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 - 당신이 지나친 미술사의 특별한 순간들
이원율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동을 주는 그림과 유명한 그림은 다르다.

이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유명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유명한 그림이 왜 유명한지를 알려주는 책.

저자는 아예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한 작품을 보고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도록 미술 공부에 첫 걸음을 뗀 분에게는 '완전한 생애 첫 미술사 수업', 적당한 수준을 넘어 미술을 본격적으로 알고 싶어진 분들에게는 '제대로 된 생애 첫 미술사 수업'으로 이 책이 제 역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 10쪽


이 책에서 다루는 23명의 작가와 그들이 문제작만으로 미술사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딱 2가지의 목적은 확실하게 성취하고 있다.

그 첫번째는 유명한 그림이 왜 유명해졌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두번째는 책을 다 읽었을 때 시대를 바꾸는 예술의 힘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나는 이렇게 자기 목적에 충실한 책이 좋다. 

어정쩡하게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고 하다가 갈길을 읽고 방황하는 책 말고......


첫 번째 예를 들어보자



조토의 유명한 그림 <애도>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보자.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뭐 딱히 잘 그린 그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현장에서 직접 보면 다를지도 모른다고? 

아니! 이 그림은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성당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그림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많은 그림들 속에서 이 하나를 보고 감동에 빠지기는 힘들다.

종교적 감동이라고 하면 나는 오히려 조토 이전의 중세 그림에서 더 감동을 받는다.

중세의 그림들은 "너 이래도 감동 안 받을래?"라고 하면서 그림을 보는 이를 윽박지른다.

종교적 핵심을 모두 제외해 버리고 오로지 신성만을 부각하니까 말이다.

그러면 이 그림은 왜 유명한가? 그리고 왜 당대의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가?


그것은 조토가 신의 눈이 아닌 인간의눈으로, 배운대로의 규격에 맞게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그렸기 때문이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머니, 비탄에 빠져 엉엉 울고 있는 천사들.

지금에 와서야 별거 아니지만 처음으로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의 충격은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그림에서 예수의 죽음은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의 영역으로 내려온다.

그것이 인간의 신앙심을 더 깊게 했을지 아니면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을지는 논외의 문제지만 실제 조토의 그림을 주문했던 스크로베니가 감동했다는 얘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조토로부터 예술의 중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마네의 너무나 유명한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다.

역시나 지금 봤을 때 딱히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거나 그렇지는 않다. 물론 나만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 그림 역시 감동적인 그림이 아니라 유명한 그림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오감, 감각을 해방시킨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인간의 신체가 아니라 뱃살이 접히는 것까지 포함하여 인간의 눈이 포착할 수 있는 모든 빛과 그림자를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회화의 핵심 가치가 "개인의 감각, 즉 화가 각자의 개성"(213쪽)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와 그 작품의 첫 번때 가치를 독특한 개성에 두는 시대의 시작이고, 이것은 현대 예술의 기본 기조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네는 현대 미술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인물이 된다. 


이런 얘기들이 조토에서부터 잭슨플록, 팝아트의 리처드 해밀턴까지 펼쳐지며,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미술사에서 유명한 그림들이 왜 유명한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게된다고 하겠다.


두번째로는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결국 유명한 예술이라는 것은 기존의 한계를 깨는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조토가 회화를 중세의 장인 기술에서 해방시켜 독립적인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낸 것은 그가 인간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이다. 신성의 영역에 인간의 감정을 들이댄 것이나 마찬가지로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깸으로써 조토는 위대한 화가 되는 것이다.

고흐는 사실적 묘사를 뛰어넘어 피사체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혼을 그림으로써 그림은 객관적이어야 한다라는 신화를 깬다. 세잔은 그림에서 형태를 해방시켜, 사과는 마땅히 이런 모양이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부숴버린다. 다음 마티스는 형태에 이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색채마저 해방시켜 버린다. 칸딘스키와 같은 추상화로 가게 되면 사물의 재현이라는 오래된 미술의 본래적 의미마저 파괴하고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결국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의 획득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과 예술가의 힘은 바로 이 새로운 시각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이 시각을 획득한 이후에 보는 세상은 우리에게 다른 측면의 사고와 세계관을 선사하는 것이다. 

결국 이 한권의 책에 담긴 유명한 그림들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이 그 오랜 역사동안 무엇을 해왔는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그림들 중에서 당신이 매우 좋아하고 감동을 느끼는 그림을 만난다면 그건 또 굉장한 행운이다.

하지만 그런 그림을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예술이 끊임없이 과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확대하는 과정을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23-08-12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서 인상 깊은 묘사를 꼽으라고 하면, 나체 여성의 맨발바닥을 정면으로 그린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아는 맨발바닥을 상세하게 묘사된 그림이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카라바조와 쿠르베, 그리고 만테냐의 죽어서 누운 예수 그림이거든요. 맨발바닥 묘사는 흔하지 않아서 신선하다고 생각해요. ^^

바람돌이 2023-08-12 14:14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진짜 나체여성의 발바닥을 정며으로 그린 그림은 거의 없는거 같네요. 저는 또 이 그림에서 그건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cyrus님 덕분에 그림의 다른 면모를 또 봅니다. 좋네요. ^^
카라바조와 쿠르베의 발바닥은 기억이 안나는데 만테냐의 예수의 발바닥은 그림 직접 봤었어요. 발바닥이 고통을 부르짖는듯한 느낌이어서 강렬했던 기억이 나네요. ^^

야클 2023-08-12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한 꼭지씩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입니다.

바람돌이 2023-08-12 14:16   좋아요 1 | URL
한 꼭지씩 읽어도 좋을거 같아요. ^^ 이분 예전에 후암동 미술관이라고 신문 연재하시고 블로그운영할 때 가끔씩 읽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나오니 좀 더 정독해서 읽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