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되게 재미있어."라고 얘기했던 '너'와 나는 멀어졌다. 온갖 얘기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우연히 다시 만난 우리는 예전의 관계가 이미 화석이 됐음을 씁쓸하게 깨닫고 비껴갔다. 그래도 나는 또 그 시절의 '너'가 있어 참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추억한다.

 

지금에 와서야 얘기하는 거지만 나는 최근까지도 <목로주점>이 아니라 <목로주검>인 줄 알았다. 파리 외곽의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소설이라는 것도 몰랐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같은 상류층 여성들의 욕망을 레이스 결처럼 섬세하게 다루었던 에밀 졸라가 과연 하층민들의 삶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함도 있었다. 오해로부터 시작한 독서는 오독으로 마감했을런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 역자의 해설을 읽으며 눈물이 고였다. 왜 그랬을까? 어떤 이야기는 작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작가에게 파도처럼 덮쳐와 그 작가는 그저 받아쓰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진실의 자장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목로주점>의 제르베즈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 이제는 만나지 않는 친구가 나에게 <목로주점>을 각인시켜 준 일은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우리가 다시 여고시절처럼 마음 속의 모든 이야기들을 쏟아낼 수는 없겠지만 수많은 오해들과 서로에 대한 오독을 떠나 그 아이를 만나 얻은 것이 많다. 꼭 현재 진행형의 소통이 아니더라도 찰나의 소통은 많은 것을 남긴다.

 

 

 

 

 

 

 

 

 

 

 

 

 

 

 

 

 

사람들은 찬양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사람들은 칭찬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격찬과 비난은 하나같이 격렬했다...... 그런 가운데 작품은 점점 위대해져 갔다.

- <목로주점> 역자 해설 중

에밀 졸라의 무덤 앞에서 읽은 아나톨 프랑스의 조서. 역자의 얘기를 빌리자면 플로베르에게 헌정됐다는 이 작품은 현대적 대량 인쇄의 문을 연 최초의 소설이라고 한다. 4년동안 91판을 찍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선풍적 인기를 끌었는지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작가의 서문은 이 작품이 가져온 파급력을 암시한다. 노동자의 은어, 욕설 등이 난무하는 <목로주점>은 사회적으로 수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졸라는 자신을 변호하는 대신 작품이 자신을 변호해 줄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의 신뢰는 시간의 검증을 받고 마침내 실현된다. 극도의 가난 앞에서 파멸하는 세탁부 제르베즈의 이야기는 환경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의 가능성을 무력화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꿈이 어떻게 환경과 운명에 의하여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지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로서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실적이고 조금은 비관주의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제 모든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또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그녀는 길을 걸으며 옛꿈을 떠올리곤 했다. 일하고, 빵을 먹고, 자기 집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얻어맞지 않고, 자기 침대에서 죽는 것. 이제 그녀는 꿈을 넘어섰다.

 -p.198

 

전남편에게 버림받고 아이 둘을 홀로 건사해야 했던 제르베즈는 함석장이 쿠포와 결혼하여 구트도르 가에 자신만의 세탁소를 가지게 된다. 일하다 지붕에서 떨어진 남편을 대신하여 실질적인 가장이 된다고 하여도 그녀는 "양처럼 온순했고, 빵처럼 부드러웠다." 굶지 않고 자기 집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얻어맞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만 남은 것은 이제 자기 침대에서 죽는 최후를 가지는 것이었다. 꿈을 넘어섰으니 나머지의 소망은 차라리 소박하고 쉬운 것이었다. 삶은 때로 무척이나 관대하게 우리를 대접해 준다고 착각하게 한다. <목로주점>에서 술에 절인 자두를 남편과 연애 시절 나누어 먹던 제르베즈는 자신이 그 <목로주점>에서 만취한 남편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스스로가 슬픔 때문에 취하게 될 미래를 미처 알지 못했다. 부지런하고 명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를 즐겼던 이 아름다운 금발의 생활력 강한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생의 파고를 용기 있고 끈기 있게 헤쳐 나간다. 순박하고 성실한 대장장이 구제와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다. 이 투박하고 거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그저 민들레 꽃을 그녀의 바구니에 던져 넣어 바구니에 민들레 꽃이 가득 차게 되는 장면은 어리석고도 아름답다. 자잘한 꿈들이 실현되는 나날들에 취할 무렵 에밀 졸라는 잔인한 삶의 면면을 들이밀기 시작한다. 제르베즈의 남편 쿠포는 고주망태가 되어 가고 지붕 위에서 아내와 딸을 위하여 위험을 감수하던 지난 날들을 자조하기 시작한다. 그는 제르베즈를 파먹고 살기 시작한다. 여자는 점점 지치기 시작하고 무기력과 무능력에 포섭되기 시작한다.

 

전락이 이 정도에 이르면,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 옛날의 긍지도, 애교도, 애정과 예의와 존경에 대한 욕구도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어디를 차여도, 앞을 차여도 뒤를 차여도 도무지 느낌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무감각해졌고, 무기력해졌다.

-p.526,527

 

