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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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씨를 읽고 나서 연이어 호손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되었다. 여기 실린 단편에는 괴기스럽고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분위기들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많은데 아마도 이것은 호손이 살았던 19세기 초 미국 사회의 경직된 청교도들의 문화에 대한 일종의 반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 실린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야망이 큰 손님인데, 이 작품은 그러고보니 가장 초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덜한 작품이다. 예전에도 호손의 단편집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다른 작품들은 그때 읽었더라도 한 참 읽어나가면서 내용이 기억이 났던 반면에 이 작품은 첫 장면을 읽자마자 바로 전체 내용이 기억이 났다. 불멸을 꿈꾸다가 실존 자체가 의문으로 남아버린 젊은이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면서, 또 허무함에 이상하게 끌리는 사춘기의 특성상 어딘지 모르게 소설의 부분이 낭만적으로 느껴졌나보다. 다른 작품들은 주홍 글자의 작가의 작품으로서 비전문가인 내가 알지 못하는 문학사적 의의는 있겠으나 일개 독자의 입장에서는 요즘 쏟아져나오는 오컬트무비보다 덜 재미있었다는 감상 정도로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이 책의 표지 그림은 윈슬로 호머의 여름밤이라는 그림인데 처음 발표 후 '달빛과 바다가 어우러진 거대하고 신비로운 풍경 속에서 두 여인이 빚어내는 예기치 못한 대비(뉴욕타임즈)' 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어두운 밤의 느낌으로 무한한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고 이 비밀스러운 세계의 힘에 맞선 인간의 삶의 덧없음과 환희가 주는 환영을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호손의 작품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딱 맞는 그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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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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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눈물이 났다.
가혹한 환경 탓에 조숙해진 소녀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법도 표현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러 몸만 커버린, 그러니까 작가의 표현대로 그냥 늙어버린 소녀는 노인이 되어서야 그때 그 감정을 더듬어 볼 수 있게 된다. 이 자전적 소설에서 3인칭으로 작가 자신을 지칭하는 것은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이제 와서야 거슬러 올라가 더듬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어떤 부분에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부분이 하나 둘 등장한다. 이미 희미해져가고 있는 그 감정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음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인생을 통틀어 한 번 밖에 오지 않을 그 반짝거리는 시간이 정작 당사자는 얼마나 귀한 지도 모르는 상태로 이미 오래 전에 지나버렸다는 슬픔에 찔끔찔끔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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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피게니에.스텔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외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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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5개의 희곡이 실려있는데 그 중 두 개의 제목을 따서 이피게니에. 스텔라 라고 제목을 붙였다.
제목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실려 있는 5개의 희곡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 2개가 이 작품들이다.
괴테는 독일의 시인·극작가·정치가·과학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괴테는 세계적인 작가이지만 실제로 괴테는 자연 연구가이자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작가로서의 괴테가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괴테의 목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모든 작품은 작가 개인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기는 하지만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창작자가 아니라 향유하는 자의 몫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문학을 읽는 의의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그런 재미는 확실히 제한되는 것 같다. 쓴 사람의 목적이 명확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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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9
너대니얼 호손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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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 그림 설명을 보니 위그 메를이라는 프랑스 화가가 1861년에 그린 주홍 글자라는 그림이라고 한다. 내가 여태 본 민음사 전집의 표지 그림 중 작품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그림은 없었다. 그러니까 출판사에서 편집을 할 때 작품의 분위기와 어울리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작품과 연관이 있는 사진이나 그림을 선정하여 표지로 삼았지 작품을 그대로 본 딴 그림을 표지로 삼았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연결되어 있을 것이고, 화가는 분명히 언어로 된 창작물에서도 영감을 얻을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소설 속 내용을 그대로 옮긴 후 소설과 동일한 제목을 붙이는 경우는 그 책의 삽화가 아니고서야 처음 본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앞을 응시하는 여인의 가슴에 주홍색으로 A글자가 달린 것이 보이며, 이 글자는 여인이 안고 있는 아이 때문에 다소 가려져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것은 오래 전인데, 아마도 중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하필 간통이라는 글자가 알파벳 중 가장 첫 글자인 A로 시작한다는 것과, 간통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를 앞에서부터 한자 한자 읽어나가다가 끊으면 성인, 어른을 뜻하는 말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하나하나 다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그 당시에도 헤스터와 아서가 안 되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 결말에서 펄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암시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당시의 사회에 대한 은근한 비판과 작가 스스로 지향하는 점을 살짝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시대와 현재와는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졌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시대와 현재와는 얼마나 많은 것이 여전히 같은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옷가슴이든 이마빼기든 징표와 낙인이 다 무슨 쓸데없는 소린가?” 스스로 재판관이라고 생각하는 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매정하고 못생긴 또 다른 아낙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계집은 우리 모두를 망신시켰으니까 죽여 버려야 마땅하다니까. 이 세상에는 이런 경우에 적용할 법도 없는가? 암, 있고말고. 성경이나 법령집 속에 분명히 들어 있지. 그런데도 그 법을 우습게 생각했으니 치안판사 나리들은 자기 마누라들이나 딸자식들이 길을 잘못 든다 해도 자업자득이라니까!”

