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단 책장 두 개가 꽉 차고(물론 이것은 꽂은 책 위로 남는 공간에 책을 눕힌 것도 포함) 책상에 붙어 있는 삼단 가량의 책장도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몇 권 정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물론 전혀 짐작도 안 되는 실정이고 있는 책을 몇 번이고 들춰보며 처분할 책을 고민해도 더 이상은 내가 이 책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생각 안 나는 그런 상황. 이 책은 사실 처분할까 싶어 다시 꺼내게 되었는데 퍼더앉아 입 벌리고 지식인들의 넓은 서재에 감탄, 부러워하는 부작용에 시달렸다. 나는 인정받는 지식인이 아니니 사실 이런 넓은 서재에서 작가별, 혹은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나의 애서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미래가 과연 올까 싶은 데에서 오는 자괴감도 좀 들고.

 

 

 

 

 

 

 

 

 

 

 

 

 

 

특히나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널찍하고 입체적인 서재가 부러웠다. 어린 시절 읽었던 전집류를 처분하지 않고 소장할 수 있는 공간, 마음의 여유도 더불어. 읽고 또 읽고 마침내 이야기가 끝난 마당에 첨부되어 있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더불어 그것의 연장선으로 이해했던 계몽사의 <소년소녀문학전집>은 이미 오래 전에 내 손을 떠나 버렸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몽환적인 표지의 <보리와 임금님>. 작가는 이야기 시작 전에  다락방에서의 자신만의 책들과의 잔치에 대한 추억을 너무나 사랑스럽게 그려놓았었다. 나도 그런 다락이 있었으면, 그 다락 속에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껏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또 읽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세상에나. 그런 오랜 이야기와 추억은 모조리 잊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작가란 무엇인가 2>의 역자 후기에서 엘리너 파전의 <작은 책방> 이야기를 만났다.

 

 

 

 

 

 

 

 

 

 

 

 

 

 

이렇게 또 다시 소장해야 할 책의 목록들은 늘어만 가고. 나름대로 책의 충동구매를 지양하고자 아주 느리게 한두권씩만 주문하려고 하는데 장바구니의 배는 터지고. 소설가 김연수처럼 이제 나도 다시 읽을 책들 위주로 책장도 좀 정리하고 해야 하는 나이로 가고 있다는 마음은 언제나 아침에 읽을 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일어난다는 노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마음과는 좀 어긋나면서도 통하는 것도 같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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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4-2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가는 뒤죽박죽인 책장이 정리될 날이 오겠지요. ㅎㅎ

blanca 2015-04-29 06:45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언젠가는 저도 가능하겠죠, 프레이야님?

숲노래 2015-04-28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아침저녁으로 아름다운 책을 만나면서
사랑스러운 생각이 피어나리라 믿습니다~

blanca 2015-04-29 06:46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며 조금씩 더 커나가려고 노력 중이지만 방심하면 다시 못난 구석들이 비어져 나오네요. 아직 읽어야 할 책도 커야 할 일도 많은 듯해요.

하이드 2015-04-29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백프로 정리해요. 다시 읽어지고 싶을때 사는 책이 내 책이라 생각하구요. 그렇게 두번째 사서 읽는 책은 헤어졌다 다시 만난 남친처럼 아, 내 책이 아니구나,바이바이 하기도 하고, 나랑 살자. 책장에 탁 꽂아두기도 하구요.

...그러면 늘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책은 왜 계속 늘어나는가 ㅡㅜ

blanca 2015-04-29 06:48   좋아요 0 | URL
아 ㅋㅋ 이해하죠. 저 분명 이사오기 전에는 책장 두 개도 여유 있었는데 책장을 하나 더 추가하니 더 모자르는 이 지경은 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ㅋ 사실 그 책장도 제 책을 위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새끼를 치나 봐요, 책도.

transient-guest 2015-04-29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 연말부터 미루고 있습니다만, 사무실방 공간을 정리하고 가구를 재배치해서 약간 도서관처럼 만들고 더 많은 책을 가져다 놓을 생각입니다.ㅎㅎ 모든 책벌레들의 꿈이겠지요? `지식인의 서재`는 좀 기획도서의 냄새가 나는대로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조국교수님은 안경환교수님과 함께 아주 약간 인연이 있는 분이기도 해서 더욱 그분의 이야기는 잘 읽었지요.ㅎ

blanca 2015-04-29 06:49   좋아요 0 | URL
부럽기만 하네요. 저도 서재 만드는 게 꿈이에요. 엑셀로 색인도 좀 만들고. 무엇보다 작가별로 분류해 놓고 싶어요. 의외로 이 책은 소장가치 충만해서 또 읽어도 좋더라고요.
 

