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 한 조각 내 인생과 아이 문제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 지음, 이재원 옮김 / 새물결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아니지만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의문부호가 붙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를 것을 아니, 느낌표라도 두 서너개 더해 모성애를 불지필 것을 불끈 다짐해야 옳을 일이어야 할 것을, 엄마로서 전적인 사랑을 아이에게 바쳐야 한다는 당위에 의문을 제기하다니... 바로 이 물음표의 지점에서 사회학자인 엘리자벳 벡 게른스하임의 논지는 전개된다.

제목 이야기부터 나왔으니 원제를 밝히자면 "아이 문제-아이냐 독립이야 선택의 기로에 선 여성"이다.(우리말 제목은 편집자나 역자 중 누구 솜씨인지 정말 잘 지었다) 제목을 통해 아이는 '문제 상황'이고, 아이의 출산, 양육과 여성의 독립은 갈등요소라는 저자의 인식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현대의 대부분 여성들에게 아이는 문제 상황이다. 여성들은 과거처럼 출산을 결혼 이후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 언제 낳을 것인지, 어떠한 형태로 양육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선택한다.

아이의 출산과 양육이 여성의 독립과 갈등 관계를 지닌다는 사실은 주변의 현실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지만 저자는 근대 사회의 흐름 속에서 이 두 가지 요소가 필연적으로 발생한 과정을 보여주며 따라서 둘의 갈등 상황 역시 필연적일 수 밖에 없음을 설명한다.  근대사회에서의 아동의 지위, 그에 따라 요구되는 모성의 역할, 개인의 삶의 목적과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따라가보며 우리는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느껴졌던 어머니 역할과 관련한 여성의 일상이 어떤 지형도에서 나왔는가를 깨닫게 된다.

사회학적 분석이라는 것이 때로 그렇듯이 이 책의 설명은 명확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살라는 거야? 어쩌라는 거야?"에 대한 대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의 역할, 더 나아가 여성적 가치들이 더이상 주변부에서 비하되지 말고 사회의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전망을 제시할 뿐이다.

그러나 책의 결말이 공허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내 개인의 일상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복지 문제라고만 느꼈던 고민의 실상을 근대 사회라는 더 큰 맥락의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자신이 처한 현실의 의미와 깊이를 더 잘 알게 되었으니까. 아이를 낳을지 아닐지를 고민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여성들, 아이와 개인의 욕구에서 방황하는 모든 자매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냐 2004-08-1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구리한 리뷰입니다. 꾸욱

아라비스 2004-08-1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좋아서요. 약간 학술적인 책은 리뷰쓰기도 쉽죠...

2004-08-2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에 열거된 편지의 구절처럼 나도 언젠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밤을 새워 적은 적이 있다. 삶의 모든 순간들을 함께 하고 싶다는 욕망과 바람은 사소한 일상사에서부터 원대한 삶의 계획에까지 이르렀다. 살면서 참 신기한 일 중 하나는 어떤 때는 죽을 것 같고 어떤 때는 삶을 일으켰던 사랑의 기억들도 점차 시간 속에 침잠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그 때 내가 절절한 가슴을 부여잡고 밤새워 쓴 쪽지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도 않을 뿐더러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 소망을 아로새겼던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소설과 함께 사랑에 관한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소설 속의 화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을 때 나는 사랑하는 그와 함께 있었던 순간들을 비로소 떠올릴 수 있었고 그들이 울고 웃을 때 그와 울고 웃던 내 감정들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똑같은 강물은 두 번 다시 흐르지 않는 것처럼, 똑같은 시간을 다시 한 번 되돌려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지난 사랑은 그렇듯 우리네 삶을 떠나고 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강하다, 고 하는 건 바로 그런 의미겠지.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 덧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루하고 비루한 일상사 속에서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밝혀주는 것은 것은 다른 어느 권력과 명예와 물질적 풍요도 아닌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아직도 사람들은 끝없이 영원한 사랑에 자신의 삶과 행복을 기구하는 것일지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냐 2004-08-16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책 보고 온몸이 경직되는듯 했던 기억이.. 감정이입 팍팍 되더라구요.

아라비스 2004-08-1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정이입, 바로 그 단어 하나로 끝낼 수 있는 것을.....^^
 

휴가삼아 지방에서 올라오신 아빠는 샤갈전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내년이면 환갑이시고 특별히 예술적 취향이 높으신 것도 아니고 문화적으로는 오지 중의 오지인 곳에서 사시는 아빠가 서울에 오셔서 하고 싶으신 일이 샤갈전을 관람하시는 것이라니, 평소 문화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고자 하시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 아빠도 참, 대단한 분이구나 싶었다.  

