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하는 엄마가 아이도 잘 키운다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 김순화 옮김 / 글담출판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일하는 엄마들에게 "일하는 엄마가 아이도 잘 키운다"는 말은 참으로 반갑다. 아이에게 사고가 났을 때, 아플 때, 성적이 떨어질 때, 비뚤어진 성격과 행동을 보일 때 일하는 엄마는 얼마나 죄책감을 느끼며 죄의식을 강요받는지...시어른들이, 그리고 남편이, 또 때론 같은 여자인 전업주부들까지 "엄마가 일을 하니 아이가 그 모양이지"하고 손가락질 할 때 일하는 엄마들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얼마전 말이 많았던 부모의 학벌 세습에 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업주부의 아이의 서울대 입학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발표됐다. 다른 직업을 가진 주부와 전업 주부의 비율조차 고려하지 않은 이 무자비한 통계 때문에 일하는 엄마들은 아마 "두 번 죽었을" 것이다.
일 안하는 엄마들(일단 이 책의 제목에 따라 이렇게 부르자)에게도 아이들의 문제가 엄마의 문제로 적용되는 건 마찬가지다. 특히 요즘의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엄마에 대한 평가가 아이가 얼마나 공부를 잘 하느냐, 그것도 아니,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로 서열이 매겨지는 형편이니... 이래저래 일하는 엄마든, 일 안하는 엄마든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 기쁨이 아닌 부담으로 주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저자의 요지는 이러하다. 일차적으로, 아이가 있는 여성이 일을 하고 안하고는 여성 스스로 선택의 문제이다. 아이의 양육에 가장 나쁜 경우는 일하는 엄마가 아니라,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엄마와 일을 하기 싫으면서도 해야 하는 엄마의 경우이다. 결국 그 좌절감과 스트레스가 아이의 양육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지극히 합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경제적 이유로 직장을 다닐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용납하면서도 경제적으로 풍족한 여성이 자아실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갖는다면 곱게 보지 않는 것이 현실 아닌가?)
저자에 따르면 최소한 3살까지 엄마가 아이를 양육하지 않으면 아이가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겪는다는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은 비과학적인 거짓이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위해 옆에 있을거라는 믿음이다. 물론 아이는 여러사람에게서 결속력을 형성해갈 수 있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가 최소한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고 편안히 느낄 수 있는 한 사람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런 사람이면 엄마, 아빠, 보모, 할머니, 할아버지 등 누구나 상관없다고 한다.
책을 읽고 생각해보니 결국, 아이 양육에 관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녀 양육을 가정과 사회가 아닌 엄마 한 사람의 일로 치부하고 모든 책임과 의무를 여성에게로 돌린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모성애라는 억압 아닌 억압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선택권을 어떤 형식으로든 제약받는다. 자본주의 발전과정에 따른 부산물이라고 보기에는 당장의 해결이 소원한 듯 보인다. 일단 여성들 스스로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고, 저마다 가치관이 다르듯 부모관도 다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신념에 따라 용기있게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충해나가는 것 또한 지금까지 요구되어 온, 시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