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도시를 찾아서
허수경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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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의 책은 처음이다.시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고고학'이라니 하는 생각으로 저자소개를 보니 그녀는 텔레비젼과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독일의 뮌스터 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와 정말 대단하다. 나도 이런 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내가 직접 공부하고 발굴 작업을 해보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아니 그런 생각을 평범한 이가 한다는 것은 글쎄? 다.일단 행동에 옮겨 해본다는 것이 설레고 흥분될 듯 하나 쉽게 접하긴 힘들듯 하다. 무척 고된 일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멜로윈과 함께 오리엔트 발굴지에 있을 때, 그녀는 언제나 영국에 있는 것처럼 생활을 했다. 치마와 모자와 핸드백과 양산 차림으로 뜨거운 발굴장을 오갔던 그녀는 발굴 숙소 역시 영국식으로 꾸려나갔다. 꽃으로 장식된 식탁에는 뜨거운 차와 차에 넣어 마실 우유가 준비되어 있었고 요리사들은 영국식으로 음식을 준비했다.발굴팀은 오리엔트에서 일을 했으니 오리엔트의 현실로부터는 철저히 거리를 유지했다.

 

이 책을 읽어 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알게 되었고 그래서 구매하여 바로 읽어보게 되었다.너무 궁금했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지난번 만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중 64번째 <메소포타미아의 살인> 을 읽고 그 책에 대하여 검색 하다가 이 책에 그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여 호기심에 얼른 읽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일까? 그렇다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남편은 고고학자다.그래서 그녀가 남편을 따라 발굴현장에 따라 다니면서 고고학과 발굴현장에서 벌어지는 추리소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살인' 은 정말 발굴 현장의 현장 부인을 모델로 삼고 발굴 현장을 잘 아는 그녀가 재밌게 썼다는 이야기.영화화 되었던 이야기는 오래전 영화를 보았는데 다시 읽어봐도 재밌다. 역시나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를 축으로 하여 썼으니 더 재밌게 잘 쓴 듯 하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가사 크리스티와 고고학] 이란 챕터로 구분되어 나온다.다른 이의 텍스트로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추리소설의 이야기를 읽는 것 또한 재밌고 더 이해가 오면서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듯 하다.

 

과거는 다만 현재를 살아 가는 나를 통해서 해석되어지는데 현재를 살아가는 나란,다만 나와 시대의 한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저자가 2004년부터 1월부터 2005년 7월까지 일년 반 정도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하고 저자가 고대 폐허 도시들의 발굴 현장의 체험으로 쓴 고고학 에세이다.먼 곳에서 떨어져 지내며 공부하고 발굴 현장에서 햇빛과 낯선 사람과 낯선 음식과 접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인지 힘든 시간도 많았던 듯 하다. 낯선 곳에서 아프면 고향의 맛이 그리워진다. 며칠동안 고열로 시달리며 앓아 누워 있는 동안 누군가 끓여 입에 넣어 주었던 '미음' 한 술이 그녀에게 큰 힘이 되어 다시 일어나게끔 해준 생명과 같은 'ㅁ' 이 되었던 이야기를 읽는 중에는 왜 그리 내가 아픈 것처럼 아니 옆에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뭐지. 그런가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과 나누고 싶었지만 망설임은 문화권의 차이라고 느낀다. 그러면서도 발굴 현장과 모래 속에 묻혀 고요히 잠자고 있는 과거 오래전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에 빠져 들 듯 하다.

 

