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을 점령하라 사계절 중학년문고 4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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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밀하게 연결된 옴니버스 구성으로 되어 있는 '작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이란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고 장편동화 한 편을 이렇게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과수원을 점령하라'는 그런 책이었다.

과수원을 두고 벌어지는 각종 동물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 구성 안에 각자의 목소리로 표현되고 있었다. 저마다의 입장에 귀기울여보면 쥐는 더이상 더럽고 몰아내야 할 짐승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입장일 뿐, 쥐 역시 엄연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다. 다른 모든 생명들도 마찬가지다.

'라쇼몽'이라는 유명한 일본 영화처럼, 그리고 황희 정승의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는 에피소드처럼 다른 입장에 서 보면 그 입장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이 생명체인 다음에야 그들의 생존은 그 누구도 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것이 된다. 그러나 인간들은 얼마나 우를 범하며 그것도 모르고 살고 있는지... 쥐를 내몰고, 고양이를 우리 입맛에 맞게 애완동물로 키우고, 철새인 찌르레기와 오래된 나무들의 삶의 터전을 앗아간다.

옴니버스식 구성은 각 생명체의 목소리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잘 드러내주며 모든 생명체들이 저마다 살 권리가 있고 인간이 이를 뺏어서는 안되겠다는 생명, 환경의식을 자연스레 고취시킨다. 이 책의 내용와 형식이라 볼 수 있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 사상과 옴니버스식 구성은 매우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탁월한 심리묘사와 탁월한 필치, 철저하게 고증된 사실성은 작품의 활력을 더욱 뒷받침해준다. 특히 순하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일구어 나가는 과수원집에 새 생명이 잉태된 열린 결말은 읽는 이들을 저절로 미소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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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3-2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재미있게 보았어요. 황선미님의 동화를 무척 좋아한답니다.

아라비스 2004-03-2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내 푸른 자전거" 서평을 잘 읽었습니다. 황선미님께 편지를 받았다는 말씀을 듣고 무룻, 황선미님의 동화는 이렇게 읽어야하겠구나......(물론 모든 책이 그렇지만요) 아직도 마음으로 읽지 못하고 머리에서 뭐든지 정리하고 보려는 제 욕심을 반성했답니다.
 
따귀 맞은 영혼 -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장현숙 옮김 / 궁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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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참으로 상처받는 일들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한 것 같다. 좀더 성숙해지면 덜 할 법도 한데 책 제목처럼 영혼이 따귀라도 맞듯 아프고 쓰리고 그러다보니 더 움츠려든다.

그러다보면 죽을 때까지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에 두렵고 지겹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아무리 삶이란게 고통을 통해 성숙해가는 과정이어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다 싶은 것이다. 좀 편하게 살면 좋을텐데 왜 이렇게 끊임없이 우리네 삶은 노력하면서 살아야하는 건지...

이 책의 첫 부분을 보아도 그랬다. '마음상함'이란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과정이란 것, 그리고 그 '마음상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잘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에 있다는 사실. 얼마나 무기력하고 무방비한가.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 어린시절의 누군가에 의해 나는 평생 무거운 멍에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이라고 생각해 버리기에 그 무게는 너무나도 막대하다. 그래서 이유를 묻고자 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건 다만 그 해결책일뿐. 책에서도 말하듯 '파도를 막을 수는 없지만 파도타기를 배울 수는 있을 테니까' 말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상처를 부인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부정하면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일부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231p) 게다가 우리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또 죄없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마련이다.

상처난 부위는 낫고 싶어한다. 따라서 이 상처 부위를 건드려 느껴지는 아픔은 개인의 역사를 완결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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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치는 밤 읽기책 단행본 9
미셸 르미유 글 그림, 고영아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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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 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림이 너무 기괴하지 않나요? 저는 단꿈을 꾸며 잠들기 기대하고 책을 읽다 몸이 오소소해짐을 느끼며 서둘러 마지막장을 덮었답니다.

