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milla Elliott, Rethinking the NOVEL/FILM DEBAT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pp 31~56

2. Prose Pictures (산문 그림)
오늘날까지 산문과 삽화에 대해 범주적 구분은 이어져오지만, 이 장은 이러한 논의(담론)가 무시하고 있는, 산문을 그림으로 삽화를 논평으로 말하는 유비적인 interart 수사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2.1 Prose Painting/Illustration Commentary (산문 그림/삽화 논평)
19세기 영국문학에서 소설을 그림에 대해 유비하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이 시기 평론은 그림에 대한 개념으로 산문에 대해 논했다. 소설을 캔버스로, 산문 스타일을 그림 기법으로, 작가를 화가로. 작가들의 실재적이고 시각적이고 경험적인 재현의 방식에 대한 열망이 이러한 유비에 기반이 된다고 비평가들은 생각했다. 이러한 interart 수사와 이론은 당대 지배적인 과학 이론들을 종종 따른다. 19세기 초 interart 유비는 당대 과학 이론인 유기적인 힘의 개념에서 비롯한 상상력의 공유라는 낭만적 이론에 기반한 것이다. 19세기 후반에는 다윈이즘에 영향을 받아서 예술이 같은 영역을 놓고 경쟁하는 긴밀히 연결된 종들이라고 인식되었다. 19세기 작가들과 비평가들은 산문과 그림을 유비로 부착시킴으로써, 소설에서 삽화를 제거하는 것을 정당화시켰다. 산문을 보다 높고 고급한 회화 예술과 연결시킴으로서, 비평가들은 더 낮은 형태의 예술인 삽화의 위로 산문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이러한 비평가들은 삽화를 “논평”으로 만드는 (counter)유비를 야기했다. 이러한 유비와 대항유비는 삽화가 그림적, 서술적 여분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출판에서 삽화를 제거하는데 일조했다.

   작가-삽화가 관계에 대한 19세기 두 극단의 예를 살펴보자. 하나는 1827년에 출판된 것으로(35p 그림 4) 작가와 삽화가는 책의 첫머리에 한 책상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면서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작가의 위상이 좀 더 높음을 책 표지에 작가의 이름이 더 크게 쓰여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반면에 1890년에 출판된 그림(36p 그림 5)에서 작가와 삽화가는 동등하게 서로의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으로(다윈이즘) 그려져있다. 이러한 작가-삽화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위해서 William Makepeace Thackeray의 “Vanity Fair”을 대상으로 연구하기로 한다. 이는 작가와 삽화가가 동일인이고, 상대적으로 일찍 출판되었으며, 대중성과, 1847년부터 1899년까지의 다양한 판본이 있으며, 수십년에 걸친 다기한 독자의 코멘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산문과 삽화에 대한 태도의 변화, 삽화의 패션, 이론, 기술의 변화를, 산문이 그대로인 것을 통해(산문은 그대로이고 삽화만 시간에 따라 변화했음) 더 명확히 살펴볼 수 있다. 덧붙여서, 이러한 연구를 통해 문자와 그림 기호 사이의 범주적 구분과 유비에 대해서 시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2.1.1 Penning the Pencil: Prose Criticism of Illustrations (‘그림’에 대해 쓰기: 삽화에 대한 산문 비평)
“Vanity Fair”에 대한 19세기 초 비평들을 보면, 소설과 그림에 대한 유비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Vanity Fair”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빅토리안 소설들 일반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유비는 소설 삽화를 논의하는 언어에 영향을 주고, 제한을 가한다. 즉 소설 서사를 논할 때는 미술(fine arts)의 개념을 쓰고, 소설의 삽화를 논의할 때는 기술적이고 일반적인 용어들을 사용한다. 삽화에 대한 평은 그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기술적인 재생산(얼마나 서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즉 삽화가 진정 ‘미술’임에도 불구하고 이는 평자의 눈에는 서사에 부수적인 것으로 억압된다. 반면에 서사는 그것이 ‘미술’이 아님에도, ‘미술’과의 긴밀한 유비 속에서 논해진다. 결국 이 책은 산문-미술 논쟁에 대해 비판적 접근을 하면서, 소설-영화 관계의 기원을 파고들면서, 그 관계를 논쟁사를 통해서 재정립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삽화에 대한 생각에는 당대 삽화가 그림(painting 채색)될만한 가치가 있는 구성이라고 당대인들이 생각한 데에서, 삽화와 그림 사이에는 위계적인 질서가 있다는 관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세기 중반의 “Vanity Fair”에 대한 평론은, 그의 삽화를 산문보다 더 높게 가치평가하거나, 대부분은 동등하게 협력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변화된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평론가들은 산문과 삽화의 대립을 부각시킨다. 산문과 삽화의 대립을 통해 산문을 높이고, 삽화를 낮춘다. 삽화가는 고용된 ‘기능공’이 되고 작가는 ‘사상의 기원’으로 자리매김된다. 이는 19세기 말에 산문과 삽화의 관계에서 산문의 위치를 보여준다. (*소설에서의 산문과 삽화의 관계는 결국 유비적으로 영화에서 화면과 서사의 관계로 대치되고, 결국에는 영화와 소설 사이에서 소설의 우위성으로 연결되는 것? 그러나 영화에서 화면과 서사는 분리되기 쉽지 않다. 화면의 구성이 바로 서사 아닌가? 미장센) 이러한 변화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1850년대 후반과 1860년대에 영국 삽화의 황금기가 되어 삽화의 성격이 변했다. 이러한 새로운 스타일이 평론적 뒷받침을 갖게 된 것은 시간이 쫌 더 지나서였기 때문에, 1860년대 초는 아직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대의 평론들은 “Vanity Fair”의 삽화들을 비난했다. 이에 따라 후대에 편집된 “Vanity Fair”은 황금기 스타일의 삽화나 19세기 말의 모방적이고, 실재적이고, 사진과 같은 스타일의 삽화들로 원본 삽화를 대체했다.

   반면에 “Vanity Fair”의 원본 삽화와 그 삽화가 따르는 Hogarthian 학파에 대한 옹호가 그들의 회화적 가치를 비난했던 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옹호는 산문-그림 유비에 대한 대항 유비를 지니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원본 삽화들은 그 그림적 속성이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학적 개념을 통해 살아나고, 이들을 ‘구절’로 만들게 된다. 물론 이러한 대항유비는 산문과 삽화를 동등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삽화에 해당되는 유일한 가치는 문학과 언어에 대한 유비를 통해서만이다. 그들의 미술적 가치는 무시된다. 20세기 평론가들도 이러한 생각을 따른다. 그들에게 원본 삽화는 텍스트의 ‘의미’에 핵심적인 것이다. 이는 그들의 의미론을 중요시 한 것이지, 그들의 미술적 효과를 중시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독해는 삽화를 유사-문자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산문을 미술에 유비하는 것과, 삽화를 문자적 서사에 유비하는 것이 협동하여 삽화적 패션과 기술을 바꾸었고, 어른을 위해 쓰인 소설에서 사실상 삽화를 추방시켰다. “Vanity Fair”를 살펴보면 어떠한 삽화는 산문과 모순되기도 한다. 이는 미술-문자 서사에 부조화를 가져온다. (삽화 7 - 산문에서는 조가 어떻게 죽는지 말하지 않고 베키가 논의 중에 집 밖에 있는데, 그림에서는 베키가 논의 중에 칼을 들고 커튼 뒤에 음흉하게 서 있다) 이러한 부조화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이 해석들은 모두 원본 삽화가 그의 산문을 단지 장식하고 보충하고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고 갈등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황금기 삽화는, 후대의 사진적인 실재 삽화와 마찬가지로 수사적 기능보다 미술적 기능에 집중한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이러한 삽화들을 서사적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따라서 20세기에 “소설”은 순수하게 산문으로 재정의된다. 마치 소설 안에는 삽화가 없었고, 삽화가 소설의 구성요소가 아니었다는 듯이. 따라서 어떠한 소설의 이론도 삽화에 신경쓰지 않는다. 아동 문학이나, 논픽션 책들, 백과사전, 포스터, 광고, 잡지 등등에는 모두 그림이 살아있는데 왜 소설에는 그렇지 않을까?

   interart 유비와 adaptation에 대해 반대한 평론들은, 문자와 시각적 예술을 갈라놓으려는 노력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었다. (* 소설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배격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다보면 <소설>이 보인다. 이는 산문과 삽화로 구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각각의 ‘구역’나눔의 과정에서 산문>삽화로 규정되었고, 이것이 나아가 <산문>이 순수이고 <삽화>가 비순수로 규정된다. 데리다 컴백.)

이러한 산문 유비에도 불구하고, 산문은 삽화와의 미술 싸움에서 지고 있다. 1890년대 인쇄 기술의 발전은 사실적인 삽화들로 가득 찬 인쇄된 책들로 넘쳐났다. 한 때 산문 ‘미술’에 비해 삽화가 ‘스케치’로 나타났다면, 이제 산문 ‘미술’은 삽화의 사진적 스타일에 비해서 ‘스케치’로 드러났다. 또한 많은 유명한 미술가들이 책 삽화에 뛰어들면서, 책 삽화를 고급 예술화하게 했고, 심지어 산문을 저급 예술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산문이 완전하고 독립적이게 재현한다는 주장에 대해, Blackburn은 삽화는 단어들이 표현하기 실패하는 지점에서 또는 단어들이 정확한 의미를 소통하기 실패하는 지점에서 비롯한다고 주장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문자에 대한 도움으로서 미술적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이론에서 삽화의 등장은, 산문의 재현적 힘과 자족성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 말에, 종종 산문은 삽화에게 밀린다. 특히 대중적인 선물 도서 등에서. 여기서는 제본과 삽화가 중요하다. 이러한 책들은 문자적 서사가 아니라 시각적인 가공품으로서 수집된다. 그림은 ‘illustrate'하지 않고 오히려 단어들을 가린다. 이러한 문맥에서 헨리 제임스 같은 저자-평론가가 소설은 오직 산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설=미술‘이라는 유비가 완전하다고 하였다. 이는 일방향적인 것으로서, 삽화가 산문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산문은 미술의 모든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제임스는 산문 미술 유비의 승리를 주장하며, 산문은 삽화가 전혀 없이도 충분히 ’미술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산문-미술 유비를 소설에서의 삽화의 제거를 위해 논의한 것은, 순수한 산문의 미학으로 나아가게 했다. 1930년이 되자 어른 소설에는 거의 삽화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소설 삽화가 줄어들면서, 산문-미술 유비도 줄어들게 되었다.


   우리는 20세기에 재출간되는 19세기 소설은 문자적 “illustration"이 시각적 삽화를 대신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898년 “Vanity Fair”의 자전적 판은 저자에 의한 삽화와 저자의 초상이 들어있다면, 1943년과 그 이후판은 주석과 서문 비평들이 들어있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5장에서 삽화와 평론이 문학에 영화 적용에 대한 연속성을 이론과 실재에서 더 탐구한다.) 삽화를 소설에서 내쫓은 수사가 소설과 영화의 관계를 논의할 때 다시 나타난다, 특히 문학적 영화 수용에 관한 담론에서.