역사에 너무 문외한이라 재밌게 읽었지만 많이 기억하지를 못한다.읽는 것으로 족하며 이런 역사를 '소설'에서 만나면 더 재밌기에 흥미로워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을 했다.어느 날 울집 뒷산에 갔다가 뒷산이 워낙에는 산이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있었는데 모든 부분이 다 허물어지고 겨우 주민의 쉼터만 남게 된 산인데 그것도 내가 이사 올 때는 산이 제법 컸다.그런 산이 점점 작아지는 과정에서 산을 허물며 묻혀 있던 오래전 역사를 발굴하는 팀들을 자주 만났다. 선사시대 역사가 발견되었던 곳이던가 그런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에 흙을 파내며 나오는 작은 부분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이들을 보았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흙을 걷어내며 그 속에서 집터나 그외 것들을 조각 조각 발굴해 내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더 실감이 났는데 그런 일들을 글로 읽으니 그때의 생각도 나고 타향에서 낯선 것 속에서 조각난 역사를 찾아 맞추는 일을 한다는 것은 더 고되고 어렵다는 것을.먼 훗날 우리가 살았던 시간은 다시금 과거가 되고 누군가는 또 그런 일을 할터인데 저자의 말처럼 서울을 발굴한다면 무엇이 나올까? 우린 무엇을 남겨줄까.고대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재밌게 읽을 듯 하다.이 책을 계기로 그녀의 시집이나 그외 다른 책들을 접해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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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주인자리 네오픽션 로맨스클럽 2
신아인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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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릴 때 별자리책을 참 좋아해서 보았던 기억과 한해가 바뀌면 한 두번은 별자리운세를 보기도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열두번째자리가 아닌 '뱀주인자리'는 열세번째 별자리라고 한다. '뱀주인자리는 영생을 꿈꾸던 의사,아스클레피오스의 별자리야. 그 별자리의 주인은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내는 뛰어난 의술의 소유자였다고 해.' 뱀주인자리를 타고 태어난 쌍둥이 신우와 이엘,그들은 영생을 꿈꾼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꿈이 영생이라고 하기 보다는 '죽기 위하여' 영생이 아닌 죽기 위하여 자신에게 맞는 천사를 찾아 나선다. 자신의 천사인줄 알고 운하의 피를 먹게 되지만 영생이 아니라 운하는 죽음을 맞이했다. 서로에게 영생도 아니고 사랑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 죽음과 아픔 슬픔만 빚었던 사랑으로 이엘과 신우는 쌍둥이면서 서로 대립되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요즘 한참 뜨는 드라마 '별그대'도 잘은 모르지만 영생과 마찬가지처럼 400년 전 부터 생존했던 것으로 아는데 신우와 그들 형제는 100년 전 조선 땅에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들은 신기하게 몸의 이상하게 바뀌면서 살아 남았다. 신우와 쌍둥이 이엘 그리고 그의 동생 준수은 인간의 몸으로 그의 딸 유민은 준수가 구하려고 하다가 잘못하여 하반신 마비로 십대 소녀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하여 준수는 그에 맞는 피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인간으로 돌아가는 법을 늘 연구한다. 그리고 이십대 밝은 청춘으로 살아가고 있는 승윤이 있다. 그들 가족은 '향수' 사업을 한다고 볼 수 있다.벰파이어가 향기에 민감하게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온다.심장이 뛴다.

그녀가 운다.심장이......아프다. 

 

이엘은 수안을 어린시절부터 그녀의 '산타'가 되어서 그녀를 후원하고 있는데 그녀는 그에게 맞는 '천사'이기 때문에 노출이 되면 안되는데 그녀의 마음은 신우에게 기울어 가고 사랑은 이엘과 수안이 아닌 신우와 수안을 연결시켜 놓고 그녀의 존재마져 드러나게 하여 그녀를 위험에 빠진다. 형제 사이에서 우왕좌왕 하다가 자신이 산타를 그리고 있으면서 신우에게 기우는 마음을 접지 않고 뻗쳐 나가게 놔두는 수안,그녀는 그들 형제들에게 어떤 존재로 거듭날지. 영생을 얻으려고 했던 벰파이어가 한 여자로 인해 불멸이 아닌 죽음이라는 삶을 얻기도 하지만 뱀주인자리는 영생의 자리라기 보다는 어쩌면 슬픈 사랑,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거듭나는 자리처럼 벰파이어는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어하고 인간은 더 영원한 것을 원한다.

 

