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나서 친구들과 소주 한잔(한병... 두병...)을 마셨다. 도저히 그냥 집으로 들어갈수 없게 만드는 쓸쓸함. 그 쓸쓸함을 토니 타키타니라는 이 영화 속에서 다시 만났다. 일본 영화라 그런지 이번엔 소주가 아니라 정종을 냅다 들이켰다. 아 그 무어라 표현못할 지독한 상실감과 외로움. 가슴이 싸~아 하니 아려오는 고독감.

이 영화는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이 사실을 모르고서 보더라도 하루키의 냄새가 지독히도 품어져나오니 금방 알아챌 것이다. 정말 너무나도 하루키적인 영화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아직도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미야자와 리에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영화를 보는 행복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잔잔한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영상은 자꾸만 오른쪽으로 흘러가고 시간은 그렇게 컷과 컷 사이에 녹아들어 있다. 아름다운 시 한편을 보는듯한 감상에 젖어드는 것 같다.

토니 타키타니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토니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에게 이름을 묻고나선 항상 이상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곤한다. 그래서 토니는 어려서부터 자기 안에 갇혀 사는 것에 익숙해진다. 아버지는 재즈 트럼본 연주자로 공연을 하는라 집을 비우니, 모든 것이 혼자다. 특히 혼자서 밥을 먹는 장면은 너무나 쓸쓸하게 다가온다. 나는 매끼 그렇게 혼자서 밥을 먹지만 그다지 쓸쓸하게 느껴본 적이 없는데... 오호라, 토니도 그렇단다. 특별히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토니는 그림에 재주가 있다. 그런데 그 그림들 속에 예술성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의 그림에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직 정확한 묘사만이 그의 그림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는 기계를 그리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밥벌이도 당연히 기계에 대한 그림으로 해결한다. 꽤 잘 나가는 일러스트가 된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일을 맡기려 온 에이코라는 여성에게 빠져든다. 사랑에. 그러면서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고독한 것이였는지를 깨닫는다. 과거 자신의 삶은 감옥에 갇혀 산 것과 다를바 없다는, 고독은 감옥에 갇혀 사는 삶이기에... 토니는 15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에이코와 결혼한다. 눈앞에 있는 행복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결혼 초기 굉장히 초조했으나 이내 행복이라는 일상을 즐기게 된다.

에이코는 정말 완벽한 여자처럼 느껴진다. 딱 하나만 빼놓고. 바로 쇼핑중독증. 특히 옷에 대한 집착이 크다. 거의 매일 새 옷을 하나씩 사들여야만 한다. 토니의 집 방 한칸은 이 옷들로 가득찬다. 그리고 갑작스레 다가오는 교통사고. 731벌의 옷만 남기고 에이코는 떠난다. 옷들은 에이코의 그림자처럼 다가와 점점 희미해져간다. 상실감을 견디지 못한 토니는 에이코와 똑같은 신체치수를 지닌 여자를 구한다고 신문에 공고한다. 에이코와 똑같이 생긴 여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에게 에이코의 옷을 입어달라고 요구한다. 여자는 그 옷들로 가득찬 방에서 조용히 흐느낀다. 토니는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하며 채용을 취소한다. 그리고 옷들도 다 팔아버린다. 몇 개월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퓸인 재즈음반이 그 방에 들어가 있다 이내 다 팔아치운다. 그리고 관련된 것들을 모두 불태운다. 아무 것도 남겨지지 않은 빈방, 토니는 <혼자서> 옆으로 드러누워있다.

아~ 그 상실감과 외로움을 드러내는 그곳에서 얼핏 나의 그림자를 마주친다. 나의 가슴 한 켠은 차디찬 겨울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토니. 울고있진 않을 것이다. 정말 울고있진 않을 것이다. 울지마라, 부디.

한 모임에서 에이코와 사귀었다던 남자를 만난다. 에이코의 이상한 성격을 감당하기 힘들었지 않았는냐는 질문에 에이코에 대한 것은 이제 모두 잊어버렸다고 답한다. 하지만 에이코를 그렇게 욕하지 말라고, 그런 여자는 아니었다고 소리친다. 아, 다 잊어버렸단다.

술을 마시던 친구는 그게 가능하단다. 자기도 실연의 아픔으로 기억을 지워버린 경험이 있단다. 마음의 벽을 쌓아두면 기억의 통로가 막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억하지 않게 될 수 있을까? 애써 슬퍼하지 않으려 할 필요가 있을까? 갑자기 <봄날은 간다>가 떠오른다. 사소한 행동 하나로 과거의 사랑을 떠올리던 그들이.

추억은 누구에게는 기억으로, 누구에겐가는 망각으로 남겨지는가 보다.

외로움을 알아버린 한 사내의 치유되지 않을 상실감이 이내 나를 술의 바다에 빠뜨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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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10-0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니 타키타니,,, 흠...거 심상치 않은 작품일듯...
하루살이 님은 잔뜩 흔들어놓다뉘...

하루살이 2005-10-0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속쓰려... 후유증이 크답니다^^

icaru 2005-10-28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영화 봐버렸다지요........ 아!!
알고 읽으니.... 다시 보입니다... 퍼갈께요~
그러고 보니..... 거의 1년 동안 하루살이님이 달고 계셨던 이미지 간판을 토니 타키타니로 바꾸셨군요~ 흠...발견!!

하루살이 2005-10-28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위 사람들에게 하루키 좋아하느냐고 먼저 묻습니다. 그리고 좋아한다면 꼭 보라고 주접좀 떨었죠. 욕먹을 각오하고서. 그런데 이카루 님께서도 괜찮게 보셨다면 다행입니다. 휴~ 살았다. *^ㅇ^* 아마 당분간 간판은 안바뀌겠죠.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엔...

icaru 2005-10-3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니와 쇼자부로(?토니 아빠)역을 한 사람이 맡고, 에이코와 또 다른 여자(신체 싸이즈가 같은) 역을 미야자와 리에가 맡았다면서요... 전혀 눈치 못챘다 아닙니까...동일 인물이 맡았다는 거..

하루살이 2005-10-3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 친구와 둘다 1인 2역이지 하면서 극장밖을 나오던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