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로서 흑인여성 이미지를 지속시키는 것은 인종, 젠더, 계급 억압을 이데기올로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 억압의 형식을 가로질러 존재하는 특정한 기본적인 관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관념들 중 하나는 사람, 사물, 관념을 두 사이의 차이에 기반하여 범주화하는 이항적 사유이다. (131)

 


이항적 사유방식에서 차이는 대립으로 정의되는데, 오로지 서로 반대항으로 정의됨으로써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항적 사유에서 한 요소는 타자로 대상화되어 조작되고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는데, 백인에겐 흑인이, 남성에겐 여성이, 이성에겐 감정이, 문화에겐 자연이, 정신에겐 신체가 대상화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차이에 의해 자신과 타자의 다름을 인식하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나, 이러한 이분법이 대칭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남성 중심적, 서구 중심적, 미국 중심적, 서울 중심적 사고라고 비판하는 논리는, 말하는 주체(the definer, subject)와 그에 의해 규정된 대상(the defined, object)의 존재를 전제한다. 주체(one)가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삼아 나머지 세계인 타자(the others)를 규정하는 것, 다시 말해 명명하는 자와 명명당하는 자의 분리, 이것이 이분법이다. 즉 이분법은 대칭적, 대항적, 대립적 사고가 아니라 주체 일방의 논리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29)









『오리엔탈리즘』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도 이 지점을 지적한다. 민족적으로 다소의 차이는 있더라도 대부분의 동양인은 유아상태’(75)에 처해있다고 믿었기에, 다수의 유럽 지식인들에게 동양은 서양의 가르침또는 지도가 필요한 존재였다. 18세기 중엽 이후 유럽에서 동양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유럽은 언제나 강자의 위치를 차지했다(80). 오리엔탈리스트에게 동양이란 있는 그대로의 동양이 아니라 동양화된 동양이다(192).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 서양이 해석하는 동양, 서양이 이해하는 동양만이 동양으로서의 위치를 부여받았던 것이다.








인간이 자기를 생각할 때 반드시 타자를 생각하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이원성의 표시 아래서 세계를 파악한다. 이원성은 처음에는 성적 특성을 띠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자기를 동일자로 생각하는 남자와는 자연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타자의 범주에 분류된다. ‘타자는 여자를 포함한다. 처음에 여자는 타자를 홀로 대표할 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타자 속에서 또 세분이 이루어진다. (『2의 성』, 98)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원형(『양성평등에 반대한다』, 30)이다. 그리고 이는 대칭적이지 않다. 남과 여의 구별이, 대칭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 건 매우 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남자, 여자, 우리 모두 이렇게 사이좋게, 평화롭게 (모두 알다시피 사이좋게평화롭게는 강자의 언어다) 같이 살면 좋을텐데, 페미니스트라는 여자들은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여자만의 권리를 주장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대립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결과라는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강남역 사건과 같은 여성혐오 범죄에 대해서도 남성혐오를 부추긴다고 목놓아 울부짖고, 인증 절차를 여러 번 거쳐야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n번방 출입이 뭐가 그렇게 나쁜 일이냐 되묻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의 주인으로서의 인간 남자와 타자로서의 인간 여자가 출생에서부터 사망시까지 여아살해, 여성할례, 불평등한 교육 및 취업기회, 남녀 급여 격차, 승진 제한, 결혼지참금 폭력,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 임신, 출산으로 인해 고통받고 차별받는 이유가 여자이기 때문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쉬운 말로, 진짜 더 쉬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려온다.





알려진 모든 인간사회에서 최고로 중요한 위계질서가 하나 존재한다. 바로 성별이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적어도 농업혁명 이후로는 그랬다. (212)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농업혁명 이후로는 쭈욱.

인류 역사 내내.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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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1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농업혁명 이후로는 쭈욱.
인류 역사 내내.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유발 하라리가 명쾌하게 짚어주니 좋구나.. 싶었던 기억 소환.