2.2 Prose at the Pictures (그림에 대한 산문)
삽화에 대해 반대했던 헨리 제임스는 사진이 소설을 묘사하는 것은 허용한다. 그는 사진은 산문과 가능한 한 다른 미디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진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하면서 사진이 엄밀하게 소설이나 이야기와 경쟁하지 않아야한다고 말한다. 이미지는 항상 단지 시각적인 상징이나 반향이어야 하고, 텍스트에서 특정한 것을 표현하면 안 된다. 이렇게 삽화를 ‘시각적 상징’이라 이름붙이는 것은 그 미술적 성질을 그 상징적 기능에 부수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반향’이라는 것은 음성적인 산문의 사후에 파생되는 청각적 여파로 만드는 것이며, 텍스트 안에서 특정한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반향은 점차 사라진다. 이러한 삽화보다 사진에 대한 선호는 제임슨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였다. 사진은 자연과 이의 재현에 한 발 더 다가간 것이었다. 사진에 비하면 모방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도 스케치로 나타날 뿐이었다. 그러나 제임슨이 사진이 산문 소설이 시각 예술보다 미술적 우월성을 유지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단시안적이었다. 산문이 책 삽화와의 대결에서 이겼을지 몰라도, 사진과 긴밀한 관계에 있고 후예인 영화는 산문의 미술적 주장에 대해 심지어 더 만만찮은 라이벌이 될 것이었다. 움직이는 사진과 편집의 통사론은 영화에게 산문과 라이벌인 서사적 능력을 더해주었다. 영화 초창기의 평론들은 문학과 영화 사이의 서사적 라이벌 관계를 확인시켜준다. 20세기 초에 문학을 영화한 것들이 삽화가 든 책들을 대체하였다. 심지어 필립 제임스는 단지 문학을 영화한 것뿐만 아니라 일반 영화가 삽화가 든 문학을 대체한다고 주장한다. 초창기 영화 평론가들은 삽화가 든 소설과 연극을 능가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평론들은 문학을 단어로 영화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세 개의 혼합된 서사적 예술 형식으로 보았다. 삽화가 든 소설, 공연되는 연극, 자막 달린 영화.

   1920~30년대 산문 작가들은 1900~10년대 작가들이 삽화가 산문을 위협한다고 느꼈던 것처럼 영화가 소설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30년대에 피터제랄드는 이러한 위협을 인식하면서, 영화는 이미지에 단어들이 복속되는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단어를 이미지에 복속시키고, 소설은 이미지를 단어에 복속시킨다. 이러한 영화를 모더니스트 산문 작가들은 자신들의 글쓰기에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의 미술적 영감을 버리는 것으로 영화의 우월한 미술적 능력을 받아들였다. 소설은 외부적 행동에서 내부적 생각으로, 플롯에서 캐릭터로, 사회적 실재에서 심리적 실재로 나아갔다. Esrock은 문학이 이제는 심지어 심리적 이미지마저도 벗어나서 산문의 추상적인 재현적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평적 경향은 고급 근대 소설은 영화화될 수 없다는 널리 퍼진 주장과 함께 간다. 이는 소설과 영화의 독립적인 영역을 만든다. 소설은 미술적이고 연극적인 영감에서 물러나서, 영화가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 (* 박형서의 소설로? 혹은 돈없고 빽없는 옛날 이창동으로?)

이에 버지니아 울프는 “미술”에서 기존 산문 미술 전통에 반대하고 서사적 미술 전통에 대해서도 비난한다. 그는 문자와 미술적 측면의 분리를 요구한다. 그녀는 또 다른 글인 “영화”에서 영화를 시각적 예술 전통에 위치시키고, 산문 소설과 대비하고 대조한다. 그녀는 시각적 예술을 본질적으로 뇌와 떨어진 눈 기능과 동일시한다. 영화 관객들은 20세기의 야만인으로서 눈으로 스크린을 핥으며 뇌는 잠자고 있다. 미술적 효과를 바라는 작가는 다리가 없는 사람이고, 서사적 효과를 열망하는 미술은 우스꽝스러운 공연하는 개라면, 울프에게 영화는 불구인 사람과 훈련된 동물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녀는 문학을 영화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문학은 뇌에 해당하지만 영화는 눈에 해당하여, 관객은 문학을 영화한 것을 볼 때는 이 둘 다를 쓰려고 하다가 찢어지고 만다.


   후대의 논의들도 옛날의 문자/시각 라이벌을 영화에 대응시키려고 하며, 예술간 adaptation을 비난함으로서 interart 유비를 제거하려고 한다. 문학을 영화화하는 것에 대한 공격은 소설 삽화에 대한 공격에 쓰였던 수사에서 비롯한다. Orr은 문학을 영화화 한 것을 ‘사진-책’이라고 하며 이러한 ‘사진-책’은 그 자신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힘을 도상적으로 보여줄 뿐이라고 한다. 이는 텍스트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힘을 묘사한다는 것이다. 삽화가 든 책에 대한 역사가들은 산문을 파는데 삽화가 힘이 있음을 증명했다. 영화 원본 책의 판매도 유사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영화나 삽화가 소설과 경쟁해서 문학을 없애버릴 것이라는 작가의 우려와는 달리, 소비자들은 두 가지 형태를 모두 소비하고 싶어한다. 소비자들은 하나의 분리된 면에만 갇혀있지 않다, 오직 아카데미와 예술가들만 그러하다. 영화가 문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림-책’이 아니라, 소설과 소설을 받아들이는 영화가 함께 ‘그림-책’을 구성하고, 소비자들은 예전에 삽화가 든 책들을 구입했듯이, 이를 구입한다. 영화를 소설화 하는 것에도 마찬가지 원칙이 통용된다.

   연극에서 수용된 것들도 흥미로운 intertext를 형성한다. 19세기에는 소설을 연극화 한 연극의 사진이 소설 삽화를 종종 대체한다. 20세기와 21세기에는 영화와 티비 스틸이 소설 삽화를 대체하는 것처럼. 이러한 대체는 위와 같은 수용이 삽화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만, 산문의 자리는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내포한다. 또한 스틸은 연기와 움직이는 이미지를 고정시킨다. 이 스틸은 움직이는 배우들을 고정시키고, 그들의 대화를 침묵시켜서, 아이들로 하여금 산문에 고정시킨다. 역설적이게 이러한 출판 작업은 새로운 혼합을 만들면서도, 소설과 영화를 각각 단어와 이미지로 양분한다. 이들은 영화를 순수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소설에서 삽화를 제외하여 순수한 단어들로 만든다. 그들은 결코 영화의 단어들이나 소설의 삽화를 재현하지 않는다. 이렇게 소설이 단어로 축소되고 영화가 정적인 이미지로 변화되면, 예술 내적인 단어와 이미지 교환이 가려진다. 이러한 내부 예술의 동학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내부 예술의 단어 이미지 역학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얻기 힘들다.

* 이러한 Kamilla Elliott의 분석은 흥미롭다. 우리가 지금 <소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실상은 삽화와 산문의 분리에서 비롯한 것이고, 이의 배경이 되는 논쟁들을 재구성함으로서, 논쟁의 배경까지 추적하는 것.
기원 -> (논쟁) -> 현재 라고 할 때, 그 논쟁의 배경을 추적하는 작업. 이에는 분명 “작가”의 탄생과 문자가 그림보다 우월하게 인식되어진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존재한다. 근대국가형성과 문학이 긴밀히 연결되는 과정에서, 문자>그림이 조선의 경우 성립되었던 것일까? (황호덕 선생님의 책에 대한 리뷰랑 목차만 봤는데, 화폐-문학이 근대네이션 성립에 기능하였다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신소설 연재 당시부터 시작해서 20~30년대 문예지에 실렸을 때, 단행본에 실렸을 때에 대한 비교 작업이 요청된다.(이영아 선생님, 천정환 선생님이 잘 아실 부분^^) 우리는 또 문인화의 전통이 있었기에, 이것이 어떻게/왜 굴절되고 단절되고 변종되었는지 흥미로워 진다.


천정환 선생님 연구에서 얼핏 기억나는 것은, 근대의 베스트셀러 중에 하나가 ‘생식기 도해’같은 거였다는 점.(책장에서 찾기 귀찮아서 기억에 의존함 -_-;) 분명 ‘그림책/빨간책’이 많이 팔렸다. 대중이 ‘삽화’를 소비하는 방식과, 교육에 의해 억압되는 과정.(분명 현대 분과과정에서도 연구하기 쫌 난감한 부분이 있다. 박태원 단행본 소설 삽화의 서사적 기능 연구? 이 또한 Elliott에 따르면 삽화를 ‘서사’로 축소-변질 시키는 것. 전체 ‘텍스트’(Elliott은 이것이 둘을 같은 것으로 환원해서 싫어한다고 하지만)연구라는 것.) 이것의 이데올로기적 의미 등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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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리(박모 옮김),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현실문화연구, 1994.

1. 대중문화란 무엇인가?

문화/이데올로기/대중문화 popular culture

결국 무엇을 ‘popular culture'라 명명하고, 어떠한 전제와 목적 하에서 연구할 것이냐가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물론 이는 변증법적으로 실제 자료와 연구과정에 따라서 구체화될 성질의 문제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유용한데, 이 개념자체가 변증법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대중문화의 현상과 힘의 역학을 제시하고, 따라서 이를 변증법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한다.

대중문화라는 영역은 지배계급이 헤게모니를 얻고자 하는 시도와 이에 대한 반대의 형태로 짜여 있다. 그러므로 대중문화는 지배이데올로기와 일치하는 강요된 대량문화로 구성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대항의 문화들로 구성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는 여러 가지 조합으로 지배적, 피지배적 또는 서로 상응하는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가치와 요소들이 ‘섞인’ 두 문화의 타협장소라고 할 수 있다. (27)

물론 이 개념은 쿤의 ‘패러다임’에 관한 연구처럼, 실제적 ‘문화사적’인 연구를 통해서 뒷받침되어 어떻게 헤게모니 교체가 이루어지는가를 긴 호흡으로 탐구해야 한다. 이 ‘헤게모니 교체’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용어는 저널리즘에서 너무 일상화되고 상투화되어, 그 혁명성을 사장(체게바라를 문화상품으로 전유하듯, 헤게모니를 정치 집권으로 전유한다)시키고 있다. 이게 3~4년마다 전환되는 것이라면, ‘한나라당’과 ‘열우당’의 권력싸움이 ‘헤게모니 교체’라면, 그게 무슨 헤게모니인가?(아니면 어떠한 다름이 있는가? 정통왕조파와 오를레앙파의 차이? 2002대선에서 반한나라당 노선은 어떠한 계급적 분석과 실천적 판단에서 비롯한 것일까? 참고로 그람시의 ‘진지전’개념을 원용하며 수구에 대한 헤게모니 투쟁이라는 글을 부록?으로 제시한다. 이건 유머의 수준을 초월한지 오래다.) 이러한 정치 권력싸움이 ‘헤게모니 교체’라고 떠드는 것 자체가, ‘한나라-열우당’ 근저에 있는 ‘공통된’ 헤게모니의 지속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이데올로기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혹은 이러한 구분은 내 정치적 입장에 따른 구획이다. 수구와 보수 사이, 친일파-독재 잔재와 합리적 부르주아지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그으려는 노력은 어떤 의미와 효과가 있는가? 이것이 오히려 현정세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 반창연대, 유시민의 민노당 ‘사표’ 발언 등.

