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시절 좋아했던, 지금도 좋아하는, 교수님 한분은 정치철학 강의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다. 매일 같이 여야가 싸우고 다투고 하는 것 때문에 다수의 국민들이 정치혐오증을 가지고 있는게 현실인데, 과연 정치판의 이런 행태가 나쁘냐. 당시 교수님의 답변도 아니다, 였고, 나의 대답도 역시 아니다, 이다. 정치라는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선거를 통해 자격을 부여받은 특정인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때의 정치의 의미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광장에 모여 의견을 주고 받고 논쟁을 하고 때로는 타협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총칭한다. 이런 점에서 선거를 통해 지위를 획득한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노동단체를 넘어서 의견을 가진 모든 개인들은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시끄러운 것보다는 조용한 것, 평화로운 것을 더 바랄테지만, 정치는 인간의 본성이고, 멈출 수 없는 행위라 생각한다. 오프라인 세계에서건, 온라인 세계에서건 이는 똑같이 적용될 것이고, 그래서 가끔씩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들이 거북스럽진 않다. 문제제기를 통해서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환영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오프'에서보다는 '온'에서의 정치행위는 때로 문제제기자의 의도와는 달리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것은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성실히 의견개진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보다 글은 전달 속도가 느리고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적인 우려를 떨쳐내고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조금 시끄럽다고 하여 멀리하거나 꺼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대로'가 안되기 때문에 언제나 말썽이 일어나는 것이다. 평화라는 이름 하의 적막함과 고요함이 반드시 최상의 상태는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싸우는 것은 무조건 나쁘지 않으며,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공간이라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여겨야하지 않을까 싶다. 평화라는 이름 하의 고요함을 지향하기보다는 시끄러움이라는 이름 하의 의견의 주고받음, 소통을 지향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문제제기가 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이름으로' '적극' 표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나의 이런 바람은 사적영역으로서보다는 공적영역으로서 블로그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게다. 일정 부분 블로그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사적영역으로 시작된 블로그라 할지라도 공적영역을 무시할 수는 없단 생각이다. 한 개인이 사적영역으로서 블로그에 그날의 일과 주변의 생각들을 늘어놓는 공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같은 개인이 공적영역으로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자를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충실하면 될 것이요, 후자를 생각한다면 타인을 배려하면 될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평화로움'에 대한 바람은, 블로그를 사적영역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공적측면도 염두에 두면서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를 갖추면 좋겠다는 뻔한 생각을 내놓습니다. 나를 즐찾하는 분들께. 지식과 생각이 짧음에도 오지랖 넓고 생각이 많아, 아니 말이 많아, 죄송합니다. 꾸벅.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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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05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냐~ ㅋㅋ

이잘코군 2007-10-05 22:31   좋아요 0 | URL
-_- 이런 빠르찌깐 떼쭁님.

드팀전 2007-10-05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이란게 그렇게 양단으로 나뉘어지지 않습니다.관음증과 노출증이 얽혀있기때문이지요.사적인 글에 대해 사적인 의견을 공적인 것으로 환원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요? 이런 방식은 도덕을 선점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방법인데 원리주의나 근본주의로 발전하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논의를 다 따라 가보진 않았고 별로 그럴 필요도 쥐뿔만큼도 못느끼는 것들이었는데..
체셔님 페이퍼가 뭐가 야하다구요...하나도 안 야하던데...오히려 순진한 아가씨의 성적 에너지의 언어적 판타지로 밖에 보이지 않던데.실제 뛰는 사람들은 그런 판타지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도 않아요.뛰는데 판타지고 나발이고 어디있습니까.열심히 하기에도 바쁜데...그리고 한다고 그게 영화처럼 멋있게 각나오지도 않구...
나는 재미있던데 ^^ 포르노 운운은 ..제길 포르노는 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습디다...언제본 포르노가 마지막이었냐.. 이후 포르노는 어떻게 진화했는지..알수가 있어야지.

이잘코군 2007-10-05 23:03   좋아요 0 | URL
저는 마지막으로 본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쿨럭, 음,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에 대한 드팀전님의 말씀을 더 들어보고 싶군요. 사적 부분을 공적 영역에서 논의하기 때문에 문제되는게 아니냐는 말씀에서 멈춰서게 됩니다.

드팀전 2007-10-0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이 모두'공적'영역은 아닙니다.사람과 사람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고 그곳을 모두 공적 공간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알라딘에서의 관계 형성방식은 전통적인 개인 대 개인의 형태-조금 더는 내밀화하면 개인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와 개인 대 매스와의 형태가 복합적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이 중 어느 부분도 전체를 전유하지 못합니다.그러니까 매체적 특성이 기존의 전통미디어방식과는 다르지요.또한 개인이 하나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고 있기때문에 그것에 대한 가치평가를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자꾸 전통적 매체에 대한 윤리기준을 가져다가 맞추려고 하면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외설적 페이퍼라는 것은 먼저 외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마다 다르기때문에 개인적인 불편함정도는 있을 수 있을겝니다.성이라는 담론은 결코 개인적인 것 만은 아니지만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성은 성애에 가까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뿐입니다(그리고 전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그건 개인의 차원에서 개인 차원의 수준에서 의견을 달면 됩니다.구태여 사회를 구제하는 구원투수 역할을 맡지 않으셔도 된다는 거죠.알라딘을 전통적인 매체로 단정하고 또 거기에 전통적인 대중미디어 비판을 위한 윤리성을 짚어넣는 과정에서 선/악이 나뉘어집니다.이럴때 흔히들 사람잡는 윤리라는 말이 나오지요.
제가 이게 좀 우습다고 느껴지는것은 이 정도의 성담론에도 화들짝거리며 사회를 보호해야겠다는 위기감이 드냐는 겁니다.아니면 최소한 클린 알라딘 운동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위기감이 드냐는 겁니다..아이들을 보호해야하고 청소년을 보호해야하고..그런데 오늘도 모텔은 빈방이 없습니다.너무 많이 보호하다보니 전부 모텔로 기어들어가는 건지.인터넷에 너무 포르노가 많이 나돌아서 아이들이 전부 그걸 보고 그러는 건지 모텔 기어나오는 청춘남녀들에게 인터뷰나 하나 해볼까요? 뭐 그럴 필요도 없겠군요.저도 잘 다녔는데 뭘 새삼스럽게. 알라딘이 무슨 교회도 아니고 이 사회가 무슨 진공포장지 속도 아닌데...바나나 입에 넣는 것은 결혼식장에서 합디다.

단박하게 말하지요.전 늘 이런 입장입니다.
알라딘에 개인적 매체의 꼬리표를 훨씬 많이 부칩니다.알라딘 전체를 무슨 마을이라고 보고 거기 내가 마을 주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이렇게 말하면 다들 서운하시겠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당신들에 연연해하지도 않습니다.이 상태에서 어떻게 소통이 가능하냐구요...이 상태가 되어도 소통은 가능합니다.소통이 어깨동무를 뜻하지는 않으니까요.
보든가 말든가...그러나 사회를 보호하고픈 사람들이 피곤하긴 하군요.그냥 사회 좀 지 갈길대로 가게 내비두죠.

