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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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교수대 발판에 설 때에도,
10분의 1초 만에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떨어질 때에도,
그의 손톱은 자라나고 있을 터였다.  
-<교수형> 중-

조지 오웰이 서 있는 지점이다. 꼬챙이처럼 마른 힌두인 죄수가 교수대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웅덩이를 피하려고 몸을 피하는 장면에서 그는 문득 깨닫는다.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식민제국주의 통치의 일원으로 복무하던 관료가 불현듯 피통치자의 생명의 무게를, 그 나름의 존귀함을, 하필 그 숨통을 끊어버리려는 찰나에 저릿하게 깨닫게 되는 이 지점에서 조웰은 자신의 삶이 다할 때까지 고통스럽게 서성거리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그의 사서 했던 방황과 가책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그의 글을 끊임없이 읽게 된다.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을 소원했던 그의 에세이들은 그의 소망 만큼 대부분 정치적 비판 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고 재치있고 직설적인 문체들로 독자들을 흡입하고 있다. 식민지 버마에서의 경찰 생활 동안 겪은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회고와 참회, 이후 이어진 자발적 노숙자 체험의 절절한 르포식 보고, 파시스트 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참전한 스페인 내전에서의 교묘한 혁명세력의 탄압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 맹목적 민족주의에 대한 예리한 해부 같은 정치적이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아내가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을 필요없이 아이들을 들처업고 따라가 마당에서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물속의 달''이라는 상상 속의 펍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다. 오웰은 그러한 펍이 실재한다고 한껏 착각하게 만든 다음 독자에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여 김빠지게 만드는 익살도 부린다. 오웰의 이 기발한 상상의 펍은 후에 동명의 비슷한 분위기의 대규모의 펍체인 사업을 낳게 했다고 한다.  

이 책의 표제작이가도 한 <나는 왜 쓰는가>와 위선과 가식으로 현실의 정치의 은유처럼 오염된 글쓰기를 비판한 <정치와 영어>가 사실상 이 에세이 선집의 하이라이트로 보여진다.  

   
 

명료한 언어의 대적은 위선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대듯 말이다.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산문의 경우, 단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단어에 굴복하는 것이다. 

 
   

 

서평과 문학적 평론에 대한 그의 시니컬한 의견도 인상깊다. 그는 생업으로서의 서평쓰기에 꽤나 곤역을 치른 모양이다. 모든 문학적 판단은 본능적인 선호를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그의 지적은 결국 내가 어떤 책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를 읽는 이에게 교묘하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자책을 끌어 내었다. 어떤 책에 대한 진정한 반응은 주로 '나는 이 책이 좋다'거나 '나는 이 책이 싫다'는 것이란다. 그 뒤에 따라붙는 것은 합리화라고 못박는다. 어느 정도 근저에 있는 그 불편한 진실을 저며내어 보여 준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조금 서운한 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간디에 대한 소견>에서 마하트마 간디를 인본주의, 즉 인간을 택하지 않은 내세적 이상주의자로 조심스럽게 비판한 대목은 갑자기 정수리에 찬물을 맞은 기분이었다. 오웰은 내세적 이상과 인본주의의 이상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하느님 아니면 인간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혁명은 인간을 택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대목이나 결국 이 생에서의 인간들의 삶이 개개로서 존귀함을 인정하자는 그 단순한 정의가 종교의 내세관에서 어떻게 비틀어지고 묵과되는 지에 대한 예리한 지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종교 그 자체를 싸잡아 비판한다기 보다는 그것을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현실에서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숙명적인 것으로 감내하도록 조장하는 비열한 책동과 인간중심 혁명을 대치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그의 시선은 언어의 외피를 뚫고 진동하는 인간의 그 허약한 위선, 어리석음을 걸러내고 만다. 마치 내가 들킨 기분이다. 결국 언어와 그 사람의 내면이 조우하는 지점에서 글이 나와야 한다. 자신의 사상과 괴리되어 저만치 현학적이고 위선적인 어휘들로 대충 감침질한 어휘들의 향연을 자신의 글로 내세우는 것은 비열하고 패악적인 정치인의 자기 과시와 동떨어진 일이 아니다. 오웰은 더 나아가 이러한 언어의 타락이 정치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연쇄 반응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언어의 체에 그것들을 통과시키게 된다. 전체주의 세력들이 끝까지 언론 장악을 포기하지 못하는 대목만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언어의 부정적인 영향력에 대한 직시는 그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하나의 경고지점이 된다. 오웰은 언제나 자신의 글이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그 자신이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라고 고백한다. 사회적 비판의식이 결여되고 현실과 괴리된 글쓰기가 가지는 생래적 한계는 결국 그것이 우리의 삶과 유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인 존재이며 정치와 떨어져 일상을 영위하는 영광을 누릴 수 없다. 시장에 가서 오천 원이 넘는 대파 한 단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아줌마는 '정치'를 떠올린다. 오웰이 비단 정치적인 시대에 태어난 작가들의 부책감을 토로했다고 하더라도 오늘 이 시대가 정치적이지 않다고 항변할 도리가 없는 것을 보면 결국 우리는 모두 정치적인 시대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숙명인가 보다. 그러니 모든 글쓰기 또한 정치적인 인식이나 비판,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유독 불편한 사람이 있다. 잊어 버리고 묻어 버리고 싶은 것들을 자꾸 끄집어 내어 시선을 돌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에도 자꾸 찾게 되는 이상한 마력을 갖춘 사람은 도저히 떠날 수가 없다. 그 사람의 매력은 깐깐하고 남에게 교묘하게 세력을 행사하려 조언을 남발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주저없이 먼저 끄집어 불쑥 보여주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충고는 값지다. 자신을 먼저 무장해제하고 악수를 권하는 상대에게 우리는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다. 조지 오웰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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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10-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관심 갖고 있는 책이에요.^^

blanca 2010-10-05 21:21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대박 감기 앓으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솔직히 아주 몰입하지는 못했습니다. 분량이 많고 아무래도 정치적인 글들이 주라 책장이 팍팍 넘어가지는 않더라구요.