어떻게 보면 벰파이어들의 슬픈 사랑이라 그런가 운명적 사랑이지만 인간과 벰파이어는 연결될 수 없음을,인간은 벰파이어가 될 수 없고 벰파이어는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음처럼 벰파이어와 인간이지만 아무 피나 구걸하듯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꼭 맞는 그 무언가를 찾아야만 하나가 될 수 있는 왠지 한국적인 벰파이어 이야기가 드라마 때문일까 슬프면서도 애잔하게 잔상을 남긴다.사랑은 이루어져도 아름답지만 왠지 모르게 어긋나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찾아 죽음까지 불사하는 그런 사랑을 봐도 아름답다.이엘이 운하가 자신의 천사인줄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 그녀와 하나가 되기 위하여 선책하는 죽음은 왠지 가슴을 울린다. 낯선 듯 하면서도 우린 어쩌면 서양의 벰파이어에 길들여 있었는지 모르겠다.우리식 벰파이어 이야기가 나와도 어색하지 않다는.시공을 초월해서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재밌는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것. 결국 13번째 별자리인 뱀주인자리는 영생을 꿈꾸지만 영생을 얻지 못한,영원히 산다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그들도 영생보다는 '죽음'을 가지려 노력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죽음 또한 또다른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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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잉글리시 티처 푸른숲 어린이 문학 34
박관희 지음, 이수영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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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좀더 밝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세상이거나 이야기였더라면 하는 바람은 어린이 책이라 그럴까.하지만 자식을 키우다 보면 현실을 자식들에게 쉬쉬하다보면 자식들은 부모가 아무런 어려움없이 저희들을 키우준 줄 안다. 너무 많은 이야기는 아니어도 대충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자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에게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이 인생이기에 어쩔 수 없이 힘든 상황이 닥치면 부모만 견디는 것이 아니라 어린 나이의 자식들도 함께 감내해야 할 그런 시간이 닥쳐오게 되어 있다. 부모만 쉬쉬하기 보다는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주고 현실을 대처해나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이들이 받아 들이는데 차이가 있다고 본다.

 

 

<마이 잉글리시 티처> 가끔 뉴스에도 오르내리는 외국인 영어샘들의 적절하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사건이 나기도 하고 이슈화 되기도 하는 일들이 있다. 모두가 나쁜 선생님들이라고 볼수는 없지만 개중에 가르침 보다는 다른 것에 뜻을 두고 이용하려 드는 이들이 있다. 그만큼 우리의 교육,특히나 영어 교육은 과열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부모들의 자세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특히나 엄마들의 입김은 세서 어디 누가 잘 가르친다고 하면 철새들처럼 선생님과 학원등을 가라타기 일쑤인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대도시나 교육열이 쎈 곳에서는 더하다. 영어샘인 토마스가 자신을 '토미'라고 부르라고 한다는 것은 신분상승과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말을 듣는 친구는 '수지'라는 친구 한 명 뿐인데 내게도 토마스는 '토미'라고 부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수지의 표정은 바뀌기도 했지만 자주 얼굴을 볼 수 없다. 나와 친구들 그리고 엄마는 그 한마디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쁜데 왜 수지는 표정도 좋지 않고 이제 이곳에 발길을 끊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 의문은 토미의 집에 가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밖에서는 최고의 선생님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그가 방문교육에서는 그야말로 그의 본 모습을 드러냈던 것,거기에 수지의 모습도 있고 이제 자신의 사진도 앨범에 꽂힐 순간이 왔다. 비로소 이것이 아니구나 느낀 나,수지의 한마디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아빠하고 나하고> 아빠가 회사를 다니실적에는 아빠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하지만 아빠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쇼파에 누워 티비를 끼고 하루종일 있게 된다면...말이 달라진다. 그런 아빠의 낯설은 모습은 하루이틀은 견딜만 하지만 그것이 한 달 두 달을 넘어 간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정 경제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아빠의 실직으로 인해 달라진 아빠의 모습과 그런 아빠를 대신해 집안에서 공부방을 시작하는 엄마,그로 인해 나와 아빠는 집에 들아가면 낯선 사람들이 된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친구 치효와는 그리 친하다고 볼 수 없지만 어느날부터 무척 가깝게 느껴지고 속에 있는 모든 얘기를 꺼내 놓게 되는데 다름아니라 치효 아빠도 실직자여서 엄마가 식당을 차려서 운영중이다,.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친구의 아빠 모습에서 자신의 아빠를 보게 되고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무관심이면서 자신 또한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을 알게 되지만 친구와 그의 아빠를 보면서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나.치효의 어른스런 모습이 가슴을 먹먹하게도 하고 이런 현실이 결코 두 아이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누군가는 현재 겪고 있는 문제일 수 있고 그런 일들이 닥쳐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여인숙에서 사는 아이> 자신을 키워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부득이하게 아빠를 따라 여인숙에서 살게 된 소녀,아빠가 하시는 일이 옮겨 다니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엄마가 없다. 오래전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의 품이 그립기도 하다. 그런 소녀에게 도서관나들이에서 만난 소년은 동병상련을 겪게 하여 둘은 가깝게 되고 마음을 나누게 된다. 그에겐 이쁘고 잘 나가는 엄마도 계신데 그가 많이 아픈가보다. 어느 날 생일잔치에 초대를 하여 최대한 이쁘게 입고 나간 그녀에게 소년의 엄마는 그가 거짓말을 했음을 알리고 그를 만나지 말라 한다. 지금까지 소년으로 인해 행복했던 시간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로인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는데 모든게 다 거짓말이었다니. '모든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자' 라는 강의를 하던 소년의 엄마,강의와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소녀에게 대했던 어름이라는 이름의 행동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왔니> 아빠의 사업이 망하게 되면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선우,그에게 다섯살 동생이 있다. 그 동생이 또 가출을 했다면 역에서 데려오라고 할아버지는 학교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신다. 다섯살 선재는 엄마가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데리러 올것이라 믿고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위험천만한 길을 걸어 역까지 간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 둘을 감당하기엔 버겁고 현실은 할아버지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보육시설에 맡기는 것이 두 형제를 위해서 그리고 할아버지를 위해서는 더 나은 길이지만 할아버지는 결코 그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 걸어가야 그들의 집에 도착할 수 있고 엄마와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어린 선우가 짊어져야 하는 현실의 짐이 너무 무겁다.

