몬으로부터의 자유, 우리를 구속하는 남성들의 가부장제로부터의 자유. 여러분들이 이미 아시다시피, 우리는 전환장치를 착용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팔에 감은 빨간 스카프를 가리켰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여성성의 상징으로서 이것을 착용합니다. 저는 오늘 저에게 생식기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 이것을 착용했어요”
“우리도 똑같은 걸 했었어” 엄마가 말했다. “우리는 그걸 스커트 뒤쪽에 칠하긴 했지만..”
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안내자가 나를 재려봤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남성들의 지배는 오래전부터 소위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어요. 정부의 낙태와 태아의 권리에 대한 규제, 생식에 대한 과학적인 통제, 그리고 마침내 암메네롤의 발전까지. 암메네롤은 생식의 순환을 한꺼번에 없애버렸어요. 이건 모두 남성 가부장적인 체제가 여성의 신체, 나아가 여성의 정체성까지도 지배하려는 음모의 일부에요.
“정말 흥미로운 관점이구만” 시어머니가 열광적으로 이야기했다.
확실히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암메네롤에 대해서라면, 생리를 없애려고 발명된 게 전혀 아니었다. 본래 암메네롤은 악성 종양을 죽이려고 발명되었는데, 자궁내부 수축 기능이 우연히 발견된 것이었다.
“당신이 우리한테 말하려는 게” 엄마가 말했다.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전환장치를 채웠다는 거요?! 우리는 FDA 승인을 받아내려고 모두가 함께 싸웠었다구!”
그건 사실이다. 여성들은 대리모, 반낙태주의, 태아의 권리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단결하지 못했지만, 생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결했다. 여성들은 ‘해방’이라는 이름 아래 집회와 시위, 청원을 조직하고, 상원의원을 선출시키고, 수정헌법을 통과시키고, 추방당하고, 감옥에 갔다.
“남자들은 그걸 반대했었어!” 엄마는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종교적인 우익들, 생리대 제조업자들과 카톨릭 교회..”
“그들은 여성 사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바이올라가 말했다.
“결국 그렇게 됐어” 내가 말했다.
“‘해방’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지 않았어요” 안내인은 소리를 높혔다.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여성성, 삶의 자연적인 리듬을 박탈해 버린 거 말고는”
안내자는 기대더니 테이블 아래에 있는 데이지꽃을 꺽었다. “우리 싸이클리스트들은 생리의 시작을 축복하고, 우리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뻐해요” 그녀가 데이지꽃을 집어들면서 말했다. “싸이클리스트 회원의 꽃봉우리가 피어오를 때면, 우리는 그렇게 불러요, 그 회원은 꽃과 시와 노래를 명예롭게 선사받아요. 그리고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생리 중 어떤 면을 가장 좋아하는 지 이야기 하지요”
“몸이 붓는 거” 내가 말했다.
“아니면 한달에 사흘간 핫팩을 대고 침대에 누워있는 거” 엄마가 말했다.
“저는 불안이 엄습해오는 걸 제일 좋아해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제가 트위지를 가지려고 암메네롤을 끊었을 때, 우주 정거장이 내 위로 떨어질꺼라고 확신했었다니깐요”
바이올라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작업복을 입고 밀집모자를 한 중년 여성이 엄마 의자 옆에 와서 섰다. “저는 기분이 오락가락 했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한번은 기뻤다가, 다음에는 리지 보덴(Lizzie Borden)같은 기분이 되곤 했지요”
“리지 보덴이 누구에요?” 트위지가 물었다.
“부모를 죽인 여자야” 바이쉬가 말했다 “도끼로”
시어머니와 안내자는 그 두사람을 째려봤다. “너 수학 계속 해야 되는 거 아니니, 트위지”
“저는 리지 보덴이 PMS가 아니었을까 항상 궁금했어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그리고 그게 원인이…”
“아냐” 엄마가 말했다. “그건 탐폰과 이부프로펜(소염제)이 없던 시절에 살아야했기 때문이야. 확실히 정당한 살인의 사례야”
“나는 이런 경거망동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어머니가 모두를 찡그린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웨이트리스이신가요?” 내가 밀집모자를 쓴 여성에게 급하게 물었다.
