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9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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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만 봐서는 아우라가 아니라 페르소나가 답이 아닌가 싶었다. 

로렌초 리피의 가면을 든 여인.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말하는데 만약 페르소나라는 소설이 있다면 그 소설의 표지로 딱인 그림이었다.

내친 김에 아우라 라는 그림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찾기가 어렵다.


은은하면서도 독창적인 분위기.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 아예 등장인물의 이름을 아우라라고 지은 모양이다.


펠리페가 아우라에게 첫눈에 반했듯이, 이 책을 펼치고 읽으면서 첫눈에 책에 반하게 되었다. 2인칭으로 이어지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단숨에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어디까지고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아니 그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는 있는지. 구태여 여기까지는 현실이 아니었다고 단정지을 필요가 있는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삶 자체가 거대한 환상의 덩어리가 아닐지.


젊음, 영생, 집착... 이런 것들을 그냥 굳이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가며 이 책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그냥 책을 읽으면 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의 실타리가 엉켜 있는데, 그 엉켜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색도 오묘하고 실의 모양이 아름다워 풀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그냥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그 분위기만 더듬어도 정말 좋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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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5
앙드레 브르통 지음, 오생근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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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대한 나의 소양이 짧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나자는 경계선 인격장애, 화자인 나는 자기애성 인격장애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자라는 여성을 이상화하고 그런 여성에게 반해 있는 자기 스스로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느껴지는 화자는 유아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학업을 중퇴한 것도 결국 어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머무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 말한다면 내가 너무 잔인한 건지. 냉소적인 건지.

 

p. 138~140 나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나자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여태껏 단 한 번도, 적어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을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의 의견이 일치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이런 문제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약속 시간에 무관심해지고, 그녀가 말하는 쓸데없는 이야기와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야기를 전혀 구별할 줄도 모르고, 나의 일시적인 기분의 변화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자기가 저지른 아주 나쁜 잘못은 묵인하면서 내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따위는 무시하기로 단단히 작정이라도 한 듯한 태도였다. 그녀는 살아오면서 겪었던 아주 비참한 우여곡절들을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모두 털어놓는 것에 대해서도, 이곳저곳에서 보내 오는 무례한 추파에 정신을 파는 것에도, 그녀가 관심을 돌릴 때까지 눈살을 찌푸리면서 내가 지루하게 기다려야만 하는 것에도, 앞서 말한것처럼 미안해하는 기색 하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물론 그녀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그녀가 절망에 빠져 있지 않고 본인이 자기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상태로 돌아왔을 때, 내가 엄격하게 대한 일을 후회하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게 되더라도, 그녀에게 자신의 진가를 일깨우는 것이 소용없음을 알고 절망하거나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나는 얼마나 여러 번 그녀로부터 달아나려고 했던가? 이런 괴로운 점들에 덧붙여서 어쩄든 그녀가 갈수록 나를 배려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격렬한 말다툼을 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간 적이 없었으며, 게다가 그녀가 있지도 않는 하찮은 이유들을 끌어들여 우리의 말다툼을 더욱더 심각한 지경으로 몰아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로부터 그 사람이 주는 것 이상을 기대하는 욕심을 부리진 않더라도 그의 삶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 사람이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깨어 있거나 잠자거나,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여유 있고 충만한 삶이 되게 하는 것, 그런 것이 현재의 나에게는 있지도 않았고, 과거에도 절대로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외양적으로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한 나자의 정신세계를 고려하면, 이런 내 사정이 달라질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사후적인 것이므로 내 사정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오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말이다. 내가 어떤 욕망을 가졌거나 어떤 환상을 품었다고 할지라도, 나는 어쩌면 그녀가 제시한 높이에 이를 만한 사람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제시한 못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사랑이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의 사랑만이-그러니까 불가사의하고, 있음직하지 낳고, 유일한 것이고, 당황스러운 것이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랑만이-이 세상에서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몇 달 전에, 누군가 나를 찾아와서 나자가 미쳤다고 말했다. 그녀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을 한 끝에 투숙하고 있던 호텔 복도에서 붙들려 보클뤼스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 것 같다.