당시 감옥 문에서 시장터까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죄인의 마음에는 그 거리가 꽤 먼 것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비록 그녀의 태도는 도도했지만 아마 자신을 구경하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심장이 한길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구경꾼의 발길에 걷어채고 짓밟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천성에는 놀랍고도 자비로운 섭리가 있어 고통 받는 자는 자기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 당장에는 헤아릴 수가 없고 주로 뒤에 저려 오는 아픔으로 짐작하는 법이다.

이런 외모의 변화무쌍함은 펄의 내면적 삶의 여러 특징을 보여 주었고 또한 그런 특징을 그런대로 반영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았다. 이 아이의 천성은 다양함과 더불어 깊이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천성은 그녀가 태어난 이 세계와 관련되지도, 이 세계에 적응하지도 않았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헤스터의 공포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 아이에게 규칙을 순순히 따르게 할 수도 없었다. 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커다란 법칙이 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아이를 이루는 구성 성분은 어쩌면 아름답고 찬란할지 모르지만 질서가 모두 없어져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비록 질서가 있다고 해도 그 성분은 그것만의 고유한 질서였기 때문에 그 속에서 변화와 배합의 중심점을 찾기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헤스터는 펄이 정신세계로부터는 영혼을 흡수하고 지상의 물질로부터는 육체적 요소를 흡수하고 있던 결정적인 시기에 자신이 어떠했는지를 회상함으로써 이 아이의 성격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었다. 비록 설명한다고 해도 지극히 막연하고 불완전할 테지만 말이다. 어미의 정열적인 심적 상태가 매체가 되어 그 매체를 통해 정신생활의 빛이 뱃속의 아이한테로 전달되었다. 그 빛이 처음에는 아무리 희고 해맑았다고 해도 중간 매개물 때문에 짙은 주홍빛과 금빛, 불길 같은 광채, 검은 그림자, 그리고 강렬한 빛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즈음 헤스터의 정신적 갈등이 펄에게 영구적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헤스터는 광적이고 절망적이고 반항적인 감정, 변덕스러운 기질, 심지어 자기 가슴 속에 깃든 우수와 절망의 그림자까지도 펄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지금은 어린아이의 아침 햇살 같은 기질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만 뒷날 세상에 나가 살게 되면 폭풍우와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될지도 모른다.