2. ‘문화와 문명’의 전통

a. 문화 근대화의 세가지 유형? 미국, 서구, 식민지

‘무정부’에 반대하여 문화는 국가를 제시한다. 즉 “우리는 권위를 필요로 하며... 문화는 국가의 이상을 제시한다.” 두 가지 요인이 국가를 필요하게 만드는데, 첫째는 권위의 중심 역할을 하던 귀족층의 쇠퇴이며, 둘째는 민주주의의 출현이다. 이들은 함께 무정부에 적합한 토양을 만들었다. 해결책은 문화와 강제의 혼합으로 이 토양을 제거하는 것이다. 아놀드의 문화화된 국가는 중산층이 이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만큼 문화화될 때까지 노동계급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욕구를 조절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행하는 것이다. 국가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다. 첫째로 더 이상 하이드파크에서 데모가 일어나지 않도록 탄압하며, 둘째로 또한 문화의 ‘아름다움과 빛’을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42)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가 행복하게(?) 결합된 또는 그렇게 움직였던 영국과는 달리, 조선은 어떠했는가? 자본주의=스테이트와 네이션의 분리. 여기에 권위의 중심이었던 ‘소중화’주의와 민족주의는 일제(스테이트)의 지배문화,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해 저항했고(또는 쉽게 타협할 수 없게했고), 식민지 시기 일제의 통치가 마침내 대동아공영권으로 ‘자본주의=스테이트->네이션’을 결합시키려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기까지 저항의 지점을 생성했다. 이러한 ‘소중화’나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은 주체/식민객체들을 점유하려는 양방향의 운동성으로만 식민지 시기 역사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많은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상 또는 회색공간의 복원. 너무 냉소적이고 성급하게 ‘그런데?’라고 묻기 전에 살펴보면, 이러한 연구들은 ‘대중’이 실제 움직이고 사고했던, 즉 그들의 ‘문화’를 살펴보는 것을 통해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다 정치하게 살펴보고, 대중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의 일환으로 제출된 것일까? 또 미국예외주의적 언급(60)에서 서구가 귀족문화 해체 후에야 비로소 부르주아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미국, 서구, 식민지라는 세 가지 유형의 (근대화) 문화사가 설정될 수 있을까?

B.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 또는 아비투스와 문화대혁명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문제에 있어 민주주의의 위협은 리비스주의자들에게는 끔찍한 것이었다. 게다가 Q. D. 리비스는 “권력을 쥔 자들은 더 이상 지적 권위와 문화를 대표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아놀드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전통적 권위의 붕괴가 대중민주주의의 발흥과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이 두 현상은 문화화된 소수를 압박하고 동시에 ‘무정부’가 설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었다. (47)

이러한 엘리트주의에 반대하여(스토리의 책에서는 그러한 톤이있다) 극단으로 밀어붙이게 되면, 떠올려지는 것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다. 대중주의, 하방운동, 홍위병들의 난립으로 이루어져서, ‘인민의,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모든 활동, 심지어 의료행위까지도 ‘인민’이 할 수 있다고 믿고, 청소년 홍위병이 외과수술책을 보고 수술을 집도했다고 한다. 이러한 수준높은 ‘과학’과 대비되게 수준높은 ‘문화’라는 것이 과연 엘리트들만 ‘향유’하고 practice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가 ‘제대로’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서, 현대미술에 감탄하기 위해서, 현대음악을 비평하기 위해서는 의대에서 공부를 하는 것처럼, 일정량의 전문지식을, 사실 상당한 량의 지식을 쌓아야 한다. 과학과 유비해서 말하자면, (혹은 문화비평 또한 하나의 ‘과학’이라는 의미에서)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명제는 어떻게 부정될 수 있을까? 혹은 부정되어야 하는가? 이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대중주의’적 ‘이데올로기’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역사발전‘법칙’에서의 pt의 역할과의 관련성.

3. 문화주의

문화의 가장 일반적인 정의에서조차도 우리는 세 개의 층을 구별해야만 한다.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충분히 인식되는 그 시대, 그 공간의 살아있는 문화가 있다. 또 예술로부터 가장 일상적인 내용들까지 갖가지 종류의 내용들이 기록된 한 시대의 문화가 있다.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문화와 각 시대의 문화를 연결해주는 요소인 선별적 전통의 문화가 있다고 할수 있다. (84)

윌리엄즈가 나누는 문화의 세 층위 중, ‘실재’라고 할 수 있는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충분히 인식되는 그 시대, 그 공간의 살아있는 문화’라는 것은 무엇인가? 윌리엄즈는 ‘19세기의 독자는 후대의 어떤 독자도 완전히 재생시킬 수 없는 그 시대의 소설들이 다룬 삶의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바로 현재 우리에게는 선택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 과연 그러할까? 그러한 경험의 ‘보편성’이라는 것은 있는가?

윌리엄즈에게는 문화적 전통의 선별성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선별성은 항상 (필연적으로) “한때는 살아있는 문화였던 것에서 상당부분이 배제된” 문화기록이나 문화전통을 만든다. (84)

‘완전한 과거’의 ‘보편적 경험’을 공유하는 대중이라는 것은 허구다. 그러한 허구를 전제하는 이유는 윌리엄즈의 문화연구 목적이 ‘실제 문화적 과정’을 드러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있다고 전제함으로서 인식론적으로 편해지는 ‘물자체’와 같은 통합적 과거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5. 마르크스주의

5.1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문화에 대한 마르크스적 접근은 무엇보다도 문화의 텍스트와 실천행위들을 그것이 산출된 역사적 상황 속에서(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소비와 수용이라는 변화하는 상황들 속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적 방법론이 문화에 대한 여타의 ‘역사적’ 접근과 구별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인식 때문이다. (...) 분석의 핵심은 사회가 자신의 존재방식, 곧 특정한 생산양식(*한 사회가 생필품(식량, 주거 등)을 생산하기 위해 조직된 방식)을 만드는 방식이 궁극적으로 그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형태, 더 나아가 미래의 발전까지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144-145)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상부구조는 토대를 표현하는 동시에 정당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토대가 상부구조의 내용과 형식을 ‘조건’짓거나 ‘결정’짓는다. (...) 엥겔스가 주장하는 것은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의 토양을 만들기는 하지만, 여기서 일어나는 활동들이 온통 다 이러한 사실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물론 이것이 명확히 한계를 짓고 영향은 주지만), 이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제도들이나 그 외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는 결코 역사의 주된 힘은 될 수 없으나, 역사적 변화나 사회안정에 있어서 중요한 도구로서 활발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145-147)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대중문화는 상부구조의 이데올로기적 형태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대중문화분석에 있어서 유물론적 역사관은 어떤 내포의미를 가지는가? 우선 첫째로 어떤 텍스트나 실천행위의 이해나 설명을 위해서는, 이를 이것이 생산된 역사적 시기에 놓고, 이것을 산출한 역사적 상황에 입각해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이 있다. 즉 역사적 상황은 궁극적으로 경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문화분석이 경제분석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문화적인 요소들은 경제적 요소들의 수동적 반영이 되고 만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경고하듯(...), 행위주체와 구조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변증법의 작용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147)

카우츠키 이래 속류 맑시즘의 기계적 결정론을 반박하며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를 상기한다면, 기계적 결정론은 맑시즘에 전적으로 반한다. 행위주체(맑시즘에서는 집단 주체로서의 pt)의 혁명적 주체성이 중요한 것이고, 맑스주의적 입장에서의 문화분석은 단순화시켜 말해본다면, 궁극적으로는 이 집단 주체로서의 pt가 ‘왜 움직이지 않는가’며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가’라고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왜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일어나게 할 것인가의 문제. 끝끝내 망하지 않은 자본주의에 대한 ‘변명/설명’으로서의 대중문화. 파리꼬뮌 이후 맑스, 68이후 알튀세르.

5.2 프랑크푸르트 학파

이 장은 아도르노, 마르쿠제, 호르크하이머와 벤야민으로 양분된다.

a. 아도르노, 마르쿠제, 호르크하이머

이들은 고급문화와 문화산업을 구분하며, 전자는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살리고, 대량문화의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하지만, 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되도록 만든다고 한다.

문화산업은 ‘규격화, 상투성, 보수성, 허위, 조작된 소비상품’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문화를 생산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성을 희석시키며,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틀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정치, 경제적 목표로만 그들의 지평을 제한한다. (...) 짧게 말하면 문화산업은 ‘군중 the masses'들이 현재의 한계 이상 생각하지 않도록 조장한다. (149-150)

‘정통’ 문화는 종교의 이상적 기능을 이어받아 현재 한계를 뛰어넘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살리고, 대량문화의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다. 이는 정통 문화가 교훈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 ‘내용’으로 명령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형식’으로 설득한다는 것이다. (150)

문화산업은 이익의 추구와 문화적 동질화를 위해 ‘정통’문화로부터 비판적 기능과 부정의 방식, 즉 ‘위대한 거절’의 기능을 박탈한다. 상업화는 또 ‘정통’문화를 또다른 문화적 상품으로 개조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그 가치를 하락시킨다. (153)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의하면 자본주의하의 노동과 여가는 강제적인 연관성을 갖게 된다. 즉 문화산업의 효과는 노동의 성격에 의해 보장되며 노동과정은 문화산업의 효과를 보장한다. 그러므로 산업화가 노동시간을 조절하는 것처럼 문화산업의 궁극적 기능은 여가시간을 조절하는 것이다. 자본주의하에서의 노동은 감각을 무디게 하며 문화산업은 대신 그 과정을 더욱 존속시킨다. (...) 노동은 대량문화로, 대량문화는 노동으로 돌아가게 한다. 유사한 방식으로 문화산업에 의해 배포되는 예술 또는 정통 문화도 비슷하게 작용한다. 문화산업의 범위 밖에서 작용하는 정통 문화만이 이 순환작용을 깰 수 있는 것이다. (154-155)

현대예술은 ‘상품’으로서의 자신을 거부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자본주의체제 하에서의 예술가라는 조건하에서 움직인다. 문화산업의 범위 밖이라고 해도, 자본주의는 엄연히 작동하는 것이다. 도배와 집수리를 하면서 예술을 하는 문화노동자들에 대해서 언론은 이를 바탕으로 문화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다시 문화노동자들을 체제내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포섭과정에 다름이 아니다. (부록 2참조) 아도르노 등의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대해 스토리는 문화산업이 소비자들을 쉽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식별력있는 공중에게 산업체가 필사적으로 음반을 팔려고 한다면서, 음반의 80퍼센트가 사실상 돈을 잃는다는 통계적 수치를 제시한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소비가 적극적인 행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말이 되는 소리일까? (각 음반사의 광고 홍보 규모 등은 따져보지 않았는가? 더 광고를 많이한 비누와 그렇지 않은 비누와, ‘대량문화’사이의 얼마만큼의 큰 질적 차이가 있는가?) 최근에 한국 영화산업의 거품이 빠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대부분의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대중문화가 소비자들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사 선택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괴물의 스크린독점으로 인한 스크림독점규제법을 상기해보자. ‘우리’는 괴물을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괴물이 우리에게 제공된 것인가? 물론 이것이 일방향적인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문제는 어느지점을 공격해 들어갈 것인가가 아닌가?

b. 벤야민

아우라의 쇠퇴는 문화 텍스트나 생산물을 전통의 권위와 儀式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는 텍스트나 행위의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며 다른 맥락에서나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게 해준다. 더 이상 그 중요성은 전통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의문시되기까지 한다. 즉, 의미는 소비의 문제로, 즉 수동적(아도르노에게는 심리적) 사건이 아닌 능동적(정치적) 사건이 된다. (...) 소비 또한 변화하여 기존 종교적 제의의 위치에서 미학적 제의로 옮겨왔으며, 이제 또다시 정치적 실천으로 기반을 옮기고 있다. 문화는 대량문화가 되었을지언정 소비는 대량소비가 된 것이 아니다. (...) 의미와 소비의 문제들은 수동적 관조에서 능동적 정치투쟁의 문제로 변화한다. ‘기계적 복제’의 긍정적 잠재성을 받아들인 벤야민의 견해는 ‘아우라’의 문화에서 ‘민주적’ 문화로 옮겨 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는 더 이상 유일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이에 대한 논의가 허용되고, 그것을 사용하고 변화시키는데 얼마든 열려 있는 것을 의미한다. (...) 아도르노가 의미를 생산양식에서 찾으려고(즉 문화텍스트가 어떻게 생산되었는가에 따라 소비와 의미가 결정된다고하는) 했다면, 벤야민은 의미가 소비의 순간에 생산되는, 생산양식과 상관없이 소비과정에 좌우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159-160)