나이가 드니 '사람'보다 '상황'의 힘이 때로 더 힘을 발휘하게 되는구나, 싶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도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이성적으로 그리는 언행을 할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 앞에서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내 손 안에 쥔 것들, 내가 지향하는 것들이 때로 너무 허무하게 느껴진다. 저렇게 늙고 싶지 않다,는 모습도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듦'과 '성숙'은 동의어가 아니다.

 

 

 

 

 

 

 

 

 

 

 

 

 

 

 

 

 

장 아메리는 '늙어감에 대하여'  어떤 미화나 위안의 비늘도 가차없이 벗겨낸다. 드러난 속살은 서글프다. 결국 그가 이야기하는 '늙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미화될 수 없는 무기력함과 쪼그라듦을 향한 잔인한 노정이다. '성숙'도 '달관'도 다 헛소리다. 세상은 노인 앞에서 등을 돌린다. 그는 그 누구도 감히 발설하지 못했던 잔인한 진실들을 가감없이 내뱉는다. 말라 비틀어져도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 뒤에 읽는 이들은 '삶의 찰나'들을 즈려 밟으리라 결심하지만 원경에서도 근경에서도 너무 초라해져 버린 삶의 풍경 앞에서 일순 아연해진다. 모두가 극명한 진실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과장일지라도 거짓말일지라도 생은 긍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생의 전진은 '나이듦'과 떨어져 이야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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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듯한 제목의 중편집을 통해 무라카미 류를 처음 만났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한없이 어여쁜 제목에 기대어 그를 만나볼까 하며 인터넷 서평을 이르집다 멈칫했다. 그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작가가 아닌 듯하다는 인상. 제목처럼 아름답고 투명한 작품들은 아니라는 평. 하루키와 같은 성을 가진 그와는 그렇게 멀어졌다, 다시 만났다. 생각해 보면 정말 다행이다. 섣불리 그를 만났다면 섣불리 멀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오랜만에 아껴 읽을 만한 이야기들을 만나 일부러 천천히 갔다.

 

쉰네 살에 이혼한 여자는 마트나 백화점의 식품 매장 시식 코너에서 일한다. 그녀는 생계를 걱정하다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갖춘 남자와 재혼하기로 하고 결혼 상담소에 등록하여 나이든 남자들과 선을 본다. 물론 성공하지 못한다. 업체에서 선별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파티 참석차 간 호텔에서 우연히 위로가 필요한 젊은 남자에게 얼그레이를 권하며 그와 일회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무언가를 그녀에게 남기고 간다. 미련을 잘라내는 일. 그리고 그것은 진심을 다해서 해야 한다는. 전남편과의 재회에서 그녀는 그와 보낸 긴 세월의 친밀감을 인정하지만 자신과는 다름 사람임을 절절하게 인식하고 깨끗한 이별을 한다. 미련들이 밀려나간 자리에서 그녀는 더 삶을 성실하고 충만하게 살 수 있음을 깨닫는다.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이라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멈추지 않고는 읽어낼 수가 없을 정도로 묵직하다. 작은 출판사에서 해고당하고 아직 대학 등록금을 대야 할 아들이 있는 인도 시게오라는 남자의 그 노숙자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한때는 소설가를 꿈꾸었던 그가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공사 현장의 차량안전요원 일을 하며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는 모습은 그 누구도 불편감을 느끼지 않고는 읽어내기 힘든 상황이다. 아무도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그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그 앞에 나타난 중학교 동창생. 한때는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했던 그들의 추억은 노숙자가 되어 병든 몸으로 나타난 그 친구 앞에서 무색해진다. 인도 시게오가 그렇게나 두려워했던 바로 그 노숙자가 되어버린 친구. 친구는 이혼해서 떠나버린 어머니가 남기고 간 반지를 돌려주는 일을 부탁하며 둘은 그 여정을 동행한다. 노숙자 냄새를 지우려 싸구려 여자 향수를 뿌리고 버스 안에서 오줌을 싸 버리는 그 친구를 부축하며 인도 시게오는 마침내 삼십 년을 떨어져 있었던 모자를 상봉하는 데 손을 보태게 된다. 그런 드라마틱한 경험 뒤에도 그는 여전히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임시직을 전전하고 일자리를 잃은 아내는 여전히 구직중이다. 하지만 어머니 옆에서 죽게 된 그 친구와의 만남은 무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것의 실체를 지척에서 목격하지만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되려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된다. 모든 불안정한 것들, 두려워했던 것들이 물러나고 남은 것은 생의 긍정이었다. 친구는 가엾고 서글픈 삶을 살았지만 마지막에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학창 시절의 친구에게서 위로를 받으며 생을 마감하고 인도 시게오는 그 친구의 마지막 나들이에 동행함으로써 그렇게나 끄달리던 두려워했던 것들에서 놓여난다.

