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극장가에 걸린 영화의 반 이상은 우리나라 영화인 것 같다. 나만 해도 최근 본 영화가 <터널>... 그리고 어제 <밀정>. 인기가 많다고도 하고, 김지운 감독 작품이기도 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인 송강호가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밀정>은 꼭 보고 싶긴 했다. 사실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등등은 별로 마음이 안 내켜서 가지도 않았지만.
<밀정>을 보고 나니 마음이 좀 복잡해졌더랬다... 사실, 개인적으로 영화적인 완성도에는 실망이었다. 뭐랄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분위기라고나 할까. 웃긴 것도 아니고 진지한 것도 아니고 짜임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걸 말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포기한 건가 싶은 느낌. 그래서 아주 재미있었다. 이런 건 없었다는 것.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평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다. 송강호는... 그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의 심정을 눈빛과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표현할 줄 아는 배우이고. 두말할 나위 없었고. 이병헌의 존재감 또한, 배우를 좋아한다 싫어한다를 떠나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발견, 엄태구. 하시모토 역의 이 배우는 깜짝 놀랐다. 목소리와 표정이... 아직 다 무르익었다 이렇게는 말하기 어려워도 존재감 자체의 어필은 상당했다. 나머지... 신성록, 공유, 한지민은 늘 하던 대로의 역할. 그 정도의 무게감을 보여줬고.
다만... 요즘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심란스러웠다, 솔직히. 의열단. 이제까지 이 단체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난 김원봉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었고 솔직히 의열단이라는 단체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요즘, 이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를 통해. 그리고 그들의 맹목적인 순수함.. 에 놀라고 있다. 아.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렇게 살았던 사람들이 있구나. 죽음을 항상 목전에 두고 지금의 삶을 충분히 향유하며 지내되, 참여해야 할 중대사가 있으면 물불을 안가리고 덤비던, 순수한 젊음들. 그것은, 정말, 젊음의 혈기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정말, 독립이라는 목표 아래 티끌만큼의 잡다한 것이 관여하지 않는 상태의 감정선상이라야 가능한 것. 그것이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다른 것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 이러지 않고서는 이러한 순수함을, 열정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에 마음 한켠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보통 사람은, 송강호 같을 수밖에 없는 거다. 독립운동을 돕자니 죽는 것, 괴로운 것이 싫고 목숨을 부지하자니 일본에 붙어야 하는데 그것은 양심상 늘 꺼림칙하고, 지금 내 현생의 안위를 위해 일단 일본에 붙어 있으나 순수한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에 갈등이 휘몰아치고. 결심해야 하는데 결심하기 힘들고.... 그렇게 항상 갈등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누가 탓하겠는가. 누가 남의 목숨을, 지금의 평안을 버리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 모든 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투영되어서 더 가슴 아프고 심란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왜 그렇게 빚진 심정이 되던지. 왜 그렇게 발걸음이 무겁던지. 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는 것일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