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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9
너대니얼 호손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이 책의 표지 그림 설명을 보니 위그 메를이라는 프랑스 화가가 1861년에 그린 주홍 글자라는 그림이라고 한다. 내가 여태 본 민음사 전집의 표지 그림 중 작품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그림은 없었다. 그러니까 출판사에서 편집을 할 때 작품의 분위기와 어울리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작품과 연관이 있는 사진이나 그림을 선정하여 표지로 삼았지 작품을 그대로 본 딴 그림을 표지로 삼았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연결되어 있을 것이고, 화가는 분명히 언어로 된 창작물에서도 영감을 얻을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소설 속 내용을 그대로 옮긴 후 소설과 동일한 제목을 붙이는 경우는 그 책의 삽화가 아니고서야 처음 본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앞을 응시하는 여인의 가슴에 주홍색으로 A글자가 달린 것이 보이며, 이 글자는 여인이 안고 있는 아이 때문에 다소 가려져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것은 오래 전인데, 아마도 중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하필 간통이라는 글자가 알파벳 중 가장 첫 글자인 A로 시작한다는 것과, 간통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를 앞에서부터 한자 한자 읽어나가다가 끊으면 성인, 어른을 뜻하는 말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하나하나 다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그 당시에도 헤스터와 아서가 안 되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 결말에서 펄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암시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당시의 사회에 대한 은근한 비판과 작가 스스로 지향하는 점을 살짝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시대와 현재와는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졌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시대와 현재와는 얼마나 많은 것이 여전히 같은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옷가슴이든 이마빼기든 징표와 낙인이 다 무슨 쓸데없는 소린가?” 스스로 재판관이라고 생각하는 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매정하고 못생긴 또 다른 아낙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계집은 우리 모두를 망신시켰으니까 죽여 버려야 마땅하다니까. 이 세상에는 이런 경우에 적용할 법도 없는가? 암, 있고말고. 성경이나 법령집 속에 분명히 들어 있지. 그런데도 그 법을 우습게 생각했으니 치안판사 나리들은 자기 마누라들이나 딸자식들이 길을 잘못 든다 해도 자업자득이라니까!”
당시 감옥 문에서 시장터까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죄인의 마음에는 그 거리가 꽤 먼 것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비록 그녀의 태도는 도도했지만 아마 자신을 구경하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심장이 한길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구경꾼의 발길에 걷어채고 짓밟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천성에는 놀랍고도 자비로운 섭리가 있어 고통 받는 자는 자기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 당장에는 헤아릴 수가 없고 주로 뒤에 저려 오는 아픔으로 짐작하는 법이다.
이런 외모의 변화무쌍함은 펄의 내면적 삶의 여러 특징을 보여 주었고 또한 그런 특징을 그런대로 반영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았다. 이 아이의 천성은 다양함과 더불어 깊이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천성은 그녀가 태어난 이 세계와 관련되지도, 이 세계에 적응하지도 않았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헤스터의 공포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 아이에게 규칙을 순순히 따르게 할 수도 없었다. 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커다란 법칙이 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아이를 이루는 구성 성분은 어쩌면 아름답고 찬란할지 모르지만 질서가 모두 없어져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비록 질서가 있다고 해도 그 성분은 그것만의 고유한 질서였기 때문에 그 속에서 변화와 배합의 중심점을 찾기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헤스터는 펄이 정신세계로부터는 영혼을 흡수하고 지상의 물질로부터는 육체적 요소를 흡수하고 있던 결정적인 시기에 자신이 어떠했는지를 회상함으로써 이 아이의 성격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었다. 비록 설명한다고 해도 지극히 막연하고 불완전할 테지만 말이다. 어미의 정열적인 심적 상태가 매체가 되어 그 매체를 통해 정신생활의 빛이 뱃속의 아이한테로 전달되었다. 그 빛이 처음에는 아무리 희고 해맑았다고 해도 중간 매개물 때문에 짙은 주홍빛과 금빛, 불길 같은 광채, 검은 그림자, 그리고 강렬한 빛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즈음 헤스터의 정신적 갈등이 펄에게 영구적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헤스터는 광적이고 절망적이고 반항적인 감정, 변덕스러운 기질, 심지어 자기 가슴 속에 깃든 우수와 절망의 그림자까지도 펄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지금은 어린아이의 아침 햇살 같은 기질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만 뒷날 세상에 나가 살게 되면 폭풍우와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될지도 모른다.
괴롭고 수심에 잠긴 헤스터의 헌신적인 삶이 이어지면서 주홍 글자는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멸시를 받는 낙인이 아니라, 함께 슬퍼하고 두렵지만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 어떤 상징이 되었다. 더구나 헤스터 프린은 이기적인 목적도 없었을뿐더러 조금도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슬프고 어려운 일을 모두 가져와 몸소 크나큰 시련을 겪은 그녀에게 조언을 청했다. 특히 여성들이, 상처 받은 사랑이니 버림받은 사랑이니 불륜의 사랑이니 잘못 택한 사랑이니 실수하여 죄를 범한 사랑 때문에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시련을 받고 있는 여성들이, 남들이 돌아보지도 찾지도 않았기 때문에 벗어 놓을 길 없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부둥켜안은 채 헤스터의 오두막집을 찾아와 그들이 불행한 까닭과 그 속에서 헤어날 방법을 묻는 것이 아닌가! 헤스터는 힘닿는 데까지 그들을 위로하고 상담해 주었다. 또한 그녀는 때가 되어 이 세상이 성숙하여 좀 더 밝은 시대가 오면 새로운 진리가 나타나 남녀 간의 모든 관계가 상호 행복이라는 좀 더 굳건한 토대 위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자신의 굳은 신념으로 그들을 납득시켰다. 젊었을 적에 헤스터는 자신이 하나님이 정하신 예언자일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상상도 해 보았지만, 꽤 오래전부터 성스럽고 신비로운 어떤 진리의 사명도 죄로 얼룩지고 수치로 고개도 들지 못하며 평생 슬픔의 멍에를 짊어져야 할 여성에게는 맡겨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할 천사요 사도는 모름지기 여자일 것이로되, 고귀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암담한 슬픔을 겪어서 슬기로워진 것이 아니라 환희의 영적인 매체를 통해 슬기로워진 여성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런 목적을 이룩한 삶이라는 가장 참다운 시험으로써 거룩한 사랑이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그런 여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뒤, 뒷날 그 옆에 킹스채플이 세워질, 오래되어 움푹 가라앉은 헌 무덤 옆에 새 무덤 하나가 생겼다. 그 무덤은 움푹 가라앉은 헌 무덤에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고이 잠든 두 사람의 유해가 서로 합쳐질 권리가 없다는 듯 두 무덤이 서로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비석 하나가 두 무덤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 주위 사방에는 가문(家紋)이 새겨진 기념비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초라한 석판 한 장으로 된 이 비석 위에는, 지금도 호기심 많은 연구자들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그 뜻을 몰라서 어리둥절하지만, 조각한 방패 꼴의 가문 비슷한 것이 보였다. 그곳에는 한 도안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에 붙인 문장관(紋章官)의 글귀는 제명(題銘)이면서 우리가 지금 막 끝낸 전설을 짤막하게 기술하는 구실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 제명은 너무 어두침침했고, 오직 그늘보다도 더 어두운 끊임없이 불타는 한 점 빛 때문에 조금 부드럽게 보일 따름이었다.
“검은 바탕에 주홍 글자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