아도르노보다 벤야민이 실천적으로 더 ‘유용’할 수 있는 지점은, 아도르노에 따르면 우리는 대중문화를 버리고 ‘정통문화’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아도르노의 글쓰기 자의식은 대중들이 아도르노를 읽을 수 없게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이런식으로 대중문화는 썩었어라고 고함을 (*그것도 심지어 대중이 못 알아듣게) 지르는 것을 통해서? 반면에 벤야민은 소비행위에 의미를 부여함을 통해서, 언더그라운 문화나 대중문화의 전유양식에 대해 이해와 긍정적 가치부여를 할 수 있게 한다. 대중문화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이를 주체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늘씬한 모델의 광고를 보고 청바지를 입는 것이 아니라, 찢어서 입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결국 대중의 ‘주체성’은 남아있지만 그런 곳에서 ‘소비’하게 만듦으로서 현상태에 만족하게 하고 만다는 아도르노의 비판은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5.3 알튀세르주의

a. 알튀세르

알튀세르는 토대/상부구조의 공식에 따른 기계적 해석 및 사회적 총체성에 대한 헤겔식 관점 양자를 모두 거부한다. 그는 그 대신 사회구성체 social formation개념(‘사회’에 대한 특별한 이론화)을 주장한다. 사회구성체는 세 가지 상이한 실천 즉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실천으로 이루어진다. 토대와 상부구조 간의 관계는 어떤 표현적인 것이 아니다. 즉 상부구조는 토대의 표현이라든지 수동적 반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토재의 존재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이 모델은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허용한다. 여전히 결정 determination의 문제는 남아있지만, 그것은 최종심급에서의 결정이다. 이 결정은 알튀세르가 ‘지배내 구조’라 부르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이는, 경제적 요인이 항상 결정의 요인이 되기는 하지만, 어떤 특정한 역사적 정세에서 경제적 요인이 필연적으로 지배적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예를 들어 봉건제에서는 정치적인 것이 지배적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정 사회구성체내에서 지배적인 실천은 그 사회 특유의 경제생산 형태에 의존할 것이다. 알튀세르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있어서 경제적 모순은 결코 순수한 형태를 띠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최종십급의 고독한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결정은 다양한 모순들과 결정들의 구조화된 명시화 articulation, 즉 ‘과잉결정 over determination'으로서만 존재한다. 경제적인 것은 최종심급에서 결정요인이 된다. 이는 다른 심급들이 부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실천이 지배적인지를 경제적 요인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161-162)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이론화는 문화연구에 핵심적인 영향을 끼쳤다. (...) 사람들이 이데올로기를 통해 실제 존재상황과의 관계를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 이데올로기, 즉 다양한 재현(이미지, 신화, 생각 또는 개념)의 체계(자체 논리와 엄밀성을 가진)는 이 공식 속에서 결코 단순히 경제적 토대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실천행위로서 존재한다. (...) 경제적인 것, 요컨대 특정한 역사적 생산양식이 일정한 생산관계를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일정한 생산수단을 사용하여 어떤 원재료를 생산물로 변형시키는 것처럼 정치적 실천행위 또한 같은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변형시키고,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이데올로기적 실천행위가 사회구성체에 대한 개인들의 살아 있는 관계들을 변형시킨다고 주장한다. (162-163)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은 이미 맑스-엥겔스도 언급한 것이고, 알튀세는 이를 부각시키면서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닫힌 체계이고, 이는 답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 때문에 비평적 행위는 이러한 닫힌 체계에 내재하는 ‘문제설정 problematic'을 해체하여 징후적symptomatic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문제설정은 텍스트나 실천행위의 조직체인 언술들이 교차 경쟁하며 다양한 조직을 구성하고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또는 이론적 구조이다. 이러한 문제설정은 그 속에 포함된 것 만큼이나 배제된 것으로 인해 역사적 존재의 중요성과 연관되어 있다. 징후적 독해는 이중적 독해로서, 명백한 텍스트를 해석하며 또 여기에서 간과되고 결여된 것을 통해 숨어있는 텍스트를 생산하고 읽는 것이다. 문제설정을 해체하여 그 무의식적 구조를 묻는 방식인 것이다.

b. 마슈레

마슈레의 문학생산이론은 이러한 알튀세의 징후적 독해의 기술을 문화적 텍스트에 적용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텍스트는 의미를 감추고 있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복합적 의미의 구조이다. 텍스트를 ‘설명’한다는 것은 이를 인지하는 것이다. 모든 문학텍스트는 명백하고 함축적이며 침묵하고 결여된 여러 언술들 사이의 대립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탈중심적이다. 그러므로 비평행위의 과제는 텍스트의 통일성이나 총체적 조화, 미학적 통일성들을 측정하고 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의미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텍스트 내의 균형을 설명하는 것이다. 즉 비평행위는 텍스트의 침묵이나 부재, 불완전한 구조의 이데올로기적 필연성을 설명하는 것, 즉 텍스트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연출하는 것이다.

텍스트는 말하고자 하는 것과 실제로 말하는 것 사이에 하나의 ‘틈’이 있고, 이러한 텍스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 억지로 말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텍스트의 ‘무의식’이 성립된다.. 그리고 이 텍스트의 무의식을 통해 그 존재의 이데올로기적, 역사적 조건과의 관계가 밝혀지는 것이다. 텍스트의 무의식은 역사적 모순을 반영하기보다 오히려 이 모순들을 환기시키며 연출하고 보여준다. 텍스트는 항상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시작하고, 이의 해결과정으로서 이야기narrative를 진행시킨다. 그런데 마슈레에 따르면 주어진 문제와 해결책 사이에는 지속성보다 항상 단절이 있고, 이 단절을 연구함으로써 텍스트와 이데올로기, 역사와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를 도식적으로 보면 텍스트는 세 단계로 나뉜다. 이데올로기적 목적과 실현, 그리고 텍스트의 무의식(징후적 독해행위에 의해 산출된)이며 이는 역사적 ‘진실’이라는, 억압된 것이 다시 회복되는 단계이다. 그러므로 마슈레적 비평행위는 이데올로기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문학텍스트가 자체와는 모순되는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c. 헤게모니로

알튀세르의 두 번째 공식에서도 이데올로기는 존재의 실제 상황과 개인들의 상상적 관계를 재현한다. 다른 점은 이 개념이 이제 이 생산의 관계들이 재생산되는 과정까지 포괄하는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이제 더 이상 사상의 집합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즉 교육, 조직된 종교, 가족, 조직된 정치, 미디어나 문화산업 등-의 행위와 생산을 통해 재생산된 살아있는 육체적 행위(예를들어 제의, 관습, 행동의 패턴, 실질적 형태를 갖춘 사고방식)로 인식된다. 이 두 번째 정의에 따르면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을 주체로 ‘구성해내는’ 기능이 있으며, 이 기능에 따라 규정된다. (...)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이데올로기의 육체적 행위에 종속되는 주체들을 창조하는 것이다. (...)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두 번째 모델과 이것을 문화이론에 적용하는 것의 문제점은 이것이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요구하는 모든 필요불가결한 이뎅로로기적 습관에 맞게 성공적으로 재생산된다. 거기에는 실패나 갈등, 투쟁 또는 저항의 기미조차 보이는 일이 없다.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예를 들어, 광고는 우리를 소비하는 주체로서 호출하는 데 항상 성공하기만 하는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문화연구자들 중 많은 이들이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연구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5.4 헤게모니 이론

기본적으로 이 개념은 발전된 서구민주사회에서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해명하려는 것이다. 헤게모니란 지배적 계층(들)이 단순히 사회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지적 리더쉽을 가지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상황을 지칭한다. 이는 사회에 다수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안정이 있음을 의미하며, 피지배계층이 현재의 권력구조에 자신들을 묶어두는 가치나 이상, 목적, 문화적 의미들을 능동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헤게모니가 다수의 합의를 전제로 하긴 해도, 갈등없는 사회나 상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헤게모니가 뜻하는 바는 이러한 갈등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돌려지고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 지배층 집단의 전략의 일부는 동의를 얻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이러한 동의가 얻어지지 않을 때는 항상 억압적인 국가의 기구들-즉 군대나 경찰, 감옥체계 등-의 무력이 사용된다고 주장하였다.

대중문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헤게모니는 매우 유용한 개념임이 밝혀졌다. 헤게모니 이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대중문화는 사회의 지배력과 피지배력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지는 장소로써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성이나 세대, 인종, 지역과 같은 여러 형태에 따라 분석될 수 있다. 대중문화는 합병과 저항 사이의 알력, 즉 지배층의 이해관계를 보편화시키려는 시도와 피지배층의 저항 사이에서 투쟁이 일어나는, 문화적 교류와 협상(타협적 평형)에 의해 구성된 영역으로 명시화된다. (...) 헤게모니 이론은 대중문화를 어떤 의도들과 반대 의도들 사이에 ‘타협된’ 혼합물로 생각하게끔 해주며, 또한 이것은 ‘위’나 ‘아래’, ‘상업’이나 ‘정통’ 양측 모두에서 비롯된 것이고 저항과 합병의 힘들 사이를 움직이는 저울의 추 같은 것이다.

*마슈레의 문학생산이론에 대한 이해

마슈레의 문학생산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생산’이라는 개념부터 알아봐야 한다. 여기서 생산은 노동자가 원재료를 노동을 통해서 어떠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작가도 일상적 이데올로기의 원천인 언어를 가지고 무엇인가 말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욕구를 통해 작품을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의식적으로 ‘창조’와 대비된다.

이러한 작품은 이데올로기를 매개로 하여 그것이 생산되어진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지만, 작품자체는 이데올로기에 환원되어 설명될 수 없다. 오히려 작품은 그 속에 일관되게 관철된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통하여 현실을 파편적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내포하고 있는 객관적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다. 작품과 이데올로기 간의 모순적 관계가 문학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즉 현실을 총체적으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매개로 ‘선택적’으로 반영함으로써 반영과 반영의 부재, 즉 ‘침묵’을 작품은 포괄하고 있고, 이러한 ‘침묵’에 대해 탐구함으로서 그 자체로는 본질적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할 수 없음을 그 속성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의 환상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과학’적 비평의 기능이다.

