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타맨
슈테판 보너.안네 바이스 지음, 함미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2월
평점 :
♡ 그 남자 그리고 그 여자, 『베타맨』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여자의 입장에 서서, 남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베타맨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소설이다.
저자인 슈테판 보너와 안네 바이스가 소설 속 주인공인데 각자의 입장에서 줄거리는 흘러간다.
안네 바이스는 올리버와 함께 살며 미래를 꿈꾸고 있었지만 그는 결국 바이스양의 전 남친이 되고 말았다.
올리버는 순하고 착했지만 그의 대학생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그의 잘못도 아니고 대학 행정처에서 바꾼 규정때문에 무려 14년동안 그는 대학 생활을 하고있다.
점점 늘어나는 그의 학업생활 덕에 같이 사는 집세마저 안네의 차지가 되어버리니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나는 매사에 근심 걱정이 없는 그의 생활 태도가 마냥 좋았다. 적어도 초창기엔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공동의 행복을 향해 가는 길인데, 내 자신이 올리를 등에 짋어지고 에베레스트 산을 힘겹게 오르는 셰르파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그와 헤어지고 말았다.
수습부터 보조 직원까지, 고군분투했던 안네는 그렇게 원하던 출판사 원고 담당 편집자로서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같이 일하게 된 팀원이 슈테판 보너이며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슈테판에게는 여자친구 마야가 있었다. 뭐랄까, 그는 딱 남자이다.(물론, 남자라고 다 그러겠는가. 예외도 있겠지만 소설 속 그는 딱 남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니깐 크게 오해하지 마시길!) 그는 여자친구인 마야가 전부라 생각했다. 육아와 출산은 약간의 골칫거리라 생각할 정도로.
그의 친구인 마르코는 자신의 물건에 삼손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슈테판에게 다짜고짜 "친구, 나한테 고추가 생겼어!"라고 말을 꺼낸다. 마르코와 그의 여자친구인 타마라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속뜻을 알아차리진 못한 슈테판은 결국 마르코가 제대로 이야기를 꺼내자 이해하였다. 그가 눈치가 느리거나 혹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왜냐고? 그와 마야 사이에서도 아이가 생겼으니깐.
여러 조사들이 밝힌 결과에 따르면, 이제는 젊은 남성들이 가정을 꾸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원치 않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그들에게 가족을 책임지는 일은 너무 부담스럽고, 또 너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 두 번째 이유는, 왜 내가 번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 써야 하는 거지? 그럴 거면 차라리 나 혼자 살면서 내가 가진 걸 누리고 살겠어, 라는 자기본위적인 관계 이해에 있다. -빌터 홀슈타인, 남성 연구가
그렇다고 한다. 아이가 생겼다는 것은 여자건 남자건 엄마와 아빠라는 또 다른 직위와 함께 막중한 책임감이 부여된다.
여자만 덜컥 겁이 날까? 티 내지 않아도 남자도 겁낼 것이다.
안네와 슈테판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적어내리니 소설 속 내용을 다 이야기하는 것 같아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생략하겠다.
살짝만 얘기하자면 마야의 출산을 겪게되는 슈테판, 그리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는 안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베타맨의 뜻을 아는가? 베타맨은 확고한 역할모델의 부재로 인해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대남성을 일컫는 말이다.
여주인공인 안네 바이스는 알파걸이다. 결혼과 출산, 미래를 꿈꿨던 무능력했던 남자 친구인 올리버와 헤어지고 '싱글' 상태가 되어버렸다.
같이 일하는 슈테판 보너처럼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청결과는 담 쌓았고 무엇보다 가사노동 자체에 뒷전이다.
그녀는 베타맨 같은 남자가 아닌 알파맨 같은 남자를 원하는 것이다.
한참 전에 인터넷 기사를 통해 본 적이 있는데 남편이 방 안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그는 왜 울었을까?
그의 부인이 뒤척이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제대로 눈도 못 붙이는 것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출산은 여자의 몫이지만 육아는 여자가 아닌 공동의 몫이 아닐까?
나도 안네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게 똑같이 맞벌이하는 입장이면 살림과 육아는 공동분담하는 것이 맞다고본다.
베타맨인 슈테판 보너의 입장도 당연지사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모든 남성들이 그럴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생명이라는 결실을 맺게되면, 태어날 아이에게는 걸맞는 '아버지'가 되도록 나만 바라보고 있는 내 아내에게는 걸맞는 '남편'이 되도록 노력하고 내 가족들을 돌보고 지킬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하지만 한편으론 걱정될 수밖에 없다. 왜일까? 이런 다짐을 지키는 사람이 되려면 '완벽한 남자'여야 하는데 아직 그런 남자가 되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안네와 슈테판에게 해결책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해결책은 딱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 바로 '공감과 배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