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조의 <경관의 조건>. 두 말 할 필요 없다. 경찰 소설을 조금이라도 좋아한다면 꼭 읽어야 할 소설이다. 사실 그 이전의 <경관의 피>를 읽은 다음에라야 전체적인 내용인 좀더 이해가 쉽겠지만, 안 읽었다 해도 혹시 나처럼 너무 오래 되어 내용이 가물가물하다고 해도 큰 문제 없이 읽을 수 있다.

 

일본에서 나오는 경찰 소설들은 대부분 재미있다. 진정 '경찰'이라는 직종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현실적인 캐릭터들과 그들 사이의 알력, 그에 앞서 조직이라는 것에 대한 충성심, 배신, 위계 등에 대한 내용들이 잘 묘사되고 있어서 읽다보면 경찰조직학 정도를 공부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특히나 사사키 조의 이 소설은 그러하다.

 

안조 가즈야가 가가야 경부를 배신(?)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긴 책은, 사실 대단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고는 볼 수 없음에도 술술술 넘어간다. 배신으로 인해 떠나가는 가가야, 남겨진 가즈야, 그리고 수년 후 조금씩 뒤틀어진 그들의 인생이 어떤 조직폭력배 사건과 한 경찰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같은 선상에서 맞부닥치게 된다.

 

현장의 긴박함과 그 중에서도 드러나는 인간성, 그 배후에 있는 거래들, 그리고 개인의 역사, 가족.. 남자와 여자... 이런 것들이 정말이지 하나 어색하지 않게 절묘하게 쫀득쫀득하게 배치되어 있다. 내용의 대부분이 그냥 경찰들 이야기이고 사는 이야기이지만, 중간중간 꼭 필요한 부분에서 그간 스쳤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버텨내고 있는 지가 나온다. 가가야와 가즈야의 주변 인물들. 전처, 엄마, 작은 아버지, 애인... 읽고 있노라면, 내가 그들 인생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몰입도가 생긴다. 

 

사사키 조의 담백하고 건조하면서도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따뜻하고 은은하게 보여주는 문체를 좋아한다. 꼭 경찰 소설이 아니라도 말이다. 번역되어 나온 책들은 빠짐없이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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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  湊かなえ.

 

<고백> 이라는 책으로 첨 접하고 나서 몇 권인가 더 읽다가 이제 그만 읽어야지 했던 작가이다. 일단 뭐, 내 스타일이 아니랄까. 스토리는 참신하고 내용도 군더더기 없는데 왠지 나한테는 좀 이질감이 드는 작가라 책을 읽는 게 불편했었다. 뭐. 그렇게까지 이 작가의 책을 읽을 이유는 없으니까 여기서 그만. 하고 읽지 않고 있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작가가 "오랜만에 아득바득한 마음으로 쓴다" 고 했고 "독자가 어느 순간 '앗!' 하고 순간 정지 모드가 될 법한 이야기를 쓴다"고 했다니 재미있는 뭔가가 준비되어 있을까 라는... 호기심이 문득 들어 구입.

 

솔직히, 이건 스포일이라 말할 순 없지만, 마지막 문단을 읽고 나서 "...?" 라는 느낌을 잠시 가지다가 갑자기 머리가 핑그르르 돌면서 "..아.. 아아아앗!" 이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된 것을 고백한다. 내가 바보라서인지 이런 결말은 예측을 못하고 있다가 퍽. 하고 당했다는 느낌. 이 작가는 역시, 반전의 묘미를 아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왠지 좀 서늘.. 해지는 느낌까지 선사. 궁금하면... 읽어보면 된다...흐흐흐.

 

 

이 책에서 얘기하고 싶은 건, 사실 반전에만 있는 건 아니다.. 라고 본다.

 

.. 그야말로 히로사와의 단짝인 줄 알았는데, 한심할 정도로 히로사와에 대해 아는 게 없다. ... (중략) 범인 추적은 아무래도 좋다. 그저 히로사와 요시키란 사람이 궁금했다.

(p180)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많이 생각했었다. 절친한 사이라고 해도 그 사람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닐 거다. 그동안 살아온 켜켜의 시간 속에 묻혀진 그(녀)의 이야기. 감정의 결들. 사람들이 가지는 그(녀)의 모습. 그(녀)가 가지는 사람들의 인상... 이런 것들은 다 이야기할 수도 없고 사실 다 알 수도 없는 거라서...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건 참 단편에 불과하구나 싶었다.