눈이 오던 날, 그녀는 허기를 채우기 위하여 거리로 나갔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남편은 일을 하지 않았고 물건을 잡혀 술을 마셨고 그녀를 때렸다. 딸 나나는 집을 나가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된다. 더이상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그녀는 자신의 몸을 팔기로 하고 남자들을 붙잡는다.  하필 여기에서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 같았던 구제를 만나게 된다. 그녀가 장미꽃 같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구제는 늙고 망가진 그녀를 서글프게 응시한다. 구제의 수염에 데이지 꽃잎처럼 달라붙는 눈발에 대한 묘사는 그가 그렇게도 억제하려 했던 그 고결한 그녀에 대한 외경, 사랑의 덧없음을 추억하게 한다. 제르베즈의 소박했던 그 마지막 꿈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자기 침대에서 죽는 것. 그런데 그녀의 이 소망이 갑자기 섬뜩하게 느껴졌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누구나 그럴 거라고 미처 의심도 의문도 가져보지 못하는 명제에 대한 환기는 불편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아니 그 나머지의 것들. 그 최소한의 소박한 소망들도 내가 죽는 그 날까지 사수되리라는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갑자기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이 차 올랐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읽기가 괴로웠다. 경제적인 약자가 미덕까지 망실한다는 것은 최악의 가정임을 안다. 그런데 그 가정이 때로 현실이 되는 정경이 현실이다. 에밀 졸라는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가지고 왔기에 그렇게도 공격을 당했었나 보다. 작가는 감히 질문할 수 없는 것들을 질문하고 답을 내어 주지는 않는다. 역자의 해설에서 인용된 바르트의 얘기로 귀결된다. 진정한 문학적 참여는 문제 해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증언과 진술에 있는 것이라는 것. 그런데 이러한 문학적 참여는 이해와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또한 절망을 함께 가지고 온다. <목로주점>을 읽고 한없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대안과 해법과 희망 대신 적나라한 절망과 체념에 대한 보고서. 쉽게 읽고 힘겹게 덮는다. 내가 오독했던 제목은 한편 유용했나 보다. 온기 없이 식어간 목로주검. 넌센스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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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9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0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12-06-0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목로주점 읽으셨네요. 에밀 졸라 정주행중이신가요? ^^
이전 페이퍼에서도 말씀드렸는데, 저도 저 열린책 두 권을 사두고선.. 흑.

목로주검인줄 아셨다고 하시니 떠오르는 이야기- 프랑스어 원제목에 딱 맞으면서 작품을 제대로 대표할만한 영어단어가 없더래요. 펭귄클래식에선 Drinking Den 이라고도 번역했는데 그것도 마땅찮게 생각했던 번역가들은 제목을 따로 번역하지 않고 L'Assommoir를 영어번역본에도 그냥 쓴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선 목로주점으로 굳어진듯 하죠?

blanca 2012-06-10 22:55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저 또 지금 열린책들 세계문학 두 권 주문해서 받았는데 한 권 활자가 너무 작아서 시작을 못하겠어요. 포기할까도--;; 에밀 졸라는 사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처음인데 너무 재미있게 일어서 연거푸 읽게 되었어요. 브론테님 얘기처럼 저도 <작품> 읽어보고 싶어요. <나나>를 읽어볼까 생각중이랍니다.

아이리시스 2012-06-1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블랑카님이 <목로주점> 되게 재미있어, 라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요. 아무도 제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거든요 ㅜㅜ 어제 염상섭의 <삼대>를 들추다가 에밀 졸라가 생각났는데 '프랑스 자연주의'에 갇히는 그 사조가 좀 멀게만 느껴졌는데 브론테님 말씀도 그렇고 우와, 그래도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역시-_-;(한숨) 사놓고 못 읽은 열린책들 세계문학 천지라서요.. 추천 누르고 쓸어담고(!) 늘 그렇듯 또 미루고..흑..

blanca 2012-06-13 23:3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은 진심 재미있어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조금 더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고요. 저도 지금 사실 열린책들의 한 책을 결국 포기하고 보내려고 생각중이라 아이리시스님 마음 공감갑니다.^^;;

2012-06-2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로주점> 아마 평생가야 관심밖의 책이었겠지요. 이 페이퍼를 접하지 않은 저라면.. 근시일 내에 읽지는 못 하겠지만, 마음 속에 적어두었어요. 그나저나 <목로주점>을 보며, '너'가 생각나는 것. 그게 바로 그리움이겠지요.^^

blanca 2012-06-29 10:35   좋아요 0 | URL
섬님, 아주 나중에라도 읽어보세요. 일단 재미있더라고요. 그 친구는 제가 고등학교 때 참 좋아했던 친구인데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 고정되어 있기를 바랐나 봐요. 그 시절의 그 친구가 그리워요.
 
탐닉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래, 만나서 이야기하자."

삐삐의 음성 사서함에서 다음 만남의 기약을 들었다. 그래, 그럼 만날 수 있는 거구나.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 걱정하기 전에 다음 만남의 기약이 주는 안도와 기쁨에 겨워 버렸다. 그런데 그 만남은 불발로 끝났다. 나는 찌질하게 채였다. 그렇게 울며불며 열광했던 스무 살의 첫사랑은 비겁하고 부끄럽게 막을 내렸다.

 

그것은 너무나 미숙했고 자기 도취적이었고 과잉이었기 때문에 지나고 나니 사랑으로도 욕망으로도 취합이 안 되었다. 차라리 중학교 때 혼자서 러브레터를 쓰며 언젠가는 만나 전해줄 거라 믿었던 뉴키즈언더블럭의 조 메킨타이어에 대한 열광의 시즌2  정도라고 해 두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실망하고 또 넘어지고 그리고 또 끊임없이 헛꿈을 꾸고. 괴로워할 이유와 눈물 흘릴 이유는 깨알처럼 많았다. 수많은 결핍을 모아 과잉으로 만들었다. 목이 마르고 또 말랐다.

 

갑자기 사춘기 때와 똑같은 서글픔을 느낀다. 마흔여덟 살에서 쉰두 살 사이의 중년의 여자가 사춘기 때와 얼마나 비슷한 것을 느끼는지에 대해 언젠가 말해야겠다. 똑같은 기다림, 똑같은 욕망. 그러나 여름으로 가는 대신 겨울로 가고 있다. 하지만 "인생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실은 너무 잘 모른다. 다만 사춘기 때만큼 괴로워하지 않는 몇 가지 하찮은 방법만 알고 있을 뿐이다.

