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근 한 달 동안, 몸도 마음도 아팠다.

머리 깨지는 소리가 절로 들리는 일들이 생겨 거의 삼주 동안 마음 고생을 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싶어 하루 두 세시간 겨우 잠들곤 했다.

결과적으로 해결하긴 했지만 참, 이럴 때면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진다.

초년에 고생하는 팔자라고 하더니 정말 그 말이 맞는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매번 이럴 때면 '이 또한, 잘 지나가리라!'를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본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그 마음이 더 단단해지기 위해 매번 되뇌인다.




1.

힘들었던 추석 연휴가 이렇게 끝이 났다.

대부분 명절(설날, 추석) 연휴를 먹고 놀고 쉬는 개념으로 인식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

허나 그 기간만큼은 엄마나 내게 있어서 제일 힘들고 바빴다.

그래도 작년부터는 명절날 음식 할 일이 사라져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부모님 직업 특성상, 명절날도 연휴없이 바쁘기에 나 또한 하루 종일 도와드리고 있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자정이 지나서야 집에 와 잠이 들면 두 세시간 잠깐 눈을 붙이는데, 새벽 네 시쯤 피곤함을 무릎쓰고 일어나 엄마랑 둘이서 본격적으로 명절 음식들을 했다. 불과 제작년까지만 해도 이 루틴이었다.

(친가쪽 식구들은 아빠 빼곤 다 딸들인지라) 며느리는 엄마 혼자라서 모든 음식을 다 해야만 했다.

(살짝 토로해보자면) 엄마의 시집살이는 참 엄청났다.

심지어 엄마가 본격적으로 바깥일을 시작하니 그 시집살이의 불똥이 내게 튀었다는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한 일들도 많이 일어났었다.

작년부터는 우리 식구 먹을 음식들만 딱 하고 나니 엄마와 내가 그간 얼마나 많은 음식을 했었는지 짐짓 짐작해볼 수 있었다.

매년 오는 명절이긴 해도 일 년에 두번 밖에 없으니 내 가족들 먹인다는 마음으로 엄마와 함께 뭐 하나라도 더 하려고 했었는데, 그간의 일들을 겪고나니 '아무리 가족이라도 착하면 이용당하는구나, 착하면 나만 바보되는구나.'싶어 이제는 마음을 다잡았다.

일 년에 두어 번 오는 명절이 그닥 반갑지 않았고 지금도 그 마음이 남아있긴 하다.

언제쯤 반가워질지는, 잘 모르겠다.




2.

그래도, 추석 다음 날은 매우 뜻깊은 날이다.

바로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케이크는 꼭 내가 샀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미역국은 꼭 내가 끓였다.

엄마는 엄마(외할머니)의 손맛을 꼬옥 닮아 음식도 잘하고 손이 매우 크다.

나 또한 엄마와 외할머니를 꼬옥 닮았는지 손이 "매우" 크고 음식도 잘하는 편에 속하긴 한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의 생일상은 내가 차리고 있다.

밑반찬도, 재어놓은 고기도 잔뜩 있으니 미역국 끓이기만은 아쉬워 구색 맞추기 위해 전만 빠르게 했다.

(사실 올해는 전을 아예 안 만들 생각이었으나, 생일상에 조금이라도 놓고 싶어 빠르게 몇 가지만 샤샤샥 만들었다.)

엄마에게 어떤 선물을 드려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생각한 것은 'BAG'이었다.

이렇게 올해 부모님과 동생들의 생일은 끝이 났다.


엄마가 본격적으로 직장에 다니던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 집안일은 내 몫이다.

(학교에 다닐 때도, 직장에 다닐 때도 엄마와 분담하며 집안일을 했는데 엄마가 아빠와 함께 일하는 시기부터는 온전히 내 몫이긴 하다.)

가까운 사람들은 매번 물어본다. 참 신기하다고. 어떻게 그 많은 집안일까지 다 할 수 있냐고.

굳이 꼽아보자면 세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엄마의 힘듦을 덜어주고 싶어서였다.

어린 눈의 내가 봐도 참 그랬었다.

엄마와 고모부가 생일이 같은데, 대식구가 모여도 온전히 음식하고 일하는 사람이 엄마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고모부 생일상까지 차리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너무 이상한데, 엄마 본인의 생일상도 직접 차리는 게 이상했다, 싫었다.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아무리 고사리 손을 보탠다해도 별 도움이 되질 못해 그 때부터 항상 다짐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크면 엄마 생일상은 무조건 내가 차려드릴 거라고.

엄마의 결혼 생활을 보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보고 느낀 바가 많으니, 어릴 때 이미 나는 '애어른'이 되어있었다.

동생들처럼 투정 부리는 것도 몰랐고 남들 다 한 번쯤은 온다는 사춘기도 겪지 않았다.