순오기 2010-10-05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조지 오웰에 대한 명쾌한 소감이 멋지네요.
나는 제목만 보곤 '글쓰기 안내서' 같은 책인줄 알았어요.ㅋㅋ
조지 오웰의 매력을 다시 확인하게 되네요. 추천 꾸욱~~

blanca 2010-10-05 21:2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조지 오웰에 왜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토록 열광하는 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10-0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조지오웰은 쉽지 않아요.
님의 리뷰도 쉽진 않아요.

하지만,먼저 자신의 손을 내미는 사람에 대응할 수 있는 건 두가지죠.
그 손을 맞잡거나 거부하는 것.
그게 조지오웰이고,blanca님이라면 거부할 수 없겠는 걸요~^^

blanca 2010-10-05 21:22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제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제 리뷰가 쉬워졌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나봐요. 조지오웰은 쉽지가 않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10-0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 안 그래도 만지작대고 있었는데,
읽어야겠는걸요..... 아아, 이 책에 대한 단상 정말 맘에 쏙 든다...
거기다 조지 오웰의 의견 자체가, 너무나 공감되네요.

어릴 때 조지 오웰에 미쳐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든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blanca 2010-10-05 21:2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구입하셨어요? 조지 오웰에 미쳐있던 시절이라, 너무 멋있잖아요. 저는 이십 대 때 책을 너무 안 읽었어요. 참 후회됩니다.

poptrash 2010-10-05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버튼을 클릭하고 싶어하는 손가락을 외면하고 있는데 이런 글을 올리시면 orz...

blanca 2010-10-05 21:23   좋아요 0 | URL
poptrash님, 기똥차게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승주나무 2010-10-0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출판사에서 조지 오웰 에세이가 출간되었네요. 최근 가장 애정을 갖고 탐독한 작가가 조지 오웰입니다. <1984>, <카탈로니아 찬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도 챙겨 읽었죠. 조지 오웰로 인해서 나의 언어가 더욱 정직해졌다는 점에서 저는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장 사서 봐야겠어요~ 블랑카 님께 땡스투를 바칩니다^^

blanca 2010-10-06 21:55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 반갑습니다.^^ 저는 정작 조지 오웰의 소설들을 읽어보지 못했어요. 그러니 오웰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도 감히 비판할 깜냥도 못됩니다. 승주나무님의 땡스투라니, 감격스럽니다.^^;;

like 2010-10-06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다보면 조지 오웰이 시대를 뛰어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고리오 영감에 이어서 좋은 책들을 멋있게 소개해 주시니 좋네요~

blanca 2010-10-06 21:57   좋아요 0 | URL
like님, 저도 그 책 읽고 정말 뭔가 한데 툭 맞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내가 누리는 무언가가 빚지고 있는 부분을 그렇게나 적나라하게 체험에서 우러나온 절절함을 덧대어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어요. like님이 좋다 하시니 저도 좋습니다.^^

기억의집 2010-10-07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잠깐만요
제가 이따가 들어올께요^^ 지금 지인하고 약속을 해서 ......

blanca 2010-10-07 21:29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기다려지는데요^^;;

기억의집 2010-10-07 23:40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는 코끼리와 파리와 런던이었는데...인상적이었던 것은 오웰은 자신이 생각했던 혹은 의도했던 것들을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었어요. 것도 폭발적인 감정이나 값싼 감정이 아닌 체 말이에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에세이스트가 몇 명이나 될까 싶더라구요. 미국이나 영국의 전통상 에세이에 자기 신념이나 주장을 명확하게 하는데, 저는우리식의 값싼 감정의 토로가 아닌, 유안진같은 여성수필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우리 수필하고 달라서 충격이 굉장했지요.

간디에 대한 조지 오웰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의 다른 글을 보면서 유추하건데 그는 절대로 감정의 눈으로 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님이 말한대로 타인이 불편하게 느끼겠지만 자신의 주장을 썼겠죠. 우리 문학이 배워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기억의집 2010-10-07 23:41   좋아요 0 | URL
여하튼 사고 싶어요. 사실 책 주문하면서 이 책 할까 하다가 마일리지로 보태서 주문하려고 안 했어요. 으이구, 저 왜 이렇게 사나 몰라요^^

穀雨(곡우) 2010-10-0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조지오웰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담았네요. 불편한 양반, 조지오웰.
그래도 블랑카님 글 읽으니 읽고픈데요. 어렵다는 것은 때론 지극히 간단한 이치를
애둘러 말하는 것인지 모르잖아요. 아님 확신이 없다거나 애매모호한 경계에 설 때,
말이 바빠지고 글이 늘어지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지만 블랑카님의 글이 오히려, 나는 왜 쓰는가에 적합한 거 같아요.
리뷰에 강추....^^ 책은 읽은 후에....ㅋㅋㅋ

blanca 2010-10-07 21:32   좋아요 0 | URL
곡우님, 찬찬히 읽어 보시면 이 가을에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무언가 내용이 없어지면 각종 말도 안되는 숙어, 현란한 어구들을 끌어와 쓰곤 했었는데 오웰이 완전 따악 짚어냈더라구요. 언어라는 게 결국 그 사람의 사고, 감정, 가치관의 체로 작용하는 지점을 정말 예리하게 지적한답니다. 학창시절 얘기도 재미나구요. 추천드립니다.

herenow 2010-11-17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신간서평단 도서로 선정되어 읽고 있는데, 다시 한번 책을 들쳐보게 하네요.
솔직히 조지 오웰에 별 관심이 없어서 '왜 이걸 읽어야 하나?' 내심 고민하다가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책 읽는 맛이 새록새록 느껴져 자꾸 손에 들게 되더라구요.
이렇게 맛깔스런 서평이 있기에 잠시후 올려야 할 제 서평은 무척 부끄럽게 되겠지만
새로운 이해, 새로운 감상의 폭을 넓혀주셔서 감사합니다. ^ ^

blanca 2010-11-17 20:13   좋아요 0 | URL
herenow님, 반갑습니다. 좋은 서평이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아요^^;; 책장이 술렁술렁 넘어가는 맛은 없지만 한 번쯤 두고 천천히 읽을 만한 책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부끄러우시다니요...저보다 더 좋고 나은 평이 나올 텐데요..읽어 주셔서 도리어 감사합니다^^
 
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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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주저 없이 천재라고 부르고 싶은 유일한 작가다, 라고 칭찬에 인색한 서머싯 몸은 발자크를 두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발자크의 소설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이 발자크를 가장 잘 대표해 주고 있고, 작가가 꼭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잘 집약한 소설을 한 권 추천해달라고 부탁해온다면, 주저 없이 <고리오 영감>을 읽어 보라고 조언하겠다고 덧붙인다. 