“네” 그녀가 작업복 주머니에서 판을 꺼내며 말했다.
“와인도 파나요?” 내가 물었다.
“네. 민들레 와인, 산동이나물 와인, 앵초 와인”
“그거 다 가져다 주세요”
“각각 한병씩요?”
“지금 당장은요. 큰 통에 들어있는 게 아니라면요”
“오늘의 특별요리는 수박 샐러드와 콜리 플라워 그라탕입니다” 그녀가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시어머니와 안내자는 웃어주지 않았다. “앞에 있는 양배추는 여러분이 직접 뜯어드셔도 됩니다. 화식주의자를 위한 특별요리로는 금잔화 버터로 살짝 튀긴 백합 꽃눈이 있습니다.”
모두들 주문을 할 동안 잠깐 동안의 휴전이 있었다. “저는 스위트피로 할래요” 안내자가 말했다. “그리고 장미수 한잔도 주세요”
바이쉬가 바이올라 쪽으로 기대며 이야기했다. “아까 할머니가 저에게 당신의 동거인이냐고 물어보셨을 때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이야기 했던 거 죄송해요”
“괜찮아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캐런 할머니는 엄청 무서운 분이시거든요”
“저는 단지 제가 당신을 싫어하는 거라고 당신이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거에요. 제 말은 안 그렇다는 거에요. 당신을 좋아해요”
“콩으로 만든 버거는 안 판대요?” 트위지가 물었다.
웨이트리스가 떠나자마자, 안내자는 가져온 분홍색 폴더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싸이클리스트의 철학에 대해 설명해줄꺼에요” 나에게 폴더를 주면서 말했다. “생리주기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와 함께” 안내자는 트위지에게도 폴더를 주었다.
“이건 우리가 중학교 때 보던 책하고 똑같네” 엄마가 안내자를 보면서 말했다. “특별한 선물, 그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지, 그리고 그 책에는 분홍색 리본을 맨 여자아이들이 테니스를 치고 웃는 모습의 이런 사진들이 실려있었어. 엉터리 거짓말이야”
엄마가 옳았다. 폴더에는 심지어 내가 중학교때 영화로 봤던 것으로 기억나는 나팔관과 똑같은 그림이 있었다. 그 그림을 보면 항상 초기의 에일리언 모습이 생각났다.
“우웩” 트위지가 말했다. “역겨워요”
“수학이나 하라니까” 시어머니가 말했다.
바이쉬는 메스꺼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들이 정말로 이런 걸 했었어요?”
와인이 도착했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잔으로 한잔씩 따라주었다. 안내자는 입술을 오무리고, 못마땅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싸이클리스트들은 남성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유순하고,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해 강요하는 인공적인 자극제나 호르몬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생리는 얼마나 오래 해요?” 트위지가 물었다.
“영원히” 엄마가 말했다.
“4일에서 5일정도” 안내자가 말했다. “책자안에 써있어”
“아뇨, 제 말은 평생동안 하는 거냐구요”
“여성은 평균적으로 12살 정도에 초경을 해서 55살 정도에 생리를 멈춰”
“저는 초경을 11살에 했어요” 웨이트리스가 내 앞에 꽃다발을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학교에 있을 때요”
“나는 FDA가 암메네롤을 승인했던 날 마지막으로 생리를 했지” 엄마가 말했다.
