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컬리전 코스>는 2013년 스페인 마드리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은행에 강도들이 쳐들어 온다. 매니저를 협박해 금고를 턴다. 하지만 목표했던 금고 안에는 있어야 할 다이아몬드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닥치는 대로 금고를 털고 밖으로 나온다. 자동차를 타고 도주 중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한다. 강도단 4명 중 1명이 사고로 죽는다. 나머지 3명은 사고를 대략 수습하고 빠져 나온다. 아지트로 돌아간 강도단에게 은행 매니저가 찾아온다. 다이아몬드 없이 훔쳐 온 돈을 분배하고, 일단은 한곳에 숨겨놓은채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내 경찰의 수사망은 이들에게 좁혀져 온다.


그리고 다시 영화는 강도 후 교통사고 장면으로 되돌아 간다. 그런데 어라? 이번엔 처음에 죽었던 강도 대신 다른 강도가 죽는다. 다시 교통사고 장면으로 돌아갈 때는 '아~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다시 바라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영화 <라쇼몽>이후 많은 영화에서 차용해 온 입체적인 플레시백 기법이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아예 죽는 이가 다르게 사건이 진행된다. 죽은 이가 달라지면서 사건의 흐름도 달라진다. 사건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새로운 사실도 드러난다. 이들 강도단과 은행 매니저 간의 속고 속이는 장면 속에서 정보가 하나 둘 더 쌓여져 가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 교통사고 장면으로 돌아가 강도단 모두가 한 번씩 죽게 되면서 다양한 정보가 쌓여 전체적인 그림이 보이도록 만든다. 멀티 타임라인을 통해서 강도단들 사이의 속고 속이는 전체 그림을 알 수 있게 된다. 누가 죽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전개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게다가 이를 통해 이들 사이의 전체 관계를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멀티 타임라인의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한 영화 <컬리전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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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에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러닝화를 새로 주문했다. 시골에서 운동화를 사려면 주변 도시로 나가야만 하기에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구입했다. 상품 상세 설명은 주요 장점들만 설명되어 있는데,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운동화를 받아든 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불량품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운동화 바닥 뒤편 바깥쪽이 깎아져 있었다. 그런데 닳은 것은 아니고 왠지 의도적으로 깎아놓은 듯 보였다. 상세 설명에는 나와 있지 않았는데....


이럴 때 AI 도움을. 최근 러닝화 중에는 뒤꿈치 바깥쪽을 일부러 깎아서 디자인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일명 <베벨드 힐(Beveled Heel)>. 뒤꿈치가 먼저 바닥에 닿는 방식으로 뛸 때 바깥쪽이 먼저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바깥쪽 바닥을 깎아 줌으로써 충격을 줄이고 자연스레 발 중간을 지나 앞쪽으로 지면 반력이 작동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반면 책 <본 투 런>에 소개된 멕시코의 인디언 원주민 타라우마라 족은 장거리 달리기에 뛰어난데, 이들은 지면에 발 중간이나 앞꿈치가 먼저 닿는 미드풋이나 포어풋의 자세로 달린다. 그래서 신발을 아예 신지 않거나 와라체라는 평평하고 부드러운 바닥을 지닌 전통 샌들를 신는다. 


현대 과학에서는 발의 어떤 지점이 먼저 지면에 닿는 것이 더 좋은 지에 대한 평가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뒤가 닿는 것은 그것대로 앞이 먼저 닿는 것은 그것대로 발의 충격을 흡수하고 반력을 사용하는 근력 등이 서로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베벨드 힐 방식의 운동화를 신고 걸어보니 뒤쪽이 깎여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막상 달리기를 해 보면 이런 느낌을 받지 않고 무난히 달릴 수 있다. 그럼에도 왼쪽과 오른쪽 신발의 깎인 정도가 차이가 난 게 못내 아쉽다. 보다 정교하게 신발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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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꿀알바>는 산업화 초기부터 겪어온 노동문제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0세 혁준은 마땅한 직업 없이 어머니가 준 전세금을 주식으로 말아먹고 자살을 결심한다. 한강 다리에서 떨어져 죽으려다 시급 수십 배의 알바자리를 주선하는 거미인력의 홍보물을 발견한다. 조금은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거미인력을 찾은 혁준은 시급 50배의 야간 편의점 알바를 주선받는다. 하지만 이 편의점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어 혁준의 목숨을 위협한다. 혁준은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알바를 끝내고 시급 50배를 받는다. 이제 다음부터 주어진 알바는 그 두배의 돈을 받을 수 있다. 위험천만하지만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것인가? 혁준은 과연 이 '꿀알바'를 계속할까? 