 

이밖에도 겉도는 남편 대신 반려견에 기대었던 그녀가 반려견의 죽음을 함께 하며 남편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 퇴직 후에 캠핑카를 사서 아내와 자유로운 은퇴 이후의 삶을 꿈꾸었다 그것이 깨어진 마당에서 가족 간의 진정한 소통, 독립에 대하여 숙고하게 되는 전직 세일즈맨, 어린 시절 해녀 할머니와의 추억들과 늘그막의 사랑의 실패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되는 전직 트럭 운전사의 뒤늦은 성장. 그들은 모두 사회에서 때로는 함께 지내던 배우자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마침내 스스로를 들여다 보고 잊었던 것들, 놓쳤던 것들 앞에 자연스럽게 당도하게 되며 단순한 쇠락이 아닌 또 하나의 성장의 전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미래상이다.

 

그러니 이들과 비슷한 연배의 작가가 하는 이야기에 기대고 싶다. 분명 지나가고 남는 것들이 있다는 믿음. '나이듦'이 반드시 '상실의 과정'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이러한 위로들이 어쩌면 와글와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캐릭터들의 일상을 통해 이야기되는 과정은 참으로 따스하다.

 

어젯밤에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대성당' 편을 마침내 다 들었다. 결국 사람 사이의 소통은 아무리 어렵고 미망일지라도 끊임없이 포기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에서 만나는 작가들 앞에 서는 것이 좋다. 너무 순진한 믿음이라고 해도 이미 태어나 만나고 사랑하고 이야기하며 살게 된 마당에서 '절망'과 '체념' 주변만을 서성거리고 싶지는 않다.

 

작지만 분명 뭔가 있는, 위로가 되는 이야기 앞에서는 진부하다는 표현을 하고 싶지 않다. 위로는 위안은 언제 받아도 넘치지 않으니까. 이야기마다 따스한 마실 것들을 나열하는 작가의 섬세함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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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2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몇 권 읽었었는데 정말 제게는 맞지 않는 작가라 생각하고 그간 멀리 했거든요. 제가 읽었던 작품 중에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제목이 살짝 괴상한 [55세부터 헬로라이프]가..소설이군요? 그것도 꽤 괜찮은? 류를 이제는 다시 만나도 되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블랑카님.
물론 저는 55세 헬로라이프 보다는 사실, [늙어감에 대하여]에 더 관심이 가긴 합니다만.

blanca 2015-04-20 16:0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는 이 작품이 무라카미 류 작품으로 유일하게 읽은 작품이라 사실 그의 전반적인 작풍은 잘 모르겠어요. 그에게 있어 조금 의외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들인가 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너무 좋아서 다락방님도 좋아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너무 좋은 이야기들이어서 진짜 푹 빠져 읽었어요. `늙어감에 대하여`를 읽고 나면 서러워져요.

hnine 2015-04-2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저의 우울한 정신 상태를 고려하여 <늙어감에 대하여>는 읽지 말고, 대신 무라카미 류의 책은 읽어봐야겠어요.
(이래놓고 어쩌면 늙어감에 대하여를 더 먼저 읽을지도 몰라요 저란 사람은 ㅠㅠ)

blanca 2015-04-21 07:14   좋아요 0 | URL
나인님, 두 책을 함께 읽으시면 *^^ 각 책이 가지는 어두움이 서로 상쇄되지 않을까요?

라로 2015-04-2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라카미 류는 하루키와 성이 같다는 것 말고는 전혀 모르는 작가인데 블랑카님의 글을 읽으니 막막 읽고 싶어요!! 저도 블랑카님 나이에 늙어가는 것이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그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나이가 더 든 요즘은 오히려 젊어지는 얘기를 더 읽게 되는 것 같아요~~~~ㅎㅎㅎㅎ 어짜튼둥 저는 언제나 위로가 되는 이야기 좋아해요!! 잘 읽었어요~~~^^

blanca 2015-04-22 11:06   좋아요 0 | URL
아, 나비님, 제 나이가 과도기라 그런 걸까요? 여기를 넘어가면 좀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아, 이 소설 정말 강추드립니다. 일단 너무 재미있어요. 주인공들의 말, 행동이 어찌나 현실적인지, 그냥 자신이 체험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겪은 일들을 쓴 것 같아요.
 