고전은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버석버석 말라버린 이야기를 지리하게 끊임없이 쭈욱쭉 늘여 내는 것에 불과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어 줄 작품을 들라면 주저없이 이 작품을 내밀고 싶다. 이백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파리의 저급한 하숙집을 배경으로 그려낸 인간 군상의 이야기는 시대차라는 한계는 저만치 떠밀어 버릴 정도로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과 교차하고 약동한다. 발자크가 19세기의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기 위하여 137편의 소설을 계획했고 그 안에 이 소설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롭다. 우리는 이 소설 첫 문장 '보케르 부인은 콩플랑 거리에서 태어난 늙은 여자다.'와 만나는 순간부터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대양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여기에 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세속적인 기준에서 볼 때 뻑적지근하게 시집 잘 간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딸들의 하녀에게 그들의 스케줄을 염탐해 내어 샹젤리제의 통로에서 몰래 사랑하는 딸들을 훔쳐 볼수밖에 없다. 딸들은 돈이 필요할 때만 그를 찾아와 사랑하는 아버지!를 연호한다. 그러면 그는 자신이 아끼는 은식기를 우그러뜨려 팔아서라도 딸들이 정부를 두고 사치스럽게 몸치장을 하느라 진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이다. 정작 이 퇴락한 전직 제면업자는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으며 초라하고 추운 하숙집에 덜덜 떨며 몸을 누인다. 그에게 딸들은 하느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한, 천상의 천사보다 더 우위에 있는, 피에서 피어난 꽃들이다. 자신을 챙기지 않는 무모한 내리사랑은 어처구니없는 보복을 당한다. 내 몸 속의 심장을 꺼내어 손 위에 들고 있는 것만치 우리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녀들에게 퍼붓는 눈먼 사랑이 어떤 식으로 폄하되고 비하될 수 있느지를 목도하는 과정은 더없이 괴롭고 불편하다. 발자크의 저력은 여기에 있다. 아무도 선뜻 꺼내어 들지 못하는, 그러나 인간의 삶의 본질적 측면에 수그리고 있는 그것들에 대한 응시는 위선과 가식의 더께를 가차없이 벗겨버린다.

여기에 한 청년이 있다. 그는 가난한 법학도다. 화려한 성공에 대한 동경, 갈망, 그리고 별볼일없는 출신에 대한 열등감, 그것을 딛고 올라서고자 하는 적당히 비열하고 저열하고 미끈미끈한 탐욕, 그리고 약간의 배경 같은 양심. 작가의 말처럼 그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한다는 그 참혹하고 절망적인 기본 명제를 너무나 손쉽고 어설프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버린다. 게다가 그는 청춘이다. 발자크는 청춘에 대한 여러가지 그 설익은 자만과 어설픈 상상력을 위트있고 예리하게 지적하여 독자를 웃게 한다. 청춘은 욕망 앞에 쉽게 옷을 벗어버리고 낭만적 열정이 때로는 전부를 덮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하고도 치기어린 지점이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분별없는 욕망과 가장 순결한 자비로움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뒤섞이는 모순의 최극치를 경험한다. 가장 유치하고 비열하면서도 자비로울 수 있는 시간들.  라스티냐크에게서 그 시간들을 복기한다. 

   
 

젊은 사람들은 밤샘 공부를 하겠다고 약속한 열흘 밤 가운데에서 일곱 밤을 자버리는 법니다. 밤을 새우려면 스무 살은 넘어야 한다.  
-p.51

 
   

 

   
 

따라서 만일 청년들이 세상을 알고 몸을 사렸다면 사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p.76 

 
   

고리오 영감은 마침내 딸들에게 버림받고 장례비용도 없이 처절하고 비참하게 죽어간다. 그의 곁을 지키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출세를 위하여 능수능란하게 타락해가는 법을 배워가는 청년 라스티냐크이다. 결국 이 둘은 인간의 내면 안의 두 가지 본성이자 본질이며 인생의 시기들의 은유이다.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놓고 죽는다. 그럼에도 삶은 모든 어리석은 욕망을 기반으로 지탱하는 허약하고 어리석은 청춘과 같다. 생 그 자체가 어쩌면 욕망 그 자체 같다. 무언가를 무모하고 어리석게 열망하지 않으면 존재의 그 허약한 한계와 허구성 앞에서 우리는 주저앉고 더이상 전진할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 이 숙명에 대하여 발자크는 얘기하고 있다. 고리오 영감의 무덤에서 라스티냐크는 회한과 자신의 눈먼 욕망을 참회하는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다. 청춘의 마지막 눈물을 묻어 버리고 파리와의 대결을 선포하며 씩씩하게 걸어나간다.  

발자크는 그래서 위대하다. 인간의 왜소함을 이다지도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거의 유일한 작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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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9-3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리뷰가 게으른 제 손을 책꽂이에서 고리오 영감을 찾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10-10-01 13:35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저의 독서는 대중없습니다. 반딧불이님의 그 체계적이고 진중한 독서에 비할 수가 없지요.

