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되게 재미있어."라고 얘기했던 '너'와 나는 멀어졌다. 온갖 얘기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우연히 다시 만난 우리는 예전의 관계가 이미 화석이 됐음을 씁쓸하게 깨닫고 비껴갔다. 그래도 나는 또 그 시절의 '너'가 있어 참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추억한다.

 

지금에 와서야 얘기하는 거지만 나는 최근까지도 <목로주점>이 아니라 <목로주검>인 줄 알았다. 파리 외곽의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소설이라는 것도 몰랐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같은 상류층 여성들의 욕망을 레이스 결처럼 섬세하게 다루었던 에밀 졸라가 과연 하층민들의 삶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함도 있었다. 오해로부터 시작한 독서는 오독으로 마감했을런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 역자의 해설을 읽으며 눈물이 고였다. 왜 그랬을까? 어떤 이야기는 작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작가에게 파도처럼 덮쳐와 그 작가는 그저 받아쓰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진실의 자장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목로주점>의 제르베즈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 이제는 만나지 않는 친구가 나에게 <목로주점>을 각인시켜 준 일은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우리가 다시 여고시절처럼 마음 속의 모든 이야기들을 쏟아낼 수는 없겠지만 수많은 오해들과 서로에 대한 오독을 떠나 그 아이를 만나 얻은 것이 많다. 꼭 현재 진행형의 소통이 아니더라도 찰나의 소통은 많은 것을 남긴다.

 

 

 

 

 

 

 

 

 

 

 

 

 

 

 

 

 

사람들은 찬양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사람들은 칭찬했다, 사람들은 비난했다. 격찬과 비난은 하나같이 격렬했다...... 그런 가운데 작품은 점점 위대해져 갔다.

- <목로주점> 역자 해설 중

에밀 졸라의 무덤 앞에서 읽은 아나톨 프랑스의 조서. 역자의 얘기를 빌리자면 플로베르에게 헌정됐다는 이 작품은 현대적 대량 인쇄의 문을 연 최초의 소설이라고 한다. 4년동안 91판을 찍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선풍적 인기를 끌었는지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작가의 서문은 이 작품이 가져온 파급력을 암시한다. 노동자의 은어, 욕설 등이 난무하는 <목로주점>은 사회적으로 수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졸라는 자신을 변호하는 대신 작품이 자신을 변호해 줄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의 신뢰는 시간의 검증을 받고 마침내 실현된다. 극도의 가난 앞에서 파멸하는 세탁부 제르베즈의 이야기는 환경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의 가능성을 무력화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꿈이 어떻게 환경과 운명에 의하여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지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로서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실적이고 조금은 비관주의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제 모든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또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그녀는 길을 걸으며 옛꿈을 떠올리곤 했다. 일하고, 빵을 먹고, 자기 집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얻어맞지 않고, 자기 침대에서 죽는 것. 이제 그녀는 꿈을 넘어섰다.

 -p.198

 

전남편에게 버림받고 아이 둘을 홀로 건사해야 했던 제르베즈는 함석장이 쿠포와 결혼하여 구트도르 가에 자신만의 세탁소를 가지게 된다. 일하다 지붕에서 떨어진 남편을 대신하여 실질적인 가장이 된다고 하여도 그녀는 "양처럼 온순했고, 빵처럼 부드러웠다." 굶지 않고 자기 집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얻어맞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만 남은 것은 이제 자기 침대에서 죽는 최후를 가지는 것이었다. 꿈을 넘어섰으니 나머지의 소망은 차라리 소박하고 쉬운 것이었다. 삶은 때로 무척이나 관대하게 우리를 대접해 준다고 착각하게 한다. <목로주점>에서 술에 절인 자두를 남편과 연애 시절 나누어 먹던 제르베즈는 자신이 그 <목로주점>에서 만취한 남편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스스로가 슬픔 때문에 취하게 될 미래를 미처 알지 못했다. 부지런하고 명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를 즐겼던 이 아름다운 금발의 생활력 강한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생의 파고를 용기 있고 끈기 있게 헤쳐 나간다. 순박하고 성실한 대장장이 구제와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다. 이 투박하고 거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그저 민들레 꽃을 그녀의 바구니에 던져 넣어 바구니에 민들레 꽃이 가득 차게 되는 장면은 어리석고도 아름답다. 자잘한 꿈들이 실현되는 나날들에 취할 무렵 에밀 졸라는 잔인한 삶의 면면을 들이밀기 시작한다. 제르베즈의 남편 쿠포는 고주망태가 되어 가고 지붕 위에서 아내와 딸을 위하여 위험을 감수하던 지난 날들을 자조하기 시작한다. 그는 제르베즈를 파먹고 살기 시작한다. 여자는 점점 지치기 시작하고 무기력과 무능력에 포섭되기 시작한다.