봄은 왔는데 게다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두번째 봄>까지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주인공 셀리아가 두번째 봄을 맞은 나이는 나와 같다. 물론 서양식으로 한다면 아직 나에겐 이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도 불구하고 요즘 종종 우울하다. 이것은 내가 나로 태어나서 나의 삶을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또 당면하게 될 우울감이라 도망갈 수도 없다. 그래도 역시 나에게 힐링은 책에 관련된 것들. 아주 오랜만에 이동진의 팟캐스트 빨간 책방을 찾아 들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에 대하여 이야기한다지 않는가. 두 시간 가까이 되는 중혁 작가와의 그 주저리주저리가 너무 좋아 그 순간 만큼은 살아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나는 '카버'에 대하여 좀 각별한 기억들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니 마치 친분이 있는 것처럼 들려 더 좋다. 분홍공주가 아기였을 때 아기가 잠에서 깨기 전 그 아침 시간이 나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주어진 자유 시간이었다. 빈속에 꼭 믹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아마존에서 한 달이나 걸려 내 손에 온 중고책은 카버의 단편집. 물론 전체를 다 제대로 읽어낼 역량은 되지 않았다. 드문 드문, 어쩌면 철저한 오독과 몰이해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냥 이렇게 카버가 쓴 그 언어 자체를 내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아이를 낳고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부부에게 어느덧 벼락처럼 아이의 사고와 죽음이 다가왔을 때의 카버의 이야기는 분홍공주가 많이 아팠을 때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카버는 분명 이런 종류의 상실이나 고통을 직접 겪어본 후에 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거라는 심증이 들 정도로 그 담담한 듯하면서도 핵을 건드리는 정황 설명, 감정의 변화는 나의 그것들과 만났다. 소름이 끼쳤다. 작년 사월 이동진은 이 작품을 낭독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고저나 강약이 강조되지 않은 읊조리는 듯한 잠긴 그의 목소리로 듣는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 삶의 가혹한 반전은 영락없이 또다시 나를 흔들었다. 빵집 주인의 그 따뜻한 위로의 결말은 어쩌면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닐 거라는 의혹. 난 언제나 아이가 서서히 죽어가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그 평온한 일상이 해체되는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 평범한 부부의 가슴을 저미는 고통에 전염된다. 언젠가 느꼈던 바로 그 고통의 흔적은 다시 거스러미를 뚫고 돌아오고 만다.

 

카버의 편집자와의 스캔들, 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추측이고 주장인 지에 대한 그 모호한 지점에 대한 갑론을박은 카버의 이야기들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 이렇게 우리 손에 주어진 그 가난하고 항상 돈에 급급해야 했던 신산한 삶 속에서나마 한 자, 한 자,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그 처절한 시도들의 주인공인 거구의 사내가 남기고 간 이야기들, 그것들로 충분한 것이 아닌지. 김연수의 번역은 되도록 카버의 그 직설적이고 짧고 과장되지 않은 문장 그대로를 살리려는 노력에 닿아 있다.

 

 

 

 

 

 

 

 

 

 

 

 

 

김영하는 김연수와 대척점에 있는 작가라고 나는 종종 느낀다. 김연수가 삶에 대한 소통에 대한 희망, 낭만에 대한 그 어떤 희구에 언어를 어루만진다면, 김영하는 삶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듯하다. 그의 언어는 그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친절하지도 부드럽지도 않다. 살의, 의심, 망설임, 비정함 들이 난무하는 현실 앞에 그는 일말의 희망마저 단칼에 베어 버린 그 지점에 독자들을 불러 세운다. 그는 글을 잘 쓴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잘 만드는 데에 가깝고 언어의 조탁에 크게 괘념치 않아 보이는 모습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무심해 보이기도 한다. 한데 이런 추측들이 그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정말 김영하가 말한 내용들. 강연회, 인터뷰, 대담. 내밀한 사적인 이야기들을 말하는 것도 아닌데 꼭 작가로서가 아닌 일반 생활인으로서의 김영하에 대한 많은 것들을 듣고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는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지만 여하튼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어떤 경계나 거리낌, 가식을 치워버리고 덤벼든 그의 진정성에서 비롯된 면이 있을 것이다. 비관적 현실주의자. 하지만 그러한 현실 안에서 지속 가능한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그것이 일상의 경건함을 만들어 간다는 그의 이야기는 지금의 나에게 굉장히 호소력 있게 들린다. 나는 그가 추구하는 단단함과는 멀리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의 지향은 역설적으로 그의 이야기와 급하게 만난다. 그가 이야기하는 견고한 내면을 가진 개인들이 다채롭게 살아가는 세상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나는 분명 더 단단해져야 할 것이다. 나의 못남과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편견, 아집들은 결국 나의 나의 약함과 만나고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에도 분명 걸림돌이 된다. 소비에도 관계에도 의존하지 않고 쓰면서 그 과정에서 이미 충분한 행복을 누리는 작가의 삶이 일견 참 부러웠다.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금고에 넣어둔 샐린저를 몇 번이나 언급하며 사실 소설가는 이미 쓰는 과정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그의 이야기는 어쩌면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글을 끄적거리며 치유를 받는 것과 닮아 있다. 읽고 쓰고 듣고가 만나고 이야기하고 느끼는 것보다 나에게는 더 절절하고 친밀하다. 어떤 게 진짜 삶인지는 섣불리 단정짓지 않으려 한다. 다 살아 내고 마지막에는 결론을 낼 수 있을까, 확답하기 힘든 문제다. 레이먼드 카버의 알콜 중독에 평생 시달렸던 그 삶과 자신의 작품 <대성당>에서 주인공 남자가 아내의 맹인친구에게 티비의 대성당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함께 대성당을 그리며 느낀 감동과 전율의 대목 어떤 것이 더 진짜인 지를 우리가 판단해 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단정하고 확신하지 않고 한번 더 질문하고 회의하는 지점에 바로 '이야기'와 '작가'가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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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3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3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3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comi 2015-04-03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와 김연수를 대비하신 점 격하게 동감해요. 저도 이렇게 생각하곤 했는데 잘 정리해주셨네요.^^