 

주인공인 후카세도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히로사와가 죽고 나서 그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시점에서 과연 히로사와의 지난 인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를 궁금해하게 된다. 내가 아는 히로사와가 과연 히로사와 본연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히로사와의 모습은 무엇일까.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서 히로사와 요시키라는 인물의 윤곽이 좀더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아 나는 그에 대해 참 한정적으로 알았구나 라는 감상을 가지게 되고. 나 또한 이 내용을 읽어내려가면서 누구를 안다 라고 말하는 게 참으로 무의미하면서도 위험한 일이라는 기존의 생각에 살을 더하게 된다. 

 

"그렇게 무턱대고 화낼 필요도 없엇는데. 요시키가 평생 일을 안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딱 일 년. 어디 가보고 싶은 나라가 있거나, 거기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는데... 이야기만이라도 들어봐줄걸 그랬어." (p194)

 

무채색의 모습으로 , 투명한 모습으로 늘 상대를 배려하고 포용하는 히로사와 요시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정도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야단을 친다. 직장을 구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냐. 그리고 그 산같이 믿음직했던 아이가 저세상으로 가고 나니 그것이 후회된다. 들어나 봐줄걸. 왜 그리 몸서리치며 하지 말라고 화부터 내었을까. 그리고 끝내 그 아이가 어디를 가고 싶어했는 지는 알 수가 없어진다. 그 아이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모든 걸 품고 하늘로 떠났으니... 누구나, 가고 나면 후회만 남는다. 그냥 해줄걸 뭘 그리 매몰차게 대했을꼬. 뭐가 그리 시간이 없었을꼬. 하면서... 마음에 가시가 되어 나를 콕콕 찌른다.

 

엄청나게 인상적인 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나토 가나에의 책 치고는 우울의 끝을 달리지 않아서 가볍게 읽기 좋았다. 이전의 미나토 가나에의 책이 불편했던 이유를 되짚어보니.. 아 그 비통함과 슬픔의 정서가 바닥을 치게 만드는 상황 설정이 힘들었던 것 같다. 이 책 <리버스>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일반적인 내용들이고 그래서 받아들이기도 쉬웠나 싶다.

 

 

뱀꼬리) 미나토 가나에의 책은 번역이 많이 되어 나와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독자들한테 어필한다는 뜻일까. 이 중 두 권 정도 읽었고 (<고백>과 <꽃사슬>) <모성>은 일어 원본으로 도전 중인데 진도가 잘 안 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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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다이어리>와 <스토너)

 

둘의 공통점은,

 

1. 제목에 Stone이 들어간다 (오홋)

2. 일생을 관통하는 이야기이다.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3. 배우자복 드럽게 없다. (물론 데이지 굿윌은 두번쨰는 복이 있다 해야 하나 없다 해야 하나)

 

그리고,

 

4. 읽고 나면 무지하게 우울하다. (=.=;)

 

 

 

 

 

 

 

 

 

 

 

 

 

 

 

 

 

 

 

<스톤 다이어리>를 다 읽었다.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 중의 하나가 <스토너>였고 그래서 이 내용과 비슷하다고 하기에 문득 든 책이었다. 읽고 나니 비슷한 점이 많긴 하고 뒷맛이 찝찝한 건 사실이지만 (서글프다... 는 쪽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토너> 쪽이 훨씬 더 끌린다. <스토너>가 더 끌리는 이유는, <스톤 다이어리>의 사람들보다 <스토너>의 사람들이 내게는 정서적으로 더 잘 이해가 된다.. 라는 데에 있다. 하지만 <스톤 다이어리> 또한 참 정성껏 만들어진 작품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데이지 굿윌. 옆집 아줌마에게 키워지고, 대학을 나와 결혼이란 걸 적령기에 했는데 남편이 신혼여행 때 창가에서 떨어져 죽고 미망인으로 살다가 옆집 아줌마의 큰 아들 버커씨와 결혼을 하게 된다. 22살 차이 남자와. 묘한 관계의 그 둘 사이에선 딸, 아들, 딸이 순차적으로 태어나고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그러다 남편도 죽고, 자기도 늙어 죽는다... 이런 아주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읽어나가는 동안, 작가가 하나하나 묘사하는 데에 큰 힘을 기울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투루 넘어갈 부분은 없다. 주변 사람들, 데이지의 아빠, 새엄마, 친구들, 아이들, 조카들... 의 성격과 사는 모습들이 문장문장으로 표현되는데 참 어디에서나 봄 직한 그런 사람들이면서도 살아가는 데 느끼게 되는 많은 섬세한 부분들이 잘 담겨있기는 하다.