프레이야 2010-09-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가슴 울리는 리뷰 잘 읽고
장바구니로 저 책을 모셔갑니다.^^ 좋은 글, 고마워요.
적요한 시간이에요. 작은딸은 독서기록장 정리하고 있네요.
내일 급히 학교에 제출할 일이 있어서요.ㅎㅎ

blanca 2010-10-01 13:38   좋아요 0 | URL
적요한 시간. 프레이야님 안그래도 독서기록장이 궁금했어요. 읽은 책이랑 목록을 작성하는 것인지. 은근히 번거로울 것 같아요. <고리오 영감>은 책값도 할인율이 높아 착하고 여러모로 프레이야님께 권하고 싶어집니다.^^ 저는 또 감기 폭격 맞아 헤롱거리고 있습니다.--;;

프레이야 2010-10-01 19:50   좋아요 0 | URL
전 느낌 위주로 적게 합니다.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구요.
환절기라 감기 걸리는 분들 많은데 언능 나으시기 바래요. 기온이 꽤 내려갔어요.

2010-10-01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1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0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선 19세기 유럽소설이라면 워낙 러시아 작가들이 대세라서 특히 프랑스 작가들은 많이 안 읽히지요.발자크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그 중에서도 <고리오 영감>이 읽히는 편이라 다행입니다.사실 발자크의 다른 작품에 비해 분량도 적당하지요.<종매 베트>나 <사라진 환상>은 두툼해서 좀 부담스럽습니다.예전에 딸에게 버림받은 아버지라는 소재를 다룬 리어왕과 비교해서 연속 읽어볼 계획을 세웠는데 지금도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blanca 2010-10-02 14:39   좋아요 0 | URL
노자님, 혹시 나귀가죽은 읽어 보셨나요? 저는 지금 이것 읽으려고 하는데 <고리오영감>만 제외하면 발자크 작품이 좀 사소한 묘사 줄줄 늘여 지루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두 작품은 접해보지 못했어요. 아, 리어왕 생각은 미처 못했어요.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수도 있겠네요. 고전 분야에 정말 박학 다식한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10-02 21:23   좋아요 0 | URL
최근 번역된 건 읽어보지 못했어요.<사라진 환상>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온 겁니다.인터넷엔 광고하지 않을 거에요.이게 대표걸작인데 을유문화사에서 60년대에 나온 이후 절판되었지요.프랑스 근대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발자크의 다른 작품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양철나무꾼 2010-10-0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천재라고 불리우는 작가들 좋아해요,일단은 개연성이 확보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서머싯 모옴도,발자크도 좋아하지요.

솔직히 전 그냥 그렇게...별다른 감흥 없이 읽었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그때의 기억이 새로운 걸요~^^

빨리 감기 폭격을 떨고 일어나시길 바라겠습니다~!!!

blanca 2010-10-02 14:40   좋아요 0 | URL
저도 모옴 좋아해요, 양철나무꾼님. 일단 모옴 책은 재미가 보장되니까요. 감기 폭격. 지금 완전 최루탄 맞은 기분입니다. 좀 그런 얘기지만 콧구멍에 휴지를--;; 비까지 오니 완전 퍼지고 있답니다.

2010-10-01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2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해 준 사람이 있다. 허리가 기역자로 굽고 빙그레 웃으면 입 주변의 주름이 동심원처럼 몇 겹의 파문으로 번지던 그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할머니는 하필 내가 스무 살 오월이 되던 해 생을 마감하셨다. 

나는 당시 한 사람에게 흠뻑 빠져 있었고 그 달뜬 마음이 할머니의 상실을 눌러 버렸다. 가없는 내리사랑의 스러짐은 그런 식으로 폄하되었다. 말기암 치매까지 온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목욕시켜드리던 날 할머니는 또렷하게 나를 바라보시며 고맙다, 고 되뇌셨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마지막은 그렇게 뒤집힌 고마움의 인사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결혼하여 할머니가 고장난 녹음테이프처럼 아쉬워하며 끊임없이 재생하던 그 서너 살 무렵의 사랑스러움을 딸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나는 거꾸로 가고 있다. 하루 하루가 갈수록 할머니에 대한 절절한 추억의 무게와 애착의 깊이는 더해만 간다. 또 복기하고 또 복기하며 나는 나와 할머니를 다시 읽는다. 때로는 초등학생의 나와 할머니로, 여섯 일곱 살 무렵의 그 모습으로 끊임없이 손녀와 할머니의 해후는 반복된다. 그리고 말줄임표. 그럼에도  할머니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의 허망함은 그런 식으로 허리가 동강 잘린다. 할머니는 이제 안 계신다. 내 곁에.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가없는 고마움과 미안함의 표현을 되돌려 줄 상대는 가버리고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다 떠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존재의 필멸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내'가 '너'가 죽는다는 것. 그리고 철저하게 죽음의 피동으로 먹인다는 것. 몸부림치며 결국 그렇게 허무하게 스러지고 말것이라는 것. 이런 참혹하고 무의미한 결말이 어디 있는가. 이 단순명료한 명제에 맞닥뜨리면 결국 무의미와 화해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얼마나 가혹한 과정인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죽음과 화해하지 못한 작가들의 얘기다. 이 책 두 권은 죽음 앞에서 얼마나 인간이 철저하게 무기력하고 무방비인지를 저릿하게 응시하게 된다. 유명 작가들은 삶의 비밀을 범인들보다 더 예리하게 해독했다,고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허무와 무의미를 더욱 적너라하게 파헤치고 죽음과 화해할 수 있을듯 한데 도리어 역설적으로 더욱더 죽음에 후달린다. '나'는 '특별하다'는 느낌이 '무의미'와 조우할 수 있는 지점은 망상이자 착각인 것 같다. 삶에 관조적인 모습들이 삶에 대한 집착과 반드시 유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쩌면 유달리 삶에 관조적인 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생의 절실함의 근거로 끌어 와 쓰는 것이 아니라 생의 허무감과 욕망의 충족을 정당화하는 데에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한 대가는 가혹하다. 그들은 대부분 죽는 순간까지 납득하지 못했다. 죽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자살을 한 방편으로 택하더라도 결국 인간은 죽음 앞에 영원히 피동적이다,는 예시의 제물로 바쳐지기도 한다.