“3백 65를 28로 나눠서” 트위지가 LCD판에 쓰면서 말했다. “곱하기 43년” 트위지가 고개를 들었다. “생리를 559번하게 되네요”
“그럴리가 없어” 엄마가 LCD판을 낚아채면서 말했다. “적어도 5천번은 할꺼야”
“그리고 꼭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날 시작되구요”
“아니면 결혼식 날이나” 웨이트리스가 말했다. 엄마가 LCD판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휴전을 하는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민들레 와인을 더 부어주었다.
엄마가 LCD판에서 고개를 들었다. “생리를 5일간 한다고 했을 때, 거의 3000일동안 생리를 하는 거 아니? 8년을 꽉 채우고도 남네”
“그리고 그 사이에는 PMS가 있지요” 웨이트리스가 꽃들을 배달하면서 말했다.
“PMS가 뭐에요?” 트위지가 물었다.
“피임전 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은 남성적인 의료 체제가 생리의 시작을 알리는 호르몬의 자연스런 변화를 꾸며내서 악의적으로 지어낸 말이야.” 안내자가 말했다. “이 부드럽고 완전히 정상적인 변화를 남자들은 신경쇄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장했어” 그녀는 확인을 위해 시어머니를 쳐다봤다.
“나는 머리를 잘라버리곤 했지” 시어머니가 말했다.
안내자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한번은 내가 한쪽을 싹 밀어버렸어” 시어머니가 계속 이야기했다. “밥은 매달 가위를 숨겨야만 했었지. 그리고 자동차 키도. 내가 빨간신호등를 만날 때마다 울기 시작했었거든”
“붓지는 않았어요?” 엄마가 시어머니에게 민들레 와인을 한잔 더 따라주면서 물었다.
“난 꼭 오슨 웬지 같았다니깐요”
“오슨 웰즈는 누구에요” 트위지가 물었다.
“여러분의 말씀은 가부장제에 의해 주입된 자기 혐오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에요” 안내자가 말했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생리를 추악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세뇌시켰어요. 여성들은 남성들의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심지어 생리를 ‘저주’라고 부르기까지 해요”
“저는 생리를 저주라고 불렀었요. 왜냐하면 저는 마녀가 저한테 저주를 내린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말이에요”
모두가 그녀를 쳐다봤다.
“뭐, 저는 그랬어요” 그녀가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한테 이렇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저주밖에 없었거든요”
“제 생각에 당신은 정말로 용감했던 거 같아요” 바이쉬가 바이올라에게 말했다. “트위지를 갖기 위해 암메네롤을 끊으시다니”
“진짜 이상했어요” 바이올라가 말했다. “당신은 상상도 못 할꺼에요”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생리였을 때, 어머니한테 물어봤었어. 아네트도 역시 이걸 하냐고”
“아네트가 누구에요?” 트위지가 말했다.
“생쥐 기사야(Mouseketeer)” 엄마가 트위지의 이해못하는 얼굴을 보면서 덧붙였다. “TV에서”
“하이레즈(High-rez)야” 바이올라가 말했다.
“미키 마우스 클럽” 엄마가 말했다.
“미키마우스 클럽이라고 불리는 하이레저(High-rezzer)가 있었어요?” 트위지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 아네트는 ‘미키 마우스 클럽’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여학생으로 한국에서 뽀뽀뽀에 나오는 뽀미언니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이레즈는 사전, 백과사전, 인터넷 등을 거의 다 뒤져봐도 ‘고해상도’라는 의미 말고는 다른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그 의미가 이 글 내용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일단 그냥 원어대로 옮겼습니다.
“정말 많은 면에서 어두운 압제의 나날들이었지” 내가 말했다.
엄마가 날 째려봤다. “아네트는 모든 여자애들의 이상이었단다” 엄마가 트위지에게 이야기했다. “머리는 곱슬거리고, 진짜 젖가슴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주름치마는 항상 잘 다려져 있었어. 그래서 난 그녀가 그렇게 지저분하고, 품위없는 짓을 하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어. 디즈니씨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만약에 아네트가 이걸 안 한다면, 나도 안 하려고 했었지. 그래서 어머니한테 물어봤는데..”
