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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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어시간에 배운 글 잘 쓰는 "비법"은 매우 간단명료했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의 세 가지 원칙, 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참 쉽다. 독특하고 까다로운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있는 선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혼자서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글쓰기는 그렇게 힘들까. 글쓰기, 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대다수 사람에서부터, 한 때 문학소녀, 문학청년을 꿈꾸었다고는 하지만 문법조차 맞지 않는 사춘기의 감상 나열에 불과한 글에 만족하는 이들, 그리고 글 좀 쓴다고는 해서 시작했지만 글쓰기의 "프로패셔널" 칭호, "작가" 타이틀을 따기는 그리도 힘든 습작생들에 이르기까지...

이문열은 책을 200권 읽으니(어떤 책이었는지, 그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사실 누구든 200권 읽고 작가가 될 수 있다면 그 누가 200권 읽으려는 노력을 못하겠냐만은) 자기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고 하고 신경숙은 다른 작가들의 글을 필사하는 과정을 통해 글쓰는 법을 배웠다고 한 걸 보면, 그리고 여느 작가들의 작가되기 과정을 대충 들어보면 귀납적으로 볼 때 다독, 다작, 다상량의 고래적 원칙이 확실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계속 출간되는 것은 무슨 이유이며, 이 책이 내게 또다른 깨우침을 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바로 "나 자신을 믿고 솔직하게 표현하라. 그리고 부단히 쓰라"는 뻔한 가르침이-책 내용의 일부처럼 저자의 진심이 담겨 독자를 움직였는지 어쨌는지-마음을 움직이고, 이를 실천하게끔 하는데 그 어느 책보다 도움을 준다는데 있다.

뛰어난 연주자, 무용가,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시작해 근 몇 년간을 하루에 몇 시간 이상 피나는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 그건 천재라도 마찬가지다. 설령 연습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좀 더 적게 들었을 천재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배우지도 않고 저절로 원숙한 수준의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된 신동이 있던가, 그냥 생각날 때 드문드문 여흥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있던가, 연습하지 않고 무대에 서는 무용가, 배우가 있던가. 하지만 사람들은 "작가"라는 예술가에 대해서는 유독 연습이란 걸 도외시한다. 아마도 그건 많은 사람들이 읽고, 쓰고 할 수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이 주는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다. 부단히 쓰는 연습을 하면, 자기 자신을 믿고 쓰고 또 쓰다보면 언젠가는 잘 쓰게 되리라는, 어찌보면 결국 누리게 될 당연한 결과를 깨우쳐 주고 이를 희망으로 드러내주는 것. 그리고 이는 별 유명한 작가는 아니더라도 글쓰는 일과 관련해 밥 먹고 사는 일을 꾸려나가는 저자의 꾸준함을 보건대, 그리고 그런 그가 오랜기간 주장해온 말들이 책이라는 형식으로 나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보건대 더욱 신뢰가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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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무늬 2004-04-13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마음을 잡아당겨서 서평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어릴적에는 글쓰는 것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죠. 그러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깊은 절망을 경험했는 긴 터널 속에서 미처버릴 것 같았던 아픔을 풀어낼 유일한 길이 글을 통해서 쏟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제 삶에서 중요한 숨통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젠 너무나 잘쓴 글을 보면 시셈이 나고 욕심이 생기기까지 하네요. 그럴 때면 그냥 스스로를 비춰보는 자기 만족의 자유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뼈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자신을 믿고 솔직하게 써라"...이 책을 읽은 것도 아닌데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
마이클 린버그 지음, 유혜경 옮김 / 한언출판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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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솔직히,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자기계발 책을 읽고 감명받았다는게 나로서는 좀 부끄런 일이다.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란 말은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진정 원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고, 또 성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인데 이러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외침에 내가, 이 나이에, 인생의 목표와 의지를 되새기고 지지를 청하게 되다니... 공자는 일찌기 15살을 "입지"(立志)라고 하며 그 나이 때 인생의 뜻을 세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서른이란 나이에 "입지"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러한 책에 귀기울이며 "입지"를 다지고, 다짐하는 것이 인생의 지진아가 된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물론 요즘의 내 상황을 되돌아 볼 때 내가 이런 열등감과 자기비하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이 세상에 봉사하겠다"는 원대한 꿈으로 원하던 대학과 원하던 직장에 갔지만 한 번의 단절을 겪고 과거를 되돌아보니 그것들이 진정 내가 원하던 것이었는지, 헛된 꿈은 아니었는지 회의가 들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의미, 추구했던 목표,가치들은 공중분해 되어버렸다. 