서양사람들의 미감이나 감정이 우리네와 다름은 종종 느끼지만 이런 책에 아름답다는 상을 준 그들의 생각에 의문이 풀리지를 않네요.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런 책이 과연 상을 받았을까 싶기도 하고... 상상력은 풍부하다 못해 지나쳐 너무 기괴한 것 같아요. 우리와 '다름'이라고 생각하기엔...

데이빗 크로넨버그라는 캐나다 영화감독이 있는데 '크래쉬'나 '플라이'같은 영화를 만들었거든요, 그게 캐나디언의 독특한 스타일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작가가 캐나다 사람인 걸 보니 그 감독이 떠오르네요.

암튼 많이 다르구나, 생각을 해요. 근데 궁금하네요. 다른 분들께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지 대부분 칭찬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내가 너무 촌스러운 건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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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람 2007-09-18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저도 사긴 샀는데 조카들에게 선물하긴 망설여지더군요. 약간 기괴하긴 하죠. 훗, 영화 이야기도 동감입니다. ^^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같은 생각을 가진 분도 계시군요.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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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엄숙주의자일까. 거침없는 문장에서 해학이 폴폴 묻어나는 이 책을 읽고 불과 몇 번을 키득거리고 말았을 뿐. 재미를 느끼는 건 나의 심장이 아닌 머리였으니...이 책이 별로 재미가 없단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더 재미있게 마구 느끼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 재미를 가볍게만 느낄 수 없었던 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 소설의 주제, 문제의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변명을 해본다. 글을 읽는 내내 가벼움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직설적으로 표현되는 주제에 동감하고 이를 곱씹느라 킬킬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던 터였기 때문이다.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구분에 따라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우선 첫 부분은 이 소설이 '재미있다'는 의견을 누구에게나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유이며 작가의 재능과 특성이 유감없이 가장 잘 드러나 보인다. 영화로 따지자면 작품 전반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매우 기발하게 잘 만들어진 오프닝 신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그런데 이에 비해 주인공의 대학시절을 서술하는 작품 중반부는 재미도 덜하고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주지는 것 같지도 않고 처음와 마지막 부분을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허리로서도 좀 약해 보인다. 물론 글을 이어준다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그리 신선하지도 탄탄하지도 않는 듯.

중반의 지루함과 약간의 실망은 그러나 마무리 부분으로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음이다. 대체 삼미 슈퍼스타즈를 재현하는 마지막 팬클럽의 경기는 어떠한 방식으로 결말이 날까 궁금해했던 독자는 이 경기의 자연스러움과 재미와 교훈에 결국 이 작품에 대해 좋은 평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조성훈의 일본인 친구 이야기는 좀 뜬금없기는 했지만 오히려 우리의 옛이야기인 '금도끼, 은도끼'의 신선처럼 넘기자면 별 무리가 없을 듯 싶다.

광고문구를 빌려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이 책은 유쾌, 통쾌, 상쾌하다. 골계미가 번뜩이는 재치와 해학이 유쾌하고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하는 주제의식이 통쾌하며 내 식대로 살아도 되는 거구나, 이를 받들어 주는 작가의 배짱에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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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여우 사계절 아동문고 45
베치 바이어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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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고 투정많은 도시 아이가 불가피하게 부모와 떨어져 농장 생활을 하게 된다. 새로 접하는 자연을 통해 아이는 용감하고 정감어린 아이로 성장한다. 영미 동화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 도식들.

그러나 책의 독특한 점. 톰과 피티의 진한 우정과 기발한 놀이들. 영상적 이미지로 늘어놓는 톰의 상상, 신문기사와 제목뽑기, 톰과 피티가 주고받는 편지 내용 등등...

무엇보다 톰의 심리묘사 탁월. 아버지, 어머니, 이모, 이모부, 사촌누나에게 느끼는 각기 다른 감정과 관계, 검은 여우에 대한 호기심이 애정으로 변하는 과정, 피티와의 우정,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적 의식.

한가지 아쉬운 점. 동물에 대한 애정을 느낀 경험이 없어서인지, 동물원에서만 여우를 봐서인지, 톰이 열다섯번이나 검은 여우를 봤다고 해도 여우에 대한 톰의 심경 변화가 덜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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