blanca 2015-04-03 18:57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써놓고 항상 좀 뭣한데 힘이 되네요.

AgalmA 2015-04-03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blanca님이나 cocomi님처럼 공감.
좋은? 선호되는 작가는, 시대를 사는 독자들이 원하는 어떤 것을 계속 제시해주는 것일 거라 생각합니다. 대중에 대한 아부가 아니라 그자신 또한 치열하게 고민하기 때문에 공감을 낳는 접점을. 김연수, 김영하 두 작가가 그래서 나란히 환호받는 것이기도 할테고, 카프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영원할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걸 담보하지 못하는 작가는 밀려나는 거죠.(코드가 맞는 소수의 마니아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뛰어난 소설이나 시는 인간의 그런 면을 언제나 대변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작가들을, 시인들을 내내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이기도 하겠죠.

blanca 2015-04-03 19:00   좋아요 1 | URL
Agalma님의 댓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대중에 영합하고 무언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배신하기 시작하면 작가는 위험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어떤 직업이든 누군가의 반응이 결과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유혹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지는 것도 쉽지 않을 테고요. 그래서 위대한 작가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은 장장 십오 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일흔 다섯에 찍은 자서전의 마침표는 수많은 곡절들을 거쳐 비교적 행복했던 시절들의 잔향들로 어떤 충만감 속에 찍힌다. 방대한 양이지만 추리소설의 여왕이 회고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찬란하여 어떤 문학적 가치나 사회적, 정치적 성취에 지지 않는다. 그녀의 추리 소설이 단순한 서스펜스나 반전들로 폄하되지 않을 수 있었던 근저에는 분명 그녀가 이렇게나 진심으로 성실하게 줄곧 열정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 낸 근면성과 진정성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포와로와 그녀의 마플이 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사건 해결사 이상으로 오래 잔잔하게 살아 남은 힘이기도 하다.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이 아닌 여섯 편의 장편 소설을 펴낸 것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삶에서 얻어낸 많은 것들을 진지하게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탐정 에르큘 포와로나 귀여운 해결사 할머니 미스 마플이 나오지는 않지만 대신 하나 같이 이 이야기들에는 주인공들의 방황과 괴로움에 천금 같은 조언을 던져 주는 멘토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조언은 금과옥조 같다. 그들의 탄생의 든든한 뒷배는 애거서의 어머니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결정적인 작품. <두번째 봄>이다.

 

 

 

 

 

 

 

 

 

 

 

 

 

 