 

무엇보다... 마지막. 데이지가 90이 넘은 나이에 세상을 뜬 후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들이 가장 가슴에 아픔으로 남는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이해하는 바가 다르고, 그 인생의 결을 다 알고 있을 수는 없는 거고. 다 말로 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죽고 나서 그(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산다는 건 무엇인지. 누군가의 한평생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아무 걱정거리없이 잘 살았다고 말하는 데이지도 죽으면서 들리지 않게 "나는 평안하지 않다" 라고 말한다. 잘 살지 못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뜻일까. 하루하루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불쑥 다가오는 아침이다... 다음엔 뭘 읽을까. 좀 즐거운 책을 들어야겠다. 이 씁쓸함과 아련함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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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7-06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토너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스톤 다이어리 읽고 싶어요. 그렇지만, 비연님처럼 저도 어쩐지 스토너를 더 좋아할 것 같아요.
저는 최근에 내리 읽은 세 권의 책이 다 그저그랬어서 안되겠다 싶어 흥미로운 책을 오늘 들고 나왔어요. 그 책은 바로, 요 네스뵈의 [레드 브레스트] 입니다!!

비연 2016-07-06 09:36   좋아요 0 | URL
락방님. <레드 브레스트>는 탁월한 선택이세요! 요 네스뵈의 소설들은 하나 버릴 것이 없답니다. 저도 안 읽은 요 네스뵈의 소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흑... 오늘 집에 가서 진중하게(?) 읽을 책을 골라야 겠다는 결심 다시한번. 전 아침에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들고 나왔네요... (뭥미)
 

 

알라딘에서 책을 사기 시작한 게 언제지... 2003년부터인가? 책은 알라딘에서도 사고 교보문고에서도 사지만... 요즘 들어서는 알라딘만 이용하게 되는 것 같다. 가끔 오프라인 책이 그리울 때 교보문고 가서 손으로 감촉을 느끼며 몇 권 사오기도 하고.

 

산 거에 비해서 중고로 내놓은 책들이 많지 않구나.. 싶네. 집에 쌓아두어봐야 그냥 폐지(!)일 뿐인데, 여러 사람 읽을 수 있도록 중고로 내놓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주말에는 작정하고 방출시켜야겠다. 안 그래도 책장 무너질 판이다...ㅜㅜ;;;

 

상위 0.1%의 독서가가 되려면 월 30권은 읽어야 하는 거구나. 내가 지금 12권이라고 하니.. 흠. 18권을 무슨 수로 더 읽나? 이것은 은퇴 이후에... 허허.

 

이런 기록들을 보니, 문득, 여름날 읽을 책들을 정해야겠다 싶다. (이게 무슨 맥락없는 생각인건지) 이번 여름엔 역사책... <로마의 일인자>나 <로마제국쇠망사> 혹은... 중국역사책 이런 것들을 접할 계획이다. 그 내용은 나중에.

 

암튼, 알라딘이라는 공간이 있어서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알려주는 거 좋다. 그나저나 내가 산 2천여만원의 책들을 가지고도 알라딘에서는 1,162번째...허걱. 연 200만원 정도씩 산 셈인데, 명품백을 사듯 책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 이리 많구나... 위로 까마득... 그렇게 생각하니, 이 아침, 참.. 좋다! ㅎㅎㅎㅎ 명품백 하나 사는 것보다 못하게 책을 사는 나로선 왠지 반성... 사고 읽고 중고로 방출하고... 좀더 열심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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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04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책 독서, 멋진 계획입니다. 비연님의 완독을 응원합니다. ^^

비연 2016-07-05 08:02   좋아요 0 | URL
cyrus님, 감사요^^ 읽는 동안 틈틈히 또 올릴게요 ㅎㅎ

로제트50 2016-07-04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0.39% 여요.
팔기가 아까워서
줄도 긋고...곳곳에 쌓아
두고 있지요^^;;

비연 2016-07-05 08:0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게요. 저도 줄도 긋고... 읽기는 얌전히 읽었는데^^;
맘먹고 한번 내놓아야겠다 하면서도 마구 쌓아놓기만 하고 있어요. 흠냐.
 