 

죽음을 통제한 유일한 사례로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콧 니어링이 곡기를 스스로 끊고 죽어가며 마지막에 뱉은 말은 "좋-아."였다. 삶이 아무리 고해라도 그것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거부감이 든다. 우리는 생의 숨결을 받은 이상 사려깊고 소중하게 그것을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대우하고 근시안적 욕망의 충족을 절제하며 죽어가는 과정까지 배우려 했던 스콧 니어링의 삶은 우리가 죽음을 기쁘게 맞이할 수도 있는 가능성의 통로를 열어준다. 반드시 비참하게 무기력하게 안끌려가려 발버둥치며 죽음의 손아귀에 우리 목덜미를 쥐어주지 않아도 되는 행운은 바로 그것의 일란성 쌍둥이인 삶을 대접하는 자세를 통해 주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때늦은 애도는 평론가 신형철의 글을 읽으며 위로 받았다. 마치 나를 향해 돌아앉아 토닥토닥 나의 뒤늦은 애도를 도닥여 주는 느낌이었다. 끝나지 않은 슬픔은 병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이라고, 덧붙여가며. 그리고 그의 이 문장은 내 가슴의 생채기에 날아와 박혔다.  

   
 

한 사람의 죽음을 가장 충실하게 애도하는 길은 그 죽음 이전으로 더이상 돌아갈 수 없도록 나 자신의 삶을 바꾸는 데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누구도 너무 많이 애도할 수는 없다> 중 

 
   

나는 바뀔 것이다. 가슴으로 끊임없이 할머니에 대한 회한을 간직한 채로. 사랑한다,는 고맙다, 는 말은 언제나 해도 모자라고 늦다. 서둘러 많이 하고 볼 일이다. 생을 열심히 긍정하며 살아 가련다. 그것이 작별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 보낸 그 분과 나에게 뚜벅뚜벅 천천히 걸어 오고 있는 죽음에 대한 진정한 예우일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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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27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의지를 더 불태울 수 있져, 아이러니하지만~
ㅎㅎ아이고 아름다워라, 페이퍼가!

blanca 2010-09-28 21:45   좋아요 0 | URL
마기님 그새 퍼스나콘이 또 바뀌었어요. 사랑스러운 소녀...예, 그래서 결국 죽음을 정말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한 긍정론자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비관주의에 이끌렸는데 이제는 해가 갈수록 더 낙천적이 되고 싶어져요. 나잇살이 주는 긍정의 에너지도 있나 봐요^^;;

양철나무꾼 2010-09-2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대접할 건 어쩜 죽음만이 아닐지도 몰라요~
삶도 따박따박 눌러살 듯,꼭꼭 씹어 삼키듯 대접해줘야 할지도 몰라요~

전 친할머니 밑에서,할머니 치마폭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제 걱정하시느라,쉬이 눈을 못 감으셨어요.

어쩜,전 할머니 때문에라도 따박따박 사는지도 모르겠어요.

글이 제 마음의 빗장을 툭 하고 벗겨 냈어요.
눈물을 좀 흘리겠지만,
한동안 좀 아프겠지만,
나쁘지 않네요~~~^^

blanca 2010-09-28 21:4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할머니 얘기는 언제나 저를 아프게 합니다. 친할머니 아래 계셨다면 양철나무꾼님은 더욱더 그러시겠어요. 그럼요. 결국 오늘의 나를 거슬러 올라가면 또 할머니와 만날 수밖에 없어요. 열심히 행복하게 사는 게 진정한 애도인 것 같아요.

2010-09-28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09-28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에 대한 예우, 좋은 페이퍼에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에요.
블랑카님, 내리사랑은 참 크고 깊은 것 같아요.
제 첫딸이 생후 2개월될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아이를 낳았다고 참 신기해하며 안쓰러워하셨던 분이에요.
사춘기시절, 대학생 시절, 제 깃털같은 성정이 몸서리치게 힘들 때면 할머니집 아랫목이 기어들어가
뜨근하게 이불 쓰고 한숨 자고 나면 풀리곤 했지요. 그리워라.
된장찌게랑 밥한그릇 차려주시며 무조건 내편이 되어주던 분. 아무 말씀 없이도요.

blanca 2010-09-28 21:4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그리워라. 이 말 콧잔등이 시큰해져요. 워라. 저희 할머니도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셨어요. 정말 너무 많이 늙으셨던 할머니라 더 애잔해요. 손녀의 타박을 다 받아주시고 마지막까지 고맙다, 하고 가신 분. 저는 이 생에서 할머니에 대한 빚을 다 갚지 못할듯 싶어요.

마녀고양이 2010-09-2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블랑카님. 언니같은 '나'를 만나러 시간을 빨랑 내란 말이예요! ㅋㅋ

참 좋은 페이퍼예요. 죽음이란 항상 생각을 깊어지게 만들죠.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죽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죽음에 연연하여, 질질 끌려간 삶을 살면 더욱 회한과 분노가 일지도.

스콧 니어링의 이야기를 읽으니, 문득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생각나요.
큰 스님 돌아가시는 장면이.
얼마 전부터 DVD로 사려고 찾는 중인데, 절판이네요. ㅠ

blanca 2010-09-28 21:50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ㅋㅋㅋ 올해 안에는 꼭 뵈요!! 껌딱지를 좀 간수해 달라고 옆지기나 친정엄마를 좀 구워삶아서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저 티비에서 중간부터 봤던 듯해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큰 스님 돌아가시는 장면이 있군요. 다시 제대로 보고 싶어져요. 아마 다시 티비나 케이블에서 상영해 주기를 기다려 봐야 할 듯해요.

마녀고양이 2010-09-29 11:36   좋아요 0 | URL
나는 그 이쁜 '껌딱지' 같이 나와도 괜찮은뎅! ^^

2010-09-28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9-2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가 농사를 지으셨나봐요. 기역자로 구부러지셨다고 하니.