아프님의 공적 운영론에 대한 저의 사적 운영론입니다.

이잘코군 2007-10-06 09:04   좋아요 0 | URL
^^ 댓글 읽다가 중간에 허겁 했습니다. 드팀전님이 이렇게 드러낼줄은 몰랐거든요. 하하. 과거의 이야기시긴 하지만.

전에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거 같습니다. 하나의 마을 안의 주민이라 생각하지 말아라, 라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하나의 공동체이고, 마을이란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는거 같고, 저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거 같단 생각도 합니다. 각각의 개인, 혹은 각각의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쯤으로 생각하고, 각자 개인과 개인이 만나는 소통 체계를 생각하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드팀전님 긴 댓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댓글 자주 부탁드립니다. :)

Mephistopheles 2007-10-07 0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재미있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 여러분들의 여러 생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만큼은 큰 소득인 듯 싶습니다.만. 어찌 사공이 많은 시추에이션이 느껴지는 이 기분은?

이잘코군 2007-10-07 08:19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저는 더 많은 분들이 생각을 이야기하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드팀전님의 긴 댓글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생각케 해줬습니다.
 


  솔직히 해당 페이퍼가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한다면 몰라도, 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내겐 더 이상해보인다. 적어도 야하다거나 포르노라고 말하려면, 보고서 뭔가 좀 꿈틀거리거나 속된 말로 꼴려야하는데 한번도 이런 적이 없다. 참고로 나는 지극히 건강한 20대 청년이고, 성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스스로 평균치보다 민감하다 생각하고 있다. 이는 내가 봤을 때 아무렇지 않으니 해당 페이퍼가 문제 없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픈게다. 상대성에 촛점을 맞추어주시면 고맙겠다.  

  어떤 이는 티비 연예 프로그램에 나오는, 겹겹이 옷을 입긴했지만 이쁘고 잘 빠진 몸매의 여자분만 봐도 꿈틀거릴 수 있고, 어떤 이는 눈 앞에서 실제로 남자 혹은 여자가 벌거벗고 야릇한 포즈를 취해주지 않는한은 꿈틀거리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눈앞에서 다 벗겨놓기보다 적당히 노출하고 옷을 입은 상태에서만 반응을 보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포즈가 야하거나 몸매가 착하거나 얼굴이 이쁘거나 하지 않아도 벗겨놓기만 해도 야하다고 난리법석을 떨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글이나 사진이나 영상이 야하다고 말할 수 있는건, 개개인이 자극을 수용하고 반응하는 정도의 문제 혹은 취향의 문제라 볼 수 있다. 다 벗겨놨다고 해서, 노골적인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야한 것도 아니고, 돌려 돌려 빙빙 둘러 말하고 비유적인 표현을 썼다거나 어깨나 쇄골 정도만 드러낸 사진을 올렸다고 해서 야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전적으로 문제의 페이퍼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특정한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느낌과 취향의 문제를 가지고, 이건 잘못되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그런 페이퍼 쓰지말아라, 라고 말하는건 발언의 정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에서 이런 글을 작성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페이퍼가 싫다거나 내 취향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순 있어도, 이제부터 쓰지말아라 라고 강요하는건 폭력이다. 내 취향이 아니고 나는 싫지만 누군가 상대방에게 못하도록 강요한다면, 취향이 다르고 해당 서재나 서재인이 싫다하더라도, 쓸 권리에 대해서는 옹호해줘야한다. '싫음'이나 '취향아님'으로부터 '잘못되었음'을 이끌어내서는 안된다.

  만약 어떤 이쁘고 늘씬한 여성분이 어떤 페이퍼를 작성하다 자신의 사진을 살짝 보였을 때, 누군가는 그 사진을 보고 불끈했을수도 있고, 심지어 혼자만의 '은밀한 손장난'을 즐길 수도 있다. 그냥 따스한 봄에 회사 앞 화단에서 찍은 지극히 평범한 사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 멀쩡한 평범한 사진을 통해 누군가가 신체적 자극을 받는다고 해서 올려선 안되는가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닌데 하는 답이 나온다. 결코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주변 누군가의 실제 사례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 서로들 은밀한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꺼내지 않아서 그렇지, 알고보면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를 자극하는 자기만의 여러가지 성적코드를 가지고 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혹은 해당 서재인이 그냥 싫다고 해서, 페이퍼를 작성치 못하게 하거나, 그가 잘못했다고 보는건 부당하다. 이 공간에서 누군가가 나를, 내가 알고 있는 바나 생각의 깊이에 비해 오지랖 넓고 말이 많다하여 싫어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같은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순 없는 것과 같다.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아직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그렇다는 말.) 포르노냐 아니냐, 야하냐 야하지 않느냐, 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도 없을 뿐더러, 이 공간에서조차도 의견이 갈리는 듯하니 포르노라 전제를 깔고 보지는 말자. 타인에게 명백히 해가 되는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쓰지말라 강요하는건 너무하지 않은가.

* 포르노의 정의와 기준에 관해서는 아래 글은 참고로 읽어보시길 권유합니다. 본인을 즐겨찾는 다른 서재에 브리핑되지 않도록 해놓으신지라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으시는거 같은데, 혹시라도 아래 링크를 걸어놓은 것이 이 분께 실례가 된다면 '별표글'과 링크는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포르노의 기준에 관한 짧지 않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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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에 표현의 자유를 허하라.. :-)
    from 삶에 향을 더하기... 2007-10-05 17:35 
    요즘 어딜가나 비밀댓글이 넘치는군요.. ㅡ..ㅡ;  궁금하게시리 ㅎㅎㅎ  공개적으로 써서 다양한 생각을 돌려 보는것도 좋지 않나... :-) 아이들 교육상 안좋다, 보기 안좋다라는 '주관적 기준'에 따른 타의적 규제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봄. 폭력적인 포르노도 아니고 성적 표현이 있다고 해서 과장된 '불안과 불만'을 들어 그 사람의 활동에 제재를 가하
 
 
2007-10-05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10-05 17:13   좋아요 0 | URL
네.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여러 익명 댓글들을 보고는, 결국 특정 서재인에 대한 '호불호'로부터 '잘/잘못'을 이끌어내는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둘은 엄연히 구분해줘야죠.

비로그인 2007-10-05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고견 잘 읽었습니다. 참고로 링크하신 나귀님의 글은 정말 명문이네요.
저도 한동안 고민했어요. 난 아무 느낌이 없는데 하도 야하다고들 하시니
저만 무슨 심각한 불감증인줄 알았습니다. 말씀하신바 잘 알겠습니다.
댓글을 조금 수정했으니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잘코군 2007-10-06 14:15   좋아요 0 | URL
제가 이런 페이퍼를 썼다고 체셔님 페이퍼나 이번 논란에서의 대응방식에 전적으로 동의하는건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음, 좀 까칠하지만 그리 생각해주시고요, 이건 특정인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부당하다 판단한 상황에 대한 나름의 정리였습니다.