-p.318,319

 

나는 또 착각하고 있었다. 인생을 알아가고 있다고. 이 책에 대한 솔직한 리뷰를 과연 쓸 수 있을까? 마흔 여덟의 여자가 서른 다섯의 유부남에 탐닉하는 얘기를? 게다가 이 책의 저자는 (작가가 아니다) 무려 스스로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공언하는 아니 에르노다. 지독하게 솔직한 고백 앞에서는 그 내용과는 관련없이 그냥 져 주고 싶은 무력감이 차오른다. 도덕적인 잣대, 사회적인 통념, 상식을 들이밀기 이전에 도저히 재단할 수 없는 그 간명한 호소 앞에서 나마저 고고한 심판관 역할을 자처하고 싶진 않다. 자신의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사랑할 가치도 없는 별로 지적이지도 않은 미숙하고 거만하고 속물적인 젊은 남자 앞에서 그녀는 어머니가 되고 물주가 되고 욕망의 배설구가 된다. 그녀의 얘기다. 그 유치한 남자를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고 전화가 오기를 기도하며 걸인에게 적선을 한다. 사춘기를 지나도 오지 않는 전화 때문에 밤새 울고 가위에 눌릴 수 있다. 어쩌면 삼류 신파 영화 같은 얘기일 수도 있다. 나의 사춘기를, 스무 살을, 그녀의 마흔 여덟 살에 대입하며 공감했다. 세상은 단 하나의 경계로 나뉜다. 그의 전화와 기다림. 후에는 가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진짜였을지도. 로맹가리가 얘기했던 것처럼 "노년이 '배워 알고' 있는 것은 실상 그것이 잊어버린 모든 것"일런지도. 나이가 들어가며 편안해지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완전하게 기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아니 에르노의 처절할 만큼 솔직하고 잔인한 고백 앞에서는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처음으로 다시 회귀한다. 나쁜 애송이는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다. 아니 에르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타입이었지만 그럴 가치는 없었던 한 남자"를 스무 살이 아닌 마흔여덟 살에 만나도 결론은 항상 눈물이다. 사춘기의 아이는 저만치 걸어가 버린 게 아니다. 항상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 기지개를 켤 틈을 엿본다. 돌아오면 또다시 울면서 맞을 수밖에 없을까. 인간은 성숙하는 게 아니라 성숙한다고 착각하며 죽을 때까지 미숙하고 유치한, 하지만 가장 절절한 그 시기를 재연할 기회를 엿보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나 속아주고 만다.

 

 

넉 달. 아직은 추억 때문에 운다. 아직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를 위한 것이다.-p.330

 

 

그녀의 고백은 위험하면서도 슬프다. 도저히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 사춘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사랑과 욕망의 경계가 얼마나 불분명한지를 고백하는 애가는 죽을 때까지 부를 수밖에 없다.

 

p.s.  이 책을 그녀를 위하여 소설로 분류해야 했을까? 아니,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녀의 일기를 읽었다고 믿고 있는데 이것도 교묘한 장치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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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6-0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부터 강렬하네요. 아니 에르노.
블랑카님의 첫사랑 고백이 좋은걸요. 결핍을 모아 만드는 과잉에 대한 이야기요.^^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마흔여덟이 되니까요.
완전할 수 없고 부족하고 불안하고 서툴고 불발이고 그런 점에서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블랑카님.^^

blanca 2012-06-03 22:5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덕택에 편안한 주말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욜 저녁에 갑자기 배탈이 난 건지. 지금은 몸이 영 안 좋네요. 고통을 항상 망각하고 모든 고통을 처음처럼 다시 아프게 겪는다는 저자의 말에도 공감이 갔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인가 봅니다.

다락방 2012-06-0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는 아니 에르노를 다시 읽어보려고 해요. 이젠 그녀의 소설(이라고 부를게요)을 이제는 소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블랑카님의 이 리뷰가 거기에 불을 당기네요. 리뷰가 무척 좋아요, 블랑카님.

blanca 2012-06-03 23: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저는 사실 이런 류의 책을 처음 읽어봐요. 정말 너무 솔직해서 책을 읽다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해요. 그런데 그 속에 어떤 진실에 대한 강력한 환기가 있는 것 같아서요. 참 묘한 책이에요. 모든 '척'을 벗어던지고 나면 그 속살이 어떤지의 유무를 떠나 그냥 어떤 공감이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놀라웠답니다.

Jeanne_Hebuterne 2012-06-0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러질 때 마다 읽었던 유일한 글.
좋이 죽으면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걸 알려준 점쟁이 같은 글.

blanca 2012-06-03 23:02   좋아요 0 | URL
쥬드님, 무슨 말씀이신지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저는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책을 통한 간접 소통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2012-06-28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9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돈 없고 감각 없던 대학생이 어버이날 선물을 사러 잠시 멈춘 곳은 백화점 정식 매장이 아닌,  엘리베이터 귀퉁이에 마련된 넥타이 가판대였다. 어머니뻘의 판매사원은 그런 나를 홀대하지 않았었다. 삼만 원짜리 넥타이들을 하나 하나 같이 판매하고 있는 와이셔츠에 대어 주면서 아버지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고려하여 여러 선택지를 제시해 주었다. 마침내 황금빛 바탕에 사선 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들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던 젊은 나는 아버지에게 선물을 드릴 수 있었다. 그 넥타이는 아직도 아버지가 가끔 매신다. 끝이 다 해어진 그 넥타이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행운을 가져 온다고 아버지는 믿고 계신다. 아직도 나는 그 백화점 판매 사원 아주머니의 정성과 존중이 그 넥타이에 주술을 발휘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구매력이 없는 사람에게 백화점은 어느 정도 위압적인 공간이다. 취업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백화점에 들어가 무언가를 내 카드로 사고 그 물품을 걸친 일이었다는 것은 그러한 공간에 들어갈 자격을 얻고 그 공간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착각이라도 얻고 싶었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생에서의 결핍은 물질 소비 욕구와 자주 혼동되고 그 혼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성적으로 권장된다. 소비하는 능력과 삶을 영위하는 능력은 같지 않을진대 자주 그런 것으로 오해되고 곡해된다.

 

행복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위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쇼핑,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다.
-조경란 <백화점 그리고 사물.세계. 사람> 중

 

 

불완전하며 부족한 나는 결코 사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 즐거움의 순간이 아무리 짧을지라도 그것은 확실하고 분명한 즐거움이다. 나는 구매했다. 여기에 필수적인 요건은 '나는 선택했다'라는 감정이다. 나는 선택했고 그것은 즐거움으로 남는다. 소비에 당위성은 없다. 소비의 이유도 소비의 기쁨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순간, 우리는 행복했다.