단발머리 2020-05-15 20:26   좋아요 0 | URL
인류 역사 기술할 때 여자는 왕비, 여왕, 공주 몇 명 이름 넣어주고 마는데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핵심을 한 번 짚어주더라구요.
그점에 대해선 박수를 좀 쳐주고 싶습니다^^

수이 2020-05-1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여기 자주 놀러오면 안되겠소. 오면 읽고싶고 사고싶고 그런 책들이 너무 많아서리......

단발머리 2020-05-15 20:2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오세요~~~ 자주자주 오시어요. 놀러 구경하러 오시어요~~~~~
 


터키, 중앙 아나톨리아의 카파도키아 평원에는 지하도시가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데린쿠유이다. 기원전 15세기를 전후해 히타이트인들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로마와 비잔틴 시대를 거쳐 더 확장되었으리라 추정된다. 깊이 85m, 지하 20층의 규모이고, 작은 방들과 주방, 창고, 교실, 환기구 등이 보인다(<저스트 고 터키> 380). 박해를 피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위한 다양한 종류의 방어문을 가지고 있다. 벽에는 길을 알려주는 암호가 있는데, 외부인이 침입했더라도 길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한다. 가이드는 몇 해 전에 안내를 무시하고 혼자 이동했던 일본인 관광객이 실종됐다는 말도 더했다.

 










신앙인으로서 감상을 예상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동굴로까지 피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했다. 순교자일 뿐 아니라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해 동굴에까지 자신의 몸을 숨겨야만 했던 사람들의 간절함을 생각했다. 그들의 믿음, 그들의 신념, 그들의 확신. 그런 것들이 내게 전해질거라고 예상했다. 내가 기대했던 감상은 그런 것들이었다. 세속주의에 물든 나의 나약한 믿음은 깊은 동굴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또 그들을 부러워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들의 믿음을, 그 신앙의 절개를.

 

몇 번째 방이었을까. 관광객들을 위해 현재는 내부가 훤히 보이는 모습이지만 당시 사람들이 생활할 때는 천을 문처럼 덧대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옆의, 그 옆의, 그 옆옆의, 그리고 아래와 그 아래아래의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지냈다는, 지내야만 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답답했다. 평생을 같은 사람들과 지내야만 한다는 것. 싫어하는 사람을 피해 도망갈 수 없다는 것. 보고 싶지 않은데 계속 봐야 하는 사람을 피해 도망갈 수 없다는 것.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것. 싫어하는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는 괴로움과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는 절망. 그런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동굴에서 얼른 나오고 싶었다.

 


터키는 광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라이다. 열기구를 타고 내려다보는 괴레메 계곡의 나라이고, 파묵칼레의 나라이다. 셀주크의 나라이고, 제국의 강인함을 간직한 나라이다. 아야 소피아의 나라이고, 블루 모스크의 나라이다. 이 모든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지만, 터키에서 내게 특별한 딱 한 장소만을 고르라면 난 데린쿠유를 고를 것 같다. 데린쿠유는 관광 스팟이 아니라 감정을 전해준 장소이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데린쿠유가 생각난건, 이 문단 때문이다.

 


그만 좀 해라, 토비. 그녀는 자신을 타이른다. 고립무원 상태거나 조난을 당했거나 포위 상태에 있는 닫힌 공동체에서는 바로 이런 식으로 문제가 시작된다. 질투, 불화는 집단 사고의 담벼락에 생긴 구멍이다. 사소한 증오심을 키우고 하찮은 분노를 마구잡이로 방출하며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질러 대고 그릇들을 내던지는 등 어두운 자아로 인해 우리의 주의가 산만해지고, 그 결과 우리가 깜빡 잊고 잠그지 않은 문을 통해 우리의 적, 살인자, 그림자가 슬며시 들어오게 된다. (182)

 


끝없는 탐욕과 이기심의 결과로 인류는 멸망하고, 순진무구한 신인류 크레이크와 소수의 인간만이 살아남았다.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공동체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리고 질투. 보기 싫은 어떤 사람과 보고 싶은 어떤 사람. 그들을 피해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을 때, 바로 그 때 토비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스스로에게 무어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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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1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터키에 갔을 때 카파도키아가 가장 인상깊었더랬습니다.
이건 뭘까. 신앙은 뭘까. 여기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다시 가고 싶네요, 그곳.