편의점, 극장, 우유배달, 건설현장, 임상시험 등등. <꿀알바>에서는 다양한 알바가 나온다. 이 알바들이 어떤 메타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지만, 쉽게 찾지를 못하겠다. 놀이공원의 인형탈 알바에서 정규직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알바생들끼리의 서바이벌 정도만 직설적으로 노동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 보인다. 노동자들의 죽음을 기반으로 건물이 올라간다는 건설현장 알바도 다소 직설적이긴 하다.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생계는 빼놓을 수 없는 이유라 할 것이다. 즉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 죽으려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노동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노동자의 소식을 접하곤 한다. 효율 또는 능률이라는 이름 하에 인간적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이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를 종종 뉴스로 듣게 된다. 산업화 초기 발생했던 산재의 숫자보다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과 죽음이 전혀 별개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꿀알바>는 이런 여전한 문제를 시급과 이세계를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꿀알바>가 보여주는 문제는 물론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리고 현재진행형이기에 꼭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보다 더 큰 문제들에 우리는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첫번째는 빈부격차다.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은 바라지도 않는다. 특히 업종 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 누군가는 평생 벌어서 모아야 할 금액을 누군가는 1년 상여금으로 받는다. 근근히 최저 생계로 버텨나가는 이들에겐 세상을 뒤집어 버리고 싶을 만큼의 박탈감이다.


두번째는 조용한 해고다. AI로 인해 청년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노동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모양새다. 물론 당장 눈앞에 펼쳐지고 있지는 않아서 체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이런 사회가 닥칠지 알 수 없다. 일자리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다.


<꿀알바>가 노동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를 넘어 이 박탈감과 공포감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면 훨씬 더 피부에 와 닿았을 듯 싶다. 


<꿀알바> 넷플릭스 시리즈. 8부작. 호러(?). 1회당 40분을 대부분 넘지 않아 지치지 않고 볼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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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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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인공지능과 피지컬 AI의 발달이 일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시대. 죽을 지도 모르는 병을 앓고 있는 소녀 조시에게 엄마는 클라라라는 AF를 선물한다. AF란 artifical friend의 약자로 인공(지능) 친구다. 인간과는 외모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인간을 이해하고 옆에서 시중을 들고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인공지능 친구라 할 수 있다. 클라라는 최신 버전은 아니지만 에이에프 중에서도 유독 관찰력과 호기심이 많다. 이들은 태양광으로 충전을 한다. 태양은 이들에게 생명과도 같다. 그렇기에 클라라는 태양에 대한 독특한 믿음(지식이 아닌)을 지니게 된다. 


소설은 초반 클라라가 조시라는 소녀에게 팔리기 전, 전시대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외딴 곳에 위치한 조시의 집으로 들어가 조시를 관찰하며 그녀를 시중든다. 조시의 가족을 포함해 친구 릭을 만나고, 릭의 엄마와도 교류를 가진다. 하지만 점점 조시의 병이 악화되고 클라라는 태양의 힘을 빌려 조시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클라라와 조시를 중심으로 펼쳐지던 소설은 중반을 지나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조시의 어머니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던 사건이 드러나고, 이로 인해 조시의 아버지와의 갈등이 커진다. 더불어 조시의 건강을 바라는 남자친구 릭과 릭의 장래를 걱정하던 릭의 어머니와의 갈등이 왜 생겼는지도 밝혀진다. 이 과정이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데, 구체적 설명 없이 대화 만으로 시대상과 갈등의 구조가 모두 밝혀짐으로써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소설의 백미는 말미의 이 대화 폭풍이다. 


