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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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게 어떤 것을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다. 무언가 아주 기묘하고 신비로운데 그렇다고 나와 동떨어진 것 같진 않다. 그러니 섣불리 알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바로 이 책이 그러했다. 굉장히 사변적이고 막연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보이지 않는 상상의 도시들에 대한 얘기는 오히려 굉장히 구체적이고 사람들의 기본 정서에 와 닿아 있다.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사신으로 방문했던 도시들을 타타르 족의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묘사하는 것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그래서 고전이 된 것 같다,고 수긍이 가는 책이다. 

   
 

 책장을 넘기듯 시선이 거리를 훑고 지나갑니다. 도시는 폐하께서 생각해야 할 모든 것을 말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게 합니다. 폐하께서는 자신이 타마라를 방문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사실은 그저 도시가 자기 자신과 각 부분들을 정의하는 이름을 기록하고 계실 뿐입니다.

 
   

 

'도시와 기호들 1'이라는 표제하의 이 대목은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결국 그것을 자신만의 경험과 인식의 기호로 덧씌워 재해석함을 알려준다. 우리는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투사하여 읽는다. 특히 여행지에서 그러하다.  

   
 

 여행자의 과거는 그가 지나온 여정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루가 덧붙여지는 가까운 과거가 아니라 아주 먼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여행자는 그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닌 혹은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것의 이질감이, 낯설고 소유해 보지 못한 장소의 입구에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까지 결정하고 만다. 우리는 새로운 장소에 발을 딛고 좀전까지의 나를 털어 버리려 하지만 결국 이동은 또다른 나의 삶이었을 수도 있을 것들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기시감. 그것은 어떤 막연한 전생의 기억이 아니라 과거의 가능성을 더듬어 보는 경험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서 그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잃어버린 가능성은 영원히 오늘의 나를 매혹한다. 

수많은 관념과 상상들이 도시로 체현된다. 여기가 지겨울 때 체스 판을 이동하듯 끊임없이 옮겨 다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도시, 관계들을 나타내는 방식을 흰색과 검은색의 실로 엮어 걸어 놓다 너무 많이 걸려 있어 그 사이로 지나다닐 수 없게 될 때 떠날 수 있는 도시, 위선자 역, 식객 역 등 수많은 역할을 바꾸어 가며 대화 속에 살다 퇴장하게 되는 도시, 산 자들의 도시, 죽은 자들의 도시, 태어날 자들의 도시 등 삶과 죽음과 관계와 이동이 혼재되어 있는 그 공간들의 설정은 마치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구체화한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언어와 욕망을 손 안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실 언어의 속임수와 욕망의 무분별은 우리를 포박하고 유린하고 있다. 결국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란 우리의 과거, 욕망, 기억이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듣게 되는 모든 것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깨달음의 은유다. 

   
 

 하지만 제 말을 듣는 사람은 자기가 기대했던 말만을 간직할 것입니다.<중략>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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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1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독특하다면서여?
나두 블랑카님처럼 고전 좀 읽어야 할건데... 맨날 머하는건지. ^^

blanca 2010-09-16 22:26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은 또 다른 분야에 빠삭하시잖아요. 저는 요새 민음사 문고 좌르륵 꽂아놓고 혼자 흐뭇해 하며 웃는 재미로 ㅋㅋㅋ

2010-09-16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6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0-09-1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멋진 책이죠~ㅎ 세계 3대 환상문학가로 꼽히는 이탈로 칼비노의 숨은 명작입니다~ 칼비노 책 중에서 저는 이 작품을 제일로 칩니다~ 워낙 독특해서요~ 소설읽기가 시큰둥할 때 지인이 던져준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리뷰를 블랑카님의 서재에서 다시 볼 수 있다니, 기쁘기 그지 없군요!

리뷰 잘 봤어요~ 저도 이 책의 리뷰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계속 시간에 쫓겨 아직도 못쓰고 있습니다..ㅎ

혹시 이 작품으로 칼비노의 작품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우주만화>도 강추드립니다

blanca 2010-09-17 19:51   좋아요 0 | URL
세계3대 환상문학가는 누구누구가 있을까요? <우주만화>요? 우아, 이런 소설을 쓴 칼비노가 그런 소설까지. 여기에서도 칼비노의 기가 막힌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기는 하지만 더욱 기대되는걸요.

2010-09-19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0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9-2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 때문에 보름달을 보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그래도 즐겁고 여유로운 한가위 보내세요^^

blanca 2010-09-22 14: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후와님도 즐거운 명절 되세요. 좋은 글 저녁에 찬찬히 읽어 볼게요^^

후애(厚愛) 2010-09-21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놀러왔어요.
즐거운 추석 잘 보내세요.
항상 건강하시구요.^^

blanca 2010-09-22 14:08   좋아요 0 | URL
후애님~ 안그래도 오늘 라디오에서 외국에 사시는 분들이 추석맞아 보낸 사연들으면서 후애님 생각했어요. 후애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되세요.

2010-09-24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4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09-25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지 않는 상상의 도시들이라.....궁금해 집니다.
위대한 개츠비 읽고나면 도전해 볼까봐요.
저두 민음사 문고 좌르륵 꽂아두고 싶은 욕심 땡기는 중입니다. 곧 아이들이 읽겠죠.

blanca 2010-09-25 22:31   좋아요 0 | URL
세실님! 위대한 개츠비 읽고 계세요? 어느 출판사로 읽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분량이 많지 않아 부담없이 읽기 좋아요. 민음사는 결국 한꺼번에 사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수 있을 지경까지 갈 것 같아요^^;;

세실 2010-09-26 06:48   좋아요 0 | URL
당연히 민음사^*^

[그장소] 2015-01-15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을 보고는 아..지난 시간의 기록이구나..하면서..칼비노...언제 메모했는지..머릿속을 뒤적뒤적..2012년쯤..낭만주의와 판타지의 뿌리 였나..동시에 카뮈 반항하는 인간과 같이 메모한 기억이..나는데..ㅠㅠ 사서 소장하고 싶은 책였다고..기억해요. 아..메모지 찾아내야
겠네ㅛ

blanca 2015-01-16 22:03   좋아요 0 | URL
와, 그장소님, 저도 지금 이 책이 가물가물해요. 벌써 4년도 더 전이에요. 흑, 시간의 흐름이란 게 참 놀랍기도 하고 이런 옛글에 그장소님의 현재 댓글을 보니 표현하기 힘든 뭉클함이 있어요.

[그장소] 2015-01-16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보고 놀란걸요..결국 온.약 봉지를 다 뒤졌는데도..칼비노를 메모해둔것은 못찾고..ㅠㅠ;찾으면..신나게..아는척 하려고 했는데..속상했다는..!^^ 아하핫..요술 키보드예요..분명..글자확인을 해도...번번히 오탈자를 중간에 턱~하니..
심어놔요..꺼진불도 다시봐..그러는 모양..ㅎㅎ

blanca 2015-01-16 22:09   좋아요 0 | URL
와! 신기해요! 실시간 댓글이에요. 그장소님!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메모.

[그장소] 2015-01-16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쵸? 아까워요..제목만 보고는 ㅋ 음..긴가민가..하는건..봤다고 못하겠더라고요..그래서 첨엔 안본걸로 체크했거든요...그러다..후애님과의 대화내용 시간을 보니..현재형이 아닌거라..아!했죠..예전거구나..!^^
번호 상 거의 안보고 지날순이 아니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