단발머리 2020-05-13 10:02   좋아요 0 | URL
전 뭐랄까요. 예상치 못한 생각에 움찔해서 그 곳을 방문했을 때는 그렇게는 좋지 않았는데 자꾸 그 곳에서의 감정이 생각나요.
오래오래 기억날 장소 같고요.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평원과 나무숲 사이에서 우리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강인한지... 그런 생각도 했더랬죠.
저도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요.
 
















주일에는 엄마, 아빠, 이모와 이모의 외손자 둘이 집에 놀러 왔다. 포장해 온 해물찜이랑 피자를 펼쳐놓고 맛있게 먹고 다 치우고 났을 때쯤 친구들 만나러 갔던 사촌 동생이 합류했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별로였나 사촌 동생은 말이 없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전력질주하는 6세 아들과 이제 막 걸음마를 배워 쿵쿵 걸음마 자랑 중인 3세 딸을 하염없이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내게 묻는다. 언니, 언제부터 걸어 다녀?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롱이도 참 빠르고 날쌔고 거침이 없었는데 근데 쟤가 언제부터 걸어 다녔지? 생각해보니 학교 가는 길에는 신발주머니 흔들며 걸어가지만 교회 갈 때는 지금도 뛰어가는 것 같고. 탁구 치러 갈 때도 뛰어가고. 그래도 이제 적어도 집에서는 뛰지 않으니까. 3때까지만 기다리면 되지? 그때까지만 뛰는 거지? 하고 또 묻는데, 이젠 머리 속이 복잡하다 못해 하애진다. 그러니까 쟤가 언제부터 걸어 다녔지? 언제까지 뛰어다녔지? 그러니까 어제까지 아장아장 걷던 저 애가 언제 저렇게 컸지? 언제 중딩이 되었지?



개학이 또 연기됐다. 쾌재를 부르며 춤을 추며 방문을 나서던 24시간 실크잠옷 고딩은 금세 눈치를 채고 엄마, 어떻게 해요?’라며 슬픈 척을 한다. 나와 같은 심정으로 학교 갈 날만 기다리던 중딩은 에잇,하고는 나와 같은 맘으로 안타까워한다. 처음 개학이 연기 됐을 때 지혜로운 친구는 그냥 저냥 이렇게 1학기가 지나가겠구나 예상하던데, 내게는 그런 지혜가 없어 또 잠시 희망을 가졌으나. , 우리는 서로 이렇게나 많은 영향을 주고 받고, 또 바이러스도 주고 받는구나.


신나는 노래와 잔잔한 노래를 같이 골랐다. 헨리는 피아노도 잘 치고, 바이올린도 잘 켜서 참 좋겠다. 수현은 목소리가 정말 백 만불 짜리다. 한 번은 신나는 노래, 한 번은 잔잔한 노래를 듣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 모든 연속적인 일들의 결말은 무엇일지. 이 현실은 우리의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되어버릴 것인지. 모르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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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5-12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가을을 기다려야 할까요? ㅜ ㅜ

단발머리 2020-05-12 18:46   좋아요 0 | URL
여름 방학은 하는 걸까요? 쭈욱 여름까지일까요? ㅠㅠ

mini74 2020-05-12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 고3 날로 살만 찌고 있습니다. 성격도 밝아지고 우리집 개님이랑도 아주 죽고 못사는 사이가 ㅠㅠ 다 같이 힘내지요 ㅎㅎ

단발머리 2020-05-12 20:2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내용 모두 반가운 소식이에요. 살도 찌고 성격도 밝아지고 개님이랑도 사이좋구요. 같이 힘내요, mini74님!!!