요즘 ai는 웬만한 소재, 주제의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란 없을 듯하다. 이 소설 <클라라와 태양> 또한 인공지능에게도 생명이 있는가, 감정이 있는가, 감정적 교류가 가능한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등등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먼저 감정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 질문부터 던지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인공지능에게 인공지능도 감정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돌아온 답은 정교한 언어, 지각 모델링이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감정은 주관적 의식과 경험을 전제로 생화학적 반응과 연관되어진 것이기에 인공지능이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이 그 답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 클라라가 혹시나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조시를 낫게 하기 위해 클라라가 결심하는 행동이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즉 인공지능의 비논리성이 감정을 증명하는 근거로 쓰이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어찌된 것이 세상도 비논리적 인과관계로 이어지는 사건들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잔잔한 여운을 주는 것은 물러남에 대한 이해 때문이다. 쓰임을 다한 에이에프의 말로는 어떻게 될까. 클라라가 자신의 말로를 대하는 자세는 마치 명상가를 닮은 듯하다. 자신의 내면 대신 세상을, 태양을 향한 관찰에 집중하는...... 그럼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찾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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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를 둘러싼 화두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단연코 AI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측면은 물론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AI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 몇 개월 마다, 아니 이제는 몇 일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AI에 대한 조금 전의 평가가 머나 먼 과거의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AI를 분석하기 위해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사이, 그 기획과 분석은 과거의 것이 되어버려 현재의 쓸모를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AI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AI 능력의 향상 자체 보다는 그로 인한 인류에의 영향이라는 근본적 물음은 변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26년 8월 15일) 넷플릭스에서 <AI다큐:종말론적 낙관주의자가 되다>라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다니엘 로허라는 감독이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가 AI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되어 AI가 가져 올 미래를 알아보기 위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은 이를 위해 샘 올트먼(오픈 AI CEO), 데미스 허사비스(구글 딥마인드 CEO) 같은 빅테크 리더, 요슈아 벤지오(튜링상 수상자) 등의 AI 전문가, 유발 하라리, 팀닛 게브루와 같은 학자 등 수 많은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한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다양한 시선을 접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짧은 멘트들이 숨 쉴 틈 없이 이어져 내용을 쫓아가거나 깊은 사고를 하며 시청하는 것은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가 좋은 점은 AI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을 크게 분류해 봄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다큐를 보면서 정리해 본 AI를 바라보는 관점은 동인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겠다.   


첫번째는 지정학적 요인이다. 즉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가져 올 속도전과 자국 우선주의로 인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다큐에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을 필두로 한 제3국의 연합을 통한 패권국에 대한 제어를 대안으로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두번째는 기술적 요인이다. 기술 자체의 기하급수적 진화가 인간의 통제범위를 벗어나는 초지능이 탄생했을 때의 기술적 불확실성이라 할 수 있다. AI의 목표가 인간의 의도나 윤리와 다르게 설정될 경우 인류가 멸종되거나 AI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는 현재까지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인간이 알 수 없다는 측면에서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이런 측면에서 종말론이나 디스토피아적 예측이 쏟아진다. 

세번째는 사회 경제적 요인이다. AI가 가져올 권력과 부의 집중과 이로 인한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자리 상실을 넘어 빈부격차로 인한 수명, 성, 건강의 차이로 이어지는 불평등의 세상에 대한 불안이다. 실제 반도체 특수로 성과금을 나눠 갖는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 사이의 간격이 이런 격차의 벌어짐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이런 시기가 조금만 더 진행된다면 이런 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이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곧 벌어지게 될 현실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큰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쪽으로 쏠리는 부와 권력을 어떻게 평탄화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지금 이루어져야 한다.  

네번째는 정보와 인지적 요인이다. AI가 생성해 내는 가짜 정보와 딥페이크 등 정교한 거짓말이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림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붕괴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선거 교란과 여론 조작은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게다가 알고리즘으로 인한 편향성의 극대화는 사회적 분열과 극단주의를 부추겨 건강한 사회를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 또한 바로 앞에 닥친 현실이다. 서로가 다른 정보만을 받아들이면서 시선의 극단적 차이만이 도드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엇이 진짜이고 어떤게 건강한 것인지에 대한 AI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AI를 멀리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교육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 곧 다가올 현실이자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우리가 AI를 어떻게 다루고 이용해야 할 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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