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과 치유
시드니 맥도날드 베이커,M.D. 지음, 김광익 옮김, 한만동 감수 / 창조문화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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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일반인들이 있기에는 조금 어려움감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알지도 못하는 용어들을 나열해 괜히 그럴싸하게 치장한다거나, 전문가들끼리만 서로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책은 아니다. 사람의 신체, 몸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건강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진득하게 읽어볼만한 가치있는 책이라고 여겨진다.

먼저 이 책이 전제로 하고 있는 점이 무엇인가부터 알아보고 나서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들이 아직은 서양의료계의 주류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과학적이라거나,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라서 보기보다는 기존의 관념들과 상충되는 것들이 있다보니 현재의 위치를 마련해준 의료계의 지적 토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험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책을 읽으면서 깨우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뇌의 세포는 한번 만들어진 이후 다시 탄생하는 일이 없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노화되고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피부세포나 조직을 이루고 있는 여느 세포들은 몇일에서 몇달 사이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를 생성함으로써 교체되어지지만 유독 뇌세포만은 자기복제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린 머리를 소중히 다루지 않는가? 그런데 이렇게 영구적인 모습의 세포는 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면역세포 또한 영구적(자신이 몸담고 있는 생명체가 살아있는 한에서만) 생명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뇌와 같이 지각하고 인식하고 기억하기 마련이다. 다른 세포들은 유전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런 지각과 인식을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삭제되거나 누락되고, 새로운 것은 얻기도 하지만, 뇌와 면역세포는 영구적인 까닭에 사소한 것일지라도 영구적으로 기억하려는 습성이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건강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신체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 이상의 정신적 형태를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어렸을 적 성폭력이나 갑작스러게 다가온 감당못할 슬픈 일과 같은 큰 사건들에 부닥쳤을 때 혹 무의식속으로 사라져 기억못할지라도 면역세포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충격들이 면역에 이상을 초래하고 이것은 정신적 심리적 문제를 통해서 해결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말과 행위가 해악과 치료 모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이 있고 말과 행위가 알맞은 균형을 이룰 때 생화학적, 면역학적 치료가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83쪽)

그렇다고 해서 생화학적 치료 또한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병의 근원이 충격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몸의 면역체계를 망가뜨린 것에 한해 그것을 원상태로 돌리는 일은 생화학적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것이 있다.

영양 생화학의 선구자인 로저 윌리암스는 칼슘 필요량에 있어서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 200배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수은의 독성에 관한 최근의 연구느 수은에 대한 민감도가 사람에 따라 100만배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58쪽)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생가해보아야 한다. WHO에서 권고하는 일일 권장량이라는 것이 그저 평균치일뿐 자기 자신에게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구는 같은 음식을 먹고도 멀쩡한데 누구는 식중독에 걸리는 이유 또한 위의 설명으로 풀이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1미리그램의 수은을 마셔도 끄덕 없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이는 그것의 100만분의 1만 들이켜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독특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52쪽)

따라서 현재 우리가 분류하고 있는 병명들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허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누군가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다리가 부러졌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붙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화학적 측면에서 인간은 각자가 서로 다른 개인으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 범위 안에서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겠지만, 치유를 원한다면 그런 평균적 치료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특성을 찾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치유는 이렇게 맞춤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인간이 병에 걸리는 이유를 살펴보면, 그것은 몸속에 독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독성분자들은 잔여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과 같이 우리 자신의 신진대사로부터 나오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음식으로 우리 몸에 들어오거나 또는 우리 장 속에 사는 세균들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114쪽)

