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SF담론 –솔라리스
영화와 원작의 비교 : Solaris{주1}(1971년)
▩ 제작스탭 감독: Andrei Tarkovsky
각본: Andrei Tarkovsky, 프리도리비 카렌슈틴
원작: Stanislaw Lem
촬영: Vadim Yusov
음악: 에도와르드 아르테미에프
상영시간: 약 165분
주제 음악: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마태 수난곡’
출연: 도다니스 바이오니스(크리스 켈빈; 하리의 남편),나타리아 혼다르치크(하리; 크리스의 자살한 아내), 아나도릭 소로니즈인(사토리우스; 천체물리학자), 소스 샤루 키샨(기바리안; 물리학자), 우라지스 라프즈도리루제거(앙리 바톤; 우주비행사)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은 어렵다. 그의 영화들은 보는 동안 관객으로 하여금 인내와 성찰을 요구한다. <솔라리스>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이 영화의 원작소설 역시 독창적이고 재미있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난해한 작품이다. 흔히 SF하면 스페이스 오페라류의 B급 문학{주2}을 떠올리기 쉽상인 게 척박한 우리나라 SF풍토의 실정이지만, 폴란드 출신의 스타니슬라브 램의 작품들은 인간과 우주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주조로 하고 있다.{주3} 난해함이 두 번 겹치면 그 결과는 얼마나 난해할까? 그러나 다행히도 영화 <솔라리스>를 그 정도로 걱정하며 볼 필요는 없다. 다만 극적 전개 템포를 관객과 조금만 더 타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지만. 반면 그러한 극적 흐름을 일관적으로 고집하다보니 마치 한편의 장시를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이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무게가 느껴진다면 역설적일까? 타르코프스키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느릿느릿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긴 화면long-take, 카메라 움직임이 거의 없는 고정된 화면, 느린 패닝panning, 극단적인 클로즈 업 등은 부분적으로 다소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사용빈도에 정비례해서 작품 전체에 흐르는 진지함이 진하게 배어나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솔라리스>는 감독이나 원작 소설가 둘다에게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 용도는 분명히 다르다. 먼저 스타니슬라브 램의 원작에 대한 비평을 통해 원작자의 의도에 접근해보자.
"... 외계인들이 우리와 유사하다는 가정 아래 쓴 일명‘조우’소설들{주4}과는 별도로, 또다른 작가들은 우리의 어떤 규범도 우리와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존재들에게는 적용될 리 없다고 본다. 이러한 접근은 어떤 의미에서 지적으로 훨씬 더 매력적이다. 램의 [솔라리스, 1961]에서, 지구인들은 외계의 존재들과 전혀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너무나도 인간과는 달라서 우리는 이러한 좌절이 야기하는 당혹스럽고 아찔한 결과를 보게 된다. .... 그들과 우리가 심리학적이고 철학적인 파장을 공유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과학분야에서까지 공통적인 토대를 지니고 있으리라고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그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는 토대는 결코 있을리 없다는 생각이 훨씬 더 그럴 듯하다. 스타니슬라브 램은 특히 이러한 점에 촛점을 맞춘다... 우리는 우주의 척도로 볼 때 단지 고독한 군중Lonely Crowd 의 일부인 것은 아닐까?"{주5}
이번에는 직접 램의 입을 빌어 들어보자.
"언제고 인간이 다른 행성의 이성적 존재와 반드시 만나리라고 나는 믿는다... 이 문제를 다룬 미국 소설들은 대략 3가지 상투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우주의 다른 이성적 존재와 평화로운 협력관계를 수립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양자 사이에 갈등이 생겨 경우에 따라서는 우주전쟁으로까지 발전해 그 결과 지구인이 이기든지 혹은 그들이 이겨 지구를 정복한다는 등의 세가지 가능성이다. 하지만 이 도식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이 도식은 지구적인 여러 조건들,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건들을 우주라는 광대무변한 영역에 단순히 기계적으로 이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별과 그 별의 세계에 이르는 길은 단순히 길고 험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지구의 여러 현상들과는 전혀 닮지 않은 무수한 현상들로 가득 찼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주는 결코 은하계 규모로 확대된 지구가 아니다. 그것은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이다. 상호이해가 성립하려면 유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만약 유사성이 전혀 없다면? 지구문명과 외계 행성문명과의 차를 대개 양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그들 ’의 문명이 전혀 다른 길을 통해 발전한 것이라면?... 나는 이‘미지의 것’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생물학적인 것 혹은 심리학적인 것을 상기시킬 정도의 조직과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예상, 가정 또는 기대를 완전히 넘어선 것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이‘미지의 존재’와의 만남은 인간에게 일련의 인식적, 철학적, 심리적 그리고 윤리적 성격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미지의 존재’와 맞닥뜨린 인간은 반드시 그것을 이해하려고 전력을 다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 이것은 쉽게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더 심한 경우에는 많은 고통과 희생이 필요할 지 모르며 심지어는 패배를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주6}
결국 소설 [솔라리스]의 주안점은 인간과 미지의 외계존재와의 커뮤니케이션의 철저한 단절이다. 이 우주에는 인간이 아무리 애써봐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있을 수 있고 그러한 현실은 인간의 무력감만 더해줄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원작은 인류 사회의 지엽적인 부분에 억매이기보다는 상대적으로 거시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우주론(사회학이 아니라)을 펼친다.