“뭐라시던가요?” 트위지가 끼어들었다.
“어머니께서는 모든 여자는 생리를 한다고 하셨어” 엄마는 말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지 ‘영국의 여왕도요?’ 그러자 어머니는 ‘여왕마저도’라고 말하시더라구”
“정말요?” 트위지가 말했다. “하지만 여왕은 너무 늙었는걸요”
“지금은 안 하시지” 안내자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내가 말했잖니. 55살에 폐경기가 온다고”
“폐경기가 되면 얼굴이 화끈거리지” 시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골다공증에다가 입술 위에 털이 너무 많이 나서 마치 마크 트웨인처럼 보인다니까”
“마크 트웨인은 누..” 트위지가 말했다.
“여러분들은 남성들의 악선전들을 반복하고 있어요” 안내자가 얼굴이 빨갛게 되서 끼어들었다.
“저기요, 제가 늘 궁금한 게 뭔지 아세요?” 시어머니가 음모라도 꾸미듯이 엄마한테 기대서 이야기했다. “혹시 마기 대처의 폐경기가 포크랜드 전쟁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거에요”
“마기 대처는 누구에요?”
안내자가 그녀의 스카프만큼이나 벌개진 얼굴로 일어섰다. “여러분들과 더 이상 이야기 해봐야 소용이 없을 거 같네요. 여러분 모두는 남성 가부장제에 철저하게 세뇌당했어요.” 그녀가 폴더들을 낚아채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눈이 멀었어요. 모두 다! 여러분들은 심지어 여러분의 생물학적인 정체성, 여러분들의 여성성을 빼앗으려는 남성들의 음모의 희생자라는 사실도 보지 못하고 있어요. ‘해방’은 해방이 아니었어요. 그건 또 다른 노예제일 뿐이었다구요”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내가 말했다. “남성의 지배하에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음모가 있었다고 해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어”
“쟤 말이 맞아요. 그죠” 시어머니가 엄마에게 말했다. “트래시 말이 확실히 맞다니깐요. 모든 것을 포기해도 괜찮을 만큼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어요, 심지어 자유마저도. 생리를 없애버린 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어.”
“속아넘어간 피해자들!” 안내자가 소리쳤다. “여러분들은 여성성을 빼았겨 버렸는데도 전혀 신경조차 안 쓰고 있어요!” 안내자는 쿵쿵거리고 호박들과 글라디오스를 발로 짖이기면서 나가버렸다.
“내가 ‘해방’ 전에 제일 싫어했는 게 뭐였는지 알아요?” 시어머니가 마지막 남은 민들레 와인을 잔에 부으면서 이야기했다. “생리대였어요”
“그리고 그 마분지로 만든 탐폰 삽입기들” 엄마가 말했다.
“저는 절대로 싸이클리스트에 가입 안 할래요” 트위지가 말했다.
“좋아” 내가 말했다.
“디저트 먹어도 되나요?”
나는 웨이트리스를 불렀고, 트위지는 설탕에 절인 제비꽃을 주문했다. “디저트 드시고 싶은 분 있어요?” 내가 물었다. “아니면 앵초 와인 더 드실 분?”
“제 생각에 당신이 동생을 도우려고 시도한 방법은 정말로 좋았던 거 같아요” 바위시가 바이올라에게 기대며 말했다.
“그리고 마디스(Modess)*광고” 엄마가 말했다. “기억날꺼에요. 비단 이브닝 드레스에, 긴 흰장갑을 한 글래머 여자가 나오고, 사진 아래에는 ‘마디스, 왜냐면…(Modess, Because…)”이라고 써 있던 거요. 나는 마디스가 향수인 줄 알았어요”
시어머니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난 그게 무슨 삼페인 이름인 줄 알았어요”
“내 생각에 와인은 더 필요없는 거 같군요” 내가 말했다.