Mephistopheles 2007-10-05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똑같은 저의 단편적인 입장을 짧게도 남기고 있습니다.
논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은연중에 보여지는 "편가르기"가 제일 짜증났습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면 무조건 배척하고 단절시켜버리고 상대의 말은 일단 나와 틀리기에 가치조차 없다고 잘라내버리는 이런 모습들을 가지고 과연 논쟁이나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여지진 않습니다. 보기 참 좋더군요 자신들 서재에 푸념성 글을 올리고 댓글들로 줄세우고 여의도 둥근집 인간들과 차이점 못느끼겠더군요. 아주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껄껄.

이잘코군 2007-10-05 17:17   좋아요 0 | URL
네. 메피님과 요번엔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위에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시리라 봅니다. 말씀하신 '편가르기'는 맨위 속닥님이 말씀하신 '호불호'의 문제와 같다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누굴 좋아하고 싫어하고에 따라서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옹호하느냐 비판하느냐가 갈리는거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

Mephistopheles 2007-10-05 17:40   좋아요 0 | URL
아 글쎄 난 비겁한 양비론자라니까니..나에게 의견따윈 있을 수가 없다니까요..^^

이잘코군 2007-10-05 17:43   좋아요 0 | URL
아, 양비론도 의견이에요. :p

드팀전 2007-10-0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나도 모른다.근데 별로 찾아보고 싶진 않다는 ..그런데 뭔데요?

이잘코군 2007-10-05 17:26   좋아요 0 | URL
에... -_-a 체셔님 페이퍼에 대한 글인데, 음, 최초 사발면님께서 작성하셨고, 이후에 몇몇 페이퍼가 더 있습니다. 어제로 돌아가셔서 찾아보셔야하는데...

비로그인 2007-10-0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전 최신서재글에서 들어갔다가 헉겁해서 나온 적이 있어서.
맨처음의 사발면님의 문제제기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잘코군 2007-10-05 17:27   좋아요 0 | URL
네. 너구리님께서 느끼시는 바 역시 잘못되었다고 볼 순 없죠. 같은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자극의 반응 정도와 취향은 다르니까요. 이런 문제제기 있는건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제기가 된 뒤에 벌어지는 일들이 항상 별로여서 그렇죠. -_-

2007-10-05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5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5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5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7-10-05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쓰신 아프락사스님의 페이퍼 전체에도 공감하고 맨 마지막 댓글에도 공감합니다. 사발면님의 문제제기 역시 나쁘게 보여지진 않았습니다. 역시 의견의 차이도 있고, 취향이 차이도 있으니깐요. 오늘 올리신분중의 페이퍼중에서 누군가의 글이 싫지만, 내 글도 그렇게 읽힐 수 있다는 차이점을 인정한 글, 그리고 그 글이 자신에게 왜 좋게 와닿지 않는지 조리있게 설명하신 글이 있는 그런 페이퍼라면 얘기가 달라질텐데, 이번 사발면님의 댓글에는 그런 논리적인 글이라기 보다는 호불호를 강하게 내세우는 듯 보였거든요. 게다가 거기에 달린 익명의 댓글들은 뭔가요. 또 익명의 댓글들이 지금은 사라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잘 읽었습니다, 아프락사스님.
사실 저는 아프락사스님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뭔가 조리있게 말해내지 못하는데 아프락사스님의 의견을 읽으면 이거야,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잘코군 2007-10-05 17:48   좋아요 0 | URL
지나친 칭찬은 사양토록 하겠습니다. 제가 받아야할 응당의 평가보다 더 높게 받는듯하여. -_- 저도 사발면님 페이퍼에서는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건, 익명의 댓글들이죠. 정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이거든요. 작전세력일수도있고.

다락방 2007-10-05 17:56   좋아요 0 | URL
뭐 별로 칭찬한건 아닌것 같은데요, 제가 ^^:;

이잘코군 2007-10-05 17:58   좋아요 0 | URL
크흣. 마지막 문단을 보고 그리 말씀드린건데, 그렇다면 뻘쭘하게 됐습니다.
('' )( '')

2007-10-05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7-10-0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들이 오히려 더 저질스럽더군요. 사발면님의 글은 저도 어느 정도는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던 부분이라 별로 껄끄럽지는 않았는데.

이잘코군 2007-10-05 22:30   좋아요 0 | URL
네. 애초 그냥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그런 댓글 때문에 글을 쓰게 됐습니다. 어째 제가 자꾸 주목받는거 같아서 부담스럽습니다. -_- 말이 많아서.

sweetrain 2007-10-0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가 있으니
문제제기야 당연히 할 수 있는 거지만,
그 문제제기의 방식이 꼭 그런 것이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씀하신 대로...나는 이런 점에서 이런 글이
싫다고 말하는것까지야 허용될수도 있지만.(물론 작성자 입장에선
이것도 불쾌하겠지만 말이죠;;;)
거기서 더 나가서, 작성자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내세워서
나는 이런 점에서 이 글이 싫으니
앞으로 이런 글 쓰지 마시오라고
작성자한테 강요해버리면 그건 폭력이죠.

이잘코군 2007-10-05 22:54   좋아요 0 | URL
글쎄, 사발면님께서 그 정도까지 나갔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읽어봐야 할 듯 하고, 아래 댓글들은 그런 류의 것들이 있었죠.

sweetrain 2007-10-05 23:09   좋아요 0 | URL
저도 댓글들에서 느낀 점을 말한 거에요.
댓글과 본문에서 저도 거론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류의 댓글에 신경쓰면서 상처받지는 않지만요.

바람돌이 2007-10-0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대충 감을 잡았어요. 뭐 앞에 다시 돌아가서까지 보고싶지는 않고 근데 이런 논쟁이 제기된 것 자체가 앞으로 체셔고양이님이게는 자기검열의 기제로 작용하겠다 싶군요. 아무래도 자신의 서재가 이런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건 부담스러울수밖에 없으니까요. 전 알라딘의 서재공간은 기본적으로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개인공간의 글들을 자신의 기준에 의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건 맘에 안듭니다. 맘에 안들면 자신은 거기 안가면 되는공간 아닌가요? 여기 말예요.

이잘코군 2007-10-05 23:0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일단 문제제기가 됐고, 여러 의견이 오갔다는 점만으로도,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검열은 불가피하겠다 싶습니다. 저 또한 자꾸 주목받게 되는거 같아서 부담스러운데요. -_- 매번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니.

부리 2007-10-0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거짓말쟁이! 짧은 생각이라고 해놓고선 이렇게 길게 쓰시다니... 댓글까지 읽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함! 천안서 수업준비중인데 말이죠. 아무튼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정리를 해주시는 아프님이 믿음직하고 늠름해 보입니다. ^^

이잘코군 2007-10-06 08:37   좋아요 0 | URL
엉덩이 흔드는 부리님이잖아욧! 요새 짱구친구 마태님은 잘 지낸답니까. 밤늦게까지 수업준비하시는군요. 바쁘신가봐요.