원제는 <Unfinished portrait>. 전도유망했던 초상화가 래러비는 전쟁중 손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려낸 끝나지 않은 초상화는 붓 대신 펜을 빌리게 된다. 우연히 만난 서른아홉 살의 여인. 래러비는 셀리아의 삶의 '인간 녹음기'를 자처하게 된다. 그녀는 또다른 애거서 크리스티다. 세밀하고 방대한 자서전 대신 조금은 축약되고 조금은 전개가 빠른 또다른 자서전을 읽게 된다. 많은 부분 셀리아의 삶은 실제 애거서가 자서전에서 고백한 에피소드들과 겹친다. 아기방의 연보라색 아이리스 벽지. 친절하고 푸근했던 유모. 언제나 놀이 동무가 되어주고 수많은 이야기들과 꿈, 공상을 진지하게 공유해 주었던 엄마, 느긋하고 너그러웠던 아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남자들의 수면양말을 떠주었던 에너지가 넘쳤던 윔블던의 할머니. 너무나 아름답고 생생하고 사랑스러웠던 어린시절의 파노라마 앞에서 점점 성장해 가는 셀리아의 모습에는 우리들이 잃어버려 언제나 찾아 헤매며 방황했던 바로 그 조각들도 흩어져 있다. 셀리아가 세상의 거친 풍랑을 막아주었던 안온한 방벽 아래에서 보낸 유년은 그녀의 내면 속의 미처 자라지 못한 아이가 찾아 만난 남편과의 가슴 아픈 파경 앞에서 그녀를 거의 해체시킨다. 실제 애거서는 그녀에게 크리스티라는 성을 준 첫남편의 외도로 이혼에 이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죽을 때까지 해명되지 않은 실종 사건을 일으킬 정도로 참혹한 고통을 겪는다.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 준 화가 래러비는 "그녀가 성장하기 위해 서른아홉에 돌아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구개월도 아홉 살도 열아홉도 아닌 서른아홉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진정한 의미의 성장에 다다른 셀리아라는 여인의 삶은 애거사 크리스티 자신의 처절했던 성장통에 대한 또다른 내밀한 고백이다. 그 고백은 삶 속에 온전히 빠져 있을 때에는 결코 인식할 수 없는 삶의 원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패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 애거서는 여러 작품에서 줄곧 '삶의 패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삶에서 어떤 거리감을 유지하게 되면 자신이 그려온 삶의 궤적이 나름대로의 일정한 패턴을 그리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때 일어났었던 일들은 그 일들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밑그림의 한 귀퉁이였던 경우가 많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실제 첫결혼의 실패 후 연하의 따뜻한 고고학자를 만나 재혼하게 되고 죽을 때까지 해로하게 된다. 수많은 회한은 어쩌면 전체를 보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작가라면 자신의 창조한 인물들에게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혹은 생각하는 대로 인물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인물들이 도리어 작가에게 놀라움을 선사하지요. 진짜 신 역시 인간에 대해 그런 느낌을 갖는지 궁금합니다......

-<두번째 봄> 중

 

위엄 있게 단호히 삶을 떠나는 것을 꿈꾸었던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서전을 마무리하고 십 년 후에 그 꿈에 거의 다다른다. 삶에 관한 한 말해야 할 것은 모두 말했다고 느꼈던 일흔다섯의 나이 앞에는 십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선물로 주어져 있었다. '여기', '지금'은 죽는 그 순간까지 잠정적이다. 결국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답 대신 질문의 무게가 주어질 것이다. 믿고 걸어가는 데 삶의 매력이 있을 테니까. 그녀의 말처럼 크고 진지한 것들보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어리석게 끄달리면서도 가끔은 저만치 한 발자국 떨어져 나와 나의 궤적을 가만가만 들여다 보고 싶다. 그 순간의 감탄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도 성장하기 위해 이야기를 여기 떨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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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5-03-3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그래도 이 시리즈 신간을 기다렸는데 반가운 글 잘 읽었습니다 ;)

blanca 2015-03-31 07:57   좋아요 0 | URL
쟌느님도 이 시리즈 좋아하시는군요!! 추리소설도 좋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 이야기들도 참 좋아요. 이렇게 순차적으로 번역하여 펴내어 주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

다락방 2015-03-3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신간 소식에 쫑긋했는데 블랑카님의 반가운 리뷰로군요!

blanca 2015-03-31 07:5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그러시구나!! 반갑네요. 좋아하고 기다리는 게 겹치면 참 행복해져요^^

moonnight 2015-03-3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기다리고 있던 시리즈예요. 감사합니다. 블랑카님^^

blanca 2015-03-31 07:58   좋아요 0 | URL
이 책들 읽고 나시면 더욱 행복해지실 겁니다.

라로 2015-03-31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한꺼번에 다 지르려고 기다린 보람이 있어요~~`.^^)

blanca 2015-03-31 08:00   좋아요 0 | URL
아웅, 한꺼번에 다 지르고 읽어내실 그 기쁨도 못지않죠!! 저는 나올 때마다 챙겼는데 이게 또 감질나더라고요. 이 시리즈는 한 권의 번역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아쉽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

transient-guest 2015-04-07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거서 크리시티는 삶 자체도 종종 소설 같다고 느낄때가 있어요. 나중에 꼭 구해서 봐야겠습니다.

blanca 2015-04-07 18:52   좋아요 0 | URL
저는 그녀의
광팬인데 자서전이랑 다른 필명으로 쓴 이 책 읽고 더 빠져들게 되었어요. 강추드려요.