 

p.144. 내가 정신의학에 대해, 그 학문의 과장된 의식과 성과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경멸감 떄문에 나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p.161. 내 말에 귀 기울이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관념적 존재가 아닌 한 여자로 보일 당신, 키메라 같은 존재로 보일 만큼 나를 압도해 왔고, 지금도 계속 압도하고 있는 그 모든 속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여자일 뿐인 당신, 하는 일마다 사리에 어긋나는 것이 없고 뛰어난 논리가 벼락처럼 번득이다가 치명적으로 내리꽂힐 만큼 모든 일을 수월하게 처리하는 당신, 내 삶의 길에서 당신도 깨닫지 못하는 힘을 내가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려고 나타난, 그야말로 생기 발랄한 당신, 악이라는 것을 소문으로만 알고 있는 당신, 물론 이상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당신, 모든 것을 새벽의 시간으로

 

 

이 책의 첫 문장은 기억하지 못해도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기억할 것 같다.

 

0.165. 아름다움은 발작적인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아름다움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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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2
켄 키지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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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geese in a flock/One flew East/One flew West/And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아카데미 시상식 그랜드슬램

탈원화운동

넷플릭스 래치드

원작자는 싫어했으나 이 책의 표지는 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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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풍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
장 지오노 지음, 박인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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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풍차라는 제목만 보면 무슨 뜻인지 궁금할 수 있는데 실상 폴란드와도 풍차와도 큰 상관이 없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 유명한 나무를 심은 사람의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두 책 사이의 간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충격을 받게 된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내 머리에 지금도 강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때문이다.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은 부드러운 그림 한 점 한 점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우아하게 넘어가는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감탄하며 봤었는데... 그 모습은 꼭 루벤스 명화를 보고 감탄하는 네로의 모습과 비슷했을 것이다.
이 소설의 표지 그림은 에드바르 뭉크의 1984년 작품인 '재'이다. 그야말로 뭉크의 작품이 어울린다.
다른 작품도 아니고 딱 이 작품을 뽑아낸 편집자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아무 정보가 없다면 그냥 이 책의 삽화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인간과 운명의 대립에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는지는 작가마다 다른데 이 두 작품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그 양쪽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작가의 본심일 수도 있고. 아무튼 책을 읽는 내내 나무를 심은 사람이 계속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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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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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무슨 내용이지? 하고 책을 한번 훑어보려고 스륵 책장을 넘기는데 로빈슨, 항해일지, 이런 단어가 획획 지나갔다. 이거 로빈슨 크루소가 떠오르는데? 하고 책 뒤표지를 봤더니, 세상에, 그 로빈슨 크루소가 맞다. 아니 디포가 지은 로빈슨 크루소를 뒤집은 패러디 문학이다.

 

로빈슨 크루소야 뭐 현재 시대에서 고전이 되었지만, 그 고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그러니까 흔히 고전이라고 하면 유명은 한데 내용은 잘 모르고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 아닌가) 로빈슨 크루소는 보통 아이들이 읽는 세계 동화 전집에 꼭 포함된 이야기라서 세세하게는 몰라도 대강의 이야기는 다 안다. 우리 세대라면 노빈손 시리즈도 알 테고.

 

방드르디는 뭔고 하니 금요일이라는 불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로빈슨 크루소가 구해줬던 흑인에게 구해준 요일이 금요일이라 프라이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하인으로 삼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 하인의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것만 봐도 아, 이 소설이 뭘 비판하겠구나 하는 감은 어느 정도 올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99.9% 로빈슨 크루소를 읽었던 게 분명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내용에 대해 자기 스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일단 소설이 상당히 재미있다. 어쨌든 모험기니까.

 

390쪽의 책에서 320쪽부터 작품 해설이 시작된다. 내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여태까지 읽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작품 해설의 비중이 제일 많다. 참고로 작품 해설 전까지는 오히려 쉽게 읽히고 그 다음부터는 천천히 읽힌다. 그만큼 이 책이 학술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은 책이겠지만, 또 그 반면에 이런 저런 내용을 깊게 음미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읽힌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로빈슨 크루소를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던 방드르디가 결말에서 그런 식으로 퇴장한다는 것은, 방드르디 또한 로빈슨 크루소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도구적인 존재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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