Jeanne 2007-10-0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른바 '타고난 논객' ㅋ 천성은 바뀌기 힘들다. ㅋㅋㅋ

이잘코군 2007-10-06 08:37   좋아요 0 | URL
-_- 그런건 아니고. 그냥 난 어떤 '마음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2007-10-06 0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10-06 08:41   좋아요 0 | URL
네. 속닥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갑니다. :) 그제 웬디양님이 쓰신 글에서 인용되었지만, 전 그 문구를 참 좋아합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말 할 권리를 위해서는 함께 싸우겠다" 이게 우리말로 옮기면서 표현이 다양해지는거 같은데, 저는 어느 책에서 이렇게 보고 이렇게 계속 머리 속에 담겨있어요. 볼테르의 말이죠. 취향이 아니고, 해당 페이퍼가 싫더라도, 글을 쓸 자유에 대해서는 함께 해줘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글을 보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후에 논할 일이고요. 다행히 따우님께서 고맙게도 팁을 알려주셔서 - 저는 서재 생활 좀 했어도 그러거 별로 생각지 않고 있었는데 - 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글 쓰는 사람도, 글 보는 사람도. 긴 댓글 감사합니다.
 


 블로그는 공적공간일까, 사적공간일까? 지난번에도 한번 전자인간님 서재에서였나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던걸로 기억하는데, 둘 다 맞다. 각각의 개인들은 사적공간으로 애초 블로그를 시작했을 것이니 사적공간이요, 하지만 감추어져있지 않고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공적공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사적공간으로 활용을 할 것이요, 어떤 이는 공적공간으로 볼 수도 있는데, 결국 논란의 시작은 거기에서 비롯되는게 아닐까 싶다. 또 그것이 '블로그'이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고. 개인이 따로 만들어 독립된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공개되어있더라도, 사적영역의 비중이 훨씬 클 것이요, 그렇지 않고 어느 특정 사이트 안에서 계정을 받아 사용한다면 공적영역의 비중이 그보다는 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자가 사적영역으로서의 성격보다 공적영역으로서의 성격이 더 크다는 말은 아니다.

  나 같은 컴맹들은 개인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활용하기란 어렵고, 대개는 홈페이지를 꾸리고 싶은데 못꾸리는 사람들이 블로그에 정착하지 않나 하는 생각. 많은 이들이 뭔가 끄적이고 싶은 공간이 필요한데, 홈페이지를 꾸릴 실력(?)은 못되고, 그러니 활용하기 편한 블로그로 기어들어오는게 아닐까. 그래서 블로그 내에서 어떤 책을 읽고, 혹은 영화를 보고, 자신이 느낀 바를 조용히 서술해나가기도 해보고, 때로는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이번에 책을 몇 권 질렀어요, 이런 책을 읽고 있어요,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요, 보세요 이쁘죠, 나는 이런 상상을 가끔 하곤 해요, 등등의 신변잡기적 글쓰기를 하는거라 생각한다. 개중에는 값비싼 카메라와 고가의 와인을 찍어 올리는게 못마땅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가 감당하기 힘든 야한 페이퍼에 후끈후끈 거릴 수도 있겠다. '쓰는 개인'은 아무렇지 않아도 '보는 개인'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못마땅할수도. 

  이건 나의 생활이니 허용가능하고, 이건 나의 상상이니 허용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나의 생각과 상상은 생활의 일부이므로. 다만 드러나지 않는 무형의 산물일뿐. 생활이냐 상상이냐를 따지는건 별의미가 없어보인다. 값비싼 물건을 사서 찍어 올리는건 일반적인 평균에서 볼 때 벗어나 있는 것이고, 야한 생각을 페이퍼로 작성하는 것 또한 평균에서 볼 때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굳이 평균점을 찾아야할 필요도 없다. 어떤 이들은 비싼 물건이 찍힌 사진을 보고서, 이쁘다, 아름답다를 연발하고, 어떤 이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야한 이야기에 멋지다, 솔직하다, 를 연발할 수도 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사치스럽다거나 돈많다고 자랑한다, 고 볼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너무 노골적이다, 낯뜨겁다, 라고 볼 수도 있다. 느끼고 생각하는 바야 작성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보는 이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불만의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논란의 대상이 된 페이퍼나 서재주인장뿐 아니라 블로그질을 하는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적용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말아라, 할거다, 공방을 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구나 라고 염두에 둔다면 서로를 배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전에 따우님과 KJ님께서 주고 받은 글처럼. 결국은 공자님 말씀처럼 되어버린건가. -_-v


  
p.s. 1. 논란의 페이퍼를 보니, 로그인을 안하고 쓰니 사람들이 눈치 안보고(?) 자유롭고 솔직하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 같기도 한데, 익명성으로 인해 다소 막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로그인하고 쓰는게 낫다고 생각.

p.s. 2. 어떤 논란에 대해 말 할 권리도, 말 하지 않을 권리도 누구에게나 있다. 자주 오가는 사람들은 그걸 볼 수 있을테고, 뜸한 사람들은 못 보고 넘어갈테고. 예전에 초창기에는 적응이 잘 안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 무슨 일이 있구나, 정도만으로 감지 했는데, 오래(?) 정착해 지내다보니 논란이 일면 상황파악이 된다. 아니 그보다 '관심'의 문제인건가.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누구에게나 말 할 권리도, 말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말 하지 않는다 해서 생각이 없다고 봐선 곤란하다. 인터넷 상의 이런 문제들의 결말이 언제나 뻔하지, 라고 생각해서 애써 무심하신 분들도 계시고, 적당히 할 말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p.s. 3. '2'와 관련해서. 그치만 평소에 이런저런 주제에 대해 말씀 많이 하시던 분들이 너무 조용한 것도 이건 아닌데 싶기도 하다. 사회적, 정치적인 큰 주제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애써 무심한 것도 문제가 아닐까. 인터넷상에서의 논란이 언제나 그렇지, 라는 핑계로, 혹은 지저분한 물에 발담그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자기견해를 애써 감추기보다 차라리 대놓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하는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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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4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4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alei 2007-10-04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이 오랫만에 뻬빠 쓰셨넌데 왜 댓글 안달아요?

이잘코군 2007-10-04 21:52   좋아요 0 | URL
엇, 라일라님 뻬빠 아직 못봤어요. 스님은 라일라님 너무 좋아하셔. 질투나. :p

Mephistopheles 2007-10-04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손잡고 긍정적인 양비론자의 길을 걸어갑시다 아프님..ㅋㅋㅋ (농담입니다.^^)

이잘코군 2007-10-04 21:53   좋아요 0 | URL
음 그렇게 된건가요? -_-a 갸웃. 그냥 간단하게 '브리핑 오늘'에 섞어서 한 문단 넣으려고 했는데, 이거 뭐 쓰다보니 길어져서 따로 뺐어요.

antitheme 2007-10-05 00:59   좋아요 0 | URL
양비보다는 양시론이 좋지않을까요?

이잘코군 2007-10-05 01:03   좋아요 0 | URL
양비도 양시도 염두에 두고 쓴건 아닌데... 음. 결론이 그리 되었습니다. 원론적으로는 저는 양비나 양시는 잘 취하지 않는답니다. 주제에 따라 다르겠지만.