괴롭고 수심에 잠긴 헤스터의 헌신적인 삶이 이어지면서 주홍 글자는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멸시를 받는 낙인이 아니라, 함께 슬퍼하고 두렵지만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 어떤 상징이 되었다. 더구나 헤스터 프린은 이기적인 목적도 없었을뿐더러 조금도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슬프고 어려운 일을 모두 가져와 몸소 크나큰 시련을 겪은 그녀에게 조언을 청했다. 특히 여성들이, 상처 받은 사랑이니 버림받은 사랑이니 불륜의 사랑이니 잘못 택한 사랑이니 실수하여 죄를 범한 사랑 때문에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시련을 받고 있는 여성들이, 남들이 돌아보지도 찾지도 않았기 때문에 벗어 놓을 길 없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부둥켜안은 채 헤스터의 오두막집을 찾아와 그들이 불행한 까닭과 그 속에서 헤어날 방법을 묻는 것이 아닌가! 헤스터는 힘닿는 데까지 그들을 위로하고 상담해 주었다. 또한 그녀는 때가 되어 이 세상이 성숙하여 좀 더 밝은 시대가 오면 새로운 진리가 나타나 남녀 간의 모든 관계가 상호 행복이라는 좀 더 굳건한 토대 위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자신의 굳은 신념으로 그들을 납득시켰다. 젊었을 적에 헤스터는 자신이 하나님이 정하신 예언자일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상상도 해 보았지만, 꽤 오래전부터 성스럽고 신비로운 어떤 진리의 사명도 죄로 얼룩지고 수치로 고개도 들지 못하며 평생 슬픔의 멍에를 짊어져야 할 여성에게는 맡겨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할 천사요 사도는 모름지기 여자일 것이로되, 고귀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암담한 슬픔을 겪어서 슬기로워진 것이 아니라 환희의 영적인 매체를 통해 슬기로워진 여성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런 목적을 이룩한 삶이라는 가장 참다운 시험으로써 거룩한 사랑이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그런 여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뒤, 뒷날 그 옆에 킹스채플이 세워질, 오래되어 움푹 가라앉은 헌 무덤 옆에 새 무덤 하나가 생겼다. 그 무덤은 움푹 가라앉은 헌 무덤에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고이 잠든 두 사람의 유해가 서로 합쳐질 권리가 없다는 듯 두 무덤이 서로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비석 하나가 두 무덤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 주위 사방에는 가문(家紋)이 새겨진 기념비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초라한 석판 한 장으로 된 이 비석 위에는, 지금도 호기심 많은 연구자들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그 뜻을 몰라서 어리둥절하지만, 조각한 방패 꼴의 가문 비슷한 것이 보였다. 그곳에는 한 도안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에 붙인 문장관(紋章官)의 글귀는 제명(題銘)이면서 우리가 지금 막 끝낸 전설을 짤막하게 기술하는 구실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 제명은 너무 어두침침했고, 오직 그늘보다도 더 어두운 끊임없이 불타는 한 점 빛 때문에 조금 부드럽게 보일 따름이었다.

“검은 바탕에 주홍 글자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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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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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는 과연 누구일까?
매번 온다고 하면서 오지 않는 고도는 과연 누구일까?
하루 종일 고도를 기다리다가 밤이 되면 아이가 와서 고도가 오늘은 못 오지만 내일은 꼭 온다고 이야기한다.
고고도 디디도 지쳐서 포기하려고 하지만 끝끝내 고도가 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들이 포기했으면 하면서도 함께 고도를 기단리는 관객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같다.
이 연극은 왠지 모르게 극본과 실제 무대에 올려진 연극과의 간극이 제일 큰 연극의 무리에 속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 꼭 연극 무대에 올려진 고도른 보러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내 포기하지 못한 희망에 대해 생각하다가, 벌써 10여년전이 되어버린 드리마 선덕여왕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미실: 안다는 것, 지혜를 갖는 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에게 안다는 것은 피로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덕만: 희망은, 그런 피곤과 고통을 감수하게 합니다. 희망과 꿈을 가진 백성은 신국을 부강하게 할 것입니다. 저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 신라를 만들 것입니다.

미실: 공주님, 미실은 백성들의 환상을 이야기하고 있고, 공주께선 백성들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 희망이라는 것이, 그 꿈이라는 것이 사실 가장 잔인한 환상입니다! 공주께서는 이 미실보다 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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