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원님이 인터넷 파워진에 쓰신 SF담론입니다.
http://powerpage.co.kr/powerzine/zine9805/story/story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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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SF담론 –무엇이 하드SF인가?
흔히 과학소설을 논할 때 'Hard SF'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환타지와 확연히 다른 개념임은 물론이요, 과학소설 안에서도 'Soft SF'라는 개념과 상대적으로 비교된다. 하드 SF는 과학기술에 대한 호감이나 불안을 다분히 막연하게 그려낸 (인류의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를 과학과 결부시킴으로서) 초기 시대가 지나고 과학기술 자체에 깊은 조예를 가진 작가들이 하나 둘 이 분야에 뛰어듬으로서 태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초기작품이라 해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하드SF의 고전으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다. 생물학과 유전공학에 대한 시대를 앞선 통찰은 지금도 전율을 느낄 만큼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하드SF작가들이 반드시 과학자 출신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과학지식에 대한 자신만만한 무장을 하고 달려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소설의 일부 과격파는 하드SF만이 진정한 과학소설이라고 치켜세우는가 하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과학소설은 문학이지 과학지식이나 정보의 전도서가 아니라고 비아냥거린다.우리가 이러한 논쟁에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줄 필요야 없다.
하지만 양자 간의 대립을 비교 검토해보면 과학소설 전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는 전에 SF의 정의를 영국 비평가에게 맡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드 SF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하드SF의 본고장인 미국 평론가에게 맡겨보기로 한다.
끝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소설 문화가 하루 빨리 무르익어 이러한 논쟁이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 화두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본문 작성: Richard Treitel
(인터넷 전자메일 주소: treitel@wco.com) 우리말 옮긴이: 고장원
하드 SF는 과학소설 전반에 관한 정의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그 정의를 둘러싸고 여전히 논란이 많은 하위장르다. 어쨋거나 하드 SF는 일반적으로 과학이 단지 필요조건 정도가 아니라 핵심으로 자리잡는 소설을 의미한다. 반쯤 농담 삼아 그러한 소설을 즐기려면 과학교육을 받았어야 한다는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학이나 테크놀로지를 담았거나 환타지가 분명코 아닌 작품을 지칭하기 위해 "하드"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는 환타지가 명백히 아닌 것을 의미하기 위해 이 명칭을 쓰는 이들조차 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러한 적용범위는 과학소설에 관한 필자의 정의의 일부분일 뿐이다. 브래드 템플튼Brad Templeton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단지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그 이야기에서 마치 등장인물같은 역할을 할 때" 그 작품을 과학소설이라 부르겠다. 여기서 '등장인물'이라 함은, 당신이 주인공을 알아보고 기억하듯 만큼이나 그러한 요소들을 알아보고 기억하게 된다는 의미 이다.
그러한 요소들은 해당 이야기에 중요하며, 그것들이 없이 똑같은 작품이 될 수는 없다.
더그 트리카리코Doug Tricarico의 기준은 좀더 세심하다.
나는 환타지는 실현불가능한 것을 다루는 반면 과학소설은 실현가능한 것을 다루며, 하드SF가 하드웨어와 관련있는 반면 소프트SF는 컴퓨터를 다루는 인간의 두뇌wetware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드: 호건Hogan의 <과거에서 온 여행-Voyage From Yesteryear>.
소프트: 앳우드Atwood의 <하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 그러나 정작 과학소설의 걸작이라면 과학을 인간행동체계에 적용시켜가며 양측면을 모두 아우른다. 니븐Niven이 말한 바 있듯이, "우수한 과학소설 작가라면 차를 만들어내지만, 위대한 과학소설 작가라면 교통혼잡까지 야기한다."
또다른 이(그의 이름은 잊었는데)는 '하드'라는 용어를 작가가 해당 이야기에서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통해 형성된(또는 적어도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삶의 양식을 보여주고자 애쓴 작품에 적용한다. 그는 그러한 예로 버졸드Bujold의 작품들을 든다.
* 입장1: 검증되지 않았어도 논리적 일관성만 있으면 된다. Accuracy and Plausibility
일부 열성적인 독자들은 진정으로 하드한 작품이 되려면, 그 작품이 집필될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과학이론들에 따라 가능한 것들에만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여기에 반대하는 이유는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우리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그때그때마다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마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다. 적절한 예를 들어보자.
불과 백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며, 전자를 그 운동량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정확한 궤도상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오늘날에 와서 전자는 가능하며 후자는 불가능함이 밝혀졌다.; 역자주) 21세기나 그 뒤의 세기들을 다룬, 최소한 현실성은 있어보이는 작품들은 우리의 지식에서 그러한 변화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가정한다. (음, 내가 보기에는 그런 생각이 훨씬 더 비현실적이다. 필자에게는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 시간 여행, 아공간 여행, 반중력 등등 ---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마음에 든다. 영원히 불가능한 것은 전혀 없다.)[역자주1]
그래서 필자는 현재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하드 SF의 범주에서 배제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존 이론들이 다시 씌여져야 할 정도의 내용에 근거를 두었지만 그것이 과연 얼마나 그럴듯한 지에 염두에 두고 하드SF냐 아니냐를 판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로서는 하드 SF를 태양의 중성미자 결손현상the solar neutrino deficit이나 *잃어버린* 암흑물질the "missing" dark matter처럼, 1995년 현재의 이론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현상을 해명해주는 일종의 가공이론에 입각해서 전개해나가도 무방하다고 본다.
맷 오스턴Matt Austern (인터넷 전자메일 주소:treitel@wco.com)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과학적 정확성이 SF의 장르 구분을 좌지우지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인식하고 있는 한 가지 범주는 *과학적 정확성을 지니지 않은 과학소설 science fiction that has inaccurate science*이다.