2007-10-04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10-04 21:54   좋아요 0 | URL
<28주후>는 봤는데 <28일후>는 못봤어요. 비슷한건가요. -_-a 좀비영화류던데. <28주후>는 제법 재밌었어요. 다른 좀비류에 비해 스케일도 컸고. 파란 하늘 상공에서 바라보는 폐허가 된 도시의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07-10-04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10-04 23:05   좋아요 0 | URL
오홋, 그렇게 되는거군요. ^^ 참고 하겠습니다.

Heⓔ 2007-10-04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하지 마라, 이거 해라, 라고 말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만..
중요한 건 그 대상을 본인에게 적용시켜도 똑같아지는 논리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봅니다.
현재 논란이라고 할 만한 글에 달린 것들을 보면..그렇더라구요...

암튼.. 블로그는 공적이냐 사적이냐....흠..

블로그 주인이 공적인공간으로 활용한다면 공적으로 보면 되고
사적인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사적으로 보면 된다고 봅니다..
흠..자기 마음대로 공적이냐 사적이냐 나눌 수 있으니..
따지고보면 사적인 곳에 가깝겠군요 ^^;
제경우 언제나닷컴은 공적인 곳에 가깝고 서재는 사적인 곳에 가깝군요 -_-aa

이잘코군 2007-10-04 22:04   좋아요 0 | URL
음, 블로그나 홈피에 대해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겠지만, 다음, 네이버, 티스토리, 이글루스, 알라딘, 예스 등의 사이트 안에 들어와있다는 점에서 공적으로 볼 수도 있단 생각입니다. 또 각 사이트마다의 구조에 따라서 조금씩 성격이 다르겠지만요. 네이버 블로그 같은 경우는 거의 사적공간이나 마찬가지인거 같더라고요. 좀 꾸려본 결과 혼자 노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크크. 글쎄 알라딘도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히님도 두 개 운영 중이시죠. :) 전에 한번 가봤습니다만.

Heⓔ 2007-10-04 22:22   좋아요 0 | URL
사적이냐 공적이냐는..그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일 것 같아요..
서비스업체의 관여나 동서비스이용자의 유대감으로 나눈다면..
알라딘서재는 관리자들이 얼마든지 페이퍼를 거를 수 있고..
알라딘마을[현재는 최근서재글]을 통해 연결될 수 있으니 공적인 곳에 가깝고..
글을 쓰는 사람의 메세지에 따라 나눈다면..
사적인 이야기를 쓰는 페이퍼들이 많으니..
사적인 곳에 가깝고..
전 메세지(?)에 따라 블로그를 공적인 곳으로, 서재를 사적인 곳으로 규정(?)했습니다만...
서비스 업체의 관여도에 따라 나눈다면 반대가 되겠구요 ㅎㅎ;


암튼..아프님 말씀처럼..알라딘도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자기 생각이랑 다르다고 날을 세우는 건 알라딘에선 안 보일 줄 알았는데..
흠..역시 사람이 여럿 모이면 다 똑같나봐요 @_@;;
 


  처음 세글자 이름 대신 필명이란걸 사용해본 때가 아마도 98년 무렵이었던거 같다. 인터넷 이란게 생기기 전인 98년에 컴퓨터를 샀더니 유니텔이란걸 한달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줬고, 단순한 이 장삿속에 순진하게 넘어가 유니텔을 한달 써본다고 들어갔다가 내내 사용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달이면 충분히 그 공간에 적응이 되고, 지금같이 블로그를 꾸릴 수는 없었지만, 클럽에 가입해서 나름대로 게시물을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니, 다른 곳을 알았다해도 - 당시엔 너무 어설프게 알았다 -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나는 필명을 여러 차례 바꾸었다. 유니텔에서 처음에 내가 어떤 필명을 사용했는지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나의 기억력이란 이런 식이라니깐. 다행히 전에 이런 주제로 써놓은 글이 있어 살펴봤더니, '머루' '크롬'이라는 필명으로 시작해서, '폐문'으로 한동안 고정해서 사용했다고 되어있다. 가상공간에서의 필명을 만드는 일은 곤혹스럽다. 나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는 생각은 동시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적절한 대답이 나오지 않고 역시 나오지 않는 대답만큼이나 필명을 짓는 일도 어렵다. '크롬'은 우리 마왕님(신해철)이 당시 낸 음반에서의 필명이 '크롬'이었기 때문에 사용했고, '머루'는 그야말로 유치찬란하게도 필통에 써있는 '머루와 다래'에서 따왔었다. 

  이후 고민 끝에 '폐문'이라는 필명을 얻었는데, 마침 힘든 고등학교 생활에서의 방황이 대학에서까지 이어지던 그때의 내 심정과 마음이 닫혀있다는 문과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사용했음에도 '폐문'이란 필명을 포기한 것은, 필명이 나를 더욱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더 어둠의 자식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거기서 '이데아' 란 필명으로 넘어갔는데, 이는 경제학에서 철학으로 전과하면서 철학에 대한 내 애정의 정도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 또 당시에 접했던 플라톤 철학에 매력을 느끼면서 그리된 것이다. 

  그 이후에도 몇 가지 더 있었는데, 건너뛰어 대략 최근 2-3년 정도를 살펴보면, '아프락사스'와 '(트로피컬)빠숑'으로 몇 곳에 정착했다. 알라딘 외의 공간은 모두 '빠숑'으로 알려져있다. 두 가지 필명을 사용했던건, 알라딘 공간은 지인들이 드나들지 않길 원했고 일종의 나만의 비밀공간이고 싶었던건데 이미 몇몇 사람들이 알아버려 지금은 '절반의 비밀공간'이 되어버렸다. 이 곳에서는 나의 실제 세계에서의 사소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공간은 - 네이버, 그래24 (네이버는 쓰다보니 창고가 되어버렸고, 그래24는 활동중단 중이다) - 지인들에게 마음껏 공개해도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곳에 올리는 글과 이곳에 올리는 글을 구별했고, 그곳에 올려도 될 글만을 선별해 올렸던 것이다. 실제세계의 '나'라는 개인에 대해서는 '아프락사스'로 보는게 더 정확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프락사스=빠숑' 임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대외적인 필명은 '빠숑'이다.

 동시에 혹시나 만일 다른 공간으로 내가 숨어버린다면 다른 필명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필명을 바꾼다는건, 스스로 본래 사용하던 필명에 덧씌워진 이미지에서 탈피해 내 껍질을 한 꺼풀 더 벗겨내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가상공간에서의 필명의 변화는 실제세계에서의 나의 변화로 연결된다. 아니 실제세계에서 내가 변화하길 원하기 때문에 실제세계가 반영되는 가상공간에서 필명을 바꾸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내 껍질을 하나씩 벗기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사소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프락사스와 빠숑에 만족하고 있고, 이름을 버리기보다는 좀 더 나아진 '아프락사스'와 '빠숑'이 되도록 노력하련다.

