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레디앙 인터뷰 기사입니다.
출처: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5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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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편견 뿌리치고 대중성 '쟁취'를 향해
[토요연재-책읽기] 인터뷰 2제, SF 월간지 편집장-전문출판사 대표
1907년 재일유학생 학술지 『태극학보』에는 『해저여행기담』이라는 소설이 한 편 실린다. 그것이 바로 쥘 베른 원작의 『해저 2만리』. 그러므로 SF가 한국에 상륙한지 올해로 딱 100년이 되는 셈이다.
지난 100년 동안 SF(Science Fiction)라는 용어는 누구나 언급하는 장르가 되었지만 사실상 이해보다는 오해의 저변이 더 넓다. 한편에서는 SF를 ‘유치한 소설’이라고 폄하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 읽을 수 없는 장르로 여기며 ‘두려운 소설’로 미뤄둔다.
실제로 올더스 헉슬리나 어슐러 르 귄 등의 작품 앞에서 ‘유치한 소설’이라는 폄하는 취소되어야 하고, 고난이도의 과학지식이 필요한 이른바 ‘하드 SF’는 소수에 불과하므로 ‘어려운 소설’이라는 평가는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이야기다.
SF는 말 그대로 ‘과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창작된 소설’일 따름이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도래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과학 기술과 기계가 인간의 삶과 결합하면서 이전과는 삶의 풍경이, 사유의 영역이 판이해지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테크놀로지와 함께 미래의 이상향을 더욱 설레게 꿈꾸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인류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차원이 다른 종류의 고난을 겪게 되리라며 암울함에 빠졌다.
초기의 과학 소설 중 하나인『2400 년 L’ A n 2400』(1770) 을 쓴 루이 ― 세바스티앙 메르시에는 인류에 보탬이 되는 기계와 함께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일굴 수 있다는 낙관적인 의식을 보여주었다. 반면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은 음울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보였다.
세기가 바뀌면서 더욱 확실해 지는 것은 테크놀로지와의 관계이다. 따라서 SF에 담긴 미래적 상상력은 도래할 현실에 대한 사유이기도 한 셈이다. 서구의 경우 『프랑켄슈타인』 이후 문학적 후계들이 끊이지 않았던 반면, 우리나라의 SF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단적으로 지난 10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에 값하는 SF 출판물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고전으로 꼽히는 SF 소설이라고 해도 유명세를 뒤쫓아 단권 출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곧 SF에 대한 체계적인 출판 프로젝트가 거의 전무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1970년대 ‘아이디어 회관’에서 SF 문고 시리즈를 출판하기 시작했고 꽤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다. 불법출판인데다가 중역본이었던 탓에 이것을 두고 SF 출판을 꽃피운 사건이라 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편이지만, 이후에도 대다수 SF 소설들은 이렇게 후진적인 출판문화 속에서 그 명맥을 잇게 된다.
정식 라이센스를 받지 않고 출판하는 관행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저작권 계약을 하지 않은 것 외에도 부실한 번역으로 인해 작품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으며, 독자들에게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울 만한 자료들 역시 거의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SF 독자들 사이에서는 늘 불만스러운 점으로 꼽혔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나마 출판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 관행들은 조금씩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SF 고전들을 상당수 번역출간한 시공사의 그리폰 북스가 2005년 이후부터는 발간이 중단됐다는 점은 목마른 SF 독자들을 더욱 섭섭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황금가지가 2001년부터 환상문학 시리즈를 펴내고 있지만 장르문학 전집에 가깝기 때문에 SF의 비중 자체가 높은 편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서 출판으로 시작한 행복한 책읽기가 SF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일은 꽤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SF가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읽히고 있다는 사실은, 거꾸로 말하자면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전히 저변이 충분히 다져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나마 고전이라고 할 만한 외국의 SF들은 나름대로 꾸준히 번역 출간되고 있지만, 국내 창작 SF는 이제야 겨우 시작하는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SF 공모전과 문학상으로는 황금가지의 ‘황금 드래곤 문학상’과 한국과학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전’이 있지만 수도 적고 홍보가 잘 되어있지 않다.
문학이 세계에 대해서 상상력으로 대처하는 하나의 자세라는 점에서 보자면, 최대한의 상상력으로 응집한 필봉을 휘두르는 SF의 척박한 현실은 지금-이곳의 상상력이 아직도 불균형하며 가난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문학이 ‘~에도 불구하고’ 씌어지는(혹은 그래야 하는) 것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양, 지금-이곳의 SF는 척박한 현실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발구르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아래에 이어질 행복한 책읽기의 임형욱 대표와 이제 곧 세상에 나올 SF 월간지 『판타스틱』의 박상욱 편집장 인터뷰는 그런 맥락에서 마련한 것이다. -『텍스트』편집자주
"SF의 90%는 쓰레기, 모든 것의 90%도 쓰레기"
월간 『판타스틱』 편집장 박상준 인터뷰
현재 SF 지면으로는 『HAPPY SF』가 있다. 하지만 잡지와 단행본의 중간인 무크지이고 2년에 한 권이 나오는 상황이라 잡지보다는 단행본에 가깝다. 다른 말로 하면 인터넷을 제외하고 지면으로는 SF에 관한 정보를 그때 상황에 맞게 얻을 수가 없다는 말도 될 것이다.