숲노래 2015-04-0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쓸 때에도
내 삶을 누릴 때에도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새로운 하느님(신)이 되어서
하루를 보내는구나 하고 느끼곤 해요

blanca 2015-04-08 23:34   좋아요 0 | URL
요새 들어 더욱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침부터 눈발이 흩날렸다. 자의가 아닌 상황과 타의에 의해 하는 이사는 얼마쯤 서러웠다. 그리고 무심코 보게 된 인터넷 기사에서 당신의 부음을 전해들었다. 2011년 1월 22일.

 

 

 

 

 

 

 

 

 

 

 

 

 

 

 

 

박완서 작가의 죽음이 훑고 지난 간 4년의 시간 후, 당신의 고즈넉하고 단아한 문체를 닮은 맏딸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현재의 자신을 둘러싼 생활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노작가가 세상과 작별하기 이전, 이후, 그리고 딸의 삶이 잘 버무려져 있다. 딸이 바라보는 작가는 평범하고 엽엽한 가정주부로서의 삶과 전후 시대의 질곡과 여인의 신산한 삶들을 섬세한 문장으로 갈무리한 위업 사이의 어느 지점에 가 닿아 있다. 그것은 평범한 모녀 관계에서 조금 더 나아간 일종의 경외감이 자아낸 거리. 익숙하지 않은 그 간극은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아이를 훌쩍 키워내고 갑자기 등단하게 된 작가의 원고를 직접 들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여고생의 풍경이 그려진다. 어머니의 마지막, 그렇게나 완벽하고 단단해 보이던 여인이 이제 마침표를 찍기 위에 풀썩 주저앉은 자리는 의외로 슬프고 비극적이지만 않았기에 안심이 되었다. 이제 딸들은 작고 약해진 어머니를 마음껏 사랑하고 어루만지며 아쉬움과 회한을 달랜다. 그리고 어느 새벽, 이삿짐을 기다리며 몸을 뒤채며 내가 보내던 그 신새벽, 나의 첫아이의 태교의 지문을 주었던 다감하면서도 엄격할 것 같던 소설가 할머니는 생의 소임을 다하고 훌쩍 사라져간다.

 

작가들이 태어남과 길러짐의 모호한 지점에 서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로맹가리의 이야기처럼 어머니를 이 세상에서 잊혀지지 않게 하려는 특별한 소명의식 때문인지 유달리 어머니와의 추억과 석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 중에서 기억에 각인처럼 남은 몇 작품들.

 

 

수전 손택의 외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어머니에 대해 남긴 기록은 살아 있는 지성으로서의 그녀의 신화에 먹칠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 앞에서는 너무나 무력하고 작아지는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의 모습에 대한 아들의 시선은 절절하다. 가장 명료하고 가장 현명하고 가장 세상과 강하게 밀착되어 있던 그녀의 이지러짐은 그래서 더더욱 슬프고 또 애끓는다. 자신에게 닥친 병조차 학문적으로 해석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그 해답을 구하려 했던 그녀의 시도들은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 그녀의 저작들, 그녀의 삶과 지근거리라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녀가 없어져 버린 거리에서 아들은 정작 했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되짚으며 자책한다. 그 누군들 이러한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참 신기하게도 이 흑백 사진 속 어머니의 옆모습에서 나는 친정 엄마의 미소를 발견했다. 엄마가 젊었을 때에도 이런 옆모습, 이러한 느낌이었다. 잘 웃지 않아서 미소로 들어가는 관문의 엄마의 모습은 언제나 수줍었다. 종군기자인 아들이 고백하는 어머니와의 내밀한 순간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그것이 지는 지점에서는 너무나 눈물겨워 한번에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이야기. 군데 군데 삽입된 흑백사진들이 가두어 놓은 찰나들은 도저히 시간의 결 속에 고여 있는 것들로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어머니는 25년 간이나 정신병으로 아들을 보살펴 주지 못했다. 생의 마지막 즈음에서는 말 그대로 무너진다. 아들은 어머니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노숙인처럼 입성이 추레해진 이제는 도저히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늙고 병든 여자 앞에서 또 그녀의 죽음 앞에서 그가 정신이 명료한, 젊은, 온전한 엄마를 되찾기 위해 엄마의 요리 레시피를 찾아 그녀의 그 따스했던 부엌을 다시 복원해 낸다. 애도와 추모의 과정은 한 인간의 성숙의 여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솔직하게 드러내어 보여준다. 고백은 뼈아픈 것이지만 한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탈피와 성장의 노래이기도 하다.