- 조경란 <백화점 그리고 사물.세계. 사람> 중

 

생일 선물로 받은 지갑이 마침내 구멍이 났을 때 솔직히 많이 기뻤다. 소비의 당위성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 나는 내가 가지고 싶었던 지갑을 죄책감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셈이다. 어떤 지갑을 살까, 이리 저리 재고 구경할 수 있는 나는 무언가를 선택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착각도 덤으로 얻는다. 드디어 구멍 난 지갑이 들어가고 새로운 핑크빛 가두리의 지갑이 손 안에 들어오자 기대 만큼 뛸듯이 기쁘지는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의 소비는 이윽고 잊혀진다. 나는 다시 나의 새로운 지갑에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진다. 심지어 내가 왜 이렇게 동전을 넣고 빼는 것이 불편한 지갑을 선택했는지 후회마저 밀려온다. 새로운 지갑을 살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지갑도 이모저모 살펴보고 했던 시간들보다 지금 새로운 지갑을 가진 내가 덜 행복한 것은 삶의 아이러니와 닮아 있다.  정말 필요한 것을 사도 구태여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도 결국은 비슷해지는 것을 보면 소비는 사기성이 농후한 행위인 것 같다. 현명한 소비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환상인 것인 지도 모르겠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회자되는 에밀 졸라가 19세기 중반의 백화점 안으로 들어간다. 미끼상품, 반품 조치, 세일, 문화강좌 등의 백화점 판촉전략이 1세기도 더 지난 오늘날의 백화점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백화점과 지역 소상인 간의 갈등, 지역 재래 시장의 붕괴, 판매원들 간의 살벌한 경쟁, 여성들의 쇼핑 중독, 물품 도난 등도 그러하다. 두 남동생을 데리고 몰락해 가는 큰아버지의 나사 상점에 도착하며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판매 사원이 되는 드니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류층 여성들의 백화점 소비 행태, 소유주 무레의 주도면밀한 마케팅 전략, 그 안에서의 인간 군상들의 갈등과 반목, 스캔들 등이 놀랍도록 생생하고 유려하게 그려지고 있다. 가난한 소녀 드니즈와 백화점 소유주의 로맨스는 그간 드라마에서 꾸준히 차용된 것이 아닌가 싶게 진부하기는 하다. ^^

 

 

 

여인들은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의 백화점을 찾았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예배당에서 보냈던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들을 그곳에서 죽여나갔다. 백화점은 불안정한 열정의 유용한 배출구이자, 신과 남편이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는 곳이며, 아름다움의 신이 존재하는 내세에 대한 믿음과 육체에 대한 숭배가 끊임없이 다시 생겨나는 곳이었다.
- 에밀 졸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2 중>

 

 

살롱에 모인 부인네들이 백화점에서 구입한 레이스를 서로 돌려 보며 백화점의 각종 상품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장면에서 남성들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한켠에서 백화점 소유주 옥타브 무레는 여자들의 마음을 얻어 세상을 팔아치울 수 있다는 자신의 신앙에 기대어 연적과사업적 제휴를 도모하고 부인네들의 남편 중 하나는 그 여인의 소비를 감당하지 못해 허우적거린다. 이 작품에서 남녀의 역할은 철저하게 소비자와 생산자로 대별되어 있다. 에밀 졸라는 그 접점에 여주인공 드니즈를 투입한다. 드니즈는 옥타브 무레의 무자비한 사업 확장과 소상공인들의 탄압에 제동을 건다. 그녀도 근본적으로는 재래 경제의 붕괴와 대량 생산, 소비의 혁명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간에서 스러져가는 가치에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고자 한다. 도식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여주인공의 행태는 이 작품의 한계이기도 하고 에밀 졸라의 이상이기도 하다. 에밀 졸라의 이상은 세기를 뛰어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다. 착각도 연민도 아쉬움도 진보와는 무관하게 반복된다는 것이 하나의 가르침 같기도 하고 삶 그 자체인 것도 같다.

 

백화점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레깅스의 색깔을 고르고 가판대에서 스타킹 두 개를 사도 소비는 소비다. 환각과 착각을 사고 파는 거대한 기만의 장이라고 해도 에밀 졸라의 말처럼 여기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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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1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이 책 진짜 궁금했는데 이미 사둔 에밀 졸라 책이 몇 권 있어서 차마....ㅜㅜ 에밀 졸라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인 것 같기도 하고....블랑카님 페이퍼보니 또 보관함을 들추게 되네요 ㅎ 루공-마카르 총서가 계속 출간되는 건지도 궁금하고....저도 이
책 보자마자 조경란의 백화점을 같이 떠올렸어요^^*

blanca 2012-05-15 21:54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혹시 <목로주점> 읽으셨어요? 저는 에밀 졸라 작품이 처음이에요. 추천해 주신다면 도전해 보려고요. 이 책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영화로 만들어져도 너무 근사할 것 같아요. 루공-마카르 총서의 11권이 이 책이라고 하는데 책 만듦새도 좋고 여기에서 계속 출판되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조경란 책에서 추천된 다른 백화점 관련 책들도 읽고 싶어요.

... 2012-05-16 00:1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목로주점>이 대기순위 1위에 있어요 ^^ 열린책들에서 나오자 마자 샀는데, 그 이후로 다른 출판사에서도 주르륵 나오더군요. 거의 대부분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목로주점>으로 에밀 졸라를 시작하지 않나요? 박찬욱 감독의 박쥐의 모티브가 되었다해서 <테레즈 라캥>도 많이 읽는 것 같긴 하던데... 제가 알기론, 에밀 졸라의 대표작을 말할 땐, <목로주점>-<나나>-<제르미날> 이렇게 추천하는 것 같아요. 모두다 루공마카르 총서에 들어가 있어서, 루공마카르 총서가 20권 전체는 아니더라도 대표작만이라도 나오면 좋겠어요. 제가 가장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마네와 모네를 모델로 했다는 <작품>인데, 여기까진 나와줘야 하는데...

