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안동이나 경북 출신도 아닌, 서울 출신의, 그것도 새내기 작가가 고작 두 번째 소설에서 이런 작품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하다. 특히 여자 작가들이 허우적대는 일상적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엄청난 노력이 들었음직한 취재 품팔이를 통해 종가 분위기를 재현해 낸 것이나 언간을 창작한 것을 볼 때 작가로서의 끈기와 노력, 진중함에 최고점을 줄 수 밖에 없다. 많은 독자들이 이 대목에서 이 소설을 칭찬하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특히 언간 끝의 할머니가 보낸 짧은 답신의 내용과 문장의 아름다움은 가히 압권이다.)

게다가 작가는 가부장제의 결정체인 종가라는 소재를 통해 가부장제의 허위를 드러내는데 정확히 도달한다. 비판하고자 하는 바를 철저히 고증해내면서 그 안에서 이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작업이 이 작품에서는 선연히 드러난다. 결말 부분에서 액자인 언간 이야기에서의 여아 살해는 가부장제의 허위와 잔혹함, 이로 인해 오랜기간, 아직도, 고통받는 여성들의 삶을 결정적으로 폭로하며, 액자 밖 이야기에서 효계당을 불태움으로써 제단 위에 한을 푼다.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현재의 일상에 머물렀다면 이 작품은 여성들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본령으로 돌아가 이를 고발하고 붕괴했다는 점에서 또 한 차례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실이의 인물 설정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든다)

이러한 장점이 너무나 두드러져 아쉬운 점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역시 새내기 작가인지라 구성의 미숙함이나 형상화 부족 등을 숨길 수 없음은 어쩔 수 없다. 사실 구성의 미숙함은 장마다 언간이 하나씩 이어지는 바람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주인공 상룡이 두 번 서울을 오가는 상황 설정이나 이음새는 확실히 매끄럽지 못하다. 상룡과 정실의 계속되는 정사 장면도 나름대로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를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둘 사이의 대화와 상황을 좀 더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을, 중반 내내 너무 지루하게 끌었다.

또 상룡의 생모인 '초콜릿 루나티크'가 풍기는 분위기도 왠지 억지스럽다. 초콜릿 가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는 종가와는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자연스럽게 형상화되지는 못한 듯 하다. 그 공간이 상징하는 의미, 상룡이와 생모와의 만남이 지닌 의미, 두 번의 외출을 통해 상룡이의 심리가 변하게 되는 과정 등이 그 공간에서 적절하고 설득력있게 드러나지 못했다. 특히 영화 '초콜릿'을 그대로 소설에 따온 듯한 초콜릿 가게의 첫 묘사는 내내 심하게 거슬렸다.

알라디너들이 아니었다면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신문 서평만으로 이 책을 알게 된 감사한 기회를 누리지를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별 다섯 개 찬양 일색으로 아직 새내기 작가의 미숙한 티를 덮어줄 수 만은 없기에 굳이 티 하나를 끄집어내 별 하나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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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7-1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비스님 리뷰 읽고 보관함에 담았어요..^^ 잘 읽었습니다..

부리 2004-07-1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잘 읽었습니다. 예리한 분석인 듯 싶네요.

아라비스 2004-07-1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넘 오랜만이죠?^^), 부리님(뉘신가 하고 서재에 가봤더니 마, 님이시네요. 그 유명한 닉네임을 바꾸셔도 될만큼?^^) 반갑습니다. 전 아직 잠수중이예요...(쿨럭~ 쿨럭~)

superfrog 2004-07-2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주의 리뷰에 뽑히셨네요..^^ 꾸준한 성원이 드뎌 보답을 얻는군요.. 저도 같이 기쁩니다..^^ 축하드려요!!

책읽는나무 2004-07-22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의 제목만을 얼핏 보았을땐...그냥 그저 그런 소설일것이란 생각을 했더랬는데...님의 리뷰를 읽어보니 한번 읽어보고 싶단 충동이 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07-22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어 우선 보관함에 넣어뒀습니다. 그야말로 리뷰로서 흐트러짐없고 군더더기 없는 멋진 글이네요... 이주의 리뷰에 올라가 있어 님의 서재를 알게 됐습니다. 종종, 아니 자주 드나들 것 같은 느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