하지만 영화<솔라리스>의 초점은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후자는 원작의 기본 줄거리를 표층서술구조로 깔면서‘과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母胎 또는 母性으로 회귀하고픈 인간의 열망을 심층적인 수준에서 살피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강화하는데 SF의 컨벤션들이 적절하게 삽입된다.
미지의 세계, 솔라리스로 탐사를 떠나는 것은 성인이 태아시절로까지 자신의 궤적을 되짚어 가는 것과 진배없어 보인다. 영화 <솔라리스>는 과거의 상념과 추억이 인간의 무의식에 얼마나 강력하게 붙어있는지를 보여준다. 솔라리스 행성이 크리스의 잠재의식 깊숙한 데서 꺼내 물질화시킨‘하리’는 아내인 동시에 어머니의 이미지다. 그 단적인 예가 영화 후반부에 나타나는데, 크리스의 꿈에 그의 어머니가 나타나 그의 상처입은 팔을 물로 닦아준다. 그러나 이때 어머니의 겉모습은 하리의 모습 그대로다. 꿈에서 깨어난 그에게 곁에 있던 스나우트 박사는 복제된 하리가 더 이상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음을 일러주며 그녀가 남긴 편지를 읽어준다. 행성 솔라리스가 만들어낸 복제 하리는 자신을 볼 때마다 갈수록 괴로워하는 크리스의 모습을 보다 못한 나머지 스나우트 박사에게 간청해 자신을 소멸시켜달라고(솔라리스의 알 수 없는 힘이 크리스에게 미치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크리스가 번민한 이유는 실제 아내 하리는 그와 한바탕 다툰 뒤 그만 홧김에 그가 실험하려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약품을 먹고 자살해버렸기에 복제 하리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스나우트 박사는 크리스의 뇌파상태를 조정하는 특수장치를 통해 하리를 소멸시킨다. 복제 하리는 진짜 하리 이상으로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와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눈꼽 만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소멸의 길을 선택 한다. 이 장면과 바로 그 앞의 장면(하리 모습을 한 어머니가 나오는)은 쉽사리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인다. 하리의 사랑은 단순히 연인의 수준을 넘어서 기꺼이 살신성인하는 모성애(보호본능)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어머니의 동일체라는 개념은 이 영화를 프로이드 시각에서 한번 검토해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크리스는 모처럼 되찾을 기미가 있었던 사랑(그것이 에로스적이든 아가페적이든 간에)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채 허탈해 한다. 이러한 허탈감은 지구로 귀환한 크리스가 집 대문 앞에 서 있는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실신하듯 매달리는 종결 시퀀스에서 극명하게 부연설명된다. 이 시퀀스에서 그 부자의 모습이 부감화면으로 줌 아웃되면, 그들이 있는 곳이 대양에 외로이 떠있는 작은 섬이란 사실이 드러난다. 이 대양은 흡사 솔라리스의 꿈틀대며 소용돌이치는 바다같다. 그러한 대양에 떠있는 그 왜소한 섬에서 생명의 씨앗, 즉 胎가 연상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것은 전체적으로 염세적인 분위기가 강한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실날같은 구원의 상징이다.
사회주의권에서 그 이념을 전파하는 전위를 자처했던 에이젠스타인마저 형식주의자로 몰려 작품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하물며 타르코프스키처럼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동떨어지거나 다분히 체제비판적인(그리고 그 표현기법도 상당히 엘리트 지향적인) 메시지를 전파하는 영화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염세적이거나 체념적인 요소가 배제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십이년 후, 타르코프스키는 <향수Nostalghia ; 1983>를 찍다가 서방세계로 망명한다. <향수>에서 그는 비록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색채를 띠고는 있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희망을 보여주는데, 환경의 변화가 영화작가의 작품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본보기이다.