작품은 주어진 의미로 귀속될 수 없는 비환원적 성질을 가지며, 이질적 요소의 불균등한 결합에 의한 불완전한 상태 그 자체가 지니는 자율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서, 마슈레의 생산이론은 알튀세가 말하는 심급마다의 자율성을 계승한다. 그럼에도 ‘과학’으로서의 비평은 이를 ‘현실’과의 대조를 통해서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을 폭로하는데, 그 ‘과학’은 어떻게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가? 맑스주의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지점을 여기서 볼 수 있다. 맑스주의라는 언어게임 내에서, 또는 그 ‘문제설정’ 내에서 이는 반박당할 수 없고, 기껏해야 다시 ‘실천적 의미’로 돌아올 뿐이 아닌가? 즉 맑스주의는 어떻게 과학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맑스주의적 대답인 ‘실천’을 통해서 보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마슈레가 루카치, 골드만 등의 헤겔적 총체성에 기반한 비평/문학이론을 비판하면서, 이것이 작품을 하나의 의미로 환원하는 행위일 뿐이라는 지적은 유의미하다. 마슈레는 텍스트를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반영으로부터 동시에 구해내지만, 결국 작품은 동시에 이 두 곳에 정박되어 있을 뿐이지 않은가? 루카치를 벗어나고, 마슈레도 벗어나면, 도대체 작품이라는 미궁은 현실이나 이데올로기와 어떻게 관계맺고 있는 것이고(또는 전혀 관계없고, 또는 작품마다 다르고), 우리는 작품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사실 골드만을 방법론으로 주요한의 불노리를 2.8 혁명을 앞둔 동경유학생집단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재단’해 버린 나로서는 뜨끔한 부분이 많은 루카치-골드만 비판이었지만, 정작 마슈레의 작품 읽기는, 텍스트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결국 현실 반영과 이데올로기에의 ‘환원’은 똑같다. 맑스주의 문예이론은 궁극적으로는 ‘현실’과 ‘문학’이 같이 간다. 마슈레 또한 골드만처럼 ‘진정한 문학’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듯한데...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아닌 ‘진정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대답하려하는 것인지.

(*마슈레에 대해서는 홍성호, 󰡔문학사회학, 골드만과 그 이후󰡕 와 오민석,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를 참고했음. 단 의문은 발제자의 것이기 때문에, 전혀 뜬금없고 마슈레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음.)

8. 대중성의 정치학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스토리의 대중문화에 대한 입장이 논쟁적으로 드러난다. 결국 대중문화연구자의 난처한 입장은, 그들(또는 ‘우리’) 또한 대중문화 속에 있다는 것과 자본주의를 별반 좋아하지 않지만, 자본주의 속에 있다는 것. 두 번째로 대중문화를 생산의 측면에서 볼 지 소비의 측면에서 볼지, 또는 이 둘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하는 것. 이러한 ‘난처함’은 맑시즘의 역사발전의 주체로서의 pt에 대한 기대와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증오가 굴절되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자기변명만을 생산하고 있다.

우선 대중문화(popular culture)을 생산의 입장에서 보면 mass media와 자본에 의해서 자본주의적 작동 방식에 따라 움직이는 상품 생산과 이를 어떻게 소비자 대중을 조작하여(광고) 먹고 살 것인가로 파악할 수 있다. 어이없게도 스토리가 항상 이에 대해 반례를 드는 것이 영화나 음반시장이나 이익보다는 손해보는 일이 잦다는 것. 이는 개별 자본들의 경쟁에 따른 시장 파이의 나누어먹기 싸움에서 실패한 것이고, 전체 자본의 입장에서 대중문화의 시장은 계속 확장 일로에 있는 것인 아닌가?

또 이러한 상품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나누어서, 대중문화는 사용가치에 기반을 두고 소비되는 것이며 소비의 상징적 작업은 단순한 생산관계의 반복이 아니며, 생산자들이 주입시키는대로의 기호학적 확실성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는 모든 상품이 마찬가지 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이 상품이 만들어진 목적에 따라서 사용하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이 어떠한 ‘저항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특히 문화상품은 상대적으로 이것이 다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것을 사는 대신 저것을 구입하는 결정은 가격이나 물건의 튼튼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스타일과 문화적 가치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비는 쾌락과 정체성, 의미의 생산 등에 관심을 가진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그리고 생산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사용의 경제와 교환의 경제라는, 평행선을 달리는 두 개의 경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85)

이것은 너무 나이브한 생각 아닌가? 대중들이 완전히 자본주의의 ‘조작’에 놀아난다고 말하는 것도 현상과 반하는 면이 있지만, 대중의 ‘소비’가 이루어지게 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조작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렇다면 실천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사용의 경제를 분석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스토리는 반자본주의적 생각을 가진 랩이 EMI에서 유통된다고 해서 이들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납품상인’이 아니고 이들을 듣는다고 해서 ‘자본주의 주체로 재생산되어 더 많은 돈을 쓰고 더 많은 이데올로기의 소비를 바라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렇다. 그런데 왜 스토리는 보다 논쟁적인 예를 들지 않았을까? 맑스의 󰡔자본론󰡕이나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또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출판자본에게 이득이 되는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고.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진정 혁명적인, 자본가 계급 전체에 적대적일 수 있는 문화는 자본에 의해 유통되는가? 아니면 자본이 전유할 수 있는 것만 유통되는가? 체게바라는 어떻게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가? 결국 왜 스토리는 생산-소비가 자본주의적으로만 유통되는 지점만을 분석과 사유대상을 삼는 것인가? 대중문화에 자본주의 밖은 없는가? 또는 자본주의의 밖은 없어도, ‘틈’은 존재하지 않는가? 베네주엘라의 조합주의 운동 등.

스토리는 ‘모두들 상업문화내에 살고 있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임을 인정한다.’ 드디어 인정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선택과 거부, 의미생산, 가치부여를 통해 스스로 문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이들로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쾌락과 정치는 별개의 것이라서, 왜곡에 대해 웃고 즐길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왜곡‘이라고 말하는 정치적 입장을 지지할 수도 있다.’

그렇다 지지할 수도 있다. 2002월드컵 때, 월드컵 경기장이 세워지는 과정에 국가의 폭력적인 수단으로 그 땅이 매입되고 경기장이 세워졌는지를 알면서도 월드컵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민족주의에 대해 불편해 하면서도, 광화문에 나서서 응원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그러하다는 것은 ‘진정’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 아닐까? 정말 아니라면 어떻게 거기서 쾌락을 느낄 수 있는가?

다시 돌아온 곳은, 대중문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지점. 엘리트주의적 관점을 아무래도 버리기 힘들다. 대중문화라는 것이 있고, 이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기능함으로서, 자본주의적 주체로 대중을 호명하는 것이다. 물론 이 호명이 실패할 수 있고, 대중은 대중문화를 자신의 방식대로 소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호명은 성공하고, 대부분의 경우 대중문화는 ‘서커스’로 기능하는 것이 문제인 것 아닌가? 이러한 ‘대부분’이 중요한 것이고, ‘대부분’은 그렇지만 ‘일부’는 아니라는 지점에 개입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즉 연구자는 일종의 전위로서, 깃발을 높이 들고 달리는 것이 목표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인식은 어떻게 계몽주의의 함정을 피해갈 수 있을까?

부록 1

진지전을 통한 헤게모니 쟁탈전/서프라이즈 활용법 조회 (43)

얼마 전 신영복 교수가 그람시의 진지전 개념을 언급했습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진보적 역량이 위축돼가는 현실에 대해 신 교수는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이야기했던 '진지전'의 개념을 소개하며 "진보적 역량을 담을 진지(陣地)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진지전'은 발 빠르게 정치권력을 틀어쥐는 '기동전'에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시민들의 '동의에 의한 지배'가 관철되는 시민사회 내에서 지적, 문화적 실천을 통해 진보적 헤게모니를 형성해나가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진지가 작아 보여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며 "특정한 시기에는 작은 진지가 큰 힘을 발휘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인민(people)의 성취로 청와대와 국회(비록 뻘짓 하는 우리당 꼴통들 때문에 제 역할을 못하고 있지만)를 접수한 지금 전면전을 통한 혁명은 불필요해졌지만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언론을 앞세운 수구 세력에게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서프라이즈를 진지 삼아 가열찬 투쟁을 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전 세계 어떤 NGO고 부자 나라와 부자들의 첩자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듯이 우리나라 시민 사회도 극우 첩자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어서 진지전을 하려는 우리에게는 매우 불리한 환경입니다. 언론, 학교, 종교 등이 수구에게 유리한 이데올로기 주입을 통해 헤게모니를 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매우 열세이며 노대통령이 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진지전의 실천방법 하나를 제안합니다. 제가 직접 실천하여서 상당한 성과를 올린 방법입니다. 저는 제 고교 동문회 사이트에서 단계적으로 수구꼴통 선배들의 헤게모니를 뺏어 왔습니다. 물론 선배들은 제가 오프에서 약 4~5년간 동문회에 기여한 바가 있어서 안면 때문에라도 이지메를 하지 못 합니다. 아니 실제는 간혹 이지메를 당하지만 지원자가 나타나서 결국 판세가 바뀔 정도로 되돌아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 오프에서의 자산이 있는 분들이 훨씬 유리하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치밀하게 다음 대선까지 계획을 세워서 대응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전문성이 있다면 더 좋습니다. 글재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서프라이즈의 글들을 최대한 활용하면 됩니다.

인신공격을 하지 말고 최대한 예의를 지켜가면서 참여 정부에 유리한 논제들을 순발력 있게 제시하는 방법으로 규칙적으로 글을 올리면 됩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한다면 평소에 자주 가는 친목회 사이트나 동문회 사이트 어디든지 고르셔서 언론의 모순, 야당의 행패, 올바른 역사관, 경제를 보는 안목, 국제관계와 북한문제 등등 소재를 다양화하면서 언론이 제시하는 어젠더를 깨부수면 됩니다.

정치인을 직접 거론하면 반드시 역풍이 크므로 그런 문제를 피하면서 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지난 대선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이겼기 때문에 필요 없지 않느냐 하실 수도 있지만 3~4 십대분들이 의외로 많이 흔들리고 있다가 제가 제시하는 관점에 아주 크게 안도하고 자신을 되찾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서프라이즈는 결코 작은 진지가 아닙니다. 우리 분발합시다!!!

부록 2

문화예술인 60% “창작수입 月 100만원 이하”

입력: 2007년 02월 26일 18:19:56

문화예술인 5명 중 3명가량은 창작활동 소득이 월평균 100만원 이하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문화예술인들이 생활빈곤 상태에 빠져 도배·집수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연 관람객 10명 중 7명은 ‘무료 관객’인 것으로 나타나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26일 한국관광문화정책연구원이 기획예산처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에 제출한 ‘문화분야 사회서비스 실태조사 제도개선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문화예술인들은 저소득층(기초생활보호대상자, 차상위계층)에 해당되며 이중 생계 자활활동(도배, 집수리사업)에 참여하는 저소득 예술인도 다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문화예술가의 60%가량은 창작활동 소득이 월평균 100만원 이하에 그치고 있고, 창작활동에만 전념하는 예술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보고서는 “지방도시의 경우 문화예술 활동이 증가하고 있으나 대형 문예시설 위주의 운영으로 소규모 시설과 전업 예술인은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연극·국악·양악·무용 등 1430개 공연단체의 2004년 연간 총수입은 1584억원으로 이중 공공지원 의존수입이 90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자체수입(428억원), 민간부문 의존수입(251억원) 등의 순이었다. 공연단체의 작품당 수입금도 공공지원금이 32.2%로 가장 많고, 자체예산(27.7%), 입장료 수입(24.3%), 민간기부금(13.2%)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2004년 공연 관람객 1167만명 가운데 유료관객은 32.3%에 그쳤고, 나머지는 무료관객이었다.