 * 닉네임 = 필명 같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저로선 둘의 차이를 모르겠어서. 사전에 의하면 '필명'은  "글을 써서 발표할 때에 사용하는, 본명이 아닌 이름"으로 되어있고, '닉네임'은 " ‘별명’, ‘애칭’으로 순화" 이라고 풀이되어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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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9-2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명..이라니깐, 엄청 거창한데요? ^^; 나는 닉네임인데, 아프님은 필명인거?

나의 유니텔시절, 첫 닉은 코울필드였어요. 그 다음은 smila

이잘코군 2007-09-23 00:03   좋아요 0 | URL
엇, 닉네임과 필명의 별다른 차이가 있나요? -_- 저는 둘을 같은걸로 간주하는데. 하이드님도 유니텔 했군요. 그땐 블로그가 없어도 첨이라 그랬는지 푹 빠져 살았었어요. 클럽 몇개 가입해서 막 프로젝트 밴드도 하고, 같은 띠, 같은 학번끼리 모여서 놀기도 하고. 대규모 번개를 몇번 갔는데 한번에 50명씩 와요. -_- 어휴.

tonight 2007-09-2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98년도에 삼성컴터 사면서 유니텔 했었어요!! -_-ㅋㅋ
저의 닉네임은 처음부터 그걸 썼었는지 아닌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제일 오래썼던건 꼬마였을거에요.
키 작은 꼬마 앨리스~ 오오~ 내 얘기를 들어보세요오우~ -_-

이잘코군 2007-09-23 00:28   좋아요 0 | URL
유니텔 '족'들 모이는건가요? 하하. 유니텔에 주로 있고, 공동아이디로 나우누리도 잠깐 했었어요. 나우누리가 더 활성화 되어있었고, 당시에 프로젝트 밴드의 멤버 대부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빌려서 들어가곤 했죠. 앨리스님 노래하고 싶으신가보다. 크크.

tonight 2007-09-23 02:29   좋아요 0 | URL
에헤.. 이 노래 일하면서 계속 들어서 그렇습니다. ㅠㅠ
박명수 노래랑 계속 입에서 맴돌아요... -_-;;

이잘코군 2007-09-23 09:58   좋아요 0 | URL
토욜까지 일하시고 수고 하셨어요. 오늘부터 푹 쉬세요. :)

Jade 2007-09-2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8년이면..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땐데..ㅋㅋ

이잘코군 2007-09-23 11:07   좋아요 0 | URL
헙. -_-a

토트 2007-09-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도 유니텔 했었어요.ㅋ
아프락사스님, 추석 잘 보내세요.^^

이잘코군 2007-09-23 23:33   좋아요 0 | URL
크크. 토트님도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송편도 많이 드시고. 깨든걸로. :)

비로그인 2007-09-2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천리안 ^^ 그때는 <수..> 란 닉이었던 듯.

물 흐르는 대로 살고 싶다는 :)

이잘코군 2007-09-23 23:52   좋아요 0 | URL
천리안은 한번도 안들어가봤는데... 천리안이 당시엔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고 오래된 곳이었지. 나중에 유니텔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나우누리는 후발주자로서 꽤나 급속도로 사람들을 끌어모았었고.
 
왜 똘레랑스인가
필리프 사시에 지음, 홍세화 옮김 / 상형문자 / 2000년 12월
품절


<옮긴이 서문>

"견해의 대립을 통해 이성을 눈뜨게 하지 않으면, 인간을 오류와 무지로 몰아가는 자연적 성향이 지체없이 진리를 이기게 된다." (바나주 드 보발) -13쪽

<대담>

사시에 - 똘레랑스한다는 것, 그것은 견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워진 부담을 견디는 것처럼 말입니다. 추상적 의미로서 똘레랑스 한다는 것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을 용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을 바꿀 수도 있지만 그대로 용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똘레랑스는 의도적인 자세입니다. 또한 용인이되 의도적인 용인이라는 점에서, 무관심이나 포기와 다른 것입니다. 앵똘레랑스로 말하자면, 그것은 "네 생각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따라서 네 생각을 파괴하고 네가 쓴 책을 불태우고, 나아가 너를 없애겠다."는 것이지요.-16-17쪽

사시에 - 대화를 위해서는 상대방이 용인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먼저 용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환대'의 사상이 있습니다. 화합되지 않는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최소한의 '접촉'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들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인공적이지만, 똘레랑스란 그런 것 입니다. 그것은 항상 적대하던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모험입니다. 물음은, 그만큼 위험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있습니다. 가령 중동의 예를 봅시다. 중동 평화를 위한 첫번째 조건은 접촉입니다. 벽이 가로막혀 있다면 서로 보지 못합니다. 보지 못하면 항상 가장 나쁜 쪽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서로 볼 때에는 사람들이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똘레랑스의 시작은 서로 같은 걱정을 하고 있음을 의식하면서부터입니다.-20-21쪽

<한국어판 서문>

"그러나 만일 존재의 저 깊은 곳에서 인간이 자유롭다면, 다시말해, 자발성과 무상성의 능력을 갖추었다면, 그 부분이 말하도록 놔두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 자체이며 새롭고 뜻밖인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위하여 이 똘레랑스는 유일하며, 유달리 엄격하면서 복합적인 하나의 한계를 규정한다. 곧 나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된 똘레랑스는 나의 자유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남의 자유도 인정할 때에만 실천될 수 있다. 그리하여, 똘레랑스는 무관심이나 단념과 정반대가 된다. 똘레랑스는 하나의 윤리이며, 각 개인이 보다 우월한 원칙을 위하여 자신의 이해관계에 반하여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덕목이다. 똘레랑스는 투쟁에서의 무기이며, 성숙된 덕목이다." (필리프 사시에)-25쪽

<여기서부터 본문>

'견디다, 참다'를 뜻하는 라틴어 tolerare 에서 온 똘레랑스라는 말은 16세기 초에 처음 등장했다. 그 뒤 5세기 동안 이말의 정의는 끊임없이 확대되었다. 처음에 똘레랑스는 종교에 대한 군주의 구체적인 태도를 가리켰다. 오늘날처럼 남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정신자세를 가리킨 것이 아니었다. 종교개혁 시기, 기독교적 진리의 단일성이 산산조각나고 국가 권력이 확립될 무렵, 신앙의 다양성에 직면한 국가 권력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가 문제로 제기 되었다. 군주는 그의 신민들에게 진리에 동참하도록 강제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놔둘 것인가, 라는 물음에 직면했던 것이다. 당시의 똘레랑스는 공적이 소관 사항으로서, 종교의 진리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탄압하지 않는 정치와 그런 정치를 실행하는 군주의 개인적 태도를 가리켰다. ... 중략 ... 그리하여 18세기 말에 이르면 똘레랑스는 국가의 처신을 계속 지칭함과 동시에 오늘의 "인간 관계의 바람직한 방식"으로서의 개인적 태도로도 지칭하게 되었다.-29-30쪽

행위를 삼가는 것으로서의 똘레랑스는 결국 행위로서의 똘레랑스 이전의 단계, 즉 정신의 행사로서 생각하기를 삼가는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30쪽