 

결코 가볍지 않고 밝은 이야기도 아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현재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이 분명 우리 현실에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비단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린 자식들도 함께 감당해 나가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선우의 부모처럼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는 견디어내야 하고 감당해야 하는 문제라면 현실에 부딪혀야 하는데 피하면서 아닌척 하는 어른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 짐은 고스란히 어린 자녀에게로 간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녀들은 하루아침에 마주한 현실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감당하라고.버려지듯 현실에서 제외되듯 한 어리고 불쌍한 아이들이 어딘가에 어른의 손길을 필요로 하며 있지만 한편으로 무관심하게 무시해 버리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피하지 말고 서로 함께 헤쳐나가려 노력한다면 어떻게 변할까.우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하면서 나도 그리고 누군가도 당할 문제이기도 하다.현실의 이야기라서 더 맘이 아프다.우리 현실은 청년 실업 뿐만이 아니라 40~50대의 실업도 문제이기도 하지만 성적으로 인해 비관 자살하는 이야기는 잊혀질만 하면 이슈가 되는 문제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문제가 고쳐지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와 문제를 어른 뿐만이 아니라 아이의 눈에서도 보게끔 해주는 이야기들이 씁쓸하다. 현실을 회피하기 보다는 마주하게 만들어 주는 이야기라 더 와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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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 삶의 굴곡에서 인생은 더욱 밝게 빛난다
김재식 지음, 이순화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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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이라도 병원생활을 했거나 혹은 몸이 많이 아팠던 이들이라면 오늘 하루가 그리고 함께 하는 가족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이며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것이다.나 또한 두어번 큰 사고를 겪으며 병원생활을 오랜시간 해보기도 했고 병원신세를 해마다 한두번씩은 지면서 가족들의 소중함,바로 곁에서 있는 사람의 소중함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에 감사해야 함을,내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절실하게 깨닫는 시간들었다.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겨 보았던 이들이라면 큰 고난이 와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난 아픔 속에서 더 깊게 솟아 나는 듯 하다.

 