국내 공연시장 규모는 매년 꾸준히 커지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미국시장의 50분의 1, 일본시장의 10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관철기자 ok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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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3-2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대학교때 보면서 흡족해했었는데...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필독서처럼 읽히더군요....대중성의 정치학에 나오는 주제는 참 고민스럽게 하면서도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언젠가 바람구두님 역시 그 문제에 대해 언급했었던 기억이 납니다.기인님은 결론을 내리신 듯 보이네요.... 연구자로서의 입장에서^^
전 아직 고민중인 문제인데...아마 발터 벤야민의 대중소비자들에 대한 인식 차원에서 아마 기인님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듭니다.벤야민이 그랬다더군요."(대중은) 탐구자이다 그러나 방심하는 탐구자이다." ...그 방심에 대한 각성이 계몽주의와 엘리트주의의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기인님의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어쨋거나 재미있는 주제에요..전 요즘 소비주의에 대한 관심이 있는데 소비주의문제를 이야기하다보니 결국 대중사회와의 연관성을 뗄 수가 없어지네요.
대학 다닐때 맑스를 알기전에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먼저 배우게 되었지요.(그래봐야 학부수준의 내용에 개인적 관심이 조금 더 해진 차원의 공부였지만..)교수들이 비판커뮤니케이션쪽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터의 <혁명을 팝니다>를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주장에 전부 동의할 수 없고 비약도 있지만 ...의미있는 질문과 어려운 주제에 대한 대중적 글쓰기가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더군요...'평범한 사람의 인문학'이 되려면-그게 인문학을 살리는 길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을 조금 더 좋게하는 길이라고는 보는데- 이런건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기인님이 공부를 마치시고..저같은 이들을 위한 그런 책 한권 만들어주시면 좋겠군요.^^

기인 2007-03-26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드팀전님 말씀처럼 '의미있는 질문과 어려운 주제에 대한 대중적 글쓰기'가 목표입니다. 세미나 때도 그렇고, '서로계몽'이나 '연대'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계몽'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집합의 가능성을 계속 고민해야겠지요. ㅎ
 

1. 지금-여기의 ‘대중문화’는 에코가 이 글을 썼던 64년과 어떻게 다른가? 73년 포디즘 체제 붕괴 이후의 물적 토대의 변화(유연적 축적체제?)와 68이후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문화현상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도 20여년이 지난 지금-여기와, 40년 전의 ‘대중문화’의 물적 토대와 현상은 분명 다르다. (지금-여기의 한미 FTA문제 또한 이러한 물적 토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터이다.)

에코가 염두에 두고 있는 ‘대중문화(mass culture)’는 매스‘미디어’mass media에 의해 중개되는 것이고, 이 매스미디어는 지배계급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적인 문화 모델을 자신들의 자율적인 문화의 표현으로 오인한 채 그대로 소비하게 만드는 대중문화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스누피󰡕, 49면) 일괄적이고 똑같이 ‘생산’되어 ‘소비’되는 대중문화. 이에 대해 에코는 이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나는 메시지의 생산 문제보다는 수용, 즉 메시지를 다른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스누피󰡕, 20면) 포디즘-케인주의의 가장 큰 특성인 ‘획일성’을 ‘다르게’ 전유한다는 것. 모든 텍스트에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특히 ‘대중문화’라는 텍스트에 적용하기는 기피했던(에코 시대에는) 것을 반박하고 있는 셈이고, 이 책은 이러한 반박문들이다.

그런데, 지금-여기에서의 ‘대중문화’로 눈길을 돌려보자. ‘대중’이라는 물신화된 개념을 ‘전체’로 인식하고, ‘문화’라는 것을 생활방식으로 바꾸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면1), 지금-여기의 문화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중개되었지만, 미디어에 의존하지만은 않은 움직임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에코가 “대중문화는 대중을 위해 생산하고, 대중교육을 계획하는데 너무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공개적이든 은밀하게든 주체성과 주체의 파괴를 가져온다” (󰡔스누피󰡕, 39면)고 함에도 한편으로는 이를 극복하는 ‘다르게 읽기’ 즉 ‘주체적 읽기’를 강조했지만, 지금-여기에서의 ‘대중문화’에서 널리 알려진 현상들을 되돌아보면, 40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대중’들이 ‘대중문화’의 생산자로, 또는 ‘다르게 읽기’의 주체로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Blog들의 발전, 개인방송(일인방송)들, TRPG, 코스프레, 팬픽2), 고딩들이 쓰는 무협지와 연애소설, 패러디 사진들 등. 기존 ‘미디어’를 전유하고, 자신의 분야를 점차 확장시켜 나가는. 이것이 물론 자본에 의해, 산업에 의해, 다시 이용되는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 ‘주체성’이라는 것이 40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일 터이다. 물론 이것이 어떻게 ‘혁명적’이냐, 혹은 어떻게 자본에 ‘거스르게’ 작동하느냐는 질문은 가능할 것이지만, 이 또한 모두 ‘자본’의 지배하에 작동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이러한 지금-여기의 ‘대중문화’를 물을 때, 우리는 40년전 에코가 물었던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어떻게 유효하게 변형시켜야 할까? “메시지의 구조에 대한 분석(메시지의 형태와 메시지 전송의 객관적 조건), 대중의 다양한 수용 방식, 대중들의 메시지에 대한 만족도와 이에 대한 문화적 개입의 가능성과 기본조건” (󰡔스누피󰡕, 53면 참고) 이러한 질문들은 뚜렷하게 ‘문화생산자’(미디어의 매개)-> 대중(문화수용자)라는 이분법에 입각해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외부 ‘주체’로서의 연구자도. 문화적 ‘개입’은 ‘대중문화’ 밖에서만 올 수 있다.) 그러한 이분법이 지금-여기의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데 적절한 인식틀일까? 아니면 현재의 대중문화를 바라볼 수 있는 인식틀은 다양한 피드백과 피드백 자체도 그 개념 속에 포괄하는 생물학적인 ‘재귀-조직’으로서 바라보아야 할까? 혹은, 그 전에 ‘대중문화’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서부터 인식틀이 도출 되는 것일까..

2. 에코도 이러한 질문을 하고 있다. “현재 막연히 매스미디어로만 알려져 있는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산업 사회가 불가피하게 요구하고 있다면, 이러한 매스미디어로 하여금 문화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문화적 가치’, ‘산업 사회가 불가피하게 요구’하고 있는 ‘매스미디어로만 알려져 있는 커뮤니케이션 관계’라는 것이 의미는 모호하다. 앞서도 문제제기했듯이, 포디즘-케인즈주의가 40년전의 산업 사회를 의미했다면, 유연적 축적 체제 하에서의 ‘서비스’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 ‘매스미디어’라는 커뮤니케이션 관계는 변화되었다. 매스(mass=대중)와 mass media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media 즉 medium의 복수는 ‘매개’물이다. 무엇을 ‘mass’에게 매개하는가는 알 수 없다. 이는 정태적으로 mass가 있고, mass media가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mass는 mass media 때문에 mass로 형성된다고 보아야 한다. 즉 mass media에 의해 매개되어 형성된 존재로서의 mass. 그래서, 지금-여기에서 ‘대중’을 mass라고 보지 않을 수 있는 실마리가 존재한다. 大衆, 즉 큰무리와 mass사이의 간격. 지금-여기와 40년전 사이의 간격. (물론 지금-여기에서도 인식의 차가 존재한다. 2002월드컵과 ‘대중’. 동원되었지만, 또 자발적으로 조직된. 미디어가 모았지만, 미디어가 놀라버린.. 여기에서 야기되는 문제는 ‘대중’mass 또는 여러 다른 이름들, 민중, 인민, 시민, pt, 하위주체, 다중, 개중 등으로 이름붙여진 ‘주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적어도 이를 지금-여기의 대중문화와 연결시켜 볼 때 이것을 꼭 ‘매스미디어’에 의해 매개된 문화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존재로는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는 조금 미루어 두어야 한다. 호미바바나 스피박 등을 통과하고 참조만 하면서, 결국에는 그러한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는 전혀 다른 물적 토대 위에 세워진 전혀 다른 ‘대중문화’를 우리는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40년전 에코가 말하는 대중문화는 mass culture의 의미이고 이는 mass media에 의해 매개된 문화를 의미한다. “대부분 아주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화 기술에 문외한인 무작위적인 소비자 대중에게 호소하는 문화 산업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효과를 판매하는 동시에 그러한 제품의 사용 조건을 미리 규정하며, 또 메시지와 함께 그러한 메시지가 환기해야 하는 반응도 미리 처방해준다.” (󰡔스누피󰡕, 103면)

이러한 다시금 오래된 구조와 주체의 문제를 야기하게끔 하는 ‘대중문화’와 ‘대중’이라는 개념틀을 에코는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출판 산업에는 ”문화 상품을 생산해내는 사람들“ 이외에도 특정 시기의 출판 산업 체계를 뛰어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러한 체계를 활용하는 ”문화의 생산자들“도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누피󰡕, 76-77) ‘대중문화’라는 구조 밖에서 ‘개입’할 수 있는 주체 또는 주체효과의 존재.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니까. (이러한 연구자는 마치 「공산당 선언」에서의 pt=문화 소비자와 자본의 생산양식=출판 산업 체계를 뛰어넘는 ‘공산주의자’와 같은 위치에 서 있는 존재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읽기’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이것이 일종의 ‘비판적-건설적 개입’이라고 주장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 과학자들이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란 오늘날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연구하는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반론적인 숙고의 차원에서 진행되던 논의는 실천적인 결정이라는 차원으로, 즉 한편으로는 협력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건설적인 분석이라는 이중적인 형태 속에서 수행되는 개입의 차원으로 이전된다.” (󰡔스누피󰡕, 80) 이러한 에코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그가 보고 있던 40년전과 지금 우리가 보는 현상은 분명 다르다. “특출한 재능을 가졌고 또 공동체의 해석자 역할을 떠맡게 되는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형태의 ”집단 창작“은 결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관계를 온정주의적 관계에서 변증법적인 관계로 전환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자가 후자의 요구와 요청을 해석하는 관계로 말이다.” (󰡔스누피󰡕, 81) 이것이 산업사회의 최대치였을 것이다. 근대-산업사회에서 문화라는 것이 ‘미디어’를 통해 이제 비로소 일반 대중이 소비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교양요소들을 갖추게 되었다면, 이제 오늘날 생산수단이 ‘우리’에게 있다. 인터넷이 접속된 컴퓨터. 생산수단과 문화 노동자의 결합? (문화) 생산양식의 변화는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삶의 양식이 ‘우리’가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분명 있다. (앞서 「공산당 선언」과의 비유를 계속해본다면, 이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서 생산자가 생산수단을 점유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이라는 ‘권위적’이면서 또 ‘권력적’인 주체가 존속하는 것과 비교해볼 수 있다. 전자는 pt를 대변하는 당이 존재함으로서, pt가 구조에 종속된 것으로 남는 것이다. 이제 지금-여기의 문화현상은 ‘일부’ 문화 노동자들이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지만, 실제 그들의 삶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작동한다. 전자가 ‘집단 주체’를 가장한 당에 의해 개인이 소외된 것이라면, 후자는 ‘문화’라는 공간에 앙상히 남은 ‘주체’가 해방의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 이제 다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에코의 위의 질문을 제시하고 이를 변형해보자.

“현재 막연히 매스미디어로만 알려져 있는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산업 사회가 불가피하게 요구하고 있다면, 이러한 매스미디어로 하여금 문화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화적 가치’의 의미.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재귀-조직’으로의 변화.

“지금 당장 과학자들이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란 오늘날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연구하는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반론적인 숙고의 차원에서 진행되던 논의는 실천적인 결정이라는 차원으로, 즉 한편으로는 협력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건설적인 분석이라는 이중적인 형태 속에서 수행되는 개입의 차원으로 이전된다.”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 어떻게 ‘비판적-건설적인 분석이라는 개입’이 되는가? 이 또한 ‘대중문화’의 하나로서? 그러면 이는 ‘이데올로기 투쟁’이라는 개념과 어떻게 다른가? 아니면 결국 그 이야기인가?

