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간 격무에 시달리느라 (정말 격무였다. 이게 뭔 필요가 있는 가 매일 고민하면서 일했다) 책을 책대로 보지도 못하고 쓰러져 자기 일쑤이다가, 아니 혹은 자지도 못하고 나가기도 했다가, 오늘 드디어 약간의 여유라는 게 생겼다. 그래서 읽다 만 책을 들고 드러누워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책은, 계속 보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줄리언 반스가 아내를 잃고 쓴 사부곡(思婦曲)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내 마음의 슬픔과 맞닿아 너무 그 슬픔이 커질까봐 계속 미뤄두었었던 책이다. 이제 이 책을 읽을 정도이니 마음의 짐이 많이 덜해진 걸까....

 

줄리언 반스의 글을 읽으면서, 아... 내가 느끼는 것과 어떻게 이렇게 같을 수가 있지. 아내를 잃든 친구를 잃든 부모를 잃든, 그 감정의 결은 조금 차이가 있을 지라도 매우 친밀한 사이의 사람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심정은 매일반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짐은 덜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젊은 시절, 세상은 노골적이게도 섹스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나중에는 사랑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 후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로 - 적어도 우리가 운이 좋다면 (혹은 운이 나쁘다 해도) - 세상은 슬픔을 견뎌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런 분류는 절대적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로지르는 회귀선이다.  (p110~111)

 

알고 있다. 슬픈 경험을 해본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누군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낸 사람과 그래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나뉠 수도 있는 것임을. 최근에야 알았다.

 

'중요한 건, 자연은 너무나 정확해서 정확히 그럴 가치가 있을 만큼의 고통을 안겨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 고통을 즐기기도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그런 점이 지금까지 문제가 안 되었다면,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중략).. 사별의 슬픔은 인간으로서의 상태이지 의학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며, 그 고통과 더불어 다른 모든 것을 잊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은 있어도 치유해주는 약은 없다. (p116)

 

나 또한 줄리언 반스처럼, 저 말에 괜한 위안을 받았다. 잘 모르겠다. 그게 무엇인지. 자연이 정말 그런 고통을 그런 방식으로 안겨 주는 것인지. 그러나 그 즐긴다는 어감이 쾌락의 의미는 아님을 알게 되었다. 뭐랄까... 그냥 부재를 부재로 받아들이지 않고 누린다고나 할까... 표현이 잘 되지 않는다.

 

당신은 그녀와 공유하던 어휘, 어법, 말장난, 둘 사이에만 통하는 언어의 지름길, 둘 사이에서만 통했던 농담, 유치함, 장난 섞인 핀잔, 야한 첨언들을, 풍부한 기억들이 담겨 있지만 남에게 설명하면 아무 쓸모도 없는 이 모든 모호한 참고자료들을 잃었음을 가슴 아리게 느낀다. (p146)

 

... 너무나 공감하여 할 말을 잃는다. 내가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냈을 때 가장 슬펐던 것은, 긴긴 세월동안 우리가 함께 쌓았던 기억들을, 추억들을, 그 세세한 순간들을 웃음으로 슬픔으로 진심 공감하며 이야기할 상대를 잃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이고 상대는 자신이 포함되지 않았던 그 상황에 대해서 지루하게 듣고만 있을 뿐이겠지. 아무도 그 순간의 기억들에 함께 해주지 못하겠지. 진실로 그렇다. 그래서 더 진한 외로움이 다가온다.

 

우리는 꿈속으로 내려가고, 또 기억 속으로 내려간다. 그렇다. 예전의 기억은 과연 돌아온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는 두려움을 배우고, 다시 찾은 기억이 원래 그대로인 지 확신할 수 없다.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는가. 당시 거기 있었던 사람이 더 이상 확증을 해줄 수 없게 되었는데. 우리가 한 것, 우리가 간 곳, 우리가 만난 사람들, 우리가 느낀 감정을. 우리가 함께하게 된 사연을,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씻겨가고 이제 '나'만 남았다. (p181)

 

우리는 씻겨가고... 나만 남았다... 가슴에 절렬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의 그런 내밀한 구석까지가 같진 않더라도, 십수 년간 함께 추억을 쌓아오고 정신적 교감을 이어오던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흡사 팔다리를 잘린 것 같은 상실감을 가지게 한다. 잘린 팔다리의 끝자락에서 아직도 팔다리가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줄리언 반스의 이 책은.... 상실감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때 더욱 빛이 날 책이다. 나에게도 물론. 작가란, 그래도 이렇게 쌓여있는 감정을, 피를 통하는 심정으로 글로 매김질 할 수 있는 좋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인 게다. 부럽고, 서럽다.

 

 

 

우리는 30년을 함께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두살이었고, 그녀가 죽었을 때는 쉰여섯 살이었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사별의 고통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진부하며 유일무이하다. 그런 의미에서 진부한 비교 하나를 들어보자. 차를 다른 브랜드로 바꾸고 나면, 갑자기 길 위에서 같은 브랜드의 차들이 수도 없이 눈에 들어온다. 전에 없던 방식으로 그 차들이 의식에 각인된다. 아내를 잃게 되면, 갑자기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전까지 그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다른 운전자들, 배우자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좀 지난 일이긴 한데,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아니, 그 보다는 그 논제가 갑자기 들이닥쳤다고 해야겠는데, 그것은 내가 자살을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 있는 한, 그녀는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물론 아내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생생히 살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기억하는 가장 주된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어디엔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내 안에 내면화되어 존재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자살을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그러했고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자살하면 나 자신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존슨은, 오직 노동과 시간만이 비탄을 완화한다고 본다. `슬픔`은 영혼에 녹이 슨 것과 같으며, 그것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온갖 새로운 발상이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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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누군가가 써놓았을 때, 그 때는 정말, 가슴 벅 차지요. 좋은 책 소개해줘서 감사합니다. *^

비연 2016-02-21 00:53   좋아요 0 | URL
좋은 책입니다... 일독해보실 것을 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