저는 할머니의 사랑을 님처럼 그렇게 못 받고 자랐어요. 고부간의 갈등이 말도 못했거든요. 하핫, 고부간의 갈등이야기하라고 하면 말 그대로 앤드리스에요. 저의 할머니가 94세로 돌아가실 때 임종을 저의 손녀들이 했어요. 엄마가 할머니한테 당한 것이 많아 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의 얼굴조차 보기 싫어했거든요. 돌아가실 무렵에 점차 몸이 차가워 지더라구요. 그래서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기는 했는데....떠나보내면서 어떤 말을 해 드려야할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저의 할머니는 오기와 고집이 대단해서 저의 엄마한테 절대 안 지려고 했어요. 그래서 딸들인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할머니에게 다정한 말 조차 하기가 힘들었거든요. 몸이 서서히 차가워진다는 것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떤 예우를 해 드려야할지.... 그걸 잘 몰랐어요.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차가운 몸을 어루만지며 눈을 감겨 들였는데......전 할머니 차라리 엄마한테 구박받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참...이상한게 할머니한테 연민의 정을 느껴 잘 해드리고 싶었지만....아, 지금 블랑카님의 페이퍼를 읽으니 그 때 할머니의 차가운 몸을 어루만졌던 생각이 나네요. 그게 저의 최대한의 할머니 죽음에 대한 예우였어요. 꼭 그렇게 해 드리고 싶더라구요.

blanca 2010-09-28 21:54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추석은 잘 쇠셨어요? 안그래도 서재 뜸하셔서 생각했더랬어요. 저희 어머니와 할머니도 풀지 못하고 헤어지셨답니다. 딜레마는...할머니는 날 사랑하는데 엄마와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 그 사이에서 저는 할머니의 사랑을 폄하했었어요.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후 그 대목에서 저는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구요. 지금도 진행중인 집도 봤군요. 한국사회에서 고부간의 갈등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 같아요.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 같은 아이들도 계속 나올지 모르겠어요.

기억의 집님의 댓글을 읽으니 괜시리 마음이 시려요. 잘하셨어요. 저는 못했어요. 임종을 다른 곳에서 하셔서....저는 차마 용기가 안나 그렇게 못해드렸을 것 같아요. 시간을 되돌린다면 할머니를 꼬옥 껴안아 드릴텐데......

穀雨(곡우) 2010-09-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 섬뜩하다고 이해할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관념입니다. 그 너머의 공간이 무엇인지를 알길이 없기에 매번 죽음의 관념을 떠올리면 섬뜩해지는 보편적 관성에 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중심에 존재의 상실이 함께 겹친다면 아픔이 오래도록 퍼질 것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더 이상 시간의 기능을 상실하는 시점. 신형철님의 글과 블랑카님의 반듯한 생각이 겹쳐집니다.

blanca 2010-09-29 22:31   좋아요 0 | URL
곡우님, 죽음은 아주 가끔 그것도 생의 의지와 순간의 무게 정도를 깨닫기 위해 떠올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자주 생각하면 자꾸 이 생이 허무하다는 쪽으로 젖어들게 되어서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죽음을 목격하고 어쩔 수 없이 수긍해 나가는 쪽으로 가야 하는 과정인 것도 같아요....

2010-09-29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30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 이거 통화음이 너무 안들리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요.

오후 일곱 시 안에 하자가 발견될 경우 대리점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나는 핸드폰을 들고 숨이 턱에 받치게 뛰어 들어갔다. 남편과 바꿔가며 통화하면서 역시 너무 안들린다고 무언가 심히 이상하다고 결론내리고 근처 중국집에서 뛰어 나온 참이었다. 

... 

대리점 안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었다. 행여 기스라도 날까 보호비닐을 하나도 안 걷어내고 들고 있는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며 얘기한다. 그걸 띠셔야지요, 당연히 안들리죠. 하하하. 안녕히 가세요. 

참으로 무안하게 다시 그 분을 모시고 나왔다.   

얼리 어답터인 척 하고 싶은 욕망과 때맞춰 꼴딱꼴딱 용케도 사망해 주신 핸드폰 덕에 아이폰4를 맞춤하게 손에 넣게 되었다. 기계를 나의 손가락의 지문으로 흔들어 깨우고 함께 속살거리고 내킬 때는 재워 버리고 하는 이 짓에 심하게 중독되고 있다. 딱딱하고 차가운 액정을 나의 체온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이 모순과 이 부조화가 왜 사람들을 그렇게 열광시키는 지 알것 같다. 터치 입력에 익숙치 않아 교보문고 도서검색대에서 몇 번이나 말도 안되는 오타를 내다 좌절하고 물러섰던 기억들은 저만치 쫓아 보내고 걸핏하면 꺼내 들고 흔들고 터치한다. 물신주의라는 말을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아이폰은 마치 욕망의 가장 집적된 현현 같다. 눈 앞에 내 욕망을 꺼내 놓고 만지는 이 기괴하고 음란한 행위라니. 

  

 

 

 

 

 

 

  

탁 트인 거칠 것 없는 무엇 하나 거리낄 것 없는 구름을 마구 휘저허 풀어 헤친 것 같은 성곽이 담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바보처럼 끈질기게 아이폰을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슬펐다. 저 하늘을, 저 구름을, 그리고 그것들을 담아 낸 성곽만으로 충분해야 했다. 무엇 하나에 온전하게 몸을 담글 수 없고 어딘가 한 구석에는 꼭 물려 있어야 하는 나의 결핍과 열등감이 느껴졌다. 무언가에 쉽게 빠져들고 중독된다는 것은 그 만큼 허한 구석이 많다는 얘기다.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에든 쉽게 젖어들어 버린다. 

손가락으로는 돌을 만지고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 낫다. 차갑고 딱딱한 기계에 하염없이 나의 지문을 부비며 뭐라도 되는 냥 착각하고 집착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신기하면서도 조금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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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9-26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구는 기구일뿐이죠. ... 돈은 돈일뿐이지만, 목적과 수단이 헷갈리는 세상이다보니

blanca 2010-09-26 23:27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근데 이게 한시적 현상일 것은 같은데 지금 가치가 완전히 전도되었어요. 구입한 당일 눈이 벌개져서 종일토록 보고 이튿날인 오늘은 좀 낫긴 한데.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 몽롱하게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09-2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아이폰 장만하셨군요?
어짜피 아이 때문에 바깥 생활이나 컴터 생활도 만만치 않으니,
당분간 손바닥 위안을 갖는 것도 괜찮을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블랑카님이 거기에 폐인이 될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을 뿐더러
한동안 즐길만큼 즐기시면, 다시 하늘 보기로 돌아오실거라 믿어여~ ^^

아이폰 익숙해지면, 나중에 저도 갈켜주세여.

blanca 2010-09-26 23:28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 폐인 되었어요.--;; 이게 바깥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니 그 중독성이 더 심하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긴 한데. 손바닥 위안 정말 맞아요^^

비로그인 2010-09-26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폰..장만하셨군요.