따라서 알러지를 일으키는 음식을 삼가는 것은 기본이고, 장 속 세균의 유익함을 보존하기 위한 철저한 음식관리가 필요하다. 독소를 일으키는 세균이 활성화되도록 만드는 것으론 기생충과 이스트의 과잉성장으로 보고 있다. 항생제는 장 속 세균을 말살시키는 것과 같으므로 세균을 되살리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즉 우리가 피해야 할 것으로는 이스트가 들어간 제품들, 균을 확장시키는 알코올 성분, 글루텐 (밀이나 귀리 보리 등에 들어있는) 성분, 우유 등에 들어있는 카세인과 유당 과민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겐 유제품 등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좋은 음식은 무엇일까? 좋은 음식이란 해독성분을 지닌 음식을 말한다. 이것은 식이섬유가 풍부한 것들과 몸의 알칼리화를 가져오는 것들이겠죠. 이런 것으로는 브로콜리, 양배추와 레몬, 사과식초 등이 있다. 저자는 특히 폴산(엽산) 성분이 많이 든 것을 먹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또하나 오해가 많은 부분은 지방에 대한 것들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몸에서 여러가지 분해과정을 거치지만 지방은 먹는 것 그대로가 세포의 주요성분을 이루게 된다는 점에서 특히 주의깊게 먹어야 할 성분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현재 먹고 있는 육류의 포화지방산 계통과 불포화지방산이나 야채, 곡류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중에서도 오메가 6와 오메가 3 성분의 비율을 중요시하고 있다. 물론 트랜스 지방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될 것중의 하나다. 일반인들이 섭취하는 불포화지방의 대부분은 오메가 6에 치중되어져 있다. 그러나 몸이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메가 6와 오메가 3의 비율이 4대 1정도가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식탁의 지방비율은 16대 1 가까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오메가 6를 줄이고, 오메가 3지방을 섭취하도록 식단을 바꾸어야 하는데 오메가 3는 아마유, 캐놀라 유 등에 풍부하게 들어있다. 물론 고등어와 같은 등푸른 생선에도 오메가 3가 풍부하지만 바다가 오염되어 있는 관계로 오히려 수은과 같은 중금속 중독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어쨌든 저자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곧바로 우리의 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저 맛있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내 몸을 소중하게 다루듯 음식을 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준다고나 할까. 내 몸은 말과 행동, 그리고 음식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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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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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는 언어학자로서도 유명하지만 비판적 지식인, 특히 자국인 미국에 대한 끊임없는 비평으로도 필명을 날리고 있다. 단순히 글로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지식인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교양인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개인적으론 촘스키의 이런 겉모습만 알고 있을뿐 아직까지 그의 저작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이 책 또한 그의 세상에 대한 심층분석이라기 보다는 인터뷰를 통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그의 주된 생각의 요약본 정도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나와 같이 아직 그의 견해에 대해서 알고싶지만 섣불리 읽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입문서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짧은 시간의 인터뷰로 인해 그의 주장에 대한 충분한 논거를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일단 그의 주된 생각을 읽는 재미도 만만치않다.

이 책의 저자가 쓴 프롤로그에서는 촘스키가 전해준 교훈 한가지를 전해주고 있다.

기존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것도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이다. 확인하고 심사숙고하라는 것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기지의 사실에서 해방되라는 것이다. (중략) 자기만의 생각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도전의식을 키우면서 스스로 알아내려 한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내 목적을 어느 정도 성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12쪽)

이것은 세상에 당연시여기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해보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런 의심은 분명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줄 것임을 믿는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들과 기존의 가치관들, 그리고 의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에 대해 한번이라도 의심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때론 삶의 한 방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삶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진짜 인간답다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을 놓치고, 꼭두각시 마냥, 또는 줄로 조정당하는 마리오네트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마리오네트임을 잊고 운명의 주인처럼 줄을 잡아당기고 있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또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운을 자신은 가질 수 있다고 여기는지도.

개인의 이익을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가치로 찬양하는 이데올로기, 특권층과 권력층을 위한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감정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12쪽)

즉 감정의 상실 대신에 소유로 대체되는 현재의 사회에서, 소유만을 확대해 나가려는 삶의 태도 자체를 바라보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마리오네트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진다.