볼테르는 앵똘레랑스를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자를 선험적으로 유죄라고 평가하도록 유도하는 정신적 자세로 보았다. 앵똘레랑스를 폭력적 행동 이전에 가장 분명하게 내면화된 것으로 본 사람은 틀림없이 루소였다. "나는 자기가 믿는 모든 것을 믿지 않으면 선의의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또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자들 모두에게 냉혹하게 저주를 내리는 모든 사람을 앵똘레랑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31쪽

에라스무스는 언제나 승리하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열정을 야심에 결부시키면서, 진리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말고 자기애를 버리라고 호소했다. 대체로 인간은 잘못된 견해와 싸우기보다는 자기와 반대되는 견해와 싸운다. 카스텔리옹은 "흔히 우리들과 의견이 같지 않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단으로 간주한다"고 기록했다.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사면을 허용한 앙부아즈 칙령(1563)을 지지했던 어느 팸플릿은 훨씬 더 직설적으로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갖는 사람들한테서만 죄와 악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파성"을 지적하였다. 몽테뉴는 진리를 지킨다고 열의를 보이는 사람들의 "열렬한 자기애"와 "오만"을 비난했다. 그는 앵똘레랑이란 "자기의 견해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그 견해를 위해서는 공공의 평화를 무너뜨리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수많은 악을 가져오고 관습의 무시무시한 타락을 가져오는 것도 [...] 심지어는 국가의 교체까지도 주저하지 않게"된 사람이라고 말했다.-45-46쪽

로크에게 그 이유는 분명한 것이었다. 즉,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자부심과 자만심에서 온다는 것이다. 루소는 다음과 같이 써서 로크의 뒤를 따랐다. "인간을 구원하려는 열정이 절대로 박해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박해의 원인은 바로 자존심과 오만이다." -46-47쪽

루소는 인간에게, 특히 일반 평민에게, 너그러운 자세를 취할 것을 호소했다. 왜냐하면, 평민은 스스로 '숭고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으면 그 진리는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루소에 따르면, 하느님의 존재는 조금이라도 숙고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명백하게 보이는 사실이기 때문에, "무신론의 철학자는 악의적이거나 맹목적 자만심을 가진 논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추방해야 마땅하다. 명백한 것 앞에서 잘못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70쪽

인간이 믿는 진리의 대부분은 가능성에 불과하므로 각자의 무지에 대하여 서로 이해해야 한다고 로크는 결론 내렸다. <백과사전>의 <똘레랑스> 항목에서도 이렇게 추론하였다. 즉, "대립관계가 없는 분명한 진리란 결코 없으며, 인간의 이성은 정밀하고 확정된 척도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의 이성을 잣대로 제시할 수 있는 권리가 없고 또 누군가를 자신의 소신에 따르도록 주장할 권리도 없다." -71쪽

로크는 사법관의 종교 문제 개입권을 부정했다. 종교 문제가 세속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사법관도 "[최상의 선]에 도달하기 위해 이용해야 할 길에 관해 확실하고도 완벽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에 관해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리'란 없다. 루소는 이점을 반복해서 말했다. 종교적인 앵똘레랑스는 종교에 관한 진리가 너무나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73쪽

크렐이나 스피노자는 앵똘레랑스가 견해의 다양성이라는 자연적 질서에 반대된다고 판단하였다. "인간은 전혀 동일한 정신유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견해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79쪽

스피노자는 사상을 탄압하는 법이 평화 대신에 소요를 일으키는 것은 그 법이 '사물의 질서'(당연지사)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인간은 그 자신에 집착하듯이 자신의 견해에 집착한다는 것과 사상이란 본래 다양한 것임에 따라, 그 사상을 좌지우지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폭력과 무질서만 가져올 뿐이다.-81-82쪽

똘레랑스는 세계 질서가 더 이상 이중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순간부터 그 타당성을 잃는다. 하늘늘 믿지 않는 자는 지금 이 땅에서 모든 것을 기대하고 모든 것을 요구해서는 안되는가? 사고가 물질의 단순한 발현으로 이해되거나, 혹은 가장 내밀한 사유가 단지 외부적 영향의 결과에 불과할 때에, 두 세계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하는 똘레랑스는 부질없는 것이 된다.

따라서 똘레랑스의 옹호자들은 똘레랑스가 상호간의 무관심 - 이미 부질없는 근거가 된 - 이 아니라, 최상의 목적 - 이 목적이 천상적이든 세속적이든 - 을 달성케 하는 도구임을 입증하도록 권고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제 똘레랑스는 '사물의 질서'(당연지사)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지 않고 유용성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101쪽

똘레랑스의 지지자들은 "가장 정당한 전쟁보다는 가장 부당한 평화를" 선택해야 하며 무질서는 잘못의 지속보다 더 큰 죄악이라고 반박하였다. -116쪽

스피노자와 바일은 똘레랑스가 보다 깊이 있게 각자의 사고와 행동을 이성에 따르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두려움과 모든 증오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폭력, "분노, 계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내면의 질서를 마음 속에 세울 수 있다. 견해의 자유는 아무 것이나 할 수 있는 면허장이 아니다. (교황의 회칙 <미라리 보스>가 주장하게 되듯이) 견해의 자유는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사회 질서를 이성에 맡김으로써 그 질서를 강화시키자는 것이다.-137쪽

루소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19세기 표현의 자유 옹호자들은 16세기 기독교도의 통일 지지자들과 적어도 하나의 확신을 공유하였다. 즉, 인간은 똑같이 생각할 때만 진정으로 단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된 사회 질서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진리에 재집결시키는 데에 있다. 비종교적 이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을 집결시키는 진리에 도달케 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똘레랑스는 비종교적 이상에 속하는 하나의 기본 요소가 된다. "만일 진리가 보편적이고 우리 모두가 동일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여러 사상 사이의 자유로운 상호침투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과 마음을 통하여 조금씩 서로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 확신은 적절하면서 친밀한 방식으로 밝혀진 진리에 우리의 사고를 일치시키며, 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마음 속 깊이, 그리고 활기찬 방식으로 단결시킨다." -138-139쪽

"개인들이 그들의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지 우리가 모르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에게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게 아주 중요하다. [...] 자유를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이 자유를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함으로써만 자유를 활용할 미지의 사람에게도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이에크, <자유의 구성>) -142쪽

그레구아르와 루소에게 있어서 차이란 차이 그대로 인정하자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 진리가 승리함에 따라 차이를 없애자는 것인데, 이것은 '사회적으로 유익'하려면 더욱 절대적이다. 오늘날도 계속 상대론의 영향을 받은 외형상의 똘레랑스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목소리들은 언론의 자유가 절대로 필요한 까닭은 모든 주장들이 가치가 있다거나 모든 것이 불확정적이라거나 또는 진리가 무수히 많기 때문이 아니라 찾아내야 할 하나의 진리가 존재하기 때문임을 상기시킨다. 마르쿠제에게 "똘레랑스는 목표의 진리이다." 배링턴 무어는 "과학적이기를 바라는 모든 참된 똘레랑스 개념은 하나의 이념의 진실성을 시험하는 데 사용되는 수단들의 개선과 발전을 추구한다." 라고 썼다. 그러므로, 똘레랑스는 진리로 이끄는 단계로써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즉, 진리는 똘레랑스의 "유일한 참조점이자 계류지점"이다. -148쪽

