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했음'이나 '잘 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를 닮았다'라고 써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번병은 친절하다'라고 쓴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번병이 우리가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만 써야한다. '당번병은 우리에게 이불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또한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한다'는 단어는 막연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호두를 좋아한다'와 '엄마를 좋아한다'는 같은 의미일 수가 없다. 첫번째 문장은 입 안에서의 쾌감을 말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감정을 나타낸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을 매우 독특하다. 그의 대표작인 <비밀노트>의 이 구절은 그의 문장론 또는 문체론을 정리한 것처럼 문장의 서술에 대한 그의 견해를 매우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가 어떠한 생각으로 이렇듯 독창적인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문장론에 관한 교과서 한 구절을 보는 듯 하기도 하다.
그리고 감정의 서술 대신 사실 묘사가 중요하다는 그의 견해는 우리가 평소 얼마나 많은 판단과 그로 인한 선입견 속에 살고 있는지까지 반성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