홍보와 광고, 그래픽 아트, 영화, 텔레비젼 등을 운영하는 거대기업의 주된 목표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인위적 욕구를 만들어내서,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로 대중은 서로 소외되어 갈 뿐입니다. 이런 기업의 경영자들은 아주 실리적으로 접근합니다. 대중을 삶의 표피적인것, 즉 소비에 몰두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29쪽)

물론 촘스키의 이런 말이 과장되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행복감을 어디서 느끼는지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아챌 것이다. 무엇인가를 품에 안는 것, 그것을 위해 무엇을 지불하든 자신의 손에 쥐어질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로 변해가지 않았는가?

교육제도가 선별 작업을 합니다. 교육제도가 순종과 복종을 조장합니다. 이런 제도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제됩니다.(71쪽)

사회에서 원하는 생산력의 일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 댓가로 돈을 쥐면서, 그것을 다시 소비할 때 행복감에 젖어든다는 것. 그 것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감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문제이지 않을까? 우리가 그 행복이 전부라고 배워오지 않았는가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수많은 언론매체들을 통해 공고해져 간다.

지난 20여년 동안 국가 정책은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면서까지 다국적 기업의 권한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시민의 권한을 개인 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59쪽)

우리가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소비의 과정 속에서는 수많은 소외가 발생합니다. 특히 다국적 기업의 제 3세계에 대한 횡포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채 그들의 선전된 이미지들만을 우리는 접하고 있습니다. 아마 어떤 기업체들의 문화에 대한 원조나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위한 구원의 손길에 감명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를 위한다고 생각되어지는 손길이 실은 다른 누군가에게서 훔쳐낸 것임을 어찌 알겠습니까?

우리는 매일 신문에서 시장경제의 기적과 기업정신을 극찬하는 기사를 읽습니다.(80쪽)

더더군다나 최근의 자본주의는 오직 금융자본주의로 치닫아, 소위 말하는 돈을 가진 자가 돈을 벌 수 있는 제도로 굳혀가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매일 약 20억 달러가 컴퓨터를 통해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돈이 새로운 자산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주인이 바뀔 뿐이빈다. 이런 자본의 압도적 다수가 투기성을 띱니다.(중략)외국에 투자되는 자본은 대부분이 경영 지배권의 확보를 위한 돈입니다.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을 민간기업이나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입니다.(109쪽)

최근 이런 경향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론스타라거나 브리즈 증권 등등 뉴스 속에 등장하는 외국계 자본들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촘스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신자유주의의 허울을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은 여전히 그 변화의 흐름이 바뀌지 않는 것일까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중략)요켠대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169쪽)

즉 내가 앞장선다면 분명 난 무지막지한 탄압을 받을 것임을 다들 알고 있다는 것이죠. 앞장 선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른뒤에서야 비로소 그 열매를 사람들은 따먹을 수 있다는 것을. 따라서 이런 횡포를 막겠다는 실천적 의지만으론 좀체로 변화의 흐름을 꺾을 순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조직화입니다.

이런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된다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수월하게 넘길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다각도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선전보다 이런 파괴공작 때문에 국민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171쪽)

촘스키의 이 말을 듣다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언론에서 다루는 노조에 대한 보도가운데 노조 입장을 보여준 적이 얼마나 될까요? 교통 혼잡을 가져온다거나, 한국에 대한 인상을 나쁘게 한다거나, 생산력 손실이 몇백억이라던가, 아니면 노조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들로 가득합니다. 도대체 왜 파업을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들춰보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노조가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노조라는 조직도 그것이 조직의 양태를 띠는 한 어떤 부조리가 개입할 여지가 곳곳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조의 잘못된 한가지를 마치 노조자체의 문제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식 보도로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쏟아지는 정보들을 곧이곧대로 흡수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지, 진정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의 본모습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며, 세상이 어떻게 나를 현혹시키려 하는지 간파할 수 있도록 철저히 의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꿈을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어서도 안됩니다. 즉 영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의지와 마주잡은 손이 필요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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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5-1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님의 리뷰를 읽으니... 전에 이 책을 읽을 때... 정수리로 뭔가 차가운 게 쏟아져 내리는 듯한 느낌....살아나네요~
요호...참 기네요... 하지만...구구절절...옳습니다... 촘스키... 그리고 님의 리뷰가말이지요...