똘레랑이란 우선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삼가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정신에 대한 강제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149쪽

사상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지식은 서로 마찰하면서 서로 비교되고 보충된다. 이제 개인 혼자서 한 시대의 모든 학문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빛'의 교환 개념이 중요성을 갖게 되었고 지적인 전투라는 비유 옆에 자유 거래라는 비유가 아주 넓은 의미의 '교제'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들의 부싯돌은 마찰함으로써 빛이 난다" (볼테르)-167쪽

모를레에 따르면, 토론은 사물을 다른 견지에서 보게 하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견해를 수정, 보완시키는 사상을 탄생시킨다. "검토하고 토의하고 공격하고 방어하면서 우리는 사상과 견해의 충격에서 빛이 탄생하는 것을 본다" 그 점에서 잘못된 사상에게도 자유가 필요하다. 오류의 변태를 감내하고 그 변태를 단계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오류, 체계적인 오류를 거쳐야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모든 의견이 자유로운 순간부터, 즉 참된 의견이 잘못된 의견과 똑같은 자유를 누릴 때부터는, 유일하고 같은 목표인 진리와 행복에 대한 자연적 성향이 인간의 내심에서 "작용하도록 놔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성적이고 가장 총명한 의견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당한 대의를 옹호하려는 학식 있는 사람을 항상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168쪽

"인간 정신의 불완전한 상태 안에서 진리의 이해관계는 다양한 의견을 요구한다." (존 스튜어트 밀)-170쪽

"인간의 권리, 따라서 똘레랑스는 모든 인간 안에 있으며 인간이 되게 하는 자유 속에 뿌리박고 있다. 이 자유는 우리가 어원학적 의미로서는 그 놀라운 성격을 말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모든 사물은 물리적 법칙이 강요하기 때문이거나, [...] 또한 살아 있는 세계에서 우리가 '자연'이라 부르는 것에서 다양한 종들 간에 힘의 분쟁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 가장 강한 자가 가장 약한 자를 잡아먹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 세계는 예외적인 세계이다. 왜냐하면 이 세계만이 물리적 인과관계 법칙이나 원칙상으로 가장 강한 자의 지배를 통해 [...] 지배당하지 않고 각자 인간은 그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잔느 에르쉬)-178쪽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그 첫번째 권리가 자유인 인간의 영원불멸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으므로, 강제는 오직 자유의 행사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때 그것을 피할 목적으로써만 행사될 수 있다." (로크,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 -180쪽

"인간에게 강제로 믿게 하지는 못할 것인 바,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대로 믿거나 이해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봉신부)-186쪽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복종 가능성으로 규정된다. 존 롤즈가 오늘날 내세우는 것도 이 내면의 강제에 보내야 될 존중이다. 그는 어떠한 유용성의 원칙도 도덕적 의무감을 "절대적으로 구속하는" 성질과 경쟁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똘레랑이 되어야 하는 까닭은, 자기 자신과 마주한 의무 -도덕 - 가 각자 그것에 공존히 복종하도록 놔두어야 할 만큼 충분히 진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똘레랑스는 인간을 그 자신의 내면의 확신에 복종하게 놔두는 것이다. -196쪽

인간은 외부의 모든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 그에게는 오직 내면의 법(양심)으로부터 받을 명령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유일한 법이기 때문이다."(피히테)-196쪽

스스로 결정하기 위하여 인간은 천성적으로 이성의 모든 수단을 행사하기 때문에 똘레랑이 되어야 한다. 칸트는 그 점에서 사고의 스승이다. 즉, 자유는 이성의 행사이며, 이성은 도덕법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 개인의 견해나 행위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그를 그 자신에게 맡겨지게 놔두는 것은, 그의 자유가 모든 인간에게 공통인 이성의 행사와 합류하는 데 따른다. 모든 인간은 이성적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선을 향해 나아간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197쪽

칸트는, 자유란 "이성이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법 이외에는 그 어떤 법에도 복종하지 않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자유롭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자는 모든 이성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그는 자유의 반대인 "동물적 충동"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감각과 열정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기 때문이다.-198쪽

츠베탄토도로프로 말하면, 그는 정당한 제약에 관한 아주 오래 된 기준들과 거의 동일한 기준을 재발견하였다. "무제한인 똘레랑스의 권리는 약자들을 해치고 강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강간범들에 대한 똘레랑스는 여성들에게는 앵똘레랑스를 의미한다. 만일 호랑이가 다른 동물과 한울 안에 있는 것을 똘레랑스한다면, 그것은 후자를 전자를 위해 희생시킬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체력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약자는 무제한적인 똘레랑스의 희생자이다. 약자를 공격하는 자들에 대한 앵똘레랑스는 약자들의 권리이지 강자들의 권리가 아니다." 자유의 원칙이 고발당할 만큼 극단적 한계에 이르러서, 우리는 자유 자체의 이름으로 절대적 똘레랑스의 원칙에 조종을 울려야만 한다. 마르쿠제, 폴랭, 료타르나 토도로프는 각자 그들 방식대로 라코르데르의 불굴의 문구인,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탄압하는 것은 자유이고 자유롭게 하는 것은 법이다."를 다시금 진술하였다.-236쪽

헬베티우스는 앵똘레랑스를 폭행이나 남의 자유에 대한 구체적 침해라는 강력한 의미로 보았다.

오늘날의 앵똘레랑스는 순전히 정신 자세를 말하는 것이어서, 앵똘레랑스에 대한 우리의 앵똘레랑스는 다른 모습을 제공한다. 요컨대 불균등하게 안심시키는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의 앵똘레랑스는 지적인 '항의'에 지나지 않고 틀림없이 매체의 힘을 빌리기 때문에 스스로를 진리 자체로서, 약하기만 하기 때문에 오히려 강하다고 믿을 수 있다. 또 다른 면에서, 그것은 의도와 단념을 탐색하기 위해 정당화되고 있다. 즉, "무관심에 대해서는 앵똘레랑이 되어야 한다. 앵똘레랑스에 앵똘레랑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앵똘레랑스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 앵똘레랑이 되어야 한다." 느긋하게 앉아있는 인간은 싸우는 똘레랑스의 견해 덕분에 '덕목으로서의 앵똘레랑스'가 그것의 참된 이름의 몫을 하기 위하여 애쓰는 것을 발견하는게 분명한가?

아무튼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성을 이루는 것은 다름아닌 "똘레랑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정신이다.-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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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7-09-2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가 많은 걸 보니 무척 괜찮은 책인가 보네요 ^^

이잘코군 2007-09-22 20:04   좋아요 0 | URL
음, 생각만큼은 아녀요. 좀 어수선하달까요. 잘 안들어와요. 어수선한건 대충 술술 넘기고 읽어볼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