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의 뤼팡에 대한 신문 소개글이다.

셜록 홈스냐 아르센 뤼팽이냐. 탐정의 대명사와 도둑의 대표격인 둘의 대결에 가슴을 졸였던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1세기가 지난 2000년대 한국의 서점가에서 둘이 다시 대결을 벌인다. 지난달 출간된 셜록 홈스 전집에 이어 이번엔 괴도 신사 뤼팽이 독자들의 마음을 채가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헷갈릴까봐 부연 설명하자면 우리의 언어 습관상 셜록 홈스는 '셜록 홈즈'며 뤼팽은 바로 그 '괴도 루팡'이다. 자장면이 '짜장면'이듯. 오는 10월에 완간될 예정.괴도신사 아르센 뤼팽'과 '뤼팽 대 홈스의 대결' 두 권이 먼저 출시된 전집은 총 19권으로 이뤄졌다. 1905년부터 30년 동안 연재됐던 원작 21편의 발표 순서에 따라 나오는 것이다.
아동용 위주로 선별 출간됐던 그간의 작품과 달리 스토리의 연관성과 인물의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뤼팽 읽기의 참맛을 선사한다.더구나 번성기에 있던 산업 자본주의의 변천사와 서구의 풍속 변화를 알게 되는 부수입 효과도 있다.뤼팽 꼼꼼히 다시 읽기는 대중문화의 원형질(原形質)을 흡입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서구 대중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바탕으로 형성된 추리 소설과 그 소설들을 1작으로 한 대중영화들이 모태로 삼는 캐릭터가 바로 아르센 뤼팽이나 셜록 홈스 같은 인물 아닌가. 그렇다고 구식 이야기라 단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유도로 다진 완력, 천부적 변장술, 박학다식함이 너무 초인적이라 요즘의 관점에선 구식 인물로 보이긴 하지만 뤼팽의 캐릭터는 여전히 매력적이다.예쁜 여자에 대한 끊이지 않는 관심, 사법제도와 공권력에 대한 무시, 졸부들만을 대상으로 한 절도행각 등 현대 산업 사회 대중물 캐릭터의 기본 속성을 완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의 발달로 자연의 비밀이 속속들이 밝혀져 모험이 사라지고 자본주의적 노동규율과 윤리가 사람들을 피로하게 할 때 나타난 당의정(糖衣錠)인 셈이다. 한마디로 뤼팽은 '카사노바+대도 조세형+탈옥수 신창원'의 짬뽕 캐릭터다.셜록 홈스와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뤼팽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홈스가 무뚝뚝한 성격에 여자라면 질색인, 다소 신경질적이며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라면 뤼팽은 삶에 대한 열정과 위트가 넘치는 인물이다.또 홈스가 경찰을 은근히 무시하면서도 사법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일을 한다면 뤼팽은 완전히 안하무인격이다. 이런 차이점을 앵글로 색슨족과 라틴족의 민족성 차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어떻든 아시아의 라틴족이라 불리는 한국인에게는 뤼팽이 더 사랑스러운 존재로 다가올 듯 하다. 더구나 모리스 르블랑은 아예 뤼팽 시리즈에 '셜록 홈스, 한발 늦다'와 '뤼팽 대 홈스의 대결'을 포함시켜 영국의 라이벌 작가 아서 코넌 도일을 화나게 하기도 했다.홈스의 작가 코넌 도일이 항의하자 르블랑은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를 '헐록 쇼메스(Herlock Sholms)로 개명했다. 당연히 프랑스인들은 르블랑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출처:중앙일보 우상균 기자 2002.03.16>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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