책읽는나무 2020-05-1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뭐~~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
낼모레 고3 아들 개학하는 줄 알고 교복 다림질 좀 하려 했더니 덕분에 일주일 미뤘네요ㅋㅋ
울집 고3 녀석은....좋아 실실 웃으면서 개학 연기됐다는데...저건 해탈의 가면을 쓴 나일롱 고3!!!! 중딩딸들은 친구들 보고 싶다고 한숨!!
옆에서 나또한 한숨!!!!ㅜㅜ

그나저나 비긴어게인 한참 몰아보기 하면서 우와~~감탄한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딱 박정현 사단들 까지만 봤어요.나중에 이적팀꺼는 좀 재미가 없어서 시청 중단ㅜㅜ

단발머리 2020-05-13 10:08   좋아요 2 | URL
저희 애들은 체육복 등교라 전 교복은 생각도 못하고요. 이제 진짜 가려나, 하고 있었는데 일이 또 이렇게 되네요.
저도 막상 가겠다고 하면 좀 불안할 것 같기는 해요. 특히 강아지마냥 안고 뒹그는 남자아이들은 좀 더 그렇구요.
아무리 그래도 고3이면 마음이 많이 쓰일 것 같아요ㅠㅠ 해탈의 경지에 이르신 책나무님께 응원한 격려를 담뿍! 보냅니다.

전 맨날 뒷북이라서요. 이제야 비긴어게인을 보네요. 세상에, 윤도현이랑 이소라가 나왔었더라구요. 비긴어게인 1에요.
클립 몇 개만 봤는데 그게 진짜 길거리 공연 같아요. 뒤로 갈수록 점점 만들어진 느낌이 있어서요. 전 수현 좋아하게 됐어요. 헨리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학 전까지 정주행 가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학적이지 않고, 문학적 소양 역시 부족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는 누가 뭐래도 문학이다. 시는 아니고 희곡도 아니니까, 소설. 독서는 취미이고, 여가활동이고, 공부의 일환일 수 있지만, 독서는 어디까지나 행복한 탈출이기에. 가장 확실하고 쉬운 탈출은 책 속으로의 탈출이고, 가장 쾌적한 조건은 소설로의 탈출이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면 끝이다. 그 곳은 이미 다른 도시, 다른 나라, 다른 세계다.


페미니즘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정확히 비춰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신체에 따라 사람들을 어떻게 구속하는지, 그것이 문화적 신념으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페미니즘은 설명해 준다. 이를 테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관계.





한 쪽에서는 한 세트의 여성이 노예화되고 착취당하고또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다른 쪽에서는 또 한 세트의 여성이 질적으로 다른 유형의 노예화를 경험한다한 쪽이 다른 한 쪽의 결과이자 조건이 된다. (264)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결합을 통해 제3세계의 여성들 뿐 아니라 제 1세계의 여성들도 고통 받고 있다. 국제노동분업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의 여성은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의 결과로 제일 먼저 해고되었다(263). 직장을 잃은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남편의 임금으로 집에 머물며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이제 제1세계의 여성들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성의 화신으로서 가정의 천사가 되어야만 했으며, 상품의 소비자로서만 주목받았다. 가정주부가 된 여성들은, 사회적 고용 관계 없이 남편의 수입만으로 생활하는 여성들은 조직화 되기 어려우며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에 반대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3세계의 여성들은 임금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직장에 나온 가정주부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온전한 임금을 지불받지 못 한다. 3세계의 여성들 중 특별히 농촌 여성들은 가정의 주요 부양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주부화는 저임금을 정당화한다. (262) 1세계 여성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구매하고 폐기해 버리는 상품은 제3세계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비인간적 노동시간, 저임금으로 얻어진 것이며, 이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교묘한 결합으로 가능했다. 양 세계에 속한 여성을 모두 억압해 얻은 결과이다.


 

이렇게 우리 삶의 감춰진 비밀을 비춰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페미니즘 도서를 읽다가 소설을 다시 읽게 되면. , 읽히지가 않는다. 그 세계로 들어갈 수가 없다. 문이 잠겨있다. 누군가 안쪽에서 문을 잠가 버린 것 같다. 절망감에 다시 페미니즘 책을 펼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문학적이지 않고, 문학적 소양 역시 부족하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9회말 2아웃, 풀카운트. 구원투수는 마거릿 애트우드다. 그녀는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다. 나를 정원사 토비로, 비늘클럽 브렌다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이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다.


