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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1980년 한국SF침체기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곧 6.25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그 결과 이땅에 적지않은 미군들이 주둔하게 되었고 이들 기지촌 주변에서는 자연스레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여러 책들이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SF도 적지 않았다. 당시 서양의 SF는 나름대로 대중문학으로서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이웃 일본에서도 전개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기지촌에서 흘러나온 서양 SF들이 널리 퍼지면서 대량으로 번역, 출판되었고 SF잡지도 창간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H.G.웰즈의 <우주전쟁>이나 <투명인간> 정도만이 눈에 뜨일 뿐, 1960년대가 되도록 SF의 번역출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 SF문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작품이 등장한다. 바로 1965년에 발표된 문윤성의 <완전사회>라는 장편소설이다. <주간한국>에서 창간기념으로 주최한 제 1회 추리소설 공모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독특한 설정이라던가 문체 등이 지금 보아도 신선한 감흥을 주는 역작이다. 인공동면에 들어간 주인공이 먼 훗날 깨어나보니 전 세계가 여성들의 공화국으로 변했더라는 이야기가 펼쳐지며, 또한, 한글 자모가 세계의 공용문자로 쓰이고 있다는 흥미로운 가설도 펼치고 있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중반에 흥사단 출판부에서 <여인공화국>으로 제목이 바뀌어 재출간 된 바 있다.
한편 국내 최초의 과학전문 기자출신중 한 명인 서광운은 당시 발간되던 <학생과학>지에 스스로 집필한 SF를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더불어 몇몇 청소년문학 작가 등과 함께 60년대 말에 ‘한국 SF작가클럽’을 결성한다. 한국 SF작가 클럽은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청소년 대상의 작품집을 출간하는 등 SF 저변 확대에 힘쓰다가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지만, 사실상 국내 최초의 SF관련 조직으로서 선구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뒤로 1980년대가 되기 전까지 국내에 번역된 SF들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아동용 전집류와 추리문고에 포함된 몇몇 작품들이 갈증을 덜어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들의 출간에는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배경이 있다. 다음은 일본의 어느 SF팬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글이다.

한국 SF 출판 최초의 전성기는 1970년대 중반이다. 다만 이 때 출판된 것은 아동전용 SF. 당시의 추리소설 붐에 편승해 ‘동서추리문고’와 ‘아이디어회관’이라고 하는 두 문고가 차례차례로 SF를 출판. 현재 20대 중반으로부터 30대 정도까지의 SF팬 상당수는 어렸을 적에 이 2개 시리즈의 세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디어회관’의 SF출판 리스트를 보고는 놀랐던 것이다. ‘27세기의 발명왕’, ‘합성뇌의 반란’, ‘초인 부대’, ‘로봇 스파이 전쟁’ 등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타이틀 뿐. 이건 일본의 쥬브나일 SF 총서와 꼭 닮지 않았는가. 조사해 보면 아무래도 이와사키 서점의 ‘SF 세계의 명작’이나 ‘소년소녀 세계 SF문학 전집’ 등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텍스트 자체도 일본어로부터의 이중 번역이 아닐까? 예를 들어, ‘The Cybernetic Brains’를 일본과 한국에서 우연히 ‘합성뇌의 반란’이라고 똑같이 번역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 SF는 그 여명기부터 일본의 영향 하에 출발했다는 것이 된다. 이걸 한국의 SF팬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비록 일어판의 중역이기는 했지만, 70년대 말부터 선을 보였던 동서추리문고의 몇몇 SF들은 사실상 이 땅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성인용 완역판이었다. 레이 브래드베리나 아서 클라크, 알프레드 베스터 등 기라성 같은 서양의 SF작가들이 처음 소개되었으며, 역시 같은 시기에 모음사에서는 아서 클라크의 <2001: 우주의 오딧세이>가 출간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로 들어오면서 SF의 번역출판은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양상을 보인다. 비록 일어판의 중역이나마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내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인프라 구축과 새로운 작가군의 등장