요즘 밖을 나가보면 빠르게 널리 널리 퍼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또 그만큼 뭔가 경계가 생기는 것 같아서 좀 섧기도 해요. 저는요.


blanca 2010-09-26 23:29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저도 섧어서 또 핸드폰이 아주 맞춤하게 고장이 나 주는 바람에 이래저래. 근데 말이에요. 이것을 손에 넣으면 사람 간의 관계는 더욱더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아요. 심지어 두 사람이 마주보고 각자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풍경도 흔하더라구요.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니 서러워 마세요.

비로그인 2010-09-26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슉슉 넘어가는 그 맛이 죽이던데...
블랑카님이 그러기야 하겠어요?
푸히히~~난 부러울 따름~~

blanca 2010-09-26 23:30   좋아요 0 | URL
슉슉 ㅋㅋㅋ 마기님 메텔 모습 넘 잘 어울려요. 아이도 터치 시작하면서 슉슉 자기 사진 넘기더라구요 ㅋㅋㅋ

세실 2010-09-26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폰에 중독될 수 있는 열정이 부러운걸요.
나도 아이폰에 중독될 수 있을까?
전 그저 문자를 보낼 수 있는것으로 만족하는 슬픈 40대.
잠시 그럴거예요^*^

blanca 2010-09-26 23:31   좋아요 0 | URL
에이. 세실님, 저도 기계치여요. 얼리어답터와 완전 거리 멀구요. 그런데 그런 유형이 더 위험하답니다. 완전 중독되요. 잠시 그래야 할텐데요. 그러리라 믿어요^^

2010-09-26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6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10-09-2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호비닐과 통화불량, 그거 무슨 말인지 알아요, 하핫 --;; 저는 케이스랑 새로 보호비닐사느라 거금을 지출한 데다가 어플도 몇 개... (학생들이 덥썩 살 것은 못 된다고 봐요)
저는 막 책까지 사서 공부중이랍니다. 실내에서 너무 데이터를 많이 쓰게 되서 아이밸류요금제로 바꿨구요, 아이폰이랑 노는 것은 재미있는데, 생각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군요. 충전도 아주 자주해야 되고, 어플값도 이것저것 하면 꽤 비싸고 통화품질이 더 좋은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재미있는 놀이기계 하나 장만했다고 (돈을 많이 잡아먹는) 생각중이예요.

blanca 2010-09-26 23:33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도 ㅋㅋㅋ 저도 핑크 케이스 주문중입니다.^^;; 어플은 무료로만. 와이파이 안뜨면 절대 안쓰려고 하는데 그게 참 뜻대로 안되더라구요. 저도 장난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순오기 2010-09-27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일이든 열정을 갖는 나이라는 건 좋지요~
그런 열정조차 시들어버리는 나이대도 있으니까요.
고급 장난감 장만을 축하해요!!

blanca 2010-09-27 13:4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감사합니다. 장난감 가지고 노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열정을 갖는 나이. 잠깐 생각하게 되어요.

양철나무꾼 2010-09-27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가을 하늘이 참 좋군요.
아이폰으로 누구나 저정도 담아낼 수 있는 하늘이라면,
저도 아이폰을 함 장만해 볼까요?

blanca 2010-09-27 13:43   좋아요 0 | URL
양청나무꾼님! 저 사진은 제 디카로^^;; 아이폰 사진 찍는 기능은 원래 가지고 있던 폰보다야 훨 낫지만 그래도 아직 아쉬움이 남더라구요. 함 장만해 보세요. 업무가 당분간은 마비될지도 몰라요^^;;

기억의집 2010-09-2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폰 장만했군요. 좋겠다. 저는 연아폰인데..거의 바보폰 수준이라서 상대하고 싶지 않지만 1년 더 가지고 있어야해요. 1년 후에 저도 스~~마트폰 장만할 거에요.손안의 놀이터라고 하던데...님도 그렇군요.

blanca 2010-09-29 22:29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꽤 재미있어요. 또다른 중독의 세계가 열린답니다. 다만 눈이 너무 피로하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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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게 어떤 것을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다. 무언가 아주 기묘하고 신비로운데 그렇다고 나와 동떨어진 것 같진 않다. 그러니 섣불리 알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바로 이 책이 그러했다. 굉장히 사변적이고 막연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보이지 않는 상상의 도시들에 대한 얘기는 오히려 굉장히 구체적이고 사람들의 기본 정서에 와 닿아 있다.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사신으로 방문했던 도시들을 타타르 족의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묘사하는 것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그래서 고전이 된 것 같다,고 수긍이 가는 책이다. 

   
 

 책장을 넘기듯 시선이 거리를 훑고 지나갑니다. 도시는 폐하께서 생각해야 할 모든 것을 말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게 합니다. 폐하께서는 자신이 타마라를 방문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사실은 그저 도시가 자기 자신과 각 부분들을 정의하는 이름을 기록하고 계실 뿐입니다.

 
   

 

'도시와 기호들 1'이라는 표제하의 이 대목은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결국 그것을 자신만의 경험과 인식의 기호로 덧씌워 재해석함을 알려준다. 우리는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투사하여 읽는다. 특히 여행지에서 그러하다.  