다락방 2012-05-1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페이퍼 엄청 좋아요, 블랑카님. 처음부터 고개 끄덕여가며 읽었네요. 언젠가 블랑카님의 페이퍼들을 엮어서 책으로 한 권 내어도 많은 여성분들의 공감을 얻을거란 생각이 들어요. 전 에밀 졸라의 책은 패쓰하고 대신에 블랑카님의 페이퍼를 겟할래요.

그러고보니 블랑카님도 브론테님도 명품 페이퍼를 쓰시는 분들. 닉네임을 ㅂ 로 시작하면 명품 페이퍼를 쓸 수 있을까요? (이건 갑자기 무슨 엉뚱한 댓글 ㅎㅎ)

blanca 2012-05-15 21:5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ㅋㅋ 저는 제가 쓴 페이퍼 다시 읽으면 괴로워서--;; 책이 된다는 상상은 감히 못하겠어요. 여하튼 칭찬해 주시니 이런 기회로 또 한번 뿌듯해 보렵니다.ㅋㅋ

레와 2012-05-1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명한 소비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환상인 것인 지도 모르겠다.'는 블랑카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에게 소비의 기쁨은 뭔가를 사기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고민하는 그 찰나의 순간인 것 같아요.
그 순간이 영원이 되면 참 좋겠는데..^^;

blanca 2012-05-15 21:57   좋아요 0 | URL
레와님, 저도 그래요. 딱 돈 내고 사기 전까지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이것 살까, 저것 살까 고민하는 시간들과 함께요. 인생에 있어 모든 선택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moonnight 2012-05-15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명품페이퍼. 라는 다락방님 말씀에도 추천 ^^
대학생 블랑카님이 선물하신 넥타이를 여전히 소중하게 매시는 아버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요. 따뜻합니다.

에밀 졸라의 책은, 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에세이 비슷한 걸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조경란 작가의 백화점. 때문일까요?;;) 소설이었군요. -0-;;;;;;

blanca 2012-05-15 21:5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참 신기하게도 그 넥타이는 참 오래 오래 저희 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어요. 다른 선물들도 드렸었는데 유독 그것을 고르고 사던 저의 시간들과 그 판매사원 아주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답니다.

감은빛 2012-05-15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생은 아니지만 여전히 돈 없고 감각없고 게다가 사교성없고 고집까지 쎈
저는 백화점 판매원의 그런 친절도 사실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블랑카님의 경우 그분 덕분에 아버님께서 오래도록 아끼는 넥타이를 갖게 되셨군요.
사소하지만 그런 느낌의 물건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블랑카님 덕분에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12-05-15 22:01   좋아요 0 | URL
ㅋㅋ 감은빛님. 어떤 기억이었을까요? 다시 떠올리셨을 때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기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진 2012-05-1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 이라며 손가락을 치켜들래요. 블랑카님의 페이퍼는 언제 읽어도 알뜰살뜰(?) 꽉 뭉쳐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여자도 아니건만 처음부터 다락방님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답니다. 그래도 여성분들보다 공감은 덜 가네요. 다만 블랑카님의 글 실력에 감탄하며 물러납니다. 추천 백만개!

blanca 2012-05-15 22:03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고마워요. 시험도 끝나고 여유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프레이야 2012-05-15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늘 좋은 페이퍼 꾸욱^^
저는 문득 소설 '화차'에서 말한 그 거울이 생각나요.
뱀에게 다리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이는 착각의 거울, 결국 그 거울을 구매하려고 돈을 벌고 쓰고 아둥바둥.
정말 현명한 소비란 애초에 없었던 걸까요? 우리는 만족을 모른다는 점에서^^

blanca 2012-05-15 22:05   좋아요 0 | URL
아, 프레이야님 <화차>도 연결될 수 있겠군요. 마음이 허할 때 소비하고 싶어지는 욕구가 더 강렬해지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소비할 힘을 갖추기 위해 하루 하루를 또 소비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참 씁쓸하게도 느껴지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딜레마인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5-16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론테 님이 말씀하신 <작품>은 10년 전에 번역되었어요.아직 절판되지 않은 것 같은데...

재미있기로는 <제르미날>이 제일 낫더군요.단 광산노동자들의 참상을 처절할 정도로 사실주의 수법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이 읽으면 안 됩니다.

blanca 2012-05-17 09:41   좋아요 0 | URL
아, 혹시 그것 영화로도 만들어지지 않았나요? 어렴풋이 제럴드 빠라디유인가 그 코가 특이하게 생긴 남자 배우가 나왔던 영화로 기억에 남는데. 아, 좋은 책 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5-17 13:20   좋아요 0 | URL
예.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순오기 2012-05-3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서재 마실 왔어요.^^
서재 마실도 오랜만이지만 백화점 나들이는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요, 아마도 7`8년은 되지 않을까...

blanca 2012-05-31 10:0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우아, 정말요? 저는 몇년 전 전주에 결혼식이 있어 갔다가 거기 백화점 갔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백화점이 욕망을 자꾸 자극하고 추동하는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지 않도록 해야 겠어요.
 

아버지가 나의 아이를 업고 에스컬레이터에  서있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느낌들이 밀려왔다. 고마움, 미안함, 회한. 아니다. 사람의 감정은 언어를 초월해 있다. 언어는 기만과 착각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듣고 있다고 여기게 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를 세상에 내어 놓는 순간 부모와 아이는 오해와 상처 주고 받기를 시작한다. 그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지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조금씩 좁아지다 만나려는 순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또 어긋나버리고 만다. 아버지의 삶은 온전히 내 입으로 이야기될 수 없고 오류없이 내 머리로 이해될 수 없으며 완벽하게 내 가슴으로 공감될 수 없다. 평범한 우리들은 부모의 입에서 얘기되는 당신들의 이야기로 재창작된 삶을 한 덩어리로 그저 오해하고 곡해해서 당신들을 일부나마 나누어 가진다.