1987년에 이르러서 국내 SF창작 분야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가 나왔다. 복거일이 ‘대체역사소설’인 <비명을 찾아서>를 발표하여 작품에 담긴 문학성 못지않게 상업적으로도 적잖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설정인 ‘가상의 역사’에 기성 문단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고 독자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사실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는 SF의 여러 갈래 중 하나지만 국내의 SF독자들에겐 상대적으로 낯선 서사구조였는데, 이 작품으로 인해서 비로소 SF의 폭넓은 가능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주목할 만한 또다른 사실은 <스포츠서울>지에서 신춘문예에 SF부문도 포함시킨 것이며, 또한 8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교양과학서적 붐은 SF독자층 형성에 간접적으로나마 기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기할 만한 일은 1980년대 후반부터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컴퓨터 통신망의 확산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축된 인프라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젊은 작가군을 양산하게 되었다. 컴퓨터 통신망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그러한 통신망에 자신의 습작을 연재하는 작가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 중에서는 창작 SF를 발표하여 광범위한 인기를 얻고 마침내 책으로도 출판한 작가들이 여럿 배출되었다. 한편 90년대에 접어들면서 SF의 번역출간도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원작 발표 50여년 만에 소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양 SF의 고전과 최신작들이 대거 번역 출판되었으며, SF 출간을 지속적인 사업으로 벌여나갈 것임을 표방하는 출판사까지 생겨났다. 이런 흐름은 그뒤 어느 정도의 부침을 겪긴 했지만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90년대에 의욕적으로 SF를 펴 낸 대표적인 출판사들은 다음과 같다. 시공사에서 ‘그리폰북스’라는 SF총서를 내면서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 조 홀드만의 <영원한 전쟁>,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 등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으며, 나경문화에서는 폴 앤더슨의 <타우 제로>, 필립 호세 파머의 <연인들>, 아서 클라크의 <도시와 별>등을 선보였다. 또 서울창작에서는 주제별로 작품을 엮은 단편집 시리즈인 <토탈호러>, <환상특급>, 등을 내놓았고 고려원 미디어와 잎새 출판사에서도 일련의 SF번역작들을 꾸준히 출간했다. 아쉬운 점은 이들 중에서 지금 현재까지 계속 SF를 내는 곳은 시공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3년 말 현재 국내에서 SF팬들의 장르적 기호에 부응하는 SF출간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곳은 시공사 외에 ‘행복한책읽기’ 출판사의 행책SF가 있다.
한편 90년대에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작가로 등단한 사람들 중에서는 이영수가 단연 발군의 작품들로 SF독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듀나’라는 필명으로 소설은 물론 문화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에세이들을 발표하여 고정 독자층을 형성시켰으며, 작품집과 에세이집도 여러 권 출간했다. 이밖에도 몇몇 기성 작가들이 SF를 발표하곤 했지만, 이영수만큼의 장르적 세련미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복거일은 <비명을 찾아서> 이후 <역사 속의 나그네>라는 야심찬 대작 시간여행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3권까지 내고는 중단된 상태이며, 그 뒤 다른 SF들을 몇몇 발표했지만 전작들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역사 속의 나그네>는 주인공이 ‘시낭(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서 펼치는 모험기적 설정을 취한 작품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SF와 관련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대학의 정규 강좌에서 SF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학교의 영문학과에서 고전 SF를 중심으로 장르의 특성에 주목하는 강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학술 세미나도 이따금 열리고 있다.

스타작품과 작가를 기다리며
SF의 저변이 확대되려면 무엇보다도 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발한 창작작업이 요청된다. 그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SF팬들은 이미 독자적으로 SF대회(컨벤션)도 열고 출판사의 SF 기획출판에도 관여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열정을 보이고 있으나, 정작 창작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 융성하는 환타지문학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몇몇 국내외 작품들에 힘입은 바가 큰데, SF도 결국은 이런 ‘스타’ 작품과 작가가 언제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이 관건일 것이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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