선천적을 아픔을 간직하게 된 사람을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며 살거나 운명처럼 여기게 되지만 후천적 장애나 아픔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변인들도 고통을 감내하기에 힘들다. 그것도 어느날 갑자기 자신에게 찾아 온 고통이라면 정말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척적 아픔보다 후천적인 고통과 더 많이 마주하게 된다. 요즘은 큰 병에도 돈이 있어야 생명이 유지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병과 돈이란 어떻게 떼려고 해도 떼어낼 수 없는 불과분의 관계처럼 되어 버렸다. 집안에 누구 한사람 아프게 된다면,그것이 오랜시간 병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면 우선은 생각하는게 병원비와 그에 관계한 경제적인 여유다. 긴 병에 효자없듯이 한사람 아픈 것으로 인해 집안에 깃드는 그늘과 그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으로 인해 점점 가족이 와해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내 주변에도 그런 이들이 몇 있다. 오랜시간 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으로 있는 아들 뒷바라지로 인해 부모는 점점 살림을 줄여 나가는 이도 있고 결혼과 동시에 쓰러진 아내가 식물인간으로 있어 그도 또한 일자리며 경제가 바닥이 나 이젠 그야말로 벽에 부딪힌 경우도 있다. 가족이기에 포기하지 못하고 떠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내 고통은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 주어진 삶에 감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늘 느낀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의 바닥,더는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에 내가 행복하도록 설계된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 20년 어느날 갑자기 닥친 아내의 고통, 삶의 굴곡앞에서 일도 가정도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아내를 위해 24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남편,그런 사정으로 인해 뿔뿔히 흩어져야 했던 자식들을 생각하면 남편의 맘도 그렇지만 아내의 맘은 얼마나 아플까? 나이 들어보니 아픈 것도 가족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서는 정말 아파도 아픈티를 못 내고 살아가는 것이 '엄마' 의 자리이다.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는 병도 아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마와 싸워야 하고 저자의 말처럼 한번 망가진 건강을 회복하는 것은 달팽이 걸음보다도 더 느리다.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아파 본 사람이라면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더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이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잘 모른다.하지만 한번 쓰러져 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더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다.하물며 병명도 없이 한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정말 왠만한 사람이라면 하늘을 원망하며 살터인데 이 가족에게서는 '희망'을 읽게 된다. 그러니 다른 이들도 그들을 만나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게 되지 않을까. 동병상련이라고 아파 본 사람많이 그 마음을 안다. 주머니를 열게 되는 것도 돈이 넘쳐 흐르는 사람보다 그 마음과 고통을 아는 이들이 더 주머니를 열고 나눔의 삶을 산다는 것.어쩜 딸의 이름까지 나눔으로 어린 딸이 보내야 했던 시간도 감당하기 힘들었을텐데 구김살없이 잘 커주었는지.나도 물론 두 딸을 키우고 있지만 울컥하여 한참을 혼났다.이런 딸을 보면 엄마는 더 힘을 내게 될 듯,아빠 또한 자식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아내의 병간을 하며 '쓰러지지 않고' 버티어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듯 하다.

 

세상에는 빚을 갚는 길이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직접 돌려주는 방법과 언젠가 다른 어딘가에서 선의를 베푸는 방법,그렇지 않으면 이렇듯 애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선의의 도움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런지 설명할 길이 없다.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고통이 제일 커 보인다. 타인의 고통은 보이지도 않거니와 내 고통과 견주어 보았을 때에 타인의 고통은 너무도 미미하게 보인다. 하지만 사람마다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굴곡없는 삶이 없다. 모두가 질곡의 파도를 넘어 맞이하게 되는 파안의 그 시간은 더 값지게 느껴진다.평범한 이라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엄지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 위하여 일년의 시간이 걸리고 귤 하나를 까기 위하여 숱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 시간들을 결코 견디어내지 않고 포기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 값진 감사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터인데 포기하지 않고 곁에서 그리고 아내가 견디어 준 시간이 참 눈물겹다. 책을 읽는 순간에 계속하여 가슴을 두드리는 문장은 '만약에 내가(우리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정말 이런 상황을 맞게 된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보다 작은 고통이어도 살면서 숱한 고통과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고 견디어 왔지만 정말 하나의 선택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물음을 가끔 던지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이 온다면 참아내지 못할 듯 하다. 정말 모두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참아내야 하는 본인도 힘들겠지만 남편의 자리도 자식들의 자리도 한참 힘든 상황이라는 것, 정말 저자의 말처럼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에는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 병원 앞 모텔 병원로비... 막막함은 가장의 자리도 그렇고 그 순간을 또 준비해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내에게 오롯이 함께 하는 시간이 누구에게도 보상받는 것이 아니지만 5년 아니 그보다 더한 시간을 견디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사람이기에 누구가 가질 수 있는 욕심이라 본다.