 

 

 

 

 

 

 

 

딸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의 지난 삶을 복기하는 과정은 더없이 건조하고 담담하다. 문화의 차이일까? 아니면 저자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삶과 아버지를 언어로 구조화하기 위한 의식적인 거리 두기일까? 아버지의 세계와 딸이 이룩해 놓은 세계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노동자 아버지가 낳은 작가 딸은 아버지의 삶을 시처럼 추억할 수 없다. 서사화할 수도 없다. 그것은 파편화되고 객관화되기 위하여 대기 중이다. 자식이 객관하려는 부모의 삶은 역설적으로 더 처절하고 처연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작업을 아니 에르노는 해내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도저히 공감할 수 없기도 하고 전부 다 이해해 버리고 싶기도 하다.

 

 

나는 이 글을 천천히 쓴다. 일련의 사실들과 선택들 가운데에서 한 생애의 의미 있는 줄기를 드러내려 애쓸 때, 나는 점차로 아버지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도식이 자리를 온통 차지해 버리고, 추상적인 생각이 제멋대로 달려가려 하는 것이다. 만약 이와는 반대로 추억의 이미지들이 미끄러져 들어오게 놔두면, 난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 그의 웃음과 그의 거동을 다시 보게 된다. 그는 내 손을 잡아 놀이 장터로 데려가고 , 놀이 기구들은 날 오싹하게 만들며,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어떤 조건의 모든 지표는 내게 더 이상 중요하기 않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나의 개인적 관점이라는 덫을 떨치듯이 빠져나온다.
-p.47

 

 

여기에서 그녀는 아버지와 공유했던 아름다운 추억에 잠기는 것이 아니다. 남자의 자리에서 딸은 걸어 나온다. 자식을 먹이고 가족을 혹독한 풍파에서 사수하려 버둥거렸던 분투 속에서도 그녀는 슬몃 다리를 뺀다. 반은 상인이고 반은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딸의 가방끈이 길어지고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서 온 남자와 만나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반은 두렵게 반은 경의에 차서 지켜 본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거나 아버지의 뻣뻣하게 굳어 가는 몸을 부여잡고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모습도 아니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부럽기도 했고 그럴 수 없어서 안도도 됐다.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곤 했다. 빗속에서도 땡볕 속에서도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p.126,127

 

여기에서 그녀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와의 관계에 발을 담근다. 빗속에서도 땡볕 속에서도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던 아버지. 아버지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함으로써 아버지의 삶의 이유와 의미를 만들어 준 딸. 당신들은 말한다. 네가 잘 살아야 네가 행복해야 그게 효도다. 나는 되뇌인다. 내가 성공하고 내가 잘 살면 그거면 된다. 이 말에는 무수한 함정이 있다. 관계로 맺어야 하는 소통이 나의 삶으로 대치되어 버린다. 쉽기도 하고 낭패이기도 하다. 사실은 이런 말들의 눈속임일 지도 모른다. 나한테 와라. 내 손을 잡아 주어라. 나를 안아줘라. 내가 너를 낳고 키웠으니 그 정도는 해 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엄마 아빠가 제일 좋아. 하늘 만큼 땅 만큼. 노인이 되어도 작별을 하는 순간이 와도 그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순하고 유치한 말이 때로는 가장 진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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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05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이 멋진 글에 첫 추천은 접니다 ^___^

blanca 2012-05-06 23:33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사진 보고 또 깜짝 놀랐잖아요. 사진이 바뀔 때마다 이진님인가 하고 유심히 보고 그런갑다, 착각하고 그러는 단순한 저입니다.

하늘바람 2012-05-0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하고 갑니다

blanca 2012-05-06 23:33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추천은 언제나 힘이 나지요. 감사합니다.

cyrus 2012-05-0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 블랑카님의 페이퍼를 보면서 읽어보고 싶은 느낌이 들었어요. ^^
이틀 뒤면 어버이날이기도 하고요

blanca 2012-05-06 23:34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오늘 그래서 저도 효도하고 왔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아쉽고 후회되는 얘기들이 쌓이는 것 같아요.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는요.

다락방 2012-05-0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블랑카님이 인용해주신 이 문장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사야겠습니다. 아니 에르노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요.

blanca 2012-05-07 22:54   좋아요 0 | URL
이 책에는 거의 감정에 대한 얘기가 없어요. 그런데 글의 갈피짬마다 왜이리 가슴이 스산해지고 슬퍼지는지요. 그냥 아버지 얘기를 하면 그렇게 되는 걸까요. 예전 대학 동기들과 모인 자리에서 누가 한 명 그냥 아버지,라고 했는데 다 눈이 벌게졌던 기억이 나요. 다락방님은 어떻게 읽으실 지 궁금합니다.

마녀고양이 2012-05-0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찌 부모님을 알 수 있겠어요..... 문득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요즘 깨달은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제 마음 속의 부모님과 화해하는거라는 겁니다. ^^

진짜 부모님과 제 내면의 부모님은 동일하지만, 다른 사람이겠지요. 그리고 전,
둘 다 사랑합니다. 지금 화해 중이거든요,, 큭큭.

blanca 2012-05-08 21:48   좋아요 0 | URL
그죠, 마고님. 부모님 인생을 머리로 판단하고 옳다, 그르다, 그랬어야 한다는 등의 치기를 부렸던 지난 날들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냥 저를 이 세상에 낳아 주시고 키워 주신 것만으로 감사하려 합니다.

후애(厚愛) 2012-05-08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이요~!! ㅎㅎ

blanca 2012-05-08 21:48   좋아요 0 | URL
후애님, 감사합니다.^^
 

박진영이라는 뮤지션은 강해 보인다. 에너지도 넘치고 삶의 대부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끌고 수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무기력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고 여기는 요즈음 <힐링캠프>에서 그의 극도로 엄격하고 절제된 일과를 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기상 시간, 조식 시간, 스트레칭, 발성 연습 등의 자기 자신만의 일정이 조금 엽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로 강박적인 부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음악을 팬들 앞에서 오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관리란다. 이른 나이에 성공적인 입지를 구축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니 더더욱 그의 앞에서 그의 삶은 통제 가능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주무를 수 있는 유연하고 호의적인 것으로 주어진 것 같았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자선을 행하고도 남는 그 1%의 결핍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찾아 헤매는 대목이 공교롭게도 읽고 있던 책과 겹쳤다.