 

 

 

 

 나이들어 노망난 여자와 힘차고 빛이 났던 여자를 글쓰기로 합쳐 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에 대한 연가는 사실 모든 어머니에 대한 글쓰기의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젊고 여자의 향기가 바래지 않았던 젊은 엄마의 품 안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걷고 뛰고 자라나서 마침내 우리보다 더 작아지고 약해지고 혼미해진 늙은 여인의 슬픈 뒷모습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다가간다. '그녀'라는 3인칭은 애써 그녀를 객관화하고 그녀와 나와의 거리감을 만들면서 동시에 좁히려는 그 헛된 시도의 응축일런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는 아니 에르노만의 것이 아니라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화장실에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를 들고 들어갔는데 맞춤하게도 그 안에 저자의 어머니 박완서의 에세이집 <세상에 예쁜 것>이 꽂혀 있었다. 묘한 기분. 딸의 글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커다란 아쉬움, 회한 대신 어떤 충족된 애착, 존경심, 애정이 느껴져 부러웠다. 마지막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 속에서도 지나친 고통이나 쇠락을 떨구지 않고 가 뒤에 남은 이들의 부책감을 줄여준 노작가의 단정한 모습이 그의 작품 같아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다. 그러고 보면 이별도 만남 만큼이나 관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맞잡은 손을 놓을 때 비로소 '나'와 '당신'의 관계는 완결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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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3-21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사시는 곳이 서울이 아니신가 봅니다.
서울은 눈이 안 온 것 같은데...

이렇게 쓰시니 뭉클합니다.
저의 엄마는 건강하신 편이긴한데 꼭 요맘 때 한번씩 병을 앓곤 하죠.
며칠 전에도 그냥 안 지나가시더라구요.
예전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요즘엔 부쩍 마음이 무겁고 걱정이 앞서더군요.
저러다 어떻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저는 세번째 책은 읽은 적이 있는데 생각 보다 크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이런 책 좀 많이 읽어 둘까봐요.
언젠가 저도 엄마와 헤어질 날을 위해...ㅠ

blanca 2015-03-22 09:22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제가 혼란을 드렸나 봐요.^^;; 2011년 1월 이삿날에 눈이 오더라고요.
부모님이 없는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참 쓸쓸하고 무서워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강건한 모습이 되기란 힘든가 봐요. 아니 에르노 책은 사실 우리의 정서와 안 맞는 노골성, 냉정해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사실 더 와닿았어요.

몬스터 2015-03-21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blanca님, 며칠 전에 ˝ Still Alice˝ 란 영화를 눈물 흘리면서 봤어요. 이른 나이에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여성의 삶의 단편을 보여주는데 , 내 엄마가 마음에 걸려서 내내 울면서 봤어요. 글 읽으면서 제 엄마와 나의 추억을 생각해 봤어요. 많이 늦기 전에 더 많이 만들어야 되는데.

blanca 2015-03-22 09:2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몬스터님. 저는 아쉽게도 보지 못한 영화인데 들려주신 내용만으로 슬퍼지네요. 예전에 소설가 박민규가 인간인 것만으로 연민을 느낀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실감해요. 유한한 삶 앞에서 너무 무기력한 부분이 있어서요. 저도 몬스터님도 가족들과 순간 순간에 집중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5-03-22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라는 말만 들어도 때로는 가슴 따뜻하고, 때로는 짠해지지요.
연로하신 친정어머니와 같은 동네에 살아서 자주 보는 편인데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 못가네요. (건강에 안 좋다고 오지 말라고 하세요.)

어머니와 관련한 책만 모아서 완결된 페이퍼를 잘 쓰신 것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

blanca 2015-03-22 15:00   좋아요 1 | URL
페크님은 어머니와 같은 동네에 사시는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같은 서울이기는 하지만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해서 엄마가 고생이랍니다. 오늘 미세먼지 너무 독하네요. 이 좋은 봄날 벌 서는 것처럼 갇혀 있어야 해서 참 속상하네요.

세실 2015-03-26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의가 아닌 상황과 타의에 하는 이사....저도 경험했기에 많이 서러웠고, 많이 울었답니다.
두 어머니, 아니 네분의 부모님이 살아계시니 때로는 버겁지만, 좀 더 열심히 찾아뵈려고 노력합니다.
나중에 덜 후회하려구요. 이별은 아직 낯설기만 합니다.

blanca 2015-03-28 21:32   좋아요 0 | URL
저는 특히 한겨울이었고 한달만에 이사갈 집을 구해야 해서 고생했던 기억이 나요. 세실님도 그러셨군요. 네분의 부모님이 건강히 생존해 계신다는 것 참 행운이고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열심히 즐겁게 살아가려 합니다. 세실님은 이미 그러고 계신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