사람과 사물과의 인연들도 때가 중요한 법이지만, 책 역시 어떤 시기에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가 무척이나 중요함을 요즘 새삼 느끼는데, 이러한 때에 읽게 된 이 책의 문장 하나, 격언 하나는 내가 원했다고 믿어온 것들의 진정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고 제2의 인생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게 했다. 더군다나 철저한 기독교 정신에 바탕이 된 책인지라 맘을 더욱 크게 울린 것도 사실이다.

남들 하는 대로만 하면 큰 후회나 미련없이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남들 사는 듯이 살면 외롭지도 불안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굳이 큰 용기를 만들어 내어 삶에 투신하며, 삶과 투쟁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낼름낼름 고개를 들지만 그래도, 어쩔 것인가, 원하는 대로 산다고 믿어온 내 삶도 돌이켜 보면 이렇듯 허허로움만이 남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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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 수업내 노고산의 나무들이 기다리던 봄을 접고 서서히 흰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풍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봄에 내리는 폭설은 북국의 한 나라 혹은 흰 마녀가 지배하는 나르니아에 온 듯한 공간의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흰 눈의 높이만큼 세상 모든 것들은 제 존재의 몫을 장구히 드러내며 서 있었고 하늘의 전깃줄, 나뭇잎새 하나, 가느다란 생울타리... 그것들이 내가 몰랐던 어제도 제 자리에 있었고, 내가 곧 잊게 될 내일에도 있을 것임을 알게 했다. 그리고, 20살에 가장 좋아하던 가난한 시인의 아름다운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를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자가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2004.3.5. PM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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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스 2004-03-2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때까지는 하염없이 눈이 오는 풍경 위로 감상에만 젖어있었다. 눈이 많이 와도 천재(天災)라는 걸 추운 나라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 미처 몰랐다. 몇 시간 뒤 무너진 집과 비닐하우스들을 보며 이 시를 떠올리고 있던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결혼의 기술
윌리엄 글라써 지음 / 하늘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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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약간 유치한 느낌이 나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클림트의 표지 그림으로 보아 우연이 아니라면 이 책을 만날 기회가 있었을까 싶다. 긴 열차여행 내내 읽을 거리가 아무 것도 없었기에 동행이 갖고 있던 것을 뺐어 읽었는데, 책이란 것도 영화나 텔레비전처럼 아무 기대없이 볼 수 있고, 그럴 때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인간의 '욕구'가 행동의 동인이라는, 심리학의 고전 명제 아래 결혼생활과 밀접하다 여기는 다섯 가지 욕구-생존, 힘, 사랑, 자유, 즐거움-를 기준으로, 나와 상대방의 욕구 정도를 알아내고 이것이 서로 간에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를 설명한다.

그의 이론은 그러나 부부 조화의 기준이 되는 욕구로 그가 선정한 다섯 가지 욕구가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고 타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많은 이들의 생생한 사례, 그리고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역시 그의 이론이 최소한 어느 정도의 귀납적인 근거를 갖는다는 점은 이 책을 부인할 수 없게 하는 지대한 이유다.

최소한 그의 이론은, 모든 심리학 이론들이 근본적으로 그러하듯이, 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정리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갖는다. 독자들은 자신과 상대의 욕구 강도를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이 나와 다른 존재임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조화를 이루게끔 노력하는 심리적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욕구 정도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 잘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저자는 잘 맞지 않는 사람과 결혼, 교제하는 것은 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가장 어려운 상대도 끝까지 맞춰가려는 노력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인격의 성숙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랑이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다섯 가지 욕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노년의 서양 학자가 지닌 인간관계의 단면일 뿐이라는 생각은 젊은 로맨티스트의 항변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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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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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아랫목에서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까주시는 걸 받아들고 긴긴 밤을 보냈던 그런 기억... 은 없지만 성석제의 이야기를 '아랫목 이야기'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그의 이야기속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옛이야기와 비슷하게 어딘지 모르게 모자라면서도 정다운 인물들이고 그들에게서 묻어나는 건 인간 세상의, 사람살이의 보잘 것 없음이다. 일견 씁쓸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하지만 술렁술렁 잘도 넘어가는 입담에는 그 미소도 잠시 잠깐일 뿐, 우리에게는 허허로운 웃음만이 남는다. 그 웃음 속에는 어떤 이는 한국인에게 면면히 흐르는 웅숭깊음을 발견할 수도, 또 누군가는 벅적지근한 잔치 마당 뒤끝에 홀로 남겨진 허전함을 느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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