 

 

 

이 책은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다. 대형 서점에서 이제 막 집으로 가려던 참에 들춰 보고 돌아섰다 다시 돌아가 손에 쥐었다. 육아서라면 꼬맹이가 자고 먹고 하던 시절 줄까지 그어가며 정독했던 기억에 물렸던 와중이었다. 육아서를 읽는 순간 만큼은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이 왔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사실 '나'의 개인적인 자존감을 높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가능하다. 세상에 하나의 인간, 하나의 삶을 온전히 선물하는 일이 양육이라고 포장한다면. 하지만 양육은 온전하게 자신과 삶을 주체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어른도 불가하지만) 작고 무기력한 생명을 보살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고 자는 게 힘들어 두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버둥거리며 들썩거리는 아이를 잠까지 인내하고 안내해야 하고 밤에 열이라도 나면 밤을 꼬박 새우며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고 해열제를 먹이다 여차하면 병원까지 업고 뛸 수 있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힘듦에는 달콤한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아이를 세심히 보살피고 최선을 다해도 어느 날 아이는 갑자기 중병에 걸려 나의 마음을 타들어가게 할 수도 있고 사춘기의 아이가 '엄마가 대체 나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집을 나갈 수도 있다. 부모가 되는 일은 인간이 삶을 통제할 수 있고 무언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찬란한 기만이었는 지를 뼈아프게 깨달아 가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우리가 격하고 방어적인 사람이 되는 이유는, 엄마로서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없고 살아가면서 언제든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아찔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p.73

 

네 아이의 엄마이자 소아과 의사인 저자 메그 미커는 이제 동양에서 보는 기준으로라면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녀는 육아서를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나이에 접어들어 삶 속에서 깨달은 것들을 얘기해 주고 싶었던 것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주 놀라웠다. 육아서 안에서 삶에 대한 통찰과 위안을 얻는 일은 드물고도 기쁜 일이다. 내가 요새 자꾸 느끼게 되는 나의 무기력함이 비단 나의 '엄마'라는 위치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자 좀 덜 의기소침해졌다. 항상 궁금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특히 삼십 대 중반을 넘어가면 다른 사람들은 삶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통제감을 느끼는지. 박진영은 세속적인 기준에서라면 성공한 축에 속한다. 게다가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로 그러한 일들을 이루었다. 무언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젖혀 둘 수 있을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그런 그가 갑자기 삶에 있어서 철학적이고도 근원적인 고민을 화두로 던지고 싶어한다. 진행진들은 난감해한다. 예능 방송이 무거워지는 건 부담스럽기도 하고 겁나기도 하는 일인가 보다. 괘념치 않고 혼자 도취되어 자못 철학 강연처럼 분위기를 쇄신해 보려는 그의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했다.

 

뒤돌아 보면 나의 계획대로 된 일들보다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일이 풀리고 나의 좌표가 바뀐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예증이기도 하고 박진영 말마따나 그러니 편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특히 자식과 관련된 일에서는 더더욱. 아이는 나의 못다한 꿈의 대리만족을 위해 내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상처를 기우기 위하여 동원되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나는 아이의 꿈을 침범할 수도 침범해서도 안 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나는 무기력하고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최선을 다해서 살게 된다는 것. 작은 것들을 통제하고 나를 관리하는 것은 큰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고 희망이다. 이 책의 저자 메그 미커는 희망을 품는 일이 통제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역설 같기도 한 그녀의 얘기가 와 닿았다. 무언가를 다 나의 통제 권한 속에 몰아 넣기 시작하면 나는 모든 것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계속 기분이 안 좋았나 보다.

 

고등학교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나도 그 아이도 어떤 얘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스무 살을 기다리던 열일곱은 이제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 앞에서 함께 눈물을 흘린다. 말하고 들어주며 잠시 친구 하나면 나의 삶의 모든 것들을 다 쥐락펴락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시간들의 느낌이 흘러들어오는 듯했다. 세상이 주먹 안에 들어오는 작은 공만했던 시절이 그립기도 했고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 있는 삶과 시간들이 어찌 그때보다 더 폄하되고 있는지 슬프기도 하고 그것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무기력하게 느끼지도 않고 희망과 꿈을 포기하지도 않지만 그 모든 것을 내가 어쩔 수 있다고 자만하거나 기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아, 살면 살수록 인생은 알 수도 없고 어렵기만 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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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5-0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도 그래요. 살수록 인생은 어렵고 알 수도 없고.
전 어제 박진영 볼까하다가 그만 sbs '안녕하세요'를 봤어요.
재밌더라구요.ㅎㅎ
어찌보면 누구나의 삶이든 들여다보면 일면 빚좋은개살구가 아닐까 싶어요.
살면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마음을 비우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쉽지 않지만 노력하려구요.^^
엄마의자존감, 좋은 책 같아요.^^

blanca 2012-05-01 23:0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도 원래 '힐링캠프' 잘 못 보는데 어젯밤은 정말 우연히 보게 되어 완전 몰입해서 봤어요. 제 집 앞에 바로 중학교가 있어 여러 풍경들을 많이 보게 되고 아이도 커가고 하니 참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렇게 아이 생각을 하다 보면 또 '나'는 어디로 간 건가 싶기도 하고요. 봄이 왔다고 좋아했더니 바로 여름 분위기라 좀 지치기도 했나 봐요.

cyrus 2012-05-0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지나간 과거의 인생을 그리워하면서도 곧 다가올 미래의 인생 앞에서는
복잡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요, 결국에는 블랑카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인터넷 기사에서 본 건데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균형잡힌 식단처럼
과거, 현실, 미래를 적절하면서도 충실하게 살아라고 하는군요.
너무 좋은 과거만 바라보는 것도 않 좋고, 그렇다고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고 즐기는 것도 좋지 않고,
그리고 너무 먼 미래에만 바라보는 것도 좋은 것도 아니고...
인생이라는 커다란 시간 자체를 균형적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지만,
일리가 있는건 같아요. ^^

blanca 2012-05-01 23:09   좋아요 0 | URL
cyrus님은 제가 그 나이 때 몰랐던 것들을 깨알 같이 알고 계셔서 부럽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앞으로만 달렸던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고 후회되기도 해요. 인용해 주신 기사 참 좋아요. 저는 요새 과거와 현재에 너무 끄달리고 있나 봅니다.