영화장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솔라리스>에서 쓰인 SF 컨벤션들은 통상의 전형적인 SF영화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전제 위에서 사용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타르코프스키는 현란하거나 관객의 눈을 홀리는 SFX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SF 장르는 단지 그의 표현의도를 충분히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장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인상이 강하다. 붉은 태양과 푸른 태양으로 이뤄진 연성계를 돌고 있는 행성 솔라리스와 그 행성의 바다 수면으로부터 몇 미터 상공에 떠 있는 수상기지..... 그야말로 기막힌 SF영화의 소재 아닌가? 그러나 정작 항성들이 어둠의 심연에 총총히 박힌 우주 공간은 크리스가 행성 솔라리스로 떠나는 장면에서만 짧게, 그것도 다분히 상징적으로 묘사될 뿐이다.
원작에서는 과학소설답게 지구에서 솔라리스에 이르는데 필요한 항성간 우주선 프로메테우스호가 등장하며 그 모선으로서부터 크리스가 탄 착륙캡슐이 솔라리스로 발사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크리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다가갔다 뒤로 빠지는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암시적으로 처리된다. 이 때 프로메테우스호의 승무원 모달드와 캡슐 속의 크리스가 나누는 대화가 우주선이나 캡슐은 티끌만치도 보여주지 않은 채 어둠 속의 별들을 배경으로 들리는데, 원작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무슨 뜻인지 명쾌히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결국 엄밀한 과학적 논리를 따진 원작의 이러한 묘사는 영화에서는 고작해야 주변부 이야기에서 본 주제로 들어가는 통과의례 기능을 할 뿐이다.{주7} 이 영화의 배경들을 시퀀스 별로 살펴보자.
도입 시퀀스: 초록빛 대지(지구)
중간 시퀀스: 솔라리스 우주기지의 폐쇄공간
종결 시퀀스 : 지구의 어떤 섬
하다못해 솔라리스의 검붉은 바다를 배경으로 기지가 떠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SF영화에서는 상황설정을 위해 흔히 사용되는) 컷조차 크리스가 탄 캡슐이 바다 위로 낙하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일체 찾아볼 수 없으며(그 마저도 너무 작아서 마치 장난감 모형 같다.), 솔라리스를 보여줄 때는 그 행성의 대양을 화면에 꽉 들어차게 클로즈업 해 보여줄 뿐이다. (원작에서는 연성계라서 몇시간 간격으로 밤낮이 바뀌는데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살아있는 유기질 바다에 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탐사정이 솔라리스 상공을 선회한다거나, 수상 기지와 도킹하는 장면 역시 기대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우주 정거장의 외양을 가까이서 감상할 기회가 없으며, 오로지 정거장 안의 폐쇄공간{주8<} 만이 눈 앞에 펼쳐진다. 우주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화이면서도, 우주공간을 시원스레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묘한 영화인 셈이다. 원작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비교해보면 타르코프스키의 의도가 좀더 분명해진다.
...나는 내가 낙하하고 있다는 것을 단지 알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지금 확실히 눈에 보이게 되었다. 흰색과 녹색의 바둑판 무늬가 빠른 속도로 커졌다. 그 무늬는 길쭉한 고래등 모양의 은색 건물 지붕에 그려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건물 주위에는 레이더 장치가 바늘처럼 튀어나와 있는 검은 창이 몇개 늘어서 있었다. 그 거대한 건조물이 행성 표면에 가로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위에 떠있다는 것도 알았다. 칠흑같이 검은 배경에 그보다 더 검은 타원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짙은 보라빛 안개에 뒤덮여 괴로운 듯 몸부림치고 있는 파도가 눈에 들어왔다. 가장 자리가 진홍색으로 물든 구름은 이미 높은 저편으로 사라지고 그 구름사이로 먼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안개에 싸인 수평선 끝까지 은색으로 빛나는 바다가 눈부셨다. 낙하산과 고리가 떨어져서 바람이 부는 대로 바다 위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캡슐은 자유롭게 되어 천천히 흔들리며 낙하했다. 인공적인 힘의 영역에 들어간 것이다.