마침 나도 선선해지는 가을이면 보러 가야겠다 하고 벼르고 있던 전시라 더위야 미술관 안에서는 힘쓰지 못하겠거니 생각하며 먼 여행길을 떠나듯 지하철을 탔다. 흔히 샤갈을 '색채의 마술사'라고 표현하지만 그가 색을 쓰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는 못하겠고 그저 그의 작품만이 지닌 색감과 동심, 천진난만한 기운 등을 참 좋아했던 터였다.

그러나 100여점이 넘는 작품을 가져온 사상 최대의 전시라고 선전한 것에 비해서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은 기대보다는 덜한 편이었다. 니스의 성서박물관에서 느꼈던 그의 작품과의 환상적인 조우의 순간들을 다시 한 번 이 땅에서 맛보길 바랬던 욕심은 지나쳤던 것일까. 유대인 극장 패널화인 <문학> <음악> <연극> <무용> 네 작품에서 오직 약간의 떨림을 느꼈을 뿐이다.

참 우스운 일인 듯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나를 자극한 것은 샤갈의 그림이 아닌 관람객이었다. 아무리 방학이라고 해도 아이들 숙제로 엄마들과 손잡고 나왔다고 해도 평일 낮시간에 미술관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입구에서 2층, 3층 전시실까지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줄을 만들 정도였다. 우리나라 문화 양태라는게 한 곳에만 쏠리는 걸 십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의외였던 것은 관람객의 진지한 태도였다.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작품을 뛰엄뛰엄 보는 사람도 없었고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모든 작품들을 몇 분여에 걸쳐 하나씩 진지하게 감상했다. 5-6학년 정도로 되어보이는 여자아이와 엄마의 대화 역시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 : 엄마, 나 르네상스로 쓸거야.(감상문을 말하는 것이겠지)

엄마 : 르네상스는 16세기야.(오옷, 교양있는 어머니로군)

아이 : 아니, 그게 아니라 샤갈하고 16세기 르네상스하고 비교할 거라고...(헉, 초등학생이 '비교'라는 관점에서 감상문을 쓸 생각을 하다니...16세기 르네상스보다는 당대의 추상화가들과 비교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충고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외에 드문드문 엿들을 수 있던 말들도 모두들, 나름대로 자신의 관점과 역량 하에서 작품을 이해하려는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학력이 높은 어머니들이 집안에만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이렇듯 아이들 교육 수준의 향상에 일조하는 식으로라도 뒷받침하는 형태로라도 기능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물론 중산층 이하 계층 아이들의 문화 소외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겠고 엄마들의 지나치거나 유행만 좇는 교육열을 문제삼을 수도 있겠지마는... 지난번 현대미술관에서 어떤 엄마는 많아야 네 살밖에 안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에게 "너는 그림 보기가 싫으니. 이렇게 그림 볼 줄도 몰라서 앞으로 어떻게 할래"하고 나무라기도 하더라마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냐 2004-08-1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저 엄마와 딸 장난이 아니로군요.
하지만, 님의 아버님도 장난이 아닙니다. 넘 근사한 부녀입니다. 에구. 부러버라.

아영엄마 2004-08-1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사이트에서 샤갈 전시회 무료관람 티켓 이벤트를 한 적이 있는데 저도 응모해서 표 받았거든요.. 조금 선선해지면 갈려고 미루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은 이런 문화혜택을 누려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좀 걱정되네요...

ceylontea 2004-08-16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적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사회적으로 너무 무시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교육을 받고 학력이 높은 사람이 사회 활동을 통해 그 진가를 발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를 바른 가치관으로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08-16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언급하신 모녀의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네요. 어떤 삶을 사는 엄마길래, 그림 볼 줄도 몰라 '앞으로' 어떻게 할래, 라고 말할까요...

superfrog 2004-08-1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이 딱이에요.. ㅋㅋ

아라비스 2004-08-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정말, 장난이 아니죠? 저희 부녀는 아니구요...^^; 그렇게나 좋아하시는데 지방에 사시는 탓에 문화혜택을 못누리시는 걸 보면 좀 안타깝죠.
아영엄마님/아이들이 정말 좋아할걸요? 이왕 나가신 김에 덕수궁 돌담길도 걷고... 아... 좋겠다.
실론티님/양육과 교육은 죄다 어머니 몫으로 맡겨두고 정말 너무하죠...
이안님/제가 기억력이 나빠 단어 하나하나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예요. 다만 그런 분위기만큼은 확실했다는 것... 저도 참 답답하대요.
금붕어님/그렇네요^^
 