Jeanne_Hebuterne 2012-05-0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도 어제 고등학교 때 벗을 만났어요. 둘이서 카페에 앉아 허니 브레드를 먹으며 `우리의 신세한탄도 엄밀히 말하면 반가사유에 들지 않겠니'라고 자조했는데, 이런 말을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 누구도 내가 이렇게 살아있을 거란 건 몰랐을걸.'
전 언젠가 그녀에게 `너 지금 교복 입고 나 만나러 나오면 백만원 준다' 라고 말했고 스무살의 그녀는 나에게 `미쳤어'라고 답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걸 할 수 있대요. 오히려 멀어진 지금, 시차가 생긴 시각.
'돈 필요하냐'라는 나의 물음에는 깔깔 웃으며, 둘이서 문제는 늘 결핍에서 오는 것. 이란 말을 했어요. 이렇게 보면 늘 나란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누가 무엇을 하여도 아무 상관 없이 나의 결핍에서만 모든 게 생겨나는 것 같아서요.
블랑카님의 이 글을 읽으니, 통제와 풀어짐의 경계에 계신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죔쇠를 더 조일까. 조인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이런 느낌이오.

어차피 저는 하루하루를 굉장히 열심히 살았으되 인생 전체를 막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 어떤 답도 들은 적이 없으니, 블랑카님의 마지막 글의 바램-나만 그런 게 아니었으면-에 있어서 더한 1인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주셔요! 쓰고 나니 전혀 자랑도 아닌데 자랑스러워하는 실수를!

blanca 2012-05-01 23:15   좋아요 0 | URL
쥬드님 ㅋㅋ 하루하루를 굉장히 열심히 살되 인생 전체를 막 살고 계시다는 말이 왜 이리 부러운지요 ㅋㅋ 쥬드님도 어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셨군요! 교복이 갑자기 그리워집니다. 맞아요. 객관적인 조언도 결국은 나의 결핍을 가장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완전해지거나 놓아버리지 않으면 항상 가지지 못한 것들에서 인간은 자유로워질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저의 이 우울함이 일정한 주기를 가진 것인가, 아니면 나이 탓인가, 어떤 상황 때문인가,를 전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어 어리둥절하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5-02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을 통해 나의 못다이룬 꿈을 이루게 해야겠다며 무리수를 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제가 아는 50대 초반의 남성은 부모가 강요해서 자신은 원치도 않은 대학의 학과를 나왔는데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할 때 한을 품고 해요.50이 넘었는데도...어찌 그 분 뿐이겠습니까...
자식을 죽이고 자살한 사건을 아직도 동반자살이라고 쓰는 기자들도 있고요...자식을 소유물로 보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만연되었나를 보여주는 예입니다.뭔가 깨어있을 것 같은 고학력의 젊은 부부들도 자식성향 무시하고 사교육폭탄을 안겨주는 사람들도 많고요...

blanca 2012-05-02 23:15   좋아요 0 | URL
노자님,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더라고요. 자식은 분명 세상에 나왔을 때 나와 분리된 존재인데 자꾸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의 연장인 것처럼 느껴져서요.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성장하고 가정을 이루어 독립해도 품 안의 자식으로 여기는 정서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쿨하고 너그러운 부모가 되고 싶은데 정말 어려운 과제인 것 같습니다.

jamanta 2012-05-02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소개를 읽고 나니 어서 저도 이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이제 주문하러 갑니다~

blanca 2012-05-02 23:17   좋아요 0 | URL
jamanta님 안녕하세요. 이 책은 육아서라기보다는 그냥 누군가가 곁에 앉아 공감해 주고 치유해 주려는 다정다감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다만 말미에 이르러 약간 종교적인 색채가 있어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워요.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저한테는 참 좋은 책이었답니다. jamanta님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2012-05-03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3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8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9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3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2-05-0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진영이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려고, 하니까,, 진행자들이 난감해했다는 부분 보고 ㅋㅋ 프로보면서 그런 맥락도 읽으시는군요 ^^
엄마의 자존감을 서점을 나서려다 다시 돌아가 쥐고 왔다는 부분도 ㅎㅎ 상당히 극적인 만남인 거 같아요. 그런 책들이 있더라고요. 지천명이면 50살인가요? 그 작가의 연륜을 몹시 듣고 싶기도 하네요 ^^

2012-05-03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2-05-06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인생은 살아갈수록 어렵고 힘들고.... 가끔 왜 나에게만? 하는 원망도 생기고요. 특히 아이들이 클수록 고민꺼리도 늘어갑니다. 엄마의 자존감, 아이들의 자존감 키우기 어려워요. ㅠ

blanca 2012-05-06 23:32   좋아요 0 | URL
세실님도요? 저에게 세실님은 부러움의 대상인걸요. 가장 아름다운 직업, 사서님이시고 게다가 공부도 하시고 하루 하루 발전해 나가시는 세실님이잖아요. 아, 저는 여섯 살밖에 안된 딸 두고서도 키울수록 어렵다는 말 실감한답니다.^^ 어렸을 때는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편했는데 이제 커가며 여러 가지로 혼란이 오네요. 사춘기가 되고 성인이 되면 또 어떤 과제들을 엄마한테 안겨 줄지. 한편으로 참 이쁘면서도 그 이쁜 만큼 책임이 따르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