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받으면 흉터를 남긴다.

가만히 두면 그 상처는 더욱 커져 이내 산산조각난다.

그래서 땜질처방이라도 해야한다. 

금 간 마음에 반창고라도 붙여야 한다.

그게 실컷 우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알코올이 될 수도 있고, 여행이 될 수도 있으며, 깊은 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삭이는 것보다는 낫다.

비록 그 흉터를 가릴 순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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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는 방송국에서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꽤 성공한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드라마를 이끌고 간 소재들이 한번쯤은 매스컴을 통해 접했던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결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끌었다. 당연히 매스컴에 등장한 이야기들이라는 것이 극단적 소재인만큼 이야기의 구성도 극단적인 예를 잘 활용함으로써 극의 재미를 주었다.

개인적으론 이 드라마가 작가에 대한 꿈과 두려움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고 보여진다. 작가는 시청률이라는 악마와 같은 숫자와 싸워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청률은 좋지 않지만 적극적인 마니아들을 형성하는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것도 있다. 온에어 속에서는 인기와 마니아 사이에서 움직여야 하는 작가들의 두려움과 고충이 곳곳에 배어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드라마의 영향력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본능 중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권력욕이다. 권력욕이란 거창하게 누군가를 지배하는 지위, 계급에 대한 욕망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어떤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드라마는 육체적 변화보다도 정신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 정치적 권력적 작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온에어의 마지막회에서 김하늘이 낭송하는 편지는 드라마의 영향력에 대한 상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실제론 재미있는 드라마로 끝나도 괜찮을 터인데 은연중에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런 욕망을 드러낸다. 때론 거칠게 때론 소리없이. 어떤 부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그다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무감에 휩싸여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작가라는 엄숙한 도덕주의 또는 경건주의가 아직도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에서 드라마의 한계점도 노출된다.

근래에 보았던 드라마 중에는 <고맙습니다>가 어느정도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에이즈와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드라마 이후 에이즈 환자를 위한 또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제도적 변화 등이 뒤따라 왔을까.

온에어 속 편지를 쓴 동생은 과연 평생토록 언니를 바보가 아닌 모습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도 그냥 그대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보단 분명 나아졌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아예 반대로 로맨틱 코미디의 유쾌발랄함에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를 움직여보겠다는 욕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엄숙주의를 벗어난 삶의 가벼움에 대해서 박수를...

어쨋든 사람의 습관과 행동이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드라마는 오히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일 가능성이 크다. 확고부동한 그 무엇을 지탱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을 건드릴 수 있는 세심한 드라마가 그리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 그래서 사랑은 시작될지도 모른다. 온에어가 드라마제작을 씨줄로 사랑을 날줄로 가지고 있던 것도 그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어야만 한다는 엄숙함과 경건함을 의무감으로 지니지 않고 자유롭게 권력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거나, 분방하게 권력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즐거움을 주는 고마운 바보상자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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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에 대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낸 가족들이 12일 존엄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 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함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이제는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영화가 한편 있다.



씨 인사이드

 

2007년 개봉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 <씨 인사이드>는 안락사에 대해 다루었다.

26년 전,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 전신마비자가 된 라몬 삼페드로,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입으로 펜을 잡고 글을 써왔던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라몬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두 명의 여자가 찾아온다.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수다스럽지만 순수한 여인 로사. 그녀는 라몬을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자신을 위해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또한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변호사 줄리아. 라몬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안락사 소송을 도와주는 동안 그녀는 그에게 점점 사랑을 느끼지만, 그 감정조차도 그들에겐 너무나 버겁다.

그리고 또한명 주목해야 할 사람은 생명의 존엄성을 설파하는 추기경(?), 자신도 장애를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생명을 영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락사를 요구하는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따듯하게 대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은 라몬에게도 그의 가족들에게도 깊은 상처만을 남긴다.

변호사 줄리아와의 사랑이 점차 깊어져갈 때 이 사랑이 라몬의 죽음에 대한 열망을 막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마저도 안락사에 대한 그의 열망을 식혀주지는 못한다.

이 영화를 보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어쩃든 살아야 한다는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과연 정말로 어쨋든 살아가는 것이 인간답게 죽는 것과 어떻게 다를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것에 대한 결정은 스스로에게 주어져야 할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적 약속으로 이루어져야 할 문제일까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한다.

엉엉 눈물을 흘리는 영화가 아니라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깨닫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가 현재 노령화 사회로 치닫는 우리에게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게된 우리에게도 잔잔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너울을 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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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산에서 마주친 야생화


동화책에서 읽었던가?

한 생명체가 죽으면 별이 되고 그것은 또다른 생명체가 탄생할 때 그 영혼에 깃든다고...

뿌리가 파헤쳐져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 땅 속에 묻혀 있어야 할 뿌리는 밖으로 드러나면 죽음에 이른다. 그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 꽃이 피었다. 샛노랗게 생명의 찬가를 부른다.

채우기 위해선 비워야 한다고도 한다. 잡기 위해선 일단 손을 펼쳐야 한다.

 

지금 무엇인가 꼭 쥐고 놓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그것이 이미 말라비틀어진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손안에 꼭 쥔 것은 너무 꼭 쥐고 있는 바람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의식도 못한채...

꽃은 바람이 가져다 준 선물. 바람이 불도록 빈 공간을 만들어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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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5-1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핏 봐선 양지꽃 같은데요.

하루살이 2008-05-13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양지꽃.
ㅋㅋ
언뜻 봐도 아시는군요 ^^
 



얼레지



철쭉

꽃이 주목을 받을 때는 활짝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주었을 때이다. 간혹 동백꽃처럼 목아지가 뚝뚝 떨어진다는 이미지와 벚꽃처럼 비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지는 꽃도 주목을 받기도 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통해 전성기를 누리는 때와 어떻게 은퇴하는냐는 큰 관심사다. 그러나 꽃이 피기 직전은 주목받지 못한다. 오히려 될 성 부른 떡잎처럼 새순은 주목받을지언정...

막 피어나기 직전의 꽃봉오리.

어떤 모습으로 피어날지, 또는 과연 제대로 피어나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낼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꽉 닫혀진 꽃잎에선 기어코 자신의 운명을 지켜내리라는 의지마저 엿보인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피어나기 직전의 꽃봉오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바람이 너무 세다고, 비가 내린다고,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고 꽃피우기를 주저해서는 안될 것이다.

팍팍한 현실에 묻혀, 쳇바퀴 돌듯 지리한 일상에 묻혀 가끔 고목처럼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 내 진짜 모습은 꽃봉오리임을 잊어버린다. 그러니 자기최면을 걸자. 난 진짜로 이제 곧 피어날 꽃봉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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