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인 <분노>가 영화화되어 개봉하였다는 소식에, 냉큼 예매를 했다. 사실 <악인>만 읽어보았는데, 사람의 심리묘사라든가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하는 것이 좀 색다르다 싶어서 영화로 확인해볼 참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면면 또한 훌륭해서 선택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와타나베 켄, 모리야마 미라이, 마츠야마 켄이치, 아야노 고, 히로세 스즈, 미야자키 아오이, 츠마부키 사토시... 으아. 말이 필요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온 심정은... 괜히 봤다 였다. 이 화창한 봄날에, 벚꽃이 피고 개나리가 흐드러지는 이 아름다운 날에 보기에는 너무 버거운 내용이었다. 평범한 부부가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일년 뒤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연고가 불분명한 세 남자의 행적을 더듬어 가는 내용인데... 어둡고 우울하고 쓰라린 인생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져서 힘들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불신은 참으로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그래서 가지고 있던 믿음이 얼마나 순식간에 바스러지는 지를 보여주면서...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보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책은 읽지 말자...
마음이 울적한 탓도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자존심을 다친 날이었고 나이를 먹었기에 망정이지 십년만 젊었으면 일주일은 자괴감에 괴로와했을 것 같다. 이러니 좀더 밝은 영화 예를 들어 <미녀와 야수> 뭐 이런 해피엔딩에 판타지를 보면서 나의 정신을 위로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타이밍이 영 나빴다. 쩝. 일본 영화라도, <행복목욕탕> 이걸 볼 걸 그랬다. 슬프긴 하지만 희망을 보여주고 유머러스하고 밝은 영화였을텐데. 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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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카페에 들러 읽다 만 <대식가의 죽음>을 다 읽어버렸다.
일정 이상의 재미와 내용을 주는 책이란 참으로 반가운 게 아닐 수 없다. 해미시와 프리실라와의 밀당이 이제 절정에 달한 것도 재미였고,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승진이란 걸 하게 되는 것도 흥미진진이다. 마지막에 등장한 해미시의 부하라니! (아.. 이런 내용 얘기해도 되겠지? 스포일 아니겠지?..) 덕분에, 영화에서 받은 우울한 기분을 조금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사는 게 퍽퍽해지니, 자꾸 가볍고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만 찾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인생의 어둡고 비참한 면을 정면으로 섬세하게 묘사한 건, 책이든 영화든 요즘은 정말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나의 머리는 점점 단순하고 스윗스윗한 머시멜로우처럼 되어가는 걸까. 좀 진지한 책들도 가까이 하지만 진도가 파파팟 나가지는 않는 요즘이다.
아 이제 다시 책을 읽자. 영화는 하루 한 편만. 지금 장가계 다녀온 기념으로 <아바타>를 다운로드해두었으나, 이건 내일... 아님 모레... 암튼 오늘은 아니다.
뱀꼬리) 그나저나, 오늘도 두산이 졌다. 타격이 난조인 건 WBC 때문인가 하겠는데, 수비까지 엉성해지고 있다니. 마음이 어지럽다. 넥센의 이정후(이종범 아들) 활약이 눈에 띄었고. 해설자왈, 아버지가 좋아하겠어요. 그렇겠지. 예의주시할만한 신인이다. 우리 두산... 암만 그래도 내일은 잘 할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