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원님이 인터넷 파워진에 쓰신 SF담론입니다.
http://powerpage.co.kr/powerzine/zine9804/story/story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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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F담론 사회를 이야기하는 또하나의 방정식
SF는 70년대말 이후로 소설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영화에서 각광을 받아온 하위 문화 장르다. (왜 70년대말인가? 바로 이 때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라는 대박을 터뜨려 할리우드 영화제작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후자가 최근 각광을 받은 주요인은 SF(과학소설)적인 요소와 SFX(특수효과)가 사람들에게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뒤섞인 채 어마어마한 흥행기록을 끊임없이 경신하면서 그 상업적인 잠재력을 입증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SF가 주는 원초적인 매력은 의사 과학적인 지식을 밑거름 삼아 예기치못한 놀라움(희망에서 공포에 이르는)을 불러일으켜 대중(또는 관객)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주는데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SF장르 (그 표현형태가 만화책, 영화, 소설, 컴퓨터 게임 또는 그 무엇이든 간에)는 21세기를 코 앞에 둔 상황에서 확실히 주목을 끄는 문화 재생산 도구의 하나다.
하지만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SF가 사회에서 기반(?)을 다진지는 꽤 오래되었다. 최초의 SF소설이라할 메리 쉘리Mary Shelly의 <프랑켄시타인Frankenstein>은 일찌감치 19세기말에 등장했고, 영화라는 매체 자체도 1895년 발명되었을 당시 대중에게는 경이로운 SF 그 자체였다. 영화 역사에 늘 언급되는 조르쥬 멜리에George Melies는 초창기 SF영화의 선구자였다. SF는 아직 우리에겐 낯선 구석이 많지만 서구사회(특히 미국)에서는 이미 인간사회를 반영하는 담론을 일구는 흔한 수단들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SF하면 으례 신기한 볼거리나 읽을 거리를 제공하는 선에서 그치면 충분하다고 잘못 인식되어있다. 그러나 정작 SF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과 형식에 불과한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SF에 대한 편견을 많이 가진 사람일 수록 이점을 혼동한다. SF는 서부극을 현대의 정서에 맞게 각색했을 뿐인 삼류 스페이스 오페라로 전락할 수 있는가 하면, 인간의 자아탐구와 세계관을 올바로 형성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SF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또는 사회)의 가치관과 창작능력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삼류 SF문학이나 B급 SF영화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가치관을 읽어낼 수 있다는 귀중한 깨달음이다. 작품의 수준이 조악할 수록 작가의 불순한(?) 의도나 관념을 교묘하게 감추거나 미화하는데 미숙하기 때문에 좀더 솔직한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잇점이 있다. 그래서 어떤 비평가들은 할리우드의 공포영화들이나 B급 느와르noir 영화들을 시기별로 모아 전체적인 맥락에서 비평하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것은 SF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왜 어떤 시대의 통속적인 SF에서는 외계인을 적대시하고 또 다른 시대에 둘어와서는 친근한 이미지로 포장하는가? 영화나 소설에서 외계인이 의미하는 바는 어떻게 변천하여 왔는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왜 2차대전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SF계의 대부인 잡지 편집자 조셉 캠벨 2세는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인종 우월주의에 대한 반감을 느끼게 만들었는가? 결과적으로 위세당당한 편집자의 그러한 편견이 아시모프의 걸작의 하나로 남겨된 <파운데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것은 외계인의 실존 여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바로 인간들 내부의 진통이 SF란 하위 문화장르에 투사되었을 따름이니까 말이다. 과학소설이 단순히 과학지식이나 아이디어의 실험실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또하나의 문화적 거울이라는 인식은 60년대말 불붙은 SF문학의 뉴웨이브 운동과 70년대의 페미니즘 운동, 그리고 80년대의 사이버펑크 운동 같은 구체적인 SF문학 조류의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한편 SF영화들은 이러한 원전들의 변화양상보다 당연히 한발 늦을 수밖에 없지만, 문자와 비교할 수 없을만치 감정적인 흡인력이 강한 영상과 사운드의 힘으로 SF의 저변을 넓혀주는 긍정적인 구실을 한다. (물론 부정적인 면도 있다. 문학 쪽이 과학기술과 인간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보다 깊이있는 통찰을 제공하는데 비해, 영화 쪽은 SF라는 소재를 호기심꺼리로만 이용해 말초적인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저명한 SF작가 씨어도어 스터전은 이렇게 말했다. "SF의 90%는 쓰레기다. 하지만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다." 이 말을 감안하면 할리우드가 망쳐논 SF영화들을 놓고 일일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SF소설과 SF영화에 대한 분석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또하나의 유용한 수단이 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다시 동굴로 들어갈 작정을 하지 않는 이상 이제 우리의 시간은 미래로만 흐르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학과 테크놀로지는 갈수록 우리의 살과 피처럼 되어갈 것이다. 미래는 과학 자본주의, 과학 전체주의, 과학 사회주의 그 어느 쪽도 가능하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이기 때문이다. 100년 남짓의 SF역사는 소설과 영화들을 통해 그러한 대안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과학은 신이 우리에게 거저준 선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다듬고 가꿔온 우리의 정신의 산물이다. 따라서 과학은 인간과 따로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러한 상관관계를 고찰하는 문화도구들, 즉 소설과 영화가 우리의 좌표를 점검하고 되새김질해주는 도우미들이 되어줄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와 능력이 닿는대로 SF에 대한 정의를 깔끔하게 정리해보고 아울러 (보너스로!) 앞으로 읽어볼만한 소설들과 봐둘만한 영화들에 대한 소개와 평가를 짬짬이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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