 

의미가 있다고 매달리던 숱한 일들 중에는 안 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것들이 많다. 의미란 삶의 진행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우리가 관성대로 살다 보니 낡은 의미를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친정아버지가 폐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하실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일까? 정말 마지막이라는 그 시간이 올까?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지? 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평범함을 가장한 거짓된 마음으로 아버지를 마주하는 그 시간이 결코 좋지 않았다.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나쁜 모습과 얼굴보다는 한마디 한번의 마주침에도 좋은 모습과 웃는 얼굴로 그렇게 지내려 애썼고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 아프면서도 어쩌면 아버지께 해 드릴 수 있는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픈 사람도 고통이지만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하는 이들의 고통은 더 말할 수 없이 깊다는 것을 안다.그들이 이겨낸 6년의 시간을 어떻게 말로 다할까? 지난 시간은 고통이라고 하면 이제 희망을 건져 올리며 혼자가 아니라 함께 견디어 내는 시간으로 슬픔이 아픔이 반으로 줄어 들어 달팽이 걸음이라도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마음을 표현한 글이 가슴을 아프게 하고 보다 더 가족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만든다. 산다는 것 별거 아닌데 무얼 바라고 그렇게 욕심을 채우려 사는지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면 나의 오늘도 그리고 가족도 모두가 감사하며 살게 될 듯 하다. 사람은 위를 쳐다보면 살지 못하지만 아래를 보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가족이라는 끈끈한 사랑이 아직은 현존하고 있고 내일에도 있을 것이기에 희망이라고 본다. 꼭 언젠가는 가족에게 따뜻한 밥한끼 해주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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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
조정우 지음 / 북카라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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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역사를 잘 모르기에 읽다보면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하지만 역사소설 대부분이 한 줄의 '의문,호기심'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아 상상력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생각을 하며 읽다보면 재밌다. '기황후' 그녀에 대한 소설은 일찍 기회를 만드려 하였는데 그러지 못했다.관심만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는데 요즘 한참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동명의 드라마를 보질 않으니 그 또한 내용을 잘 모르겠고 드라마의 원작을 읽어볼까 하고 기회를 만들려 했는데 그도 날 빗겨갔다. 그러다 만나게 된 조정우 작가의 <기황후>,말 위에서 하는 '격구'로 시작하여서인지 소설은 속도감이 있고 그는 격구장에서 기완자가 최영을 만났고 그 순간 둘은 사랑하지 않았을까? 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왜,그럴까? 고려인이었지만 공녀로 원에 가 황후의 자리까지 오른 그녀가 호령했던 땅이 아니라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묻혀 있다는 역사적 한 줄 진실에서 시작한다.

 

'<동국여지지>에 의하면 기황후의 묘가 경기도 연천에 있다고 전해지는데,원나라를 호령했던 그녀가 이곳에 안치되었다는 점이 무언가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이끌어 냈고 바로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혹시 연천에 사모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연천이 최영의 고향인 철원과 연접해 있어 기황후가 사모했던 사람이 불세출 명장 최영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축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발췌한 것처럼 왜 원을 호령했던 그녀가 연천에 묘가 있을까? 역사는 아이러니 하기도 하고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승자의 역사라 어느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 앞에서 우리는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기 보다는 중도를 지키며 바른 판단을 해야할 것이다. 아무리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기황후와 최영의 사랑으로 각색되었다고 해도 좀더 넓게 보는 역사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기완자는 위로 오빠 다섯 명과 언니 둘을 두고 있었다고 하니 오빠들 속에서 격구도 하고 좀더 남성다운 면을 가지며 자랐던가 보다. 말을 타고 하는 격구도 시원스레 할 수 있는 그녀가 어느 날 격구대회에 나갔다가 운명처럼 상대편인 철원의 최영을 보게 되고 그들의 운명은 씨실과 날실로 엮이기 시작했다. 첫 눈에 운명을 나누어 가지듯 했지만 최영의 집에서 기씨집안을 받아 들일 수 없어 둘의 운명은 갈라지게 되고 거기에 원의 공녀축출로 인해 둘은 마지막 그 순간에 다시 이어질듯 하던 운명의 끈이 그만 끊어지고 만다. 끝까지 완자를 구해내려고 했지만 완자의 오빠들과 영은 그녀를 원에 보내야 했고 공녀로 끌려 간 그녀의 미모는 출중하여 그들을 이끌던 털털에게도 그리고 황제 토곤에게도 눈에 띄어 귀빈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토곤은 엘테무르의 딸 타나실리와 그의 세력들에 의해 견제를 받고 있었으니 기완자를 황후의 자리에 앉힐수도 없었지만 그의 기귀빈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던가 보다.