3. 또 흥미로운 지점은, 어떻게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적-건설적 분석’이 개량주의적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문화의 영역에서는 개량주의에 의한 현상의 고착화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이 영역에서는 일단 자신을 묶어 놓았던 족쇄에서 풀려나기만 하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점진적인 의식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매스커뮤니케이션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어야 한다. 침묵은 결코 항의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공범 관계를 맺을 뿐이다.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자세 또한 마찬가지다.” (󰡔스누피󰡕, 79) 침묵이 공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비판적-건설적 분석’의 이데올로기성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이것 또한 ‘개량주의적’으로 취급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개량주의자들의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적-건설적 분석’은 어떻게 비개량주의적이 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비판적-건설적 분석’이라는 것은 이 자체로 형용모순인가? 그러니까 그 ‘비판성’과 ‘건설성’의 특징이 무엇인가? 이것은 효과로 사후적으로 판정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매스미디어에 대한 ‘개입’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다. 그 개입은 물론 매스미디어에 의해서 생산된 ‘문화산업’의 내적인 측면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놓여있는 산업적 틀 또한 마땅히 비판의 대상에 올려야 할 것이고, 대중문화 연구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될 성질의 것이 아닐까...

1) 왜 이렇게 인식해야 할까. 대중mass이 mass media에 의해 매개되어 생성된 존재들이라 할 때, mass media에 의해 중개되고 생산된 mass culture에 대한 분석이라는 인식틀이 40년 전 물적 토대에 부합하는 방식이었고, 이를 통해 大衆의 삶의 방식-즉 문화-를 탐구할 수 있었다면, 지금-여기에서의 大衆의 삶의 방식은 꼭 미디어에 의해 매개되어 mass로 형성되는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大衆’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이다. 이를 나이브하게 ‘전체’로 파악하게 된다면 사실 ‘대중’과 ‘대중문화’라는 개념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이는 단지 사람과 문화로 환원가능하기 때문이다. mass와 mass media, mass culture라는 개념은 그 작동방식과 연구대상의 구체성 때문에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여기에서는 이미 상당부분 ‘大衆’의 현실 삶과는 유리된 인식틀이라고 판단된다. 아니면 노동자, pt 또는 subaltern만을 문제삼는 정치적 전제가 강하게 깔린 인식틀도 가능하다. (2번 문제제기 참고)

2) 국문학도들에게는 별로 관심을 끄는 존재가 아니지만, 대중문화이론가나 특히 여성학 전공자들의 관심은 엄청나다. 팬들의 관심은 차치하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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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arvey,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an enquiry into the origins of cultural change(1989)

2.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적 변모

2.1 도입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기본법칙이 계속하여 역사적 지리적 발전을 이루는 변함 없는 동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157)

즉 이윤 추구. 그럼 이윤율의 하락이나 대공황 같은 맑스가 예견했던 자본주의의 필연성은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아님 ‘땜질’ 되고 있는 것인가? (마치 정치 경제학적 맑스주의가 ‘땜질’되고 있듯이? 이를 현실과 이론의 변증법적 발전이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 이러한 ‘땜질’ 중 하나가 ‘조절학파’(regulation school)의 ‘조절이론’(regulation theory)이다. 조절이론은 Regimes of Accumulation(축적체제: ROA) 과 Modes of Regulation (사회 정치적 조절양식: MOR)이라는 개념으로 역사적 변화를 설명한다. ROA는 특정 기간 동안 자본이 조직되고 팽창되는 특정한 형태로 일정한 형태의 안정성을 획득하고 있다. ROA의 핵심 예는 “포디즘”이라 조절이론가들이 지칭하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MOR는 법, 관습, 국가 등, ROA의 작동의 맥락을 제공하는 제도적 실행이다. MOR은 ROA에게 도움이 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조한다. 그러나 가끔은 둘 사이에 긴장이 있게 되고, 이 둘 중 하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이런 양방향성이 고전적 맑스주의에서 토대-상부구조와 다른 점일까? 그 외의 차이는? 자본주의 내에서 일정기간의 안정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 패러다임 교체처럼 세련화된 형태?) 포디즘으로의, 포디즘에서의 변화가 조절 학파에서 이러한 개념으로 설명된바 있다. (이하 http://en.wikipedia.org/wiki/Regulation_school 에서 내 맘대로 편역. 여기서 조절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데이비드 하비를 꼽고 있다. *은 내 생각)

하비가 조절이론에 대해 ‘간략하게 요약될 수 있다’고 한 부분을 살펴보면

축적체제란 ‘총생산량을 소비와 축적 사이에서 장기간에 걸쳐 할당하는 안정된 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생산조건과 임금수입자들의 재생산조건 양자의 변모 사이에 어떤 일치점이 생겨남을 뜻한다.’ ‘그 재생산 표식이 상응하기 때문에(? 국역에는 응집력을 갖추고 있기에로 번역되었는데 원어는 coherent.. schema를 ’표식‘이라는 알 수없는 단어로 번역했는데 도식정도로 번역하면 되는 것 아닐까?)’ 특정 축적체제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러 유형의 개인들-자본가, 노동자, 국가관료, 금융업자, 그리고 다른 정치 경제의 담당자들-의 행태를 결합하여 축적체제의 기능을 원활하게 유지시킬 구도로 만들어내는 데서 발생한다. 따라서 ‘규범이나 습관, 법률, 조절 네트워크 따위의 형태를 띠는 구체적인 축적체제가 작동하여 그러한 과정의 통일성, 즉 개인적 행태들을 재생산 표식에 적절하게 일치시키는 것을 보증해주어야만 한다. 이같이 내재화된 규칙과 사회적 과정을 조절양식이라 부른다.’

이러한 유형의 언어는 우선 발견적 장치로서 쓸모가 있다. 이 이론틀에 따르자면 우리는 복잡한 상관관계와 관습, 정치행위, 문화형태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이에 따라 역동적인 (따라서 불안정한) 자본주의 체제는 적어도 특정기간 동안이나마 적절하게 기능할 만큼의 충분한 질서를 지니게 된다. (157-158)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려면 성공적으로 해결해야만 할 광범위한 영역의 체제 내적 어려움이 두 가지 존재한다. 그 하나는 시장가격기구의 무정부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력의 배치방식을 충분히 통제하여 생산에서의 가치 증가를 보장해줄, 즉 가능한 한 많은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보장해줄 필요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이다. (158)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포디즘이고, 이후 ‘유연적 축적체제’ (flexible accumulation)인 것.

나는 노동통제 관행이나 기술상태, 소비행태, 정치 경제적 권력구도들의 특정한 조합 위에서 전후의 장기호황(1945~1973년)이 일어났으며, 이런 양상이 ‘포디즘-케인즈주의’라고 불릴 법하다는 주장을 전반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1973년 이후 이런 체제가 붕괴되면서 급속한 변화와 변동, 그리고 불확실성의 시기가 닥치게 되었다. 새로운 생산 및 마케팅 체제는 더욱 유연한 노동과정과 시장들을 그 특징으로 하며, 지리적 이동성이 드높아지고, 소비관행이 급격하게 뒤바뀌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체제가 ‘새로운 축적체제’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지 어떤지,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불러일으킨 문화적 전환과 짝을 이루는 기업가주의 및 신보수주의의 부흥이 ‘새로운 조절양식’인지 어떤지는 결코 분명하지 않다. 장기적인 정치 경제의 전개양상을 두고 볼 때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을 보다 근본적인 변화와 혼동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 경제적 실태와 2차대전 후 과거 활황기 사이의 대조점들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체제라 불릴 만한 것으로 넘어갔다는 가설은 최근의 역사를 특징짓는 이야기 방식으로 채택될 만하다. (160)

2.2 포디즘

포드가 특별히 기여한 점은, (그리고 궁극적으로 포디즘을 테일러주의와 구별짓는 것은), 대량생산이 대량소비, 새로운 노동력 재생산 체계, 새로운 노동통제와 관리의 정치학, 새로운 미학과 심리학, 요컨대 ‘새로운 유형의 합리적 모던 대중적 민주사회’를 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한 그의 안목이었다. (161-162)

결국 조절이론이 ‘포디즘’을 하나의 시기로서 이름지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새로운 유형의 합리적 모던 대중적 민주사회’를 의미하기 때문.

전후 포디즘은 단순한 대량생산 체계라기보다는 총체적 생활방식으로 여겨져야 한다.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뿐만 아니라 제품의 표준화를 뜻했다. 이는 또한 다니엘 벨과 같은 많은 신보수주의자들이 훗날 노동윤리 및 기타 자본주의적 덕목들의 보존에 해로운 것으로 여겼던 완전히 새로운 미학과 문화의 상품화를 의미했다. 포디즘은 또한 매우 뚜렷하게 모더니즘 미학에 -특히 모더니즘의 기능성이나 효율성 선호에-바탕하여 세워졌으며 그것에 기여하였다. 국가 개입의 형태들(관료적 기술적 합리성 원칙에 따라 운영됨)과 그 시세틈에 결속력을 부여하는 정치세력들의 판도는 특수 이익 집단들의 균형을 통해 서로 묶여진 대규모 경제 민주주의 개념에 바탕하고 있었다. (173)

결국 조절이론이 고전 맑시즘적 정치경제학 (자본론)에 가한 변형은 토대-상부구조가 아니라 ROA, MOR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의 특정 기간의 ‘regulation'을 밝혀, 그것이 어떻게 특정 기간 안정감 있게 지속되는 가를 설명하는데에 있는 것 같다. (해당 관련서를 몇권 챙겨서 읽어두어야 하겠다. 조금 읽어보니 권현정, <미셀 아글리에타의 자본주의 조절이론에 대한 연구>, 서울대 석사논문, 1993이 시작으로 유용할 듯.)

포디즘의 성과를 모두에게 널리 베푸는 능력, 그리고 적당한 보건 주택 교육 서비스들을 대규모로 또한 인간적이고도 세심하게 제공할 능력, 이 두 가지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176)

국가는 분명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지만, 어느 정도의 ‘조절’이 필수고 때문에 종종 부르주아 계급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맑스의 <자본론>에서도 공장법에 대해서 설명할 때,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이익과 부르주아들의 이익 사이를 구분하는 대목이 있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를 안 망하게 하는 것이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임으로, 국가의 ‘조절’이 필수적이다. 이 국가 조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도화된다면, 결국 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필연성 내지는 과학적 원리는 국가라는 ‘주체’를 과소평가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포디즘이라는 일종의 패러다임이 선진 자본주의의 생산성 향상과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높인 것은 사실이나, ‘모든 사람’이 포디즘의 덕을 본 것은 아니었다. 노동시장은 독점부문과 더욱 다양한 경쟁부문으로 양분되는 경향을 보았고, 포디즘은 전자에만 해당되었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에 따라 버림받게 된 쪽에서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강력한 사회적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민족이나 성, 인종에 따라서 누가 고용에 있어서 특혜를 받는가, 못받는가’가 결정되기도 하는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시민권운동은 도심불량주거지역을 뒤흔든 혁명적 분노로 발전하고, 저임금 직종에 여성이 몰려듦에 따라 그만큼 격렬한 여성운동도 함께 일어났다. 늘어가는 부유함 속에서도 처절한 가난이 존재함을 깨달으며 포디즘에 기대했던 혜택에 대한 불만이 강력한 저항운동으로 솟구치게 되었다. (175 정리)

여기서 하비는 맑스의 논법을 빌어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디즘의 절정에서, 포디즘을 붕괴시킬 것이 나타났다고.