* Modess는 생리대 상표명이고, 위에 언급한 광고는 상당히 유명한 광고였음.
다음날, 내가 막 법정으로 나가려는 데 전화가 울려댔다. 일반 전화였다.
“시어머니께서는 이라크로 돌아가셨을텐데, 그렇지 않나?” 내가 바이쉬에가 물었다.
“예” 바이쉬가 말했다. “요르단 서안에 디즈니랜드를 설치할지말지 하는 협상이 안 풀려서 난항에 빠져있다고 바이올라가 이야기 해주더라구요”
“바이올라가 언제 전화했었어?”
바이쉬가 수줍은 표정을 짓더니 “오늘 아침을 바이올라와 트위지랑 같이 먹었어요"
“오”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아마도 엄마가 퍼디타를 납치하는 계획을 짜자고 전화하신 걸꺼야. 여보세요?”
“저는 이밴절린이에요. 퍼디타의 안내자” 전화속의 목소리가 말했다. “당신이 행복하길 바래요. 당신은 퍼디타를 협박해서 굴욕적인 남성 가부장제에 넘겨줘 버렸어요”
“내가 그랬다고? 내가 말했다.
“당신은 마인트 콘트롤하는 사람을 고용한 게 틀림없어요. 우리가 고발할 꺼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전화가 곧바로 울려댔다. 또 일반 전화였다.
“아무도 사용 안 할꺼면 도대체 서명이 무슨 소용이 있어?” 내가 전화기를 들며 말했다.
“안녕, 엄마” 퍼디타가 말했다. “내가 싸이클리스트에 가입하려던 마음을 바꿨다는 걸 엄마가 알고 싶어 할 것 같아서요”
“정말?” 나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것을 자제하면서 말했다.
“그 사람들이 빨간 스카프를 팔에 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게 팔에 문신한 ‘씻팅 불(Sitting Bull)’의 말(馬)을 가리더라구요”
* 씻팅 불은 위에서 언급했던 커스터 장군의 부대를 전멸시킨 인디언 용사.
“그거 문제구나” 내가 말했다.
“뭐,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에요. 내 안내자가 어제 점심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줬어요. 정말로 캐런 할머니가 엄마가 옳다고 이야기했어요?”
“응”
“말도 안 돼, 난 그 부분을 못 믿겠더라구요. 여튼, 내 안내자는 생리가 얼마나 위대한 건지 이야기 해주려고 했지만 아무도 안 들으려고 하고, 사람들은 계속 부종, 생리통, 불평 같은 부정적인 관점만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생리통이 뭐에요?’라고 물었더니, 안내자가 ‘생리 출혈은 자주 두통이나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해’라고 말해주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출혈이라구요! 아무도 나한테 피가 난다는 이야기는 안 해줬는데!’ 왜 나한테 피도 날 거라는 이야기는 안 해줬어요? 엄마?”
난 이야기 해줬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는 아플꺼라는 이야기도 전혀 안 해줬어요. 호르몬이 오락가락 한다는 이야기도 안 해주고! 미친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이런 걸 일부러 하려고 하겠어요! 엄마는 도대체 해방 이전에 어떻게 이런 걸 견뎠어요?”
“어두운 압제의 나날이었지” 내가 말했다.
“맞아요. 아무튼, 저는 탈퇴했구요, 지금 제 안내자는 완전히 돌아버렸어요. 하지만 내가 그녀한테 이건 개인의 자주권에 대한 문제라고 말했더니, 그녀도 제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그래도 전 화식주의자로 계속 지낼꺼에요, 엄마가 이것도 그만두라고 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럴 생각은 꿈에도 없다” 내가 말했다.
“있잖아요. 이 모든 일들이 다 순전히 엄마 잘못 때문이에요! 엄마가 애초에 고통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해줬으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잖아요. 바이올라 언니가 맞다니까! 엄마는 우리한테 아무것도 이야기 안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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