 

이 책을 읽게 된 건, 그러니까 2013년도에 나오자마자 사두고 이제까지 책장 한켠에 묵히고 묵히다가 3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가차없이' 꺼내어 읽게 된 건 마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한 구절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사라가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 다자키 쓰쿠루가 그 네 명의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건 생각도 못했습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인생을 조용히, 미스터리하게 살아가야 했다, 라는 비교적 짤막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었습니다...(중략)... 즉 사라의 말 한마디가 거의 한 순간에 이 소설의 방향과 성격과 규모와 구조를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건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아니라 실은 작자인 나를 향해 말을 건넸던 것입니다. "너는 이제 그다음 스토리를 써야 한다. 너는 그 영역에 이미 발을 들였고 이미 그만한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라고. (p251-252)

 

소설이라는 걸 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나마저 깜짝 놀랐다. 이런 얘기 들어본 것 같긴 한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구체적인 책 제목을 언급하며 얘기를 하니 상당히 현실감 있게 들렸다. 이 책의 구절구절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나는 하루키의 절제된 생활과 남들에게 조금 무감한 듯한 자신의 고집을 낱낱이 이야기하는 에세이적 글투가 좋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다음 읽을 책으로 고민없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골랐다.

 

내가 이걸 안 읽고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이 영 불편하다. 제일 좋다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마저도 그랬고 <1Q84>는 이거 뭥미? 라는 느낌으로 내내 읽었다. 재미가 없다 이게 아니라 그냥 나랑 뇌구조가 다른 느낌? 그래서 이 책이 재미있다고 괜찮다고 아무리 얘기를 들어도 아 또 실망할거야... 라는 초조함에 계속 읽지 않고 있었던 거다. 게다가 제목도 길어서, 이건 뭐 골라서 나 뭐 읽어요 말하기도 참 난처하지 뭔가.

 

"연어는 아주 긴 여행을 해. 특별한 뭔가를 따라. <스타워즈> 봤어?"

"어릴 때."

"포스가 함께하기를, 연어에게 지지 않게."

(p282)

 

May the force be with you ... 포스가 함께하기를. 난 이 대목에서 하루키가 더 좋아져 버렸다. 하루키는 분명, 스타워즈를 좋아할 것이고 그래서 이 문구를 인용한 것이다!

 

"누구든 무거운 짐은 싫어하죠. 그렇지만 어쩌다 보면 무거운 짐을 가득 끌어안게 됩니다. 그게 인생이니까. 세 라 비 (C'est la vie)"

.... (중략)....

"휴가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멋진 두 가지라고들 하죠."

(p294)

 

이 작품이 다른 하루키의 장편소설들에 비해서 내게 좋게 다가온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내용이 비교적 일반적(?)이라는 것, 그리고 이제 하루키가 인생에 대해서 뭔가 얘기하고 싶어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더 그런 것 같다. 세 라 비.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p363-364)

 

이런 얘길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고등학교 때 잘 맞았던 다섯명. 대학교 2학년 때 나머지 네 명이 쓰쿠루에게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하고 쓰쿠루는 그 상처로 인해 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간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모두에게 상처였고, 누군가에게는 피가 철철 흐르는 아픔이었으면 그렇게 인생의 쓴맛을 겪고 다들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자양분 삼아, 각자의 인생에서 나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인생.. 이니까. 그래야만 하는 게 인생... 이라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하루키는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어. 나도 너도. 그리고 살아남은 인간에게는 살아남은 인간으로서 질 수밖에 없는 책무가 있어. 그건, 가능한 한 이대로 확고하게 여기에서 살아가는 거야. 설령 온갖 일들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해도." (p378)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p436-437)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음악이 흐른다. 리스트의 <순례의 해>. 특히 라자르 베르만의 연주를 이야기한다. 나는 사실 몰랐던 곡인데, 들으니 상당히 사색적이고 차분하다. 그래서 이번에 참 오랜만에 음반을 주문해보았다.

 

 

미니 콤포넌트가 망가지는 바람에 새로 사기도 그렇고 고치기도 그렇고 어영부영 지내면서 음반 사는 것에 게을렀었다. 이렇게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에 다시 시작하나 보다. 클래식에 대한 사랑이.

 

무라카미 하루키는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다. 누구는 극혐을 하기도 하고 누구는 문학도 아니라 하고... 그렇게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기는 하지만, 대중들에게 수십년 간 어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루키는 상업적이면서도 문예적인 작가가 아닐까.. 대중이 살면서 느끼는 기저의 마음을 터치함으로써 구매 파워를 가지나, 내용이나 문체가 독특하고 천박하지 않아서 계속 찾게 만드는 지속력도 가지고 있는. 그래서 매번 속는 셈 치고 나오는 책마다 족족 사는 게 하루키의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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