하루살이 2005-05-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모르면 잔소리가 많은 법이죠. 제대로 안다면 한마디로 딱 . 마치 요술지팡이처럼. 언제쯤 그런 지팡이 하나 가질수 있으려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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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설런트 어드벤처라는 영화가 있다. 1989년도 영화니까 벌써 16년이나 된 작품이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으로 나오는데 조금 어리버리한 고등학생 역을 맡았었다. 이 영화는 키아노 리브스가 역사과목 구술시험을 하루 앞두고 타임머신을 타고 영웅들을 만나는 판타지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나폴레옹, 소크라테스 등등을 만났던 것으로 생각된다. 2편까지 나왔는데 1편보다 나은 속편 중에 하나이지지 않나 싶다. 2편에선 1편과 반대로 베토벤 등이 현실속에 등장해 그 끼를 마음껏 발휘하면서 성공하는 스토리였다. 저승사자가 도박으로 성공했던 것 같기도 한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배꼽을 쥐어잡으며 웃었던 기억이 가물하다.

갑자기 왠 영화 이야기인가 싶을 것이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라는 책의 구성이 꼭 이 영화와 닮아 있어서 꺼낸 이야기다. 실직상태에 놓인 가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까지 생각한다. 차를 타고 평소 가지 않던 도로를 과속으로 달리다 사고가 나면서, 폰더 씨는 갑자기 과거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리고서 만나는 7명의 사람들. 트루먼, 솔로먼, 체임벌린, 콜롬버스, 안네 프랑크, 링컨, 가브리엘(천사)을 만나면서 폰더는 7가지 삶의 귀중한 선물을 받는다.

1. 공은 여기서 멈춘다. 나는 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총체적인 책임을 진다.

2 .나는 지혜를 찾아나서겠다. 나는 남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겠다.

3. 나는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순간을 잡는다. 지금을 선택한다.

4. 나는 단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

5.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6. 나는 매일 용서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맞이하겠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겠다.

7.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물러서지 않겠다. 나는 커다란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현재 내가 고통을 받고 있다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의 역경에 빠져있다면, 흔히들 왜 나만 이러지, 왜 나에게만? 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왜 나는 그런일을 당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한거야? 왜 난 안된다는 거지? 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이제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모든 것을 단절하고, 그 과거를 만들었던 나 자신을 용서하고, 이제부터의 모든 것을 내 책임하에 물러서지 않는 정신으로 행동하겠다는 새로운 운명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 속에선 난 행복한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선택에 있어 실수가 없는 지혜를 위해, 단호하게 운명을 선택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게 되는 폰더의 미래는 거대한 빌딩의 주인이며, 의지의 표상이며, 봉사하는 영웅이다. 삶의 7가지 선물을 품고서 생활했을 때 우리는 폰더씨와 같은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약속은 되지 못할지언정, 분명한 희망을 될법한 보석같은 7가지 주문이다. 하루하루라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망설이고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선물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가쁘게 올라선 계단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돌아보는 법을 이 책은 말하지않고 있다. 오로지 계단을 오르는 것이 목표이며, 그 목표에 이르는 길만을 보여줄 뿐이다. 정상에 올라서서 기쁨을 나눌 수 있음을, 정상의 풍경만을 보여주고 있다. 나로서는 그런 기쁨의 정상으로 향하는 그 길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계단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가 중요하다. 끊임없는 경쟁과 남의 파이를 뜯어내어 이루어진 계단이라면 오르기를 멈추겠다. 계단오르기와 같은 수직적 상승보다는 황무지를 개척하는 수평적 확장을 도모하련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보물은 무엇일까?