   
 

 여행자의 과거는 그가 지나온 여정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루가 덧붙여지는 가까운 과거가 아니라 아주 먼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여행자는 그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닌 혹은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것의 이질감이, 낯설고 소유해 보지 못한 장소의 입구에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까지 결정하고 만다. 우리는 새로운 장소에 발을 딛고 좀전까지의 나를 털어 버리려 하지만 결국 이동은 또다른 나의 삶이었을 수도 있을 것들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기시감. 그것은 어떤 막연한 전생의 기억이 아니라 과거의 가능성을 더듬어 보는 경험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서 그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잃어버린 가능성은 영원히 오늘의 나를 매혹한다. 

수많은 관념과 상상들이 도시로 체현된다. 여기가 지겨울 때 체스 판을 이동하듯 끊임없이 옮겨 다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도시, 관계들을 나타내는 방식을 흰색과 검은색의 실로 엮어 걸어 놓다 너무 많이 걸려 있어 그 사이로 지나다닐 수 없게 될 때 떠날 수 있는 도시, 위선자 역, 식객 역 등 수많은 역할을 바꾸어 가며 대화 속에 살다 퇴장하게 되는 도시, 산 자들의 도시, 죽은 자들의 도시, 태어날 자들의 도시 등 삶과 죽음과 관계와 이동이 혼재되어 있는 그 공간들의 설정은 마치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구체화한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언어와 욕망을 손 안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실 언어의 속임수와 욕망의 무분별은 우리를 포박하고 유린하고 있다. 결국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란 우리의 과거, 욕망, 기억이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듣게 되는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깨달음의 은유다. 

   
 

 하지만 제 말을 듣는 사람은 자기가 기대했던 말만을 간직할 것입니다.<중략>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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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1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독특하다면서여?
나두 블랑카님처럼 고전 좀 읽어야 할건데... 맨날 머하는건지. ^^

blanca 2010-09-16 22:26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은 또 다른 분야에 빠삭하시잖아요. 저는 요새 민음사 문고 좌르륵 꽂아놓고 혼자 흐뭇해 하며 웃는 재미로 ㅋㅋㅋ

2010-09-16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6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0-09-1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멋진 책이죠~ㅎ 세계 3대 환상문학가로 꼽히는 이탈로 칼비노의 숨은 명작입니다~ 칼비노 책 중에서 저는 이 작품을 제일로 칩니다~ 워낙 독특해서요~ 소설읽기가 시큰둥할 때 지인이 던져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리뷰를 블랑카님의 서재에서 다시 볼 수 있다니, 기쁘기 그지 없군요!

리뷰 잘 봤어요~ 저도 이 책의 리뷰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계속 시간에 쫓겨 아직도 못쓰고 있습니다..ㅎ

혹시 이 작품으로 칼비노의 작품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우주만화>도 강추드립니다

blanca 2010-09-17 19:51   좋아요 0 | URL
세계3대 환상문학가는 누구누구가 있을까요? <우주만화>요? 우아, 이런 소설을 쓴 칼비노가 그런 소설까지. 여기에서도 칼비노의 기가 막힌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기는 하지만 더욱 기대되는걸요.

2010-09-19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0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9-2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 때문에 보름달을 보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그래도 즐겁고 여유로운 한가위 보내세요^^

blanca 2010-09-22 14: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후와님도 즐거운 명절 되세요. 좋은 글 저녁에 찬찬히 읽어 볼게요^^

후애(厚愛) 2010-09-21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놀러왔어요.
즐거운 추석 잘 보내세요.
항상 건강하시구요.^^

blanca 2010-09-22 14:08   좋아요 0 | URL
후애님~ 안그래도 오늘 라디오에서 외국에 사시는 분들이 추석맞아 보낸 사연들으면서 후애님 생각했어요. 후애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되세요.

2010-09-24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4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09-25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지 않는 상상의 도시들이라.....궁금해 집니다.
위대한 개츠비 읽고나면 도전해 볼까봐요.
저두 민음사 문고 좌르륵 꽂아두고 싶은 욕심 땡기는 중입니다. 곧 아이들이 읽겠죠.

blanca 2010-09-25 22:31   좋아요 0 | URL
세실님! 위대한 개츠비 읽고 계세요? 어느 출판사로 읽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분량이 많지 않아 부담없이 읽기 좋아요. 민음사는 결국 한꺼번에 사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수 있을 지경까지 갈 것 같아요^^;;

세실 2010-09-26 06:48   좋아요 0 | URL
당연히 민음사^*^

[그장소] 2015-01-15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을 보고는 아..지난 시간의 기록이구나..하면서..칼비노...언제 메모했는지..머릿속을 뒤적뒤적..2012년쯤..낭만주의와 판타지의 뿌리 였나..동시에 카뮈 반항하는 인간과 같이 메모한 기억이..나는데..ㅠㅠ 사서 소장하고 싶은 책였다고..기억해요. 아..메모지 찾아내야
겠네ㅛ

blanca 2015-01-16 22:03   좋아요 0 | URL
와, 그장소님, 저도 지금 이 책이 가물가물해요. 벌써 4년도 더 전이에요. 흑, 시간의 흐름이란 게 참 놀랍기도 하고 이런 옛글에 그장소님의 현재 댓글을 보니 표현하기 힘든 뭉클함이 있어요.

[그장소] 2015-01-16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보고 놀란걸요..결국 온.약 봉지를 다 뒤졌는데도..칼비노를 메모해둔것은 못찾고..ㅠㅠ;찾으면..신나게..아는척 하려고 했는데..속상했다는..!^^ 아하핫..요술 키보드예요..분명..글자확인을 해도...번번히 오탈자를 중간에 턱~하니..
심어놔요..꺼진불도 다시봐..그러는 모양..ㅎㅎ

blanca 2015-01-16 22:09   좋아요 0 | URL
와! 신기해요! 실시간 댓글이에요. 그장소님!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메모.

[그장소] 2015-01-16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쵸? 아까워요..제목만 보고는 ㅋ 음..긴가민가..하는건..봤다고 못하겠더라고요..그래서 첨엔 안본걸로 체크했거든요...그러다..후애님과의 대화내용 시간을 보니..현재형이 아닌거라..아!했죠..예전거구나..!^^
번호 상 거의 안보고 지날순이 아니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