투정을 안 부리고 싶어서 안 부리는 것도 아니었고 사춘기도 분명히 왔을텐데 아마 억누르고 삼켰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엄마에게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고 동생들에게는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부모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동생들이 내는 투정과 푸념은 엄마를 대신해 내가 다 들어주고 엄마가 토로하는 힘듦 또한 귀 기울여 다 들어주었다.

외할머니가 항상 해주시는 말씀이 있다.

첫째는 하늘이 내는 거라고.

가까이 있다면 많이 챙겨줄텐데, 그래도 엄마는 네가 있어서 든든하겠다고.

항상 고맙다고 말해주시는 외할머니의 위로와 따뜻한 말들로 따뜻함을 얻고 있으니,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3.

연휴 끝나자마자 간 곳은 바로 병원이었다.

약 지어오는 김에 교수님께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도 물어봤다.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에 걸리는 판국인데, 백신을 맞아야 그나마 코로나에 걸려도 덜 아프다는 뉴스가 즐비하니 정말 맞아야 하나 싶어서였다.

지난 번 의사선생님과는 의견이 다를까 싶어 물어봤지만 교수님 또한 지금은 맞지 말라고 하셨다.

컨디션이 좋을 때 맞아도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이 백신인데 지금 몸상태로는 무리인지라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다만, 당분간은 최소한의 외출 그리고 최대한 나가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하니, 그래야 할 것 같다.

부득이하게 몸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꼭 백신을 맞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한다.

알다시피, 나타나는 부작용이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이기에 그 부작용을 떠안는 것도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부모님의 경우, 1차때는 하루 이틀 아프시긴 했지만 2차 때는 아무렇지 않으셨다. 남동생도 열만 살짝 날 뿐 아무렇지 않긴 했다.

허나 여동생은 1차 때는 3주 간을 아팠었다. 두통과 어지러움, 잦은 설사로 출근도 못 했을 정도였으니깐.

독감에 대비하여 독감주사 맞듯이, 백신 또한 코로나에 대비하여 맞는 것이 맞지만 무작정 맞기보다는 의사와 상담을 하는 것이 꼭 좋다고 말해주셨다.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 판정을 받았다던가 격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철렁거린다.

오늘만 해도 확진자 수가 엄청나던데, 언제쯤 가라앉을련지.

짙은 가을이 올 때쯤, 요양차(?) 제주도에서 한 달 정도 묵기 위해 숙소부터 포함해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때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또 계획이 미뤄지고 말았다.

코로나가 우리나라로 유입되어 딱 터지기 한 달 전, 그 때 제주도에 갔던 일주일이 참 행복했는데.

코로나가 참 밉다, 미워.




4.

쓰고 싶은 것도, 기록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노트북 앞에 진득히 앉아있을 시간도 없었다.

거의 한 달 남짓 (처음으로!) 일기를 못 쓰고 밀렸으니 느긋함이 없는 한 달이었음이 분명했다.

남은 자격증 시험이 하나가 더 있어서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야 숨 쉴 틈이 생겼으니 열심히 업로드해야겠다.

이렇게 텀이 생겨버리니 휑- 해진다.





버라이어티했던, 한 달의 기록을 이렇게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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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9-25 0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참 착한 따님이세요. 어머님 힘드셨겠지만 그래도 하나의 책장님덕에 행복하시겠어요.
앞으로 좋은 일들 가득하시길 ~

하나의책장 2021-10-19 22:53   좋아요 0 | URL
따뜻하고 예쁜 말씀, 감사합니다^^

scott 2021-09-25 00: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모든 딸 들중 하나님의 어머님의 딸 하나님은
정말 예쁜 딸,
마음과 정성이 담긴 음식
애어른 속 깊은 딸!

하나님 아프지 마삼 333

제주도 가을 정말 좋지만

현재 상황이 좋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ㅠ.ㅠ

하나의책장 2021-10-19 22:56   좋아요 1 | URL
전 아직 백신도 못 맞아서 가는 게 더더욱 늦어질 것 같아요ㅠ
날씨도 확- 추워지는 바람에 또 차일피일 미뤄지게 되었어요.
코로나가 딱 터지기 한 달 전에 제주도로 여행간 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그 때는.
코로나가 있는 한, 제게 여행운은 전혀 없는 것 같아요ㅠ

새파랑 2021-09-25 0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계속 아프셨군요 ㅜㅜ 제주도에서 좋은 풍경도 많이 보시고 요양 잘하시길 바랍니다 😊

하나의책장 2021-10-19 22:57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ㅠㅠ
제주도에서의 한 달 생활은 결국 미뤄졌어요ㅠㅠ
코로나가 현존하는 한, 제게 여행운은 없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제가 백신도 안 맞아서 다들 말리는 바람에 결국 기약없이 미뤄졌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