다행히도 그 보물 또한 폰더씨가 받았던 그 보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듯하다. 비록 폰더씨는 그 보물을 가지고 계단을 올랐지만 나는  그 보물을 가지고 땅을 넓히리라. 그래서 7가지 보물 이외에 꼭 필요한 것은 지금 나를 쳐다볼 수 있는 현미경 하나다. 미래를 내다보는 망원경과 함께 내가 디디고 있는 발판을 세밀히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을 추가로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래야지만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밀려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깨어있는 정신을 지닐 수 있을터이니 말이다. 그래야지만 계단 위를 오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속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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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 - 신원섭 교수의 숲의 건강학
신원섭 지음 / 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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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좋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왜 좋은가? 라고 물어본다면, 그리고 무엇에 좋은지 답해 보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치된 견해를 내비칠것 같다. 산을 오르는 성취감, 숲이 주는 평온함, 숲 속의 나무와 꽃과 동물들이 주는 친근감, 푸른 하늘과 빛이 주는 따스함 등등. 즉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성을 되찾게 해주는 곳이 바로 숲일 것이다. 책은 바로 이런 내용들을 다룬다. 이론적 근거로서 바이오필리아(수렵, 채취 시절부터 자연과 함께 생존해 온 인간이 유전자에 그 친근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견해)나 직장인들에 대한 설문 등 조사자료 등을 객관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책은 일관된 저작이라기 보다는 이곳 저곳에 쓰여진 글을 모아놓은 듯 중언부언하는 곳이 많고, 풍부한 자료의 제시보다는 몇가지 자료만으로 계속 근거를 제시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에세이로서 읽혀지기에는 그다지 사적이라거나 감성적 풍부함을 지니고 있다기에도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않다. 다만 저자가 캐나다에서 공부한 기간 동안 찍은 것이라고 보여지는 사진 자료들이, 우리의 산하와 다른 신선함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진집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다. 저자가 주장하듯, 숲이 주변에 없고, 창 밖으로 숲을 바라볼 수 없다면, 실내에 나무화분 등을 기르거나, 숲과 관련된 사진들을 걸어놓으라는 지적처럼 독자들에게 숲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심리적 행복감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숲이나 나무, 장소를 골라 그곳에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자는 제안은 하루하루 세상사에 쫓겨 나를 바라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현대인에겐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의 숲, 또는 나무 하나를 가지고, 힘이 들때면, 또는 휴식이 필요할 때면 그곳을 찾아 힘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정 그것이 힘들다면 집에 화분을 들여놓고, 그것도 힘들다면 숲이나 나무 사진 한장 걸어놓고 잠시 그것을 바라보며 나를 들여다보도록 하자.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힘은 발휘될 것이라 믿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숲을 통한 치유의 방법을 체계화시켜, 실질적으로 당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약이나 주사, 침과 같은 외부적 도움을 받기 이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런 힘을 줄 수 있는 숲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이 개발되어지기를 바래본다.

책은 너무 평범하고, 정보 또한 빈약하다고 느껴지지만, 책 속의 사진이라도 한 장 찢어서 벽에 붙여놓으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역할을 다했다고 할수 있을련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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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넷인 미혼모. 영화는 도쿄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을 소재로 만들어진 픽션이다. 네명의 아이가 주인공이지만 <엄마는 행복해지면 안돼>하면서 떠나버리는 미혼모에게도 왠지 모를 동정이 간다. 물론 12살 아키라에게 모든걸 맡기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자식을 내팽개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렇게 마음 한편에선 그녀를 이해하는 것은 또 무언가? 가끔 모성애라는 것도 본능이라기 보다는 사회가 주입시킨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의심해보기도 한다. 발칙하게도 말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으면서도.

어쨋든 아키라, 교코, 시게라, 유키. 이렇게 네 명의 아이는 부모없이 남겨진다. 새로 이사온 집은 이웃들에게 아키라 혼자 있는 걸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나머지 아이들은 밖으로 나다닐수도 없다. 이사올 땐 트렁크와 가방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왔었다. 아, 그런데 그 때 비쳐지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라니... 그 상황에서 어떻게 웃을수 있을까?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한듯이 말이다. 카메라 밖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웃을 수 없을것 같았지만 어느새 내 입가에도 미소가 떠오른다.