전에 말했다시피, 나는 과학자이다보니 당연히 대다수의 과학소설 작가들보다 훨씬 더 과학에 정통해 있다. 과학소설에서 헛점을 집어내기는 누워 떡먹기지만 무의미한 짓이다. 내가 읽어본 과학소설들은 거의 다가 오늘날 알려져 있는 바와 상충되는 실수나 유사 과학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들은 너무나 모호한 나머지 본질적으로 과학적인 내용은 전혀 손대지 못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과학에 정통해 있으면서도 SF를 계속 즐기고 싶다면 너무 깡깐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 나는 SF의 정의를 그다지 까다롭게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 SF 작품들이란 내게 별 의미가 없다.*
맷은 아울러 하드 SF를 다른 장르와 엄격히 구분하지 않음으로서 얻는 부수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 입장2: 현대과학과 상충되지 않아야 한다. Non-contradiction
이보다 유연한 입장은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더라도 기존 이론들이 뒷받침하고 있는 증거들과 배치되지 않는 한 허용하자는 주장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정의라기보다는 불안정한 타협이다. 크리스천 내디 와이스거버 Christian "naddy" Weisgerber (인터넷 주소 ; http://home.pages.de/~naddy/ 는 이러한 입장에서 하드SF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하드SF란 현재 과학지식과 아주 잘 부합하면서 어떤 새로운 현상을 집어넣어도 그럴듯하고 자기 일관성이 있으며 자의적인 해석으로 효과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수치나 범위의 적용에 엄격한 제한을 둔 SF다. 그 플롯은 과학적인 현상을 탐구하고, 그것을 적용하거나 대개 문제를 풀기 위해 과학과 공학을 적용시키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앞의 정의 못지않게, 아주 엄격한 *하드*SF의 정의도 쓸모가 있으며, 그러한 제약에 묶여있으면서도 흥미로운 작품을 쓰는 작가들에게 필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현실적으로 필자는 용어의 수정을 바란다.
무엇보다도, 현대 과학의 발전양상과 그로 인한 변화를 의도적으로 비껴나가려는 작품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과학 그 자체에 대해 그다지 비중을 두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예로 미래 지구의 인구과잉을 다룬 일부 작품들을 들 수 있는데, 필자는 그것들에 *하드*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주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래리 니븐Larry Niven의 <중성자별Neutron Star>은 FTL여행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하드SF에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그는 하드 SF작가이긴 하지만, 도저히 불가능한 테크놀로지를 상정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일부 극단주의자(순수파?)들은 현재 신봉되고 있는 과학의 선을 넘어버린 작품들에 *과학 환타지science fantasy*란 용어를 붙이려 들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과학소설과 환타지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논의로 우리를 몰아가게 한다.(이에 관해서는 3장에서 다루기로 하자.)
* 입장 3: 마음 먹기에 달렸다. It's an attitude.
필자 자신이 선호하는 정의는 심지어 위의 두가지보다 더 느슨하다. 즉 하드 SF란 자연물 (그리고 그것으로 만든 기계류)이 작가가 창안한 세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다룬 것인 반면, 소프트 SF는 인간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사회)이 그러한 가공의 세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다룬 것이다. 여기서 *인간들people*이란 실제로는 진짜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을 주의하라. 여기서 소프트한 쪽은 다루는 소재가 인간들인 과학이다.
그래서 인류학은 과학이지만, 예를 들어 어슐라 르 귄의 <빼앗긴 자들 The Dispossessed >은 하드 SF로 보아야 한다. 음, 최종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인터넷의 SF동호인 사이트인 rec.arts.sf.written (뉴스 그룹;news:rec.arts.sf.written) 에서는 하드 SF를 단순히 *하드*한 자연과학자나 엔지니어의 정서를 가진 독자들을 대상으로 같은 정서를 가진 작가들이 집필한 소설로 정의내리기도 한다. 필자는 소렌 F. 피터슨Soren F. Petersen의 아래와 같은 정의에도 공감이 가는 면이 있는데, 그의 말이 맞길 바란다.
*하드 SF는 대체 우주 소설alternate universe fiction의 한 형태로 [역자주2], 20세기말 미국 엔지니어들의 세계관이 정확하게 반영된 세계를 무대로 한다.*[역자주 3]
역자주1] 한예로 반물질만 해도 과학소설에서 다룰 때만 해도 관념적인 몽상으로 치부되었으나 결국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이 우주에서 반물질이 존재했지만 오늘날처럼 정상물질만 남아 있게 된 것은 태초에 쌍소멸 과정에서 정상물질의 수가 근소한 차로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우주 어딘가에는 아직도 정상물질이 손길이 닿지 않는 반물질의 우주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공간의 휨을 생각하면 무조건 불가능하다고 치부할만한 일은 아니다.
역자주 2] *대체 우주*란 SF장르의 일종으로, 우리 우주와 몇가지 기본요소만 제외하고는 유사한 우주를 말한다. (그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작가의 상상력에 달려있다.) 이것은 지구의 미래나 과거 시점을 배경으로 할 수도 있고, 아예 타임머쉰이나 타임슬립 같은 개념을 도입해 시공간의 인과율이 뒤얽힌 배경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이건 대체우주는 우리의 세계와 인과율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SF의 또다른 장르인 *평행우주*와는 다른 개념이다. 후자는 우리의 세계와 유사점이 많지만 인과율적으로 얽혀있지 않은 세계다.
역자주3]이러한 다소 오만한 정의는 SF가 유럽에서 싹이 트긴 했지만 실질적인 뿌리를 내린 주무대는 미국이라는 현실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래서 피터슨의 정의에 미국인 필자인 리챠드 트레이틀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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