페르세우스 유성우라는 것을 관측하기에 좋은 날이라는 뉴스를 신문에서 봤다. 별똥별을 관측할 수 있다고 할 때마다 오빠에게 이야기하곤 했지만 오빠는 늘 관심없어 했는데 오늘은 웬일로 귀담아 두었는지 별 보러 나가자고 한다. 소원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면서... 이제 빌고 싶은 소원도 많아지고 마눌이 해달라는 것도 잘 들어주고 싶은 건지... ㅎㅎ

도심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을 찾기 위해 차를 타고 일단은 광명역사 근처로 갔는데 어두컴컴한 곳은 죄다 사유지였고 방향도 맞지 않아 삼막사로 향했다. 지난 겨울밤 어떤 곳인지 한 번 가봤을 때 그 길에는 가로등조차 없어 무서울 지경이었는데 이제 도로가 완전히 개발되어 있었고 도로 양편에는 더위를 피하러 나와 돗자리를 깔고 누운 사람들로 줄을 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여들었는지 '치킨 배달'이라는 현수막까지 걸려 있었다. 가장 꼭대기 주차장엔 그나마 가로등도 없고 하늘도 가리지 않아 여기다, 싶었더니 웬걸,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친, 주차장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 나도 나중에는 그와 다름없는 처지로 있긴 했지만 불을 켜면 달아나는 바퀴벌레 같았다. 헤드라이트가 고장이라도 났다면 어쨌을지...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은지 얼마되지 않아 우리는 함께 별똥별 하나를 발견했다. 별도 잘 보이지 않고, 차들은 계속 들어오고, 공중화장실 냄새도 심하고, 목도 아프고 해서 분위기가 잘 잡히지 않은 상태였고, 그 바람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소원도 빌지 못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시간은 매우 짧다. 그래서 오빠는 소원을 네 글자로 짧게 빌자고 한다. 내가 "만사형통"이라고 했더니 "꼭, 너같은 소원이다"라고 실쭉거리며 자기는 "백년해로"란다. 귀여운 오빠 같으니...ㅋㅋ

하지만 우리는 그 소원을 빌 별똥별을 찾지 못한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내려왔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부르며 풀벌레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시원한 여름밤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열악한 환경 탓이었다. 일단 하나 봤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도시에서 맨눈으로 별똥별 보기가 어디 쉬운가. 밤이어야 하고, 달이 없어야 하고, 게다가 도시에서 불빛 없는 곳 찾기란 정말이지 힘들다.

오랜만에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빌어야 꼭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그 소원은 언젠가는, 아니 언제라도 꿈이 아닌 현실로 자리잡고 있는 것일테니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eylontea 2004-08-1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까지 별똥별 떨어지는 것 못봤는데... 그리 보기 쉬운 것은 아니군요..

superfrog 2004-08-16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빌어야 꼭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그 소원은 언젠가는, 아니 언제라도 꿈이 아닌 현실로 자리잡고 있는 것일테니까.
님의 요 마지막 글들이 별똥별 만큼이나 아름다워요..^^ 님 말씀대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셨군요.. ㅎㅎ

아라비스 2004-08-1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네. 제 경우도 무지 행운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옥상에서 열 개나 봤다는 사람도 있어요...
금붕어님/솔직히 전 마지막 문장이 너무 나이브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 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를 닮았다'라고 써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번병은 친절하다'라고 쓴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번병이 우리가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만 써야한다. '당번병은 우리에게 이불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또한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한다'는 단어는 막연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호두를 좋아한다'와 '엄마를 좋아한다'는 같은 의미일 수가 없다. 첫번째 문장은 입 안에서의 쾌감을 말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감정을 나타낸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을 매우 독특하다. 그의 대표작인 <비밀노트>의 이 구절은 그의 문장론 또는 문체론을 정리한 것처럼 문장의 서술에 대한 그의 견해를 매우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가 어떠한 생각으로 이렇듯 독창적인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문장론에 관한 교과서 한 구절을 보는 듯 하기도 하다.

그리고 감정의 서술 대신 사실 묘사가 중요하다는 그의 견해는 우리가 평소 얼마나 많은 판단과 그로 인한 선입견 속에 살고 있는지까지 반성하게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arsta 2004-08-05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에 오니 정말 좋군요. 저 혼자였으면 도저히 몰랐을 책들을 많이 접하게 되어서 말입니다.
(간혹 올려주시니 반가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