여기에 영화 속 내용을 구구절절히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너무나 안타까우면서도, 순수한 그들의 모습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낸 이 영화는 정말 모든 순간순간들이 다 보석이다. 기억 저 깊숙히 간직한 그 장면장면들을 모두 다 기록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아키라의 눈물, 시게라의 웃음, 교코의 시무룩함, 유키의 어리광...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몇가지만을 적어본다.

아빠없는 아이들이라 학교에 가봤자 왕따당할 것이라며 학교마저 가지 못하고, 이웃들에게 쫓겨날까봐 없는듯 살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외출은 최대의 즐거움이다. 이웃들의 눈치를 살피며 밖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그들이 드나든건 거대한 벽이었다. 임대아파트 사람들과 함께 살기 싫다며 담을 만들어버린 우리네 현실이 얼핏 스쳐지나간다. 학교를 가기 위해 그 담을 넘어야 했던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됐을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 담이 왜 생겼났는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잠시 만화책을 보는 사이 아이들이 비닐속에 훔친 물건을 집어넣는다. 아키라는 편의점을 나오다 점장에게 잡혀 도둑으로 몰린다. 다행히 알바생이 아이들의 장난(?)을 목격하고 점장에게 이야기해준 덕에 무사히 나올수 있었다. 점장은 이것을 무마하기 위해 호빵을 몇개 얹어준다. 아~ 이 분노. 도둑으로 몰아놓고 그저 호빵 몇개로 빠져나가려는 어른들의 상술. 라면이나 술병 속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을 인터넷어 올려놓으니, 해당 회사가 몇박스나 되는 물품을 보내더라는 뉴스가 생각난다. 상술에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다쳤는지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신들의 이미지가 나빠져 장사에 방해될까봐만 염려하는 어른들.

물세도 전기세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공원에서 물을 떠다가 먹고 빨래하고 씻으며 생활한다. 먹을 것은 편의점 알바생들의 도움으로 인스턴트 몇가지를 얻어 먹는다.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이들이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알게 모르게 그렇게 도와주는 손길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하고 있기에 그나마 이 땅 위에 온기가 살아 숨쉬고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도 못가는 아키라. 밖에서 방황하다 오락실에서 또래 아이들을 만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아키라는 친구를 잃을 것인지, 양심을 잃을 것인지 고민한다. 이런 도둑질의 갈등은 나중에 또 한번 나타난다. 그리고 또 한번 사귀게 되는 친구. 여중생인 이 친구는 아키라의 집세를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한다. 노래방에서 같이 노래 불러준 것 밖에 없다며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아키라에게 변명해보지만, 아키라는 매몰차게 돈을 건네는 손을 걷어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오면서 그 돈을 다시 원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모습.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야구를 하고 있는 동안, 막내 유키는 그만 의자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는다. 아키라는 아연실색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 나는 속으로 계속 외친다. 제발, 제발 병원으로 데려가, 아키라. 제발 데려가 달라고. 부탁이야 아키라. 유키를 살려야지. 제발, 제발...

그러나 아키라는 유키가 싸늘해질 때까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유키와 약속했던 비행기를 보여주기 위해 모노레일을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아키라. 유키는 이사 온 동안 커져서 맨 처음 안에 들어갔던 가방보다 더 큰 트렁크 속에 들어가 있다. 공항 빈터. 땅을 파고 유키를 묻는다. 아키라의 손은 심하게 떨린다. 유키를 병원에 데려가면 자신의 처지가 알려지고, 그러면 복지기간으로 불려가 뿔뿔히 흩어질 것을 염려한 아키라. 그가 진정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종반부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이 밝다. 사실 이렇게 적어본 글만 읽어본다면 영화는 어두운 암흑이거나 우울한 블루톤으로 뒤덮혀있을 것 같지만 태양의 환한 빛과 나무 꽃의 밝은 원색들이 가득한 밝은 영화다. 아키라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꾸준히 생각해본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끝내 지키고자 했던 것, 아키라가 그렇게 소중하게 지키고자 했던 그 무엇을 나는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왔던가? 이리저리 핑계대며, 나이 먹어가면 당연한 것이라며, 내팽겨치진 않았는지, 글썽이는 눈물사이로 부끄러움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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