행복한 책읽기 같은 출판사가 단행본을 지속적으로 출판해오긴 했지만 잡지나 매체에서 SF를 다루지 않은 탓에 국내독자들은 SF를 제한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호들갑스럽게 말하자면 3월말 창간 예정인 월간 『판타스틱』은 “창간만으로도 한국 SF사에서 감사한 잡지”로 기록될 것이다. SF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줄 우물이 생긴 셈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판타스틱』의 편집장 박상준과의 인터뷰.
텍스트(이하 텍) 월간 『판타스틱』의 창간 의의에 대해 설명해 달라.
박상준(이하 박) SF는 고정팬이 항상 존재했던 장르다. 하지만 사실상 팬들의 욕구에 부흥하는 정기간행물 매체가 없었다. 아마 우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점에 잡지를 창간하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SF는 사실상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없다. 앞으로 <판타스틱>은 등단한 장르소설 작가들에게 지속적으로 고정지면을 할애할 계획이다. 또한 외국의 SF 트렌드도 소개하겠다.
텍 월간지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창간호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부탁한다.
박 계간지 형태로 나왔던 문예지들이나 장르문학 잡지는 발행 간격이 너무 길다. 그런데 월간지는 신선한 감흥을 유지할 수 있다. 한달 동안 잡지를 보다가 대충 봤다 싶으면 또 다음 잡지가 나온다. 꾸준하게 관심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간 간격인 거 같다.
그리고 창간호에는 만화, 소설, 칼럼 등이 실린다. 만화 같은 경우에 『십자군 이야기』로 반응을 얻고 있는 김태권이 단편을 싣기로 했다. 소설로는 이영도, 박민규, 듀나의 작품이 실린다. 주류문학 및 장르작가들의 작품이 골고루 수록이 될 예정이다. 번역가 김상훈의 칼럼도 싣기로 했다. 기획특집으로는 주목할 만한 SF 작가들을 10명 정도 선정해서 작품세계를 소개할 생각이다.
텍 대중소설과 ‘문단 소설’ 사이에서 SF소설의 역할은 무엇일까.
박 독자들이 선호하는 건 신선한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쓰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SF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젊은 작가들 중에 SF를 차용해서 작품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이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한다. 그런 점들을 감안해 『판타스틱』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주류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해본다.
텍 SF에 관해 대중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 있을 거 같다.
박 어린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거라는 짐작과 과학을 모르면 소화할 수 없는 소설이라는 편견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선입관이 다 틀렸다고 본다. 먼저 유치하다고 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조지 오웰의 『1984』라던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같은 작품도 SF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다.
그런 소설들을 굳이 순수문학과 SF로 따로 떼어서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이쪽 분야를 잘 알지 못하는 국내에만 있는 시각이다. 이를테면 미국의 디오도스 터전이라는 작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SF의 90%는 쓰레기다. 그러나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다”라고. 이 말처럼 SF에서만 유치한 작품이 많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SF에도 뛰어난 걸작들은 있다.
그리고 SF는 어렵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과학적인 설정의 정밀함과 고난이도를 중시하는 하드 SF가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 모든 SF가 하드SF인 건 아니다. 말랑말랑한 멜로드라마도 있다. 유쾌하고 코믹한 작품도 있다. 나는 『판타스틱』을 통해 SF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SF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싶다.
텍 월간 『판타스틱』창간 기념으로 한국 SF 백년 전시회를 한다고 들었다.
박 잡지창간과 함께 대중들에게 한국 SF 소설사의 줄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창간을 기념하는 일종의 선언적인 의미로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거다. 한국의 SF 문학사에 대한 자료들을 꾸준히 모아왔고 그것들을 정리해서 한 자리에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마침 문지문화원이 오픈하는 시점하고 시기가 비슷했다. 문지문화원도 퓨전문화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어서 기획과 잘 맞았다. 연말까지 『판타스틱』에서 한국과학소설 100년사 기획기사를 연재할 생각이다.
텍 한국 내 SF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어떤 시도들이 필요한가.
박 일단 『판타스틱』 같은 정기간행물이 꾸준히 지면을 제공해주고 독자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장이 되어주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단체나 기관에서 여러 형태의 신인공모전을 지속적으로 해줘야 한다. 단행본 출판사들도 장르소설을 많이 내다보면 독자들의 수가 늘어가고 결과적으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신인작가들도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
그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어느 한 분야나 어느 한 곳에서만 열심히 한다고 이뤄질 일은 아니다. 각계에 있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힘을 써야 한다. 『판타스틱』이 그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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