소설 속 세계는 노화를 넘어 불멸을 추구한다. 새로운 장기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장기 돼지를 만들고, 주름진 피부를 벗겨내고 새로운 피부를 이식한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쾌감을 위해 환희알약을 제조해내고, 결국에는 신인류의 창조에까지 다가선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지구와 지구의 동식물들은 멸종상태에 처하게 되고 인류는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애트우드는 소설 그 자체, 이야기가 가진 만으로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완성했다. 세어보니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을 모두 6(한글책으로는 7) 읽었다. 남아 있는 그녀의 책을 모두 다 섭렵하는 게 올해의 계획이 되고 말았다. 기쁘게도.




































이 책은 온통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나의 고민은 책의 내용을 말하지 않으면서 이 책의 근사함을 어떻게 전할 수 있는가,이고 현재로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을 당장 읽을 수 없다면, 읽어야할 다른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면, 알라딘 택배 상자가 이만큼 쌓여 있다면, 이 디스토피아 미친아담 3부작구입만으로도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듦새가 얼마나 예쁘고 우아한지에 대해서라면 보탤 말이 없다. 765홍수의 해』를 단번에 읽은 사람의 사소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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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0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앙 너무 근사한 리뷰. 쾌적한 탈출 페미니즘의 콜라보, 애트우드 대모님 만세!

단발머리 2020-05-12 19:46   좋아요 1 | URL
만세 만세 만만세! 애트우드 만만세!!!

다락방 2020-05-13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큰일났네. 저는 이 시리즈 1권만 사두고(집에 잘 있겠죠?) 말았는데, 이 페이퍼 읽고나니 일단 시리즈 다 사둬야 되는거네요? 아이참 큰일났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20-05-15 12: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시리즈 1권 구매 인증샷 기억나요. 방금 올라온 사진에도 책이 가득하던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ㅋㅋㅋㅋㅋ축하드려야겠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재 256.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 소개를 보면 이렇다.








































대표작으로 시녀 이야기(1985), 『고양이 눈』(1988), 『도둑 신부』(1993), 『그레이스』(1996) 등이 있으며, 2000년 발표한눈먼 암살자』로 부커 상을 수상했다.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통해 페미니즘 작가로도 평가받는 동시에, 외교 관계, 환경 문제, 인권 문제, 현대 예술, 과학 기술 등 다양한 주제를 폭 넓게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 작가로만 평가하고 싶지만, 외교 관계, 환경 문제, 인권 문제, 현대 예술, 과학 기술에 대한 그녀의 이해와 통찰의 깊이 때문에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페미니즘 작가로만 한정하고 싶지만, 그녀의 역량이 차고 넘치기에. 그런 느낌이 든다.   

















『금색 공책』의 저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도 생각난다. 도리스 레싱은 자기가 페미니즘이라는 틀에만 묶여서 해석되는 것에 반대했다. 『금색 공책』은 사회주의에 투신한 등장인물들이 체재 내부에서 겪는 혼란과 갈등을 첨예하게 그려냈다. 많은 양의 서술을 이 부분을 조명하는데 할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도리스 레싱을 페미니즘 작가로 한정하고 싶어했다. 여성 작가의 성에 대한 응시가, 여성의 성애에 대한 솔직한 토로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딱 그렇게로만 해석하고 싶어했다. 도리스 레싱은 여러 번 공개적으로 세간의 이런 평가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우호적인 평론가나 비판적인 평론가나 양쪽 공히 이 책을 ‘성 대결’에 관한 작품으로 ‘격하’했다. 그러나 레싱은 이 모든 혼란을 겪은 뒤 써 내려간 1971년판 서문에서 자신이 여성해방운동을 지지하는 것과 별개로 “이 소설은 여성해방운동의 응원가가 아니었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분리와 분열을 딛고 넘어선 ‘통합’이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임을 거듭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알라딘 책소개)




한 때, 내 안의 한 지점을 밝혀주었던, 진심 좋아했던 작가는 일생의 작업이라며 철학 관련 책을 펴냈는데, 페미니즘 사상가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그것을) 하나의 사상으로까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이런 의미였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됐다. 안녕이라고.  