 

고려의 공녀로 자신의 어긋난 운명을 아는 기완자,그녀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황후에 오른 후 2년 후에 공녀 선발을 중단했다고 한다. 공녀에서 황후까지 그런가하면 소용돌이 속의 원이나 고려에 큰 입김으로 기황후가 작용했다는 것은 그녀가 미인계 뿐만이 이니라 지략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원에 고려의 복식등을 유행시키기도 한 것을 보면 비록 타지에서 권력을 힘을 주무르고 있다고 안일하기 보다는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그야말로 여인네의 섬세함으로 잘 휘두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권력이란 똑같은 힘으로 작용할 수 없다. 어느 한 쪽을 밟고 올라서야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그렇다고 일인자인 왕의 자리에 올라서도 한시도 자신의 자리를 여유롭게 지킬 수 없었던,바늘방석과 같은 왕위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 또한 주위를 견제하고 자신을 밟고 올라서려는 세력을 처단해야 하며 밑에서 그런가 하면 옆에서도 찌르는 세력을 늘 견제해야 했으니 얼마나 고달픈 자리인가. 원도 고려도 한참 힘이 안으로 밖으로 들쑥날쑥 하던 시대에 기황후는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고려를 도우며 자신의 자리 또한 보전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든 자리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가하면 그녀의 오빠들은 여동생이 원의 황후가 되었으니 얼마나 또 기세등등하였을까? 엘테무르가 자신의 딸과 양아들을 이용하여 천하를 호령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오빠들 중에도 분명 그런 인물이 있었던가 보다. 오빠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원이 고려와 전쟁을 하기도 했다지만 그 속에서는 오해도 있고 그 오해로 인해 사과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그녀가 아무리 힘이 기울었다고 연천에 묘를 썼을까? 그녀와 힘을 겨루었던 고려의 공민왕,학창시절 그의 노국공주와의 사랑이야기에 역사를 좀더 재밌게 풀어 내었던 선생님의 수업이 기억나기도해서 노국공주와 공민왕의 이야기를 찾아 읽기도 하고 드라마를 재밌게 보았던 그런 때도 있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어느 한부분 이야기 보다는 전체적인 역사적 흐름을 볼 수 있게 속도감 있게 역사를 펼쳐 보인다. 기황후와 함게 원에서 십여년을 머물렀던 왕기 공민왕,그가 원에서 반한 처자 노국공주와 사랑을 이루게 되기도 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치기도 했던 인물.힘은 처음과 똑같은 크기로 작용하지 않고 점점 세력을 키워 나가던가 아니면 점점 세력을 일던가. 나라가 기울면서 기황후의 힘도 기울었듯 기황후와 최영의 사랑도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평행선을 달리듯 서로 다른 길을 가야만 했고 기완자가 공녀에서 기황후라는 운명을 받아 들이고 자신의 운명에 휩쓸리며 그녀만의 대륙적 힘을 발휘했듯이 최영이라는 인물 또한 그녀와는 이루어지 않았지만 그나름 그녀 못지 않은 힘을 발휘하며 한시대를 호령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듯 하구나! 이제 여인으로서의 삶은 끝나고 어미로서의 삶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기황후가 원의 황후였고 비록 고려와 전쟁을 치르기도 해야 했지만 그녀의 본성 안에는 '고려인'의 피가 흐르고 있고 아들을 낳은 후 모성에 의해 더 단단한 대륙의 힘이 나오지 않았을까? 대륙에서 자신을 지켜야 하고 아들을 지켜야 하는 어머니로서의 힘은 누구도 그 단단한 껍질을 깨지 못했을 듯 하다. 황후보다 강한 것은 그녀 안에 있는 어머니의 힘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겐 기황후에 대한 기록이 얼마 없다고 해도 공녀의 신분으로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녀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고 본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어느 프로에서 잠깐 보았는데 그들이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정말 글로 다 풀어낼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이,그리고 그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서로 이민자들끼리 뭉쳐서 한덩이로 힘을 발휘해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그녀가 우뚝 서기까지 어떠한 힘이 작용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결코 나쁘게만 볼 수 없는 대단함이라고 본다. 한 나라를 호령하고 고려까지 그 힘을 뻗친 기황후,이 책을 읽으니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저자가 기황후와 최영의 사랑에 촛점을 맞추어 풀어냈다면 다른 시선은 어떻게 그녀를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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