 

전락이 이 정도에 이르면,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 옛날의 긍지도, 애교도, 애정과 예의와 존경에 대한 욕구도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어디를 차여도, 앞을 차여도 뒤를 차여도 도무지 느낌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무감각해졌고, 무기력해졌다.

-p.526,527

 

눈이 오던 날, 그녀는 허기를 채우기 위하여 거리로 나갔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남편은 일을 하지 않았고 물건을 잡혀 술을 마셨고 그녀를 때렸다. 딸 나나는 집을 나가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된다. 더이상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그녀는 자신의 몸을 팔기로 하고 남자들을 붙잡는다.  하필 여기에서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 같았던 구제를 만나게 된다. 그녀가 장미꽃 같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구제는 늙고 망가진 그녀를 서글프게 응시한다. 구제의 수염에 데이지 꽃잎처럼 달라붙는 눈발에 대한 묘사는 그가 그렇게도 억제하려 했던 그 고결한 그녀에 대한 외경, 사랑의 덧없음을 추억하게 한다. 제르베즈의 소박했던 그 마지막 꿈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자기 침대에서 죽는 것. 그런데 그녀의 이 소망이 갑자기 섬뜩하게 느껴졌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누구나 그럴 거라고 미처 의심도 의문도 가져보지 못하는 명제에 대한 환기는 불편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아니 그 나머지의 것들. 그 최소한의 소박한 소망들도 내가 죽는 그 날까지 사수되리라는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갑자기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이 차 올랐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읽기가 괴로웠다. 경제적인 약자가 미덕까지 망실한다는 것은 최악의 가정임을 안다. 그런데 그 가정이 때로 현실이 되는 정경이 현실이다. 에밀 졸라는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가지고 왔기에 그렇게도 공격을 당했었나 보다. 작가는 감히 질문할 수 없는 것들을 질문하고 답을 내어 주지는 않는다. 역자의 해설에서 인용된 바르트의 얘기로 귀결된다. 진정한 문학적 참여는 문제 해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증언과 진술에 있는 것이라는 것. 그런데 이러한 문학적 참여는 이해와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또한 절망을 함께 가지고 온다. <목로주점>을 읽고 한없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대안과 해법과 희망 대신 적나라한 절망과 체념에 대한 보고서. 쉽게 읽고 힘겹게 덮는다. 내가 오독했던 제목은 한편 유용했나 보다. 온기 없이 식어간 목로주검. 넌센스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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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9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0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12-06-0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목로주점 읽으셨네요. 에밀 졸라 정주행중이신가요? ^^
이전 페이퍼에서도 말씀드렸는데, 저도 저 열린책 두 권을 사두고선.. 흑.

목로주검인줄 아셨다고 하시니 떠오르는 이야기- 프랑스어 원제목에 딱 맞으면서 작품을 제대로 대표할만한 영어단어가 없더래요. 펭귄클래식에선 Drinking Den 이라고도 번역했는데 그것도 마땅찮게 생각했던 번역가들은 제목을 따로 번역하지 않고 L'Assommoir를 영어번역본에도 그냥 쓴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선 목로주점으로 굳어진듯 하죠?

blanca 2012-06-10 22:55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저 또 지금 열린책들 세계문학 두 권 주문해서 받았는데 한 권 활자가 너무 작아서 시작을 못하겠어요. 포기할까도--;; 에밀 졸라는 사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처음인데 너무 재미있게 일어서 연거푸 읽게 되었어요. 브론테님 얘기처럼 저도 <작품> 읽어보고 싶어요. <나나>를 읽어볼까 생각중이랍니다.

아이리시스 2012-06-1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블랑카님이 <목로주점> 되게 재미있어, 라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요. 아무도 제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거든요 ㅜㅜ 어제 염상섭의 <삼대>를 들추다가 에밀 졸라가 생각났는데 '프랑스 자연주의'에 갇히는 그 사조가 좀 멀게만 느껴졌는데 브론테님 말씀도 그렇고 우와, 그래도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역시-_-;(한숨) 사놓고 못 읽은 열린책들 세계문학 천지라서요.. 추천 누르고 쓸어담고(!) 늘 그렇듯 또 미루고..흑..

blanca 2012-06-13 23:3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은 진심 재미있어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조금 더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고요. 저도 지금 사실 열린책들의 한 책을 결국 포기하고 보내려고 생각중이라 아이리시스님 마음 공감갑니다.^^;;

2012-06-2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로주점> 아마 평생가야 관심밖의 책이었겠지요. 이 페이퍼를 접하지 않은 저라면.. 근시일 내에 읽지는 못 하겠지만, 마음 속에 적어두었어요. 그나저나 <목로주점>을 보며, '너'가 생각나는 것. 그게 바로 그리움이겠지요.^^

blanca 2012-06-29 10:35   좋아요 0 | URL
섬님, 아주 나중에라도 읽어보세요. 일단 재미있더라고요. 그 친구는 제가 고등학교 때 참 좋아했던 친구인데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 고정되어 있기를 바랐나 봐요. 그 시절의 그 친구가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