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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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었다. 재미있다. 계속 지켜 볼만한 작가인 듯 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마음 깊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여기저기 탐구로 점철되어 있어 지적으로 자극되는 건 좋지만 한편 자연스럽고 편안한 맛이 없고 좀 차갑기 때문에 내 취향과는 별 어울리지 않는 듯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몇몇 탐구의 흔적들.

첫째, 언어에 대한 탐구이다. 생경한 언어를 일부러 사용하는데 그 뜻을 친절하게도 풀어 설명해준다. 더 나아가 하나의 단어를 중심에 두고 마인드 맵을 작성해 나가듯 인물의 성격, 이야기의 전개에로 확장시키기까지 한다. 흔한 비유가 아닌 독특하면서도 적확한 비유들을 많이 사용한다.

둘째, 구조에 대한 탐구이다. 이야기의 순서와 화자의 시점을 꼼꼼히 읽지 않으면 어려울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엮어두고 있다. 어느 소설가나 마찬가지이긴 하겠지만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허투루 박혀 있는게 없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것은 논외로, 여러번 생각하고 수차례 머리를 쓴 흔적이 눈에 띄는 것이다.

셋째, 문화 안에서 소설의 자리에 대한 탐구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소설적이기보다는 영화적이고 제목부터(선영아, 사랑해) 시작해 개콘에 대한 이야기까지 대중문화를 끌어들이고 있다. 또 레비 스트로스, 프로이드, 울리히 벡(까지 섭렵할 줄은 정말 몰랐다)을 인용하는 등 매우 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의 소설관이 어떠한지는 잘 알지 못하겠다.

마지막으로, '사랑이라니, 선영아'란 말이 자유주의자 진우에게서 나올 줄 알았는데 광수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라는 건 정말 에피소드다. 80년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진우, 광수, 선영 모두 미워할 수 없는 내 친구들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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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소
권지예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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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말처럼, 그리고 평론가란 전문가의 의견처럼 서사는 강했고 문장은 깔끔히 빨랐다. 그런데 글과 등장인물의 성격이 '위악적이어서 오히려 현실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말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근대 이후 소설의 인물은 착했던 적이 없다. 모두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의 반영이었다.

둘째, 위선이 아닌 위악이라는 의미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이들의 삶은 위선과 위악이 섞인 채 극히 현실적일 뿐이다.

셋째, '위악적이어서 현실적'이라는 말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작가의 주제의식이나 인물의 형상화는 종래에 가서 지극한 모범답안에 도달하고 만다. 위악으로 현실을 그리고자 하지만 그 위악이 결국에는 현실 있는 그대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착함'(말 그대로)으로 전도되어 힘이 빠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무언가에 크게 발목이 잡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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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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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소설의 끝에는 평론이 따라붙는다. 그러한 평론의 대부분은 사족이거나 아니면, 후광에 기대어 작품의 부실을 모면해보려는 시도로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평론을 말함으로써 소설을 말하고 싶다. 김영하의 새 소설도 놀랍지만 남진우의 평론은 그만큼, 아니 어쩌면 작품보다 더욱, 훌륭했다. 남진우의 평론을 읽고 나서 이 책에 대해 어떤 말도 보태고 싶지 않다. 지나친 패배주의라 불러도 좋다.

단 하나 말하고 싶은 것, 마이리뷰의 개수와 추천 건수로 보아 김영하의 인기와 그 인기의 충실성을 엿볼 수 있는데, 나 역시 이 작품을 사랑하게 된 건 사실이지만 작품을 비판하는 일단의 목소리 또한 일정 부분 의미있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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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 -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사이쇼 히로시 지음, 최현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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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아침형 인간으로 나아가는 제1원칙이 변화의 기회를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제1원칙이 매우 확실하므로 100일후면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침 요즘 들어 아침에 빨리 일어나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

어느날부터 갑자기 빨리 일어나야 할 이유가 많아졌다. 서울 시외로 이사를 하면서부터 출근길 지옥이 시작되었다는 것, 동거인의 퇴근시간이 너무 늦어 저녁 먹고 좀 쉬면 바로 자야할 시간이 되어 버렸고 개인적으로 여유있게 보낼 만한 시간이 없어졌다는 것, 그리고 한창 재미가 들린 아침운동을 빠지지 않고 하고 싶은 욕구, '현경'의 책대로 '새벽 글쓰기'(virgin dairy)에 도전했지만 현재의 기상시각으로는 불가능했던 것, 신문에서 한국 CEO들의 기상시각 등 시간 운용을 보고 나의 게으름에 대해 반성했던 일, 야행성 생활로 폐인이 되어 가고 있는 동생들에 대한 반감, 독서시간이 무한히 많아지기만을 바라는 마음 등등...

이러한 때 이 책을 접했으니 당연히 책의 내용이 마음 속에 머리 속에 의지 속에 쏙쏙 들어올 밖에.

이 책은 사실 과학적인 근거자료도 미약하고 단지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기본 방안들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아침형 인간이 될 것이냐 말 것이냐,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책의 옹골참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에 달린 것 아닌가. 이 책을 통해 그 의지를 확인하고 실천을 예비하고 있다면, 그리고 혹 100일간의 싸움으로 나의 습관이 바뀌고 이로써 좀더 여유있고 자유롭고 의미있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로써 족한 것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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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창비아동문고 17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강일우 옮김, 일론 비클란트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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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그렌의 동화 몇 편은 '과연 이것을 아동문학이라고 분류해도 좋을지, 어린이들에게 혹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하는 논란에 싸여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그 논란의 정점에 있는 작품일 것이다.

그의 작품을 하나 둘 읽어가다 보니 이런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는 바로 그의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모더니즘'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더니즘, 또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가 모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모더니즘'을 과거의 문법에서 확연히 전환되어 현재 우리의 삶과 지평을 같이하는 쯤이라고 규정해 보자면 그렇다.

동화는 근대의 문법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아직까지도 '계몽'의 대상이고 개인으로서의 '주체성'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방향모색에 대한 고민이 많은 까닭 역시 근대의 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하지만 린드그렌의 동화는 다르다. 그의 동화에서는 착한 아이도 있고 나쁜 아이도 있다. 어른들의 구박을 받는 어린이는 신데렐라처럼 왕자님을 만나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욕설을 퍼부음으로서 진정한 '개인'의 면모를 획득한다. 옹기종기 난로가에 얌전히 앉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지어내 어른들을 속인다. 친구의 죽음에 몇날 몇일 눈물 흘리는 신파에서는 멀리 떨어져 그 죽음을 금세 잊고 만다.

그의 동화에서 어린이는 진정 '개인'으로 태어난다. 더이상 '계몽'의 영역에서 비주체적으로 길러지고 교육당하지 않는다. 만약 린드그렌의 동화가 '아동문학으로서 적절한가' 하는 논란에 휩싸인다면 그 지점에는 근원적으로 어린이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내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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