원작에서 이처럼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솔라리스의 특수한 환경에 대한 주인공의 첫인상은 영화에서 삭제되었다. SF영화 제작시 분명히 구미가 당기는 시각요소였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특히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솔라리스 우주기지만을 이야기의 무대로 설정한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크리스가 떠나기 전의 지구와 돌아온 뒤의 지구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소설에서는 보고서에서 언급되는 인물에 불과한 솔라리스 초기 탐험대의 파일럿 앙리 바톤이 영화에서는 크리스가 솔라리스로 떠나기 전 그를 만나러 직접 찾아온다. 이미 머리가 훌렁 벗겨진 오십대의 바톤은 크리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앞으로 솔라리스에서 크리스가 겪게될 일에 대한 복선 역할을 한다. 이 두사람이 의견을 나누는 장소가 아주 자연적이고 목가적인 전원주택지이자 크리스의 부모집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소설에서는 크리스의 부모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은 멋도 모르고 우쭐대는 편협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타르코프스키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인간성의 복원(또는 영혼의 안식)에 초점을 맞춘다. 원작자가 이 영화를 보고 비난한 것도 일면 이해가 간다. 인류의 객관적인 현실을 그려낸 원작의 의도가 휴머니즘과 모태신앙으로 대치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어쨋거나 원작과의 이러한 차이를 곱씹어본다면 감독이 <솔라리스>를 만든 제1의 목적은 SF장르 자체의 구현이 아니었음이 자명해진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을 따름이며, 다만 전략상 우회적인 전술로 후퇴했을 뿐이다.
SF영화는 흔히 시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우회적으로 피해나가는 장르로 자주 이용된다. (일례로, 초기 과학소설의 고전인 예프게니 자먀찐의 <우리들>은 전체주의로 치닫는 당시 소련 지배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SF라는 형식을 빌려왔다.) 1966년 <안드레이 루블레프>가 당시 소련정부의 탄압을 받게 되자, 타르코프스키는 다음 작품인 <솔라리스>에서 일종의 우화 내지 비유가 깃든 작품으로 물러선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이 영화에는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모태로의 회귀라는 인본주의적 관심사’만 추가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메타포까지도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서 타르코프스키가 원작소설의 의도를 정치적으로 재해석할 여지는 없었을까. 넓은 의미에서, 행성 솔라리스는 도무지 민중의 기호나 열망은 도외시한 채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정부나 체제의 비유라고 볼 수는 없을까. 아무리 대화를 시도해도 들은 척하지 않거나, 어쩌다 얼토당토 않게 엉뚱한 반응을 보이는 정부와 체제.... 뛰어난 SF영화는 뛰어난 문명비판이나 사회계도성 주제를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품고 있음을 상기하라.{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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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해설
1. 1972년 깐느Canne 영화제에서 국제 비평가상 수상 BACK
2. E. E. Smith의‘렌즈맨Lensmen’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우주공간을 무대로 펼치는 악당과 주인공 간 의 싸움이 흔한 소재이며, 여기에 과학적인 장치들이 구색으로 갖춰진다. BACK
3. 1990년 유네스코에서 발표한 문화통계연감 중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출판된 작가들”에 대한 자료가 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옮겨진 책 종류와 번역된 나라 수 순으로 순위가 매겨진 이 자료에서, 스타니슬라브 램은 76위로 올라 있으며, 모두 36가지나 되는 그의 저작이 10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이 자료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작가들의 누계라는 점을 명심하라.(샘기획 옮김, 스타니슬라브 램, 솔라리스, 도서출판 청담사, 1992년, 289쪽) BACK
4. 외계인과 지구인이 만나서 긴밀한 상호작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소설류. 그 관계는 우호적일 수도 있고 적대적일 수도 있다. BACK
5. Helen Atkins 영역, Karl Siegfried Guthke 지음, The last Frontier: imagining other worlds, from the Copernican revolution to modern science fiction(독일어판 원제: Der Mythos der Neuzeit), Cornell univ. press, 124 Roberts Place, Ithaca, New York 14850, 1990년, 1장에서 발췌요약 BACK
6. 샘기획 옮김, 스타니슬라브 램, 솔라리스, 도서출판 청담사, 1992년, 7~9쪽에서 발췌 BACK
7. 이를 <스타워즈>1편과 비교해보라. 7~8개의 항성들이 모여있는 연성계에 있는 타투인 행성의 대지에서 바라본 하늘에는 보란듯이 대여섯개의 태양이 떠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질적인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SF 장르의 분위기를 한껏 돋보이려는 시도 아니겠는가. 타르코프스키는 이러한 유혹을 기꺼이 뿌리쳤다. BACK
8. 연구실과 복도, 개인용 선실, 도서관 등등 BACK
9. 1920년대 프리츠 랑이 감독한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에서 우리는 이미 그러한 전조를 읽는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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