1973년의 경기 퇴조가 포디즘의 틀을 급작스럽게 뒤흔들게 되자, 비로소 축적체제의 급속한(하지만 아직 명확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변화과정이 시작되었다. (177)

 

2.3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

유연적 축적(flexible accumulation)은 포디즘의 경직성에 정면 대응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노동과정이나 노동시장, 제품, 소비패턴의 유연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전혀 새로운 생산부문의 출현, 금융서비스 공급의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업적 기술적 조직적 혁신의 엄청난 강화 등이 그 특징을 이룬다. (...) 또한 이것은 자본주의 세계의 새로운 ‘시공간 압축’국면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시공간 압축’이란 개인적 의사결정 및 공공 의사결정에 드는 시간 지평이 축소되는 한편, 위성통신과 운송비용의 하락을 말미암아 그러한 의사결정이 훨씬 멀리 있는 여러 지역으로 즉시 전파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186)

하비의 ‘유연적 축적’은 바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신자유주의’이며 남한에서는 이데올로기와 이로 인한 자본형식의 변화를 통틀어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조절체제’의 변화와 포스트모던 문화 사이는 어떠한 관련성이 있을까?

새로운 생산 기술(자동화, 로봇)이 도입되고 새로운 조직형태-생산의 흐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고를 크게 감소시키는 적시 배달체계 같은-가 전개됨에 따라 회전시간(자본주의적 수익성의 핵심을 이루는 한 요소)은 엄청나게 짧아졌다. 그러나 소비의 회전시간이 짧아지지 않는다면 생산의 회전시간이 아무리 빨라져도 소용 없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포디스트 제품의 반감기는 5년에서 7년 정도였지만 유연적 축적에서는 섬유나 의류산업 같은 부문에서 이것을 절반 이상 단축시킨 한편 다른 부문-소위 ‘두뇌’ 산업(예를 들면 비디오 게임 및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에선 그 반감기가 18개월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 따라서 재빠른 패션 변화, 필요 유발 기술의 동원 및 문화적 변화에 큰 관심을 둠으로써 유연적 축적은 소비 측면에서도 보조를 맞추게 되었다. 포디스트 모더니즘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미학은 흥분과 불안, 그리고 유동적인 성질을 보이는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에 자리를 빼앗겼다.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은 문화적 형태들에 있어 차별성이나 순간성, 스펙터클과 패션, 그리고 문화의 상품화를 예찬한다. (193)

소비에 있어서의 회전시간 단축을 위해 상품(그 대부분은 나이프나 포크처럼 긴 주기를 가진 것들)의 생산으로부터 이벤트(거의 순간적인 회전시간을 갖는 스펙터클 따위)의 생산쪽으로 강조점이 옮겨진다. (195)

1970년 이래 규범과 습관, 정치적 문화적 태도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동이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과 어느 정도까지 결합되는 것인가(...) 보다 유연한 자본운동은 포디즘 아래에서 길러진 한층 경직된 가치들이 아닌 것들, 즉 모던한 생활의 새로운 것, 유동적인 것, 순간적인 것, 일시적인 것, 그리고 우연적인 것들을 강조한다. 그에 따라 집단적 행동이 더더욱 어렵게 되며(사실상 이것이 노동 통제 강화의 궁극적 목적이었다) 엄청난 개인주의가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에 있어 필요조건으로(비록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기능한다. 결국 새로운 기업형태 및 혁신, 기업가주의 등을 통하여 새로운 생산체계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 이제부터 해야 할 당면 임무는 자본주의의 지배적 축적체제 속에서 그와 같은 주요한 이행들의 뿌리에 대한 해석을 개관하는 일이다.

ps.

국민국가와 초국적자본 사이의 갈등은 포디즘 시대의 전형이었던 대규모 자본과 대규모 정부 사이의 편안한 조화를 깨뜨리면서 활짝 펼쳐졌다. 이제 국가는 훨씬 더 확실치 않은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국가는 국가적 이해를 따져 기업자본의 활동을 규제해야 하는가 하면, 그와 동시에 똑같은 명목 아래 초국적자본 및 세계 금융자본에 대한 미끼로 작용하는 ‘양호한 경영 여건’을 만들어 내야 하고, 더욱 좋은 환경 조건으로 그리고 보다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지역으로의 자본 도피를 저지해야 한다(환관리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208)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국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반자본적인, 적어도 비자본적인 움직임이 ‘국가’라는 형태 또는 매개로 자신을 표출 할 수 있을까?

2.4 이행의 이론화

이 장의 내용은 결국 이행을 이론화 해야 한다는 것; 세 사람의 이론가가 포디즘과 유연적 축적 사이의 비교한 것을 소개하고 있는데, 상식적인 수준.

주목할 것은, 자본주의에서의 필연적인 과잉축적의 흡수는 시공간적 이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 결국 우주로 나가는 것이나, 효용성이 없다고 되풀이 주장되는 MD체제! 우주로만 나가면, 역시 자본주의는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적당한 조절체계만 갖추면.

2.5 유연적 축적: 견고한 전환인가 아니면 일시적 해결인가?

생산이나 노동시장, 소비의 유연성이 전혀 새로운 방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본주의 위기 경향에 대해 금융적 해결책들을 모색한 결과라고 본다.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일로서, 금융체계가 실제 생산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하였음을 뜻한다. 또한 이로 인해 자본주의는 유례 없는 금융위기의 시대를 맞게 된다. (232)

첫째 현재의 상황 속에서 (‘통상적 자본주의’와는 반대되는) 뚜렷한 그 어떤 것을 찾고자 할 때,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자본주의 조직의 금융적 측면과 신용의 역할이다. 둘째로 만약 현재의 축적체제에 어떤 매개적인 안정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시간적 공간적 해결의 새로운 국면과 형태들로 나타날 것이다. 간단히 말해 3세계를 비롯한 기타 부채의 상환을 예컨대 21세기까지 유예시킴으로써 “위기를 미루는 것「시간적인 위기 땜질」”이 가능하며,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노동통제 체계들이 국제적 분업체계 안에서 새로운 생산물이나 생산양상과 더불어 확산되는 “공간적 판도의 철저한 재구성”「공간적인 위기 땜질」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 전체적인 자본축적 논리 속에서 주로 낡은 요소들을 끌어 모아 특수하고도 새로운 조합으로 자리잡게 한 것이 바로 유연적 축적이란 점은 강조되어 마땅하다. (...) 이러한 시공간적 위기의 형태를 살펴봄으로써 포스트모던한 문화적 실천과 철학적 담론으로의 충동적인 전환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와 같은 시공간 경험의 변화에 토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34~235)

이로서 2부의 역할이 끝났다. 어찌보면 ‘유연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아닌지, 예전에도 자본의 움직임은 이 ‘유연성’을 추구한 것이 아닌지가 의문이 드는데 이에 대해 하비는 ‘탈산업화나 공장 이전, 보다 유연한 인사행위와 노동시장, 자동화와 제품 혁신과 같은 사실들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스럽다’라고 주장하며 결국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의 이행’기라는 것이다. 20년 전에 이랬으니 지금은?

어찌됬든 이러한 변화를 강조함으로써, 이를 통해 포스트모던 문화 현상을 토대와 연관지어 설명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 매개로서의 ‘시공간 경험의 변화’를 설정하기 때문에, 하비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강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맑스주의적 시각으로 어떻게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을 설명하겠는가? 물론 이의 전제는 ‘포스트모던’적 현상이 ‘포스트’모던하다는 것. 자본의 작동방식도 ‘크게’ 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스트모던’ 현상도 ‘모던’현상에서 크게 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해야하는, 또 할 수 있는 정치적 실천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그룹이 내가 알기로는 예전 IS그룹, 현재 트로츠키주의자 아닌가? 일방적 단순화겠지만... ) 잘 모르겠다.... 무엇이 변하고 또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그러니 공부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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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따로 대학 따로 “누구를 믿고 공부하나”
입력: 2007년 03월 15일 18:26:28
 
인천 ㅂ고등학교 3학년 홍모군은 교육인적자원부와 대학들의 입시 관련 발표를 접할 때마다 헛웃음만 나온다. “어차피 ‘저주 받은 89년생’인데 상관없다”는 식이다. ‘저주받은 89년생’이란 교육부가 학교교육 정상화 등을 위해 대입제도를 개혁하겠다는 2008년에 입시를 치르는 홍군 같은 학생들을 이르는 말이다.


고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홍군은 교육부 발표대로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대입 제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었다. 그 결과 이런 무시무시한 용어가 1989년생들에게 붙여졌다.

홍군이 고1이던 2005년에 교육 당국은 ‘내신 부풀리기’를 방지한다며 내신 평가 방식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꿨다. 이 조치로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경쟁자가 됐다. 노트 빌리기나 학원 추천 등 사소한 일들조차 ‘비밀’이 돼 갔다. 엄마의 주문으로 매일 밤 10시까지 내신 전문학원 수업을 듣게 됐다. 그래도 이 때까지만 해도 홍군은 교육부에서 2004년도에 발표한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내신 반영 비중이 확대될 것”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2 때인 지난 해엔 ‘통합교과형 논술 광풍’이 불었다. 대학들이 고교 간 학력 차를 극복한다며 통합교과형 논술을 입시에 도입키로 했기 때문이다. 내신만으로는 변별력 확보가 어렵다는 게 대학들의 주장이었다. 선생님들에게 ‘통합논술’에 대해 물었지만 자신있게 대답하는 분을 찾기 힘들었다. 단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유리할 것 같다”는 답만 돌아왔다. 수능·내신 공부도 해야 하는데 책까지 읽을 시간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학원으로 갔다. 학원은 ‘글쓰는 기술’에 대해 가르쳤다. 짜깁기한 교재를 비싸게 팔기도 했다. ‘이럴 때는 이런 단어를 쓰고 저럴 때는 저런 문장을 쓰라’는 식이었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데 그만이라는 논술도 암기식 수업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친구들도 모두 그렇게 하고 있었다.

고3이 된 올해 대학들이 입시안을 발표했다. 수능 비중이 확대됐다. 내신·논술을 못해도 수능만 잘 치르면 명문대에도 진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목고에 다니는 친구는 좋아했다. 내신이 안 좋아 걱정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학년 때는 내신 바람, 2학년 때는 논술 광풍이 불더니 이제 수능 대세론이 불거지고 있다. 부모님은 또 다시 학원에 가라고 한다. 유명한 수능 족집게 학원을 빨리 알아보라고 했다. 인천 지역에 좋은 학원이 없으면 서울에서라도 알아보라고 했다.

홍군은 가끔 ‘실험용 쥐’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왜 하필 이전에 한번도 해보지 않은 대입정책을 2008학년도부터, 그것도 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해에 시행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다. ‘89년생의 저주’가 풀리는 방법은 올 한해가 빨리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고 1~3년간 교육당국과 대학들은 입시 요강을 내놓으면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는 내신·논술·수능의 급격한 변화를 모두 겪었지만 2학기 때 또 뭐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교육부와 대학간의 숨바꼭질이 계속되는 한은 그럴 수밖에 없다.

〈선근형기자 ssun@kyunghyang.com

 

* '국립대'라고 해도, 다른 것이 없으니, 왜 '국립'인가? 지역할당제를 더 엄밀히 실행하던지, 여하튼 존재 이유를 밝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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