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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 - 초록도깨비 ㅣ 낮은산 작은숲 15
김중미 지음, 유동훈 그림 / 도깨비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의 글, 특히 일기는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삶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글쓰기 장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가 이 책을 네 아이의 일기 형식으로 묶어낸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라 짐작한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에서 긴 호흡으로 내놓았던 빈민지역의 이야기들을 짧은 숨으로 훅훅 불어 아이들의 가슴에 툭툭 던지고 맺히게 하려는...달동네의 삶의 일상과 그 일상과 함께 커가는 아이들의 삶과 느낌을 간명하고 도드라지게 드러내 보이고자 한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마도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아파트가 없는 곳에 사는' 그 아이들에게로 자신을 이입하며 함께 공감하고 연민할 것이다.
지역활동가로 그들과 함께 삶을 살아내온 작가의 경험은 이 책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다. 말로만 듣던 공중화장실, 골목 풍경, 병들고 일자리를 잃은 부모들, 동네를 벗어나 어느 곳에서도 떳떳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운명, 교육과 의료의 손길이 형식적으로만 미쳐지는 현실... 신문 한 귀퉁에서 보고 때때로 직접 접한 적도 있던 그들의 삶의 일상이 과연 이러했겠구나,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작은 이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더욱 작가의 경험은 더욱 소중하다.
네 아이의 일기가 차례 차례 전개되는 가운데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달동네의 역사와 현재 또한 알 수 있다. 마치 액자구성처럼 이 글은 집수리를 바라보는 셋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사형제의 일기를 훑어보고, 다시 동네에 대한 셋째의 생각으로 마무리된다. 네 형제의 일기와 함께 들추어진 달동네의 역사를 확인한 후 화자인 셋째는 "우리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우리 동네가 없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이대로 있는 것, 우리 집이 계속 여기에 있는 것, 그것이 내 바람이고 우리 동네 사람들의 소망이다"라고 밝힌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다.
아이들은 의문을 가질지 모른다. "왜 잘 살게 되는게 꿈이 아니고 가난한 동네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오래도록 있는 것이 꿈일까?" 달동네 아이들이 동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은 인정하더라도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는 단지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갈수록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전부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부자되세요'란 말이 덕담으로 건네지는 풍토에서 비록 가난할지라도 함께 사는 정을 알고 고통과 아픔을 부대끼고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 또한 의미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비록 가난으로 비루한 일상일지라도 진정 행복할 수도 있음을 말이다. 실제로 달동네 개발 이후 활동가들이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있는 점은 빈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회적 안전망과는 점점 멀어진 채 빈곤계층이 파편화되는 것이라고 들었다. 우리가 그 폐해를 언론을 통해 매일, 꾸준히 확인할 수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비록 교훈적일지언정 세상과, 아이들과 동떨어 존재하지는 않는다. 우리를 아리송하게 하는 그 메시지야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빈곤계층의 실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