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에서 가장 인기 있는 테마는 뭘까요?
타임머신을 타고 환상적인 시간여행을 할 수도 있고 사람보다 더 똑똑한 로봇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가장 신나는 건 우주선을 타고 낯선 외계로 나가 기기묘묘한 외계인들을 만나보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이제껏 여러 SF영화나 소설들을 통해 수많은 외계인들을 접해왔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거의 대부분은 서양에서 수입된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외계인이나 외계 사회를 묘사해보려는 시도는 서양문화권에서 주도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이지요.
그래서 근대 이후의 서구문학사를 살펴보면 외계인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심심찮게 눈에 뜨이는데, 이들의 묘사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입니다. 외계인관(觀)의 변천사는 우리 인류가 어떻게 ‘바깥 우주(outer space)’를 인식해왔는지 알아보는 데 적잖은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이거나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서구 문학사에서 17,18세기경부터 활발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등장한 외계인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외계인의 옷을 입은 지구인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의 행동이나 말도 역시 우리 인간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죠. 그러다가 지구상의 생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생태적 특징, 지구인들의 사고방식이나 의식세계와는 전혀 다른 외계인이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입니다. 외계의 환경과 외계의 생물들을 과학적으로 추측하고 상상해보는 일은 당시 라마르크와 다윈 등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된 진화론에 힘입은 바가 컸지요.

19세기 후반에 나타난 주목할 만한 외계인의 묘사는 먼저 프랑스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까밀 플라마리온의 논픽션 <현실 세계와 상상의 세계(1864)>는 외계인의 개념을 사실상 최초로 대중화시킨 저작으로 꼽히며, J. H. 로스니의 <무한의 항해자들(1925)>에서는 인간과 외계인의 사랑이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이 작품에서 인간은 여섯 개의 눈이 달리고 다리가 셋인 화성인과 연애를 한답니다.

당시의 프랑스 작가들이 외계인을 묘사하는 태도는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우호와 호기심이 섞인 따뜻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들은 라마르크나 베르그송 같은 프랑스의 진화론적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외계인의 개념을 통해 인간 자신을 인식하는 새로운 접근방법들을 개척하려 했던 것이죠.
한편 다윈의 진화론 중에서도 적자생존설(適者生存說)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영국에서는 외계인들 역시 인간의 적으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서 SF의 고전인 H. G. 웰즈의 <우주전쟁(1898)>은 무자비한 살상을 저지르는 화성인(사진 위 왼쪽)을 등장시켜 그 뒤 적대적인 외계인상을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이 작품은 나중에 미국에서 오손 웰즈가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하여 방송하는 과정에서 청취자들이 실제 상황으로 착각, 한바탕 대소동을 일으켰던 기념비적인 에피소드로 더욱 더 유명해졌지요.

지구인 영웅을 위한 조연으로 나서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이른바 ‘펄프 매거진(pulp magazine)’으로 불리는 싸구려 대중잡지들이 전성시대를 이루었습니다. 이 잡지들을 통해 수없이 많은 SF작품들이 발표되었는데, 외계인은 통속적인 ‘우주 활극(space opera)’의 조연으로 전락하여 지구인 영웅 만들기에 일조하는 역할이 대부분이었지요. 191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에드가 라이스 버로우즈의 연작소설 <화성>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지구인 주인공이 화성에 가서 화성인들을 거느리고 다른 화성인 악당들을 무찌르며 화성의 공주와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사진 오른쪽)입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E. E. 스미스의 <렌즈맨> 시리즈는 천사와 악마의 고전적인 선-악 대비 구도를 대립되는 두 외계 종족으로 형상화시켜 역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역시 지구인들이 주인공 영웅으로 등장하고 외계인들은 모두 조연에 지나지 않지요.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이 ‘외계인’이란 개념 자체를 일반 대중에게 친숙하게 각인시킨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20세기 초에 서양에서 대중적으로 정착된 외계인 개념은, 그 뒤로 전 세계의 SF작가들이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더욱 더 깊은 차원으로 탐구해 들어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영상 매체의 발달에 힘입어 외계인의 생생한 묘사는 책에서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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