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 - 전설의 책방지기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남해의봄날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무식하게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하기에 아 서점업계의 '神的 存在' 라는 의미에서 이 사람을 '신(神)' 이라고 부르는 구나 했었다. 아이고. 근데 이름이었다. '신(信)'. 속으로 혼자 망신스러워하면서 읽기 시작했긴 한데 다 읽고 나니 그게 그거다 싶은.

 

도쿄 진보초의 고서점 거리에 있는 이와나미 북센터의 경영자, 시바타 신. 일본에서 나이 좀 먹었다는 사람들에게는 스승으로 받들어지는 서점 주인이다. 이제 80대 중반의 고령임에도 일주일에 네 번은 꼬박꼬박 서점에 나가서 근무를 하고 근처 사람들 다 만나고 다니는, 한마디로 정력 넘치는 할아버지다. 이 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구술된 내용을 잘 옮겨낸 책이었다.

 

사람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건 '좋은 환경'이라든가 '좋은 타이밍'이라는 이야기를 곧잘 하잖나. 하지만 달리 말해 그건 '좋은 사람'과 만났다는 말이기도 하지. (p44)

 

시바타 신은 누구하고나 격의없이 지내고, 누구도 소홀히 대하는 법이 없는 분이다. 사람이 재산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관계가 책을 파는 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어디 서점에 한정된 이야기겠는가. 요즘처럼 사람에 치이는 나로서는 이 대목이 참 가슴에 팟, 와닿았더랬다.

 

분명한 건 책을 손님에게 건네는 순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 그러기 위해 어떤 토대를 만들고 있느냐가 중요해. (p51)

 

이쯤 되면 철학의 수준이다. 서점에서 책을 파는 그 순간만을 바라본다면 길게 갈 수가 없다. 책이 서점에게서 손님으로 가는 그 지점까지 이르기 위해 거쳤던 수많은 순간들을 기억해야 한다. 이건 여러 사람이 공들여서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의 순간'이다 라고 해석된다.

 

"나는 내가 그렇다는 데에 자신 있어. 대중 속에 섞여 있고, 눈에 띄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고, 머리도 그다지 좋지 않지.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더더욱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이 세상에는 분명히 있거든. 세상에는 극소수의 성공담만이 흘러넘치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매일 아침 일어나면 그날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오늘은 오전에 아무개와 만나고 3시부터는 인터뷰다,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 오늘도 즐겁겠다, 이런 것들. 오늘 하루를 우울하게 생각하는 날은 거의 없어. 일본의 앞날을 한탄하거나 출판계의 미래를 근심하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생각하는 척은 하지. 하지만 곧바로 저녁밥을 생각하니까." (p56)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이다. 보통으로서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말. 매일매일을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지낸다는 말. 너무 앞의 일을 내다보고 한탄과 근심으로 일관하기 보다는 매일매일 바로 앞의 일에 충실하고자 한다는 말. 새겨두고 또 새겨둬야 할 말이다 싶다. 그래서 진보초 북 페스티벌을 계속 운영하면서도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저 즐겁게 하자는 모토 아래 진행할 수 있는 것 같다. 뭐다뭐다 갖다붙이기 보다는 매년 조금씩 나아져가는, 그리고 책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기억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페스티벌.

 

해부학자 요로 다케시가 쓰길, '죽음'은 1인칭이 아니라더군. 그 순간, 그 사람은 이승의 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죽었다' 라는 말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3인칭의 누군가가 '죽었다'고 말하기 때문에 비로소 죽은 것이지. 사람은 그때까지 그저 살아갈 뿐이라는 얘기야. '죽음'이 자신 안에 없다는 것이 깊게 와 닿더라고. 죽기 전에 적어도 바닥이라도 다져놔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고. (p95)

 

이런 얘기를 한 요로 다케시라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마저 드는 대목이었다. 이것은, 수십년 죽음과 직면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통찰이 아닐까. 의사의 선고가 있어야 비로소 죽은 것이다. 나는 내가 죽은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니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요즘 우리나라에도 작은 서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다양한 서점들. 다루는 책들의 종류가 다르고 손님을 맞는 인테리어가 다르고 컨셉이 다르다. 하지만, 이런 경향성이 참으로 반갑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이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이, 그 속에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 흡족해한다. 그리고 그런 서점들이 각각의 동네에서 길게 갈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된다. 그냥 그렇게 실험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네의 터줏대감으로 오래도록, 동네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그래서 대형 서점이 줄 수 없는, 인생의 맛을 더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런 점에서 시바타 신의 이야기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 <남해의 봄날>은 이렇듯 좋은 책들을 내주어서 참 고맙다. 가끔 스스로 좋은 글을 쓰기도 하고 말이다. 서점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 서점의 운영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 서점주인으로서의 자세 등을 늘 머릿 속에 담아두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책들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많이 나아진 모양이다. 이런 얘기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만 보아도. 동네 서점에 관심을 가지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만 보아도....

 

좋은 책이다. 책이나 서점운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일독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가끔씩 동네 서점들을 찾아나서 봐야겠다. 그런 공간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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