페미니즘을 이렇게 폄훼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그것이 옳은 판단이라거나 옳은 행동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밖에 하지 못 하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의 한계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남성을 인간의 표준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기껏 여성작가, 여류작가들의 이야기가 진지하게 읽힌다는 것 자체가 불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랴. 마거릿 애트우드는 외교 관계, 환경 문제, 인권 문제, 현대 예술, 과학 기술에 대한 문제의식을 적확하게 드러냈고, 도리스 레싱은 서구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반전(反戰), 공산주의의 몰락 등(알라딘 책소개)의 첨예한 주제를 혁명적 형식을 통해 정면으로 드러냈다여성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히 꺼내 놓았고, 여성들이나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라는 속임수에 빠지지 않았다. 페미니즘 작가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고, 너끈히 이겨내 살아남았다. 위대한 작가. 위대한 작가로.  




이 책에 관심이 생긴다.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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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0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사랑합니다!

단발머리 2020-05-07 22:2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아이러브유! 😘

수이 2020-05-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는 실패하지 말자. 아뵤.

단발머리 2020-05-07 22:46   좋아요 0 | URL
암요 암요!! 아자아자!! 💪

유부만두 2020-05-08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도 있어요.

전 철학책에선 늘 좌절...ㅠ ㅠ

단발머리 2020-05-08 07:26   좋아요 0 | URL
우앗! 유부만두님 감사해요. 검색해보니 동네 도서관에 페넬로피아드 있다고 하네요. 페넬로페의 속마음 토크인가봐요.
너무 기대됩니다 호호호

저도 철학책은 늘 메롱인지라 ㅠㅠ

유부만두 2020-05-08 08:49   좋아요 0 | URL
오뒷세우스의 페넬로피아드 버전이에요. 그런데 지금 현대를 (지하에서) 아는 페넬로피아죠. 패로디인데 매우 유쾌해요.

단발머리 2020-05-09 14:18   좋아요 0 | URL
디스토피아 3권 시리즈 끝나면 그 책도 읽어보려 합니다. 근데 오딧세이나 패러디면 오딧세이아를 먼저 읽어야 하나 그런 생각도 언뜻 들기는 하네요@@

유부만두 2020-05-09 15:12   좋아요 0 | URL
그러다 저처럼 삼국지 샛길로 빠지시면 어쩌죠?;;;

단발머리 2020-05-09 16:41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하! 오딧세이아가 삼국지로 가는 길이지요. 저는 삼국지 백만년전에 1권 읽다가 포기한 후로는 쳐다보지도 않아서요.
괜찮지 않을까~~~~~싶습니다^^

비연 2020-05-0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작가는 하나의 영역에 가두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 같아요. 페미니즘작가라고 한정지어버리면 그 작가의 작품을 보는 관점이 하나로 박혀서, 그의 다른 넓은 세계에 대한 이해는 아예 처음부터 제외되니까요.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은 <시녀이야기>와 <그레이스>를 봤는데.. 얼른 <증언들>을 읽어야겠어요.
도리스 레싱의 <금색공책>도 책장에 버젓이 있고.. 레싱의 <다섯째 아이>와 <런던 스케치>만 봐도 그의 작품이 하나의 고정된 시선으로 보기엔 너무나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말이죠. 아.. 읽을 책이 참으로 많습니다...

단발머리 2020-05-09 14:1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좋은 작가를 하나의 영역에 가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죠. 물론 작가가 깊이 천착하고픈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마거릿 애트우드나 도리스 레싱은 그런 작가는 아니니까요. 그러고 싶어하는 그런 몸짓이 무척 아쉽습니다.

전 도리스 레싱의 <금색 공책> 힘들었어요. 다섯째 아이는 읽다 포기했구요. 허억.

2020-05-09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9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0-05-1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스토피아 3권 디자인 ㅠㅠ 와.. 진짜 읽고 싶네요.... 아 ㅠㅠ 클낫다.....

단발머리 2020-05-12 19:47   좋아요 0 | URL
그립감이라고 하던가요. 손으로 집었을 때 느낌도 좋아요. 쪽수는 많지만 금방 넘어가기도 하구요.
아이구, 신나라!!!