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단 책장 두 개가 꽉 차고(물론 이것은 꽂은 책 위로 남는 공간에 책을 눕힌 것도 포함) 책상에 붙어 있는 삼단 가량의 책장도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몇 권 정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물론 전혀 짐작도 안 되는 실정이고 있는 책을 몇 번이고 들춰보며 처분할 책을 고민해도 더 이상은 내가 이 책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생각 안 나는 그런 상황. 이 책은 사실 처분할까 싶어 다시 꺼내게 되었는데 퍼더앉아 입 벌리고 지식인들의 넓은 서재에 감탄, 부러워하는 부작용에 시달렸다. 나는 인정받는 지식인이 아니니 사실 이런 넓은 서재에서 작가별, 혹은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나의 애서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미래가 과연 올까 싶은 데에서 오는 자괴감도 좀 들고.
특히나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널찍하고 입체적인 서재가 부러웠다. 어린 시절 읽었던 전집류를 처분하지 않고 소장할 수 있는 공간, 마음의 여유도 더불어. 읽고 또 읽고 마침내 이야기가 끝난 마당에 첨부되어 있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더불어 그것의 연장선으로 이해했던 계몽사의 <소년소녀문학전집>은 이미 오래 전에 내 손을 떠나 버렸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몽환적인 표지의 <보리와 임금님>. 작가는 이야기 시작 전에 다락방에서의 자신만의 책들과의 잔치에 대한 추억을 너무나 사랑스럽게 그려놓았었다. 나도 그런 다락이 있었으면, 그 다락 속에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껏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또 읽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세상에나. 그런 오랜 이야기와 추억은 모조리 잊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작가란 무엇인가 2>의 역자 후기에서 엘리너 파전의 <작은 책방> 이야기를 만났다.
이렇게 또 다시 소장해야 할 책의 목록들은 늘어만 가고. 나름대로 책의 충동구매를 지양하고자 아주 느리게 한두권씩만 주문하려고 하는데 장바구니의 배는 터지고. 소설가 김연수처럼 이제 나도 다시 읽을 책들 위주로 책장도 좀 정리하고 해야 하는 나이로 가고 있다는 마음은 언제나 아침에 읽을 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일어난다는 노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마